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동방학검색

N/A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6권 0호 (2017)

정극인의 유교적 대동공동체의 삶의 추구

유육례 ( Yu Yuk-rye )
6,200
초록보기
정극인은 자기수양과 덕을 함양하여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유교의 대동공동체를 지향하였다. 그는 태인 향약을 설치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주변의 사람들과 형제애를 갖고 살아가는 삶을 일생동안 추구한 시인이고 유학자이었다. 그는 향음주례인 향약을 고현동에 설치하여 후학들에게 유교의 근본원리와 사상을 교육시키고, 일반사람들에게는 더불어 살아가는 유교적 대동 공동체의 중요성을 자각하도록 만들어 인간의 근원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실제 생활에서 체득하도록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붕우`(朋友)라고 칭하면서 유교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몸소 실천하였다. 그의 이러한 삶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유교의 대동학적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정극인은 자연과 타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기 위하여 태인 향약을 만들었다. 이 향약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타자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상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그의 꿈이 발현이었다. 그는 태인의 무성리에서 벗과 이웃을 사랑하고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유교이념에 기초를 둔 대동 공동체를 만들어 이웃들과 공동체의식을 직접 실천하였다. 그는 이공동체에서 타자를 배려하고 돌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추구하였다.

율곡의 예학사상(禮學思想)에 대한 문화적 의미 연구

김희 ( Kim Hee )
7,000
초록보기
본 논문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율곡의 개혁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擊蒙要訣』을 중심으로 율곡의 禮學思想에서 부각되고 있는 인간 행위의 동기성과 실천성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儀禮의 일상화 논리 속에 전제되어 있는 자발적인 행위의 동기성에 대한 의미를 율곡의 철학체계 속에서 분석하는 것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의식에 관계하는 禮의 심리적 기제를 문화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과정이 된다. 율곡은 理氣의 절충적 세계관을 토대로 인간 행위의식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擊蒙要訣』을 통해 제시한다. 그리고 『擊蒙要訣』에서 율곡이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위한 儀禮의 일상화는 인간의 기질 변화를 통한 새로운 생활문화의 형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율곡의 禮學思想은 군주 중심의 敎學的 질서체계와 다른 차이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율곡의 禮學思想을 대변하는 『擊蒙要訣』에서 강조되는 것은 儀禮의 일상적 실천을 위한 행위의 동기성과 時宜에 기초한 務實의 능동성이다. 또한 율곡에게 있어 儀禮는 일상의 생활문화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성인이 되기 위한 修身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율곡의 禮學思想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은 율곡의 철학체계에 기초한 禮學思想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념성과 연계하여 살펴보는 과정이 된다.

조선 후기 사대부의 일일지침서 연구: 성리학적 공부론을 중심으로

정환희 ( Jeong Hwanhui )
7,400
초록보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리학적 원리를 `하루` 생활 속에서 규율한 일일지침서가 본격적으로 출판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일일지침서에 담지된 성리학적 공부론을 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안정복의 『下學指南』「日用」, 윤최식의 『日用指訣』, 최동익의 「齋居日用三十五首」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이들 지침서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들 일일지침서에서 담지된 성리학적 공부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범도덕주의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2) 도덕적 실천공간이 가(家)에 집중되어 있다. 3) 경 공부, 4) 격물 공부, 5) 성 공부가 강조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수양론의 그 실제적 모습을 파악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열자(列子)』에서 꿈과 환상에 관한 소고

고은강 ( Koh Eunkang )
6,500
초록보기
『열자』에서 주된 내용을 이루는 환상(幻)과 꿈(夢)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변화(化)에 기반을 둔 삶(生)인데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론으로서 노님(遊)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다. 외물을 관찰하기보다는 자기의 변화를 관찰하고 유흥으로든 업무로든 몸이 상하지 않도록 자기 몸을 다스리며 이를 기반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만물을 다스린다는 방법론이 『열자』에서 제시된 삶의 기술, 즉 도(道)다. 이러한 삶의 기술이 함축하는 자유는 환상과 꿈의 경험을 통해서 化와 不化, 生과 死의 구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열자』에서 주목할 점은 환상과 꿈이 자유를 상징하거나 환상 여행 그 자체가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환상과 꿈은 자유를 향한 징검다리라 할 수 있다. 삶의 본질이 化임을 깨달아 生과 死의 구별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취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자족적인 遊의 경지에서 경험하는 자유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체다.
7,600
초록보기
본고는 근대 동아시아의 진화론 수용상에 나타나는 `천`이라는 전통적 관념의 작동 및 변용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진화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던 옌푸와 가토 히로유키의 진화론이해 및 수용의 양상을 비교함으로써 이들 모두 전통적인 `천`관념의 강력한 영향으로부터 진화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천`관념의 `불가지성`이라는 측면으로부터 서구사상을 수용하는 단서로 삼고 있었으나, 옌푸의 경우는 그 불가지성을 기반으로 `천연`이라는 원리 안에서 `임천`과 `승천`을 함께 공존시키며 종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가토의 경우는 그 불가지성으로부터 출발한`천부`의 관념이 자기모순에 빠지자 `천`의 초월성을 해소하고 철저한 자연의 법칙, 즉 `천칙`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자기 이론을 전개하였다.
12,400
초록보기
본 연구는 중국 종교설화의 역사적 전개사에 나타난 여성상을 검토하여 한국 종교설화에 나타난 그것과과 비교해 봄으로써 한국과 차별화되는 중국 여성관의 정체성을 규명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한·중의 여성상은 19세기 이후의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 서구에서 정착된 주체적·독립적 여성상에 대비되는 오리엔탈적 여성상의 공통 분모 속에 묶여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본 연구의 결과 한·중의 여성상은 유교·불교의 세례 속에서 원래의 모습으로부터 변동되었다는 공통점만큼이나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대의 중국 불교설화에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타파 대상이 되었던 유교적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여성적 이미지가 확인되는데, 이러한 비(非) 유교적 여성상은 근대 이행기 중국 종교설화 속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근대 이행기 중국 종교설화까지 이어지는 고대 중국 불교설화의 여성상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대 중국의 여성이미지와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중국의 경우와 반대로 한국 종교설화에서 확인되는 여성상은 종속성·수동성·객체성·대상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선행연구사에서 주도적·영웅적이라고 평가되어온 무속설화의 여성상마저도 텍스트의 궁극적인 종결방식과 전개방식을 중국 종교설화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가부장제의 존속과 유지를 위한 종속적인 대상성이 강화 되어있다는 차이가 확인된다. 이러한 한국설화 속 여성상은 유교이데올로기가 전면적으로 내면화 된 결과물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7,100
초록보기
이 글은 시공세계(時空世界)글쓰기를 통해서 관광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방법과 실제에 대해서 고찰했다. 관광에 있어 장소는 중요하므로 지역과 연계하여 논의를 하였다. 그 대상은 인제지역에 전승하고 있는 마의태자였다.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이다. 그가 아버지 경순왕이 고려에 바친 나라를 찾고자 경주에서 떠나 머물러 있던 곳이 인제이다. 이는 인제에서 문화적 의미로 볼 때, 전설과 지명과 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인제인들은 마의태자를 구국이라는 측면에서 향토인물로 마음속에 향유하고 있었다. 곧 인제사람들은 이미 천 년 전의 마의태자를 21세기 현재 시공에 현현시켜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시공세계글쓰기기법을 덧입혀 관광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기획했다. 시공세계글쓰기는 3차원의 시공에 4차원의 시간을 끌어들여 글을 쓰는 기법이다. 가상현실을 활용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사실 시공세계글쓰기기법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글쓰기방법이다. 이를 글쓰기를 통한 현재적 가치창출이라는 측면에서 필자가 글쓰기 방법으로 체계화 시켰다.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이 인제와 마의태자이다.

친정방문 관련 여성가사에 나타난 유람의 양상과 의미

최은숙 ( Choi Eun Sook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6권 0호, 2017 pp. 239-263 ( 총 25 pages)
6,500
초록보기
본고의 목적은 경남지역 여성기행가사에 나타난 유람의 양상과 의미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경남지역에 전승하는 여성기행가사의 존재양상을 개관하고 친정방문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 가운데에 유람과 기행의 성격이 나타난 가사를 본격적으로 살폈다. 친정방문을 목적으로 한 가사에 나타난 유람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친정 방문 자체가 유람의 과정인 경우와 친정 방문 이후의 유흥이 목적인 경우이다. 전자의 여정이 `친정으로 가는 과정-친정 방문-산이나 유흥지-유흥-귀로`로 정리될 수 있다면 후자는 친정 방문 이후 유람의 여정과 유흥에 집중되어 있다. 친정 방문 자체가 목적인 경우 유람은 동질감의 확보와 치유의 과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고원화류가>, <진식모형제사십년후기천가>, <사향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친정 방문 이후 유람과 유흥이 목적인 경우는 <갑오열친가>와 <열친답가>가 있다. 작품 내에서 가문을 상징하는 장소가 이들 작품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유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소로 변환된다. 여기서 벌어지는 윷놀이는 승부욕을 자극하면서 서로에 대한 조롱과 경계를 유발하는 유흥의 장이 된다. 한편 이러한 놀이성은 가사를 창작하고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이로써 가사 창작과 유통은 현장의 즐거움을 강화하고 서로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가 되고 있다. 이상의 연구는 여성 가사 전승의 지역적 확대 및 새로운 작품 발굴을 통한 여성 기행가사 정체성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조희룡의 「장오복전(張五福傳)」에 대한 시론적 검토

김경회 ( Kim Kyung-hoi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6권 0호, 2017 pp. 265-293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본고는 조희룡의 「장오복전」을 유협과 왈짜의 특성을 비교하며 장오복과 관련된 일화들을 고찰하였고, 그의 행적 또는 형상을 바탕으로 조희룡의 작가 의식을 살펴보았다. 우선 각 일화를 분석하면서 장오복은 유협이 아니라 왈짜임을 확인하였다. 장오복은 마을의 걱정거리로 인식된 인물로 제멋대로 분풀이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이 지향하는 방식보다는 일방적으로 또는 마음대로 다툼을 중재하였고, 유협이 추구하는 신의 또는 인간적 상결과 거리가 먼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조희룡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울분을 해소하고자 왈짜인 장오복을 유협으로 입전하였음을 추론하였다. 즉 그는 신분 제도의 질곡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 실천하고 싶었던 행동들을 장오복의 행적을 근간으로 묘사하여 심적 괴로움을 달랬다. 더불어 조희룡이 왈짜를 유협으로 입전하여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왈짜를 유협으로 미화하는 것이 묵인되는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가능하였다. 이와 같이 「장오복전」은 작가 조희룡의 욕구 해소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고, 장오복의 행적이 비판적으로 수용될 때 왈짜와 유협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으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7,500
초록보기
본 연구는 魏晉 및 16國時代 河西지역의 교역기반에 관하여 西域經營 및 소그드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검토 결과 위진시대 하서지역은 중원문화의 유입 및 발전이 심화되고 중앙아시아 소그드 상인의 유입 및 활동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대 서방 교역 거점으로서 돈황의 새로운 대두 및 역할이 간과 할 수 없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16국시대 하서지역은 중앙정부에서 이탈한 지방정권의 대두가 무엇보다도 주목되며, 이들의 남다른 교역 의지 역시 교역기반 파악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특히 위진시대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돈황은 16국시대를 거치면서 刺史의 治所로서, 그리고 國都로서 발전을 거듭하며 하서지역 교역을 주도하는 핵심 거점의 하나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16국시대 하서지역은 전량, 전진, 후량, 서량, 북량 등 여러 정권의 지배를 거치지만 교역기반의 전체적인 흐름은 위진시대에 비해 훨씬 견고하고 발전적인 양상으로 진일보하며, 소그드인의 유입 규모와 활동 지역 역시 위진시대에 비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상당 규모로 일가를 이루어 새로운 분야 및 지역으로 진출을 확대해가는 모습도 확인된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