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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3권 0호 (2015)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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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가 규명해 보고자 한 부분은 이류토템으로 선택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인식되고 있는 여우신성관념과 신라 건국·왕권신화의 내셔낼러티 관련성 문제이다. 이러한 아젠다가 성립 가능한 것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여우설화>의 향유맥락 속에 <고조선신화>의 내셔낼러티와 관련된 여우토템의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해당 텍스트 속에서 여우토템은 <고조선신화>의 내셔낼러티 맥락으로부터 배제되어 나타나는데, 여기서 배제된 여우토템은 <신라신화>의 내셔낼러티 관련 컨텍스트 속에서 다시 확인된다. 여우는 신라의 내셔낼러티를 대표하는 토착신격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한국신화의 통시적(通時的)인 수직좌표축에서 보자면 전대 국가와 후대 국가 사이에 상이한 내셔낼러티 상징 이류의 교체가 된다. 즉, 곰에서 여우로의 교체다. 여우신격이 지니는 신라 내셔낼러티는 동시대의 수평좌표축에서 병립한 <백제신화>의 토착 용토템과 대비되어 그 특수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여우신격은 <신라신화>의 내셔낼러티를 상징하는 신수(神獸)로 지목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류토템으로 정착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는데, 신라가 국가이념으로 선택한 불교에 신성유전형질(神聖遺傳形質)을 전달하여 권위를 정당화 해주기만 하고 배제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여우와 대비적으로 신라왕가 집단의 이류토템으로 선택된 것은 불교의 용 토템이 된다.

<왕회전(王會傳)>의 시간구성과 중화의식

김수현 ( Su Hyun Kim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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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王會傳>의 시간 구성이라는 형식적 특징과 이를 통해 구현되는 중화의식의 변화를 구명하였다. <王會傳>은 조선후기 중국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당시 중국은 명이 멸망하고 청의 지배가 지속되고 있었다. 명분상 오랑캐인 청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 문화를 고려해보면 하찮은 오랑캐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선의 인식은 복잡하고 미묘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王會傳>은 이러한 현실을 허구적 서사 형식에 담아낸 결과물이다. 본 연구는 현실적이고 다소 무거운 주제인 대청의식과 지식인의 현실인식을 담아내기 위해 ‘서술된 시간’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王會傳>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대 중국의 왕들이 등장하여 흥망에 대해 담론을 펼친다. 오랜 역사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창업과 반란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당시 조선에서의 중화의식의 변화와 현실인식을 드러내기 위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인위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몽유록 방식을 차용하였으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그것을 변용하였다. <王會傳>에서는 변화되어 가는 ‘중화’에 대한 인식 추이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 역전적 시간 구성을 고안하였고 아울러 ‘回顧’의 방식을 사용하여 역사의 순환 논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王會傳>에는 역대의 인물에 대한 八字評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 인물들은 작품에 등장하여 일정한 서사 기능을 수행한다. 작가는 八字評에서 보편적인 평가에 당대 지식인의 평가를 덧붙여 주제의식을 나타내었는데, 시간의 재배치에 의해 구현되어 중화의식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윤하정삼문취록』에 나타난 사대부가의 상례 양상과 의미

정영신 ( Young Sin Jung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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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하 장편고전소설 『윤하정삼문취록』에 나타난 상례의 종류들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는 데에 목적이 있다. 『윤하정삼문취록』이 집필된 조선조 후기는 유교식 상례문화가 보편화 되었으며 사대부가에서는 『주자가례』를 기준으로 삼아서 더 엄격하게 상례를 실행하였다. 사실 유교의 ‘예’는 살아있는 자를 위한 현세 중심적이며,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인(仁)’으로 귀결된다. 『윤하정삼문취록』에는 상층 사대부 가문원들의 상하 좌우, 복합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예’로서 상인(喪人)의 현실적 상황을 배려한 ‘예’와 복합적인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례’가 등장한다. 상층 사대부가에서는 부친상과 모친상, 장인·장모상, 외삼촌상, 양부모상, 양자의 생모상 등에 임하여 가문원들의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하고 있다. 또한 겹겹인친혼으로 맺어진 복합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상층사대부가에서는 무례한 사돈이나 인척의 상례 시 지극히 상대적으로 행해지는 형식적인 상례의 양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윤하정삼문취록』의 상례는 죽은 자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산자의 ‘예’인 상례를 통해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도리들을 소설적 장치를 이용하여 교훈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후손에게 길이 전해질 ‘예’의 교본 역할을 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가학을 통한 문장학의 전승과 발전 -평산신씨(平山申氏) 신흠(申欽) 가문을 중심으로-

이병주 ( Byung Jue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3권 0호, 2015 pp. 116-141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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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문에서 여러 대에 걸쳐 문장학으로 전통을 이으며,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평산신씨 신흠 가문은 문장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제기되던 시대에 약 1세기 4대에 걸쳐 문장학에 대해 큰 성과를 내었다. 신흠은 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문장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이것은 당시 도에 종속되었던 문장에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의 아들 신익성은 이 문풍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다. 이것은 그의 아들 신최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신최는 진한고문의 유용한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였고, 아들 신의화와 외조카 김석주에서 이러한 뜻을 전수하였다. 신의화와 김석주는 신최로부터 문장학을 배웠다. 그러나 신의화의 요절로 인해 문장학의 전통은 신흠의 적통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외손 김석주에 의해 집대성하게 되었다. 당대의 비평가들도 신흠 가문의 문장을 평하면서 김석주를 연장선에 놓았다. 김석주는 문장학의 공부를 바탕으로 다양한 선문집을 초선하고 출간했다. 그동안 쌓여온 외가의 문장학에 대한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고문백선』에서는 당송고문과 진한고문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가 담겨있는데, 이것은 신흠에서부터 시작된 고민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가문에서 문장에 대해 인식해간 과정은 조선후기 산문의 발달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이로부터 시작된 문장 형식에 대한 관심은 산문미학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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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교육행위를 통하여 자기 속의 잠재적 능력들을 계발함으로써 노동생활도 영위하고, 국가생활도 영위한다. 특히 국가에 의한 제도교육은 인류의 문명생활의 진보와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고, 또 그만큼 해당 국가의 정치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교육과 관련하여 자기교육인 수기(修己)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타인교육(他人敎育)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당대 최고의 정치학자이자 관료였던 율곡이 국왕 선조(宣祖)의 명으로 『학교모범(學校模範)』을 저술한 목적은 고등교육 기관인 중앙의 성균관과 사학(四學), 지방의 향교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교육활동은 주체의 개인 및 가정, 국가 및 학교 생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국가구성원 모두의 행복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관계되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존엄성과 학습권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교사선발 기준을 엄격하게 하되 경제적, 사회적 대우를 충분하게 제공하여 존경받도록 해야 한다. 넷째, 입학기회는 경제적, 신분적 배경을 초월하여 학문의지와 실력만으로 선발하는 공평성과 개방성을 보유하고, 학사관리는 엄정하게 해야 한다. 다섯째, 성균관과 사학, 그리고 향교는 중앙과 지방이라는 지역적 차이 외에는 어떠한 차별 없이 미래 국가관료를 양성하는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동등한 위상과 역할을 차지한다. 상기 율곡의 교육정책 인식은 오늘날의 교육현실을 개혁하는데도 강력하게 유효하다.

『논어』에서 학(學)의 의미

임헌규 ( Heon Gyu L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3권 0호, 2015 pp. 177-205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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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의 綱領으로 시작하는 『논어』는 15세에 學에 뜻을 두고, 평생 好學者로 자임했던 공자의 學問論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논어』 및 공자의 學字에 대한 연구는 그 용례를 識, 效, 覺 등으로 분석하면서 讀書와 篤行으로 크게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기존의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면서, 하나의 보완의 측면에서 학문의 분화와 그 대상과 연관하여 學의 의미를 다시 구성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논어』에서 말하는 學이란 그 대상과 목표와 연관하여 볼 때, 技術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器學, 교양과 인격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인문학, 그리고 궁극적인 도의 인식과 체득을 목표로 하는 道學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器學이란 인간이 자연 가운데 삶을 영위하는데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衣食住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기술로서, 공자는 여기에 해박하였지만 그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논어』에 오늘날 인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을 성질의 學의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곧 六經 혹은 六藝의 인식과 체득으로 인간적인 도리를 함양 훈육하는 것이다. 공자는 주로 이러한 학에 종사하고(六經刪定), 이러한 학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공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학은 궁극자(道 혹은 天)의 인식과 체득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는데, 공자는 평생 이러한 궁극적인 학은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논어』에 나타난 이러한 여러 학들은 인간의 삶과 연관한 총체성 속에서 수단-목적이라는 상관개념으로 함께 논의할 때 그 본래적 의미와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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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다수 연구자들은 담헌 홍대용이 북경방문 이전에 중화는 우월하고 오랑캐는 열등하다고 여겼으나 북경방문 이후에 화이평등으로 변화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홍대용은 북경방문 이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화이(華夷)에 대한 우열의식이 있었다. 단지 그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물론 북경방문이후에 쓴 『의산문답』에서 화이의 풍속은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경방문 이후에 김종후에게 보낸 편지인 「여김직재종후서」와 「우답직재서」에서 여전히 중화의 풍속은 우수하고 오랑캐의 그것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의산문답』에서 그는 주도(周道)를 실천하면 중화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랑캐라고 하여 전자를 높이고, 후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존양지의(尊攘之義)를 말한다. 즉 주도의 실천여부에 따라 화이를 구분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전히 그의 의식 속에 화이의 풍속에 대하여 평등하면서도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또한 주도의 실천여부에 따라 화이의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주도를 특정 지역의 특수한 윤리가 아니라 보편적인 윤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북경방문을 통하여 청나라의 문명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이 오랑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체두변발의 풍속은 짐승과 같은 것으로서 오랑캐라고 여겨 그 우열의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풍속으로서 화이를 구분할 수 없고 이 때문에 평등하다는 의식도 혼재하고 있었다.

법융(法融) 화엄사상의 일고찰

김천학 ( Cheon Hak K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3권 0호, 2015 pp. 227-25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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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학파의 주요 문헌인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의 구성문헌인 「법기」, 「대기(大記)」, 「진기(眞記)」의「3기」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본고에서는 법융(法融)찬 「법기(法記)」의 화엄사상을 고찰하여, 의상의 사상이 어떻게 계승되고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법융의 화엄사상은 지엄-의상을 잇는 신라화엄 사상의 흐름을 주로 하면서 의상 이후 동아시아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법장의 화엄사상을 의상과 동일화시키는 차원에서 수용하는 일면이 있다. 의상 이래 중시된 지론종 사상 역시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그것은 불타삼장(佛陀三藏)과 혜원(慧遠)에 대한 인용태도로 알 수 있다. 한편, 법융의 화엄사상은 자기의 신심과 부사의불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자기의 신심을 강조하는 것은 의상학파 이래 자신을 중시하는 전통을 계승한 것인데, 특히 자신심이 부사의불법이라고 명언하는 것은 법융만의 독특한 정의다. 또한 화엄일승은 깨달음의 경계로서 인과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의상이 설한 증분의 취지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도 자신심의 강조를 극대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와 같이 법융의 화엄사상은 의상의 화엄사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독자의 문맥으로 깨달음의 현재태를 강조하는데 그 사상의 독자성이 있다.

20세기 신채호의 18세기 안정복에 대한 역사인식-안정복의 『동사강목』을 중심으로

김수자 ( Soo Ja K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3권 0호, 2015 pp. 253-284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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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史’의 개념은 과거 사실을 기록하여 지나간 사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조선 전기 이후로는 ‘史’의 개념에 ‘정통의 계승’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1905년 전후 ‘사’의 개념은 ‘국민국가의 역사’, ‘민족의 역사’라는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같은 의미의 역사 개념이 자리 잡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신채호라 할 수 있다. 신채호가 한국역사에서 근대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신채호가 왕조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왕조사에서 탈피하여 한국사를 한국민족의 역사로 파악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한국사 서술을 위한 실증적, 고증적 방법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채호의 역사 서술태도에는 18세기 실학자였던 안정복의 역사인식에서 영향 받은 부분들이 많이 나타난다. 신채호가 안정복의 역사학에서 계승하고자 했던 것은 그의 정밀한 고증의 방법과 이를 통한 기존 역사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통사 서술이었다. 특히 신채호는 지리고증방법론을 이용하여 한국 고대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정복의 강역론에 영향을 받았으며, 안정복의 추론 과정을 인정하며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단군 강역론은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단군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한국 역사의 공간을 확대시키는 결과일 뿐 아니라 한국 역사를 체계화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할 수 있다.

宋代鄕村治理體系總體格局述論

주규택 ( Kuize Zhu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3권 0호, 2015 pp. 283-315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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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시기는 중국고대사회변혁의 중요한 역사적 발전단계이다. ‘민치의 밑바탕’ 향촌관리체계는 통치이념, 제도계획은 물론 실제 실행에 있어서도 전시대와 후대의 변혁을 연결시키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고 갈수록 세밀하고 복잡하였다. 많은 원인으로 송나라시기향촌관리체계 전체구조에 관한 연혁의 문제는 적지 않은 의문점과 논쟁거리를 남겼다. 사료의 정리와 비교분석, 추론을 거쳐 필자는 송나라의 향촌관리 체계는 세 단계와 세 종류 기본유형의 변화발전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송이 건국된 후 개보7년(974년)까지의 향촌관리체계는 당과 오대시기의 기본양식을 계승했고 개보7년부터 희녕연간 보갑법이 점차 추진되기 전까지 향촌체계의 변혁이 시작되는데 ‘耆’과‘管’의 설치가 향리제도형성에 충돌을 가져왔다. 희녕3년(1070년) 보갑법이 추진된 이래 향촌체계는 전면적인 변혁을 거치는데 ‘都’,‘保’,‘甲’이 형성되고 이 셋이 하나가 되는 기본방식으로 변화된다. 본고는 이러한 제도들의 발전과정방식을 중심으로 당시 농촌사회연구의 중요한 관건인 송나라향촌관리체계의 기본양상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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