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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9권 0호 (2018)

『조완벽전』을 통한 17세기 조선 지식인의 해외 인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정규식 ( Chung Ku Sik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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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조완벽(趙完璧)의 베트남 체험에 관한 기록을 대상으로 17세기 조선 지식인의 해외 인식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조완벽은 진주 출신 선비로 정유재란(1597) 당시 일본 군에게 포로로 잡혀가 일본 상인의 노예로 오키나와,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체를 체험한 이색적인 인물이다. 이로 인해 정사신(鄭士信), 이수광(李睟光) 등 17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조완벽의 베트남 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여기에는 그들의 해외 인식이 일정하게 드러나 있다. 이에 본고는 조완벽과 <조완벽전>의 관계를 살피고 <조완벽전>의 내용을 살핀 후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17세기 조선 지식인의 해외 인식 세계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조완벽전>에는 ‘경계와 의심, 비동질적 인식’, ‘문화적 우월 의식 고취’, ‘신이와 환상의 영역 혹은 죽음의 공간’ 등과 같은 당시 지식인의 인식들이 형상화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은 바다 건너 머나먼 이국땅인 해외(베트남)를 조선 및 조선인들에게 유의미한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이와 신이, 환상의 영역으로 치환함으로써 조완벽의 소중한 해외 체험을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개혁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당시 지식인들의 해외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전쟁 및 전쟁을 통한 월경(越境)의 경험을 대하는 조선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야담의 글쓰기와 스토리텔링 -시대별 ‘치부담(致富談)’을 중심으로-

이채경 ( Lee Chae-gyeong )
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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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談은 口演과 記錄이 공존하는 서사장르로, 하층민에 의해 구연으로 창작되고 식자층에 의해 기록으로 정착되었으며, 고유한 서사 구성과 방식을 통해 조선후기 변화하는 시대상과 다채로운 인물상을 담아냈다. 이는 현재 교육 및 문화 예술 전반에 성행하는 스토리텔링과 깊이 관련되며, 글쓰기 교육 및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한 서사형태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야담 작품 가운데 致富談의 경우, 첫째, 조선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실성을 담보한 글쓰기 방식이 뚜렷하다. 예를 들어, 시대별로 등장인물이 치부하는 방법이나 과정이 달라지고, 使行및 농업과 상업에서 활동하는 모습도 다양해져서 서사가 더욱 풍부해졌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變容된 부자 이야기는 21세기 경제논리에 맞춰 새롭게 각색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스토리텔링 할 수 있다. 둘째, 스토리 구성은 끊임없이 스토리가 첨삭 변개되며, 등장인물의 인생관이나 시사담론이 삽입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작자는 주인공의 성격과 기호행위를 새롭게 첨삭함으로써 스토리를 변개시키고, 인생관이나 시사문제를 거론하며 세태를 비판하였다. 이처럼 서사에 삽입된 시사담론을 통해 역사인물의 캐릭터를 보완하거나 현재 국가정세 및 국제관계에 적용시켜 다채롭게 스토리텔링 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후기 야담의 스토리텔링은 창의적인 사고와 효과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글쓰기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으며, 아울러 야담은 변화하는 시대에 흥미로운 인물과 다양한 사건이 담긴 문화원형으로서 분야별 또는 지역별 문화콘텐츠 개발에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설화 <선녀와 나무꾼>의 형성과 전승 양상

하경숙 ( Ha Gyeong-suk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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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온 익숙한 이야기로 그 줄거리는 내용은 단순하다. ‘착한 나무꾼이 사슴의 목숨을 구해주어서, 그 보답으로 선녀와 결혼을 하고 하늘에까지 올라가 행복하게 았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기본 내용에 특정 모티프가 첨삭되어 외연이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환상적인 면모를 지닌 다양한 스토리의 원천이다. 다만 유교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갇혀서 집권층이 그들의 체재유지와 이념의 틀을 견고히 하기 위해 환상성의 측면이 크게 부각되지 한 점도 있다. 유교에 의한 가족주의의 모습이 상세히 반영되어 있다. 한 사회 배경과 관련된 문화적 특성은 안정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선녀’라는 환상적 존재의 출현에 의해 표출할 수 있다. 또한 농경의 안전과 수확물의 풍요(豊饒)를 빌며,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삶의 징표가 환상적 존재로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은 타자(他者)와의 다양한 교류를 모색하고 있다. 인간과의 상생(相生)을 고민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전승된 작품속에서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다. 또한 진정한 소통의 의와 참된 애정의 구현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아울러 녀는 단순히 환상적인 존재로만 작품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독립심(獨立心)을 지닌 여성으로 자신의 역할을 당당히 수행한다.

명청(明淸)시기 중국에서 활동한 서양 선교사들의 자료를 통해 본 언어관 소고(小考)

김은희 ( Kim Eun H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9권 0호, 2018 pp. 101-120 ( 총 20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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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명대와 청대 중국에서 활동한 서양 선교사들의 자료를 통해 살펴본 중국에 대한 인식, 그 중에서도 특히 언어에 관련된 자료들을 분석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명청대 지배층이 달라진 부분에 있어서 서양 선교사들이 받아들인 한어와 만주어는 정작 한족과 만주족이었던 당사자들이 수용해야 했던 것에 비해 문화적인 충격이 그다지 높지 않았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선교사들의 자료에 보이는 한어와 만주어에 대한 기록 만으로만 판단해보면, 만주어가 한어에 비해 학습하기 용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내용에서 살필 수 있듯이, 청대에는 한어와 만주어에 모두 능통한 선교사들이 많았다. 현재의 시각으로 한어와 만주어를 이분화 시켜서 이해하기 보다는 당시 외국인이었던 서양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언어관을 통해 두 언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자료들을 발굴하고 면밀히 고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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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시아 전기소설의 원형 수용과 변용을 시공세계글쓰기란 관점에서 고찰했다. 시공세계글쓰기는 3차원의 시공에 4차원의 시간을 더해 시공세계의 입장을 견지한 글쓰기 방법이다. 요즘 항간에서 대두되고 있는 가상현실 등과 같이 환상과 실재를 결합한 글쓰기 방식이다. 이런 글쓰기방법을 동아시아 전기소설에서 이미 활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그를 통해서 실제 작품에서는 어떻게 그 원형을 수용하고 변용했는지를 분석했다. 동아시아 전기소설 작가와 독자들은 전기소설이 이미 시공세계글쓰기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기소설집의 서문이나 전기소설 자체에 대한 인식에서 잘 드러났다. 전기소설을 읽고 치유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전기소설을 통한 ‘현재적 가치 창출’이라는 이야기 마케팅 차원으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당전기 <유의전>이 한ㆍ중ㆍ일ㆍ월로 전파되면서 그 원형을 수용하고 변용한 사실을 시공세계글쓰기에 따라 알아보았다. 첫째는‘결핍과 해소’의 원형을 수용하면서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용하였다. 둘째는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라 할 수 있는 ‘낙원의식’의 원형을 모두 수용하면서 상량식 등의 화소를 넣어 변용하였다. 셋째는 시공세계의 연속이 <유의전>에서 보여주는 면을 수용하면서도 깔끔한 결구를 보여주었다.

『묵자』의 <소취편>에 대한 수리논리학 관점에서의 고찰

이광연 ( Lee Gwang Yeon ) , 박기섭 ( Park Ki Soeb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9권 0호, 2018 pp. 147-167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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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묵자(墨子)』의 <소취편(小取篇)>에 나타난 논리의 형식과 적용뿐만 아니라 논리적 판단에 대하여 오늘날의 수리논리학과 비교하여 고대 동양의 논리학의 수준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묵자』의 <소취편>에 있는 7가지 논리학에 대한 주장은 오늘날의 논리학과 비교해도 내용이나 논리적 전개에 있어서 전혀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묵가의 합리적이고 공리론적인 정신은 수학과 논리와 같은 분야의 논쟁에 대하여 개념을 정리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논리학이 남과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진리를 찾아내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지만 사상에 있어서는 동양의 역사상 가장 풍성한 시기였다. 묵자는 이 시기에 태어나 고대 동양의 수학, 과학, 논리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南朝時期的嶺南開發述論

조병림 ( Binglin Zhao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9권 0호, 2018 pp. 169-188 ( 총 20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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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광둥, 광시성지방인 링난(嶺南)지역은 남조시기 각 왕조 정권들의 통치아래 있던 구역이었다. 이곳은 이민족이 세운 북조정권들에 대항하는 후방전략의 큰 거점이기도 하였다. 링난지역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해 불순한 무리들이 자주 세력을 규합하여 자신을 호걸로 내세우고 있었다. 남조의 각 정권들은 이곳 링난지역의 경영을 중시해 정치적 목적으로 이들 ‘호걸’들을 기용했고 불순한 세력으로 그들 스스로를 통제하게 하였고 한편으로는 소수민족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이때 행정구역인 좌군좌현이 다수 설치되었고 서강, 동강, 남강 세 곳의 도호부가 생겨 링난지역의 안정을 꾀했다. 경제적으로는 생산력이 증대되었고 이에 관한 부분들도 큰 변화를 보여 농업, 수공업, 상업무역이 큰 발전을 하게 된다. 남조시기는 링난지역의 개발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링난(嶺南)지역과 링난북쪽 중원지역 나아가 외국과의 경제교류를 더 공고히 했고 링난지역의 통합시장경제의 형성을 촉진시킨 것이다. 또한 수나라가 이룩한 링난지역과 중국대륙의 통일은 경제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것은 물론 중국의 경제의 중심추가 남방으로 옮겨지는 촉진 제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한중일 삼국의 근대국제관계 - 청일전쟁

郝莉莉 ( Hao Lili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9권 0호, 2018 pp. 189-222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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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 개전하여 다음해 1895년 4월에 종결된 ‘청일전쟁(淸日戰爭)’ 혹은 ‘일청전쟁(日淸戰爭)’은 중국에서는 ‘갑오전쟁(甲午戰爭)’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明治27-8年戰役’이라고도 하며, 한국에서는 ‘갑오동학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청일전쟁은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근대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질서 판도를 바꾼 사건이다. 2천년 넘게 주변국이었던 일본의 동아시아세계 지배 판도가 뚜렷하게 새겨지게 되었고, 반면 청나라는 지금까지의 동아시아세계의 맹주 지위를 내려놓고 심지어 후일 반식민지로의 전락의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은 주권이 보호되었던 전통적인 사대질서의 국제질서 대신에 힘에 의해 주권의 생사가 좌우되는 근대 국제질서체계로 편입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에 대해 수사적 언어로 독립, 주권, 자주를 환기, 사용하였지만 그 목적과 결과는 한국과 중국의 식민지화 및 주권약탈이었다. 그 첫 완결국면이 청일전쟁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청일전쟁의 배경을 한국, 중국, 일본의 3국의 상황을 동시에 살펴 보는 것이었다.

The Tradition of Non-violence in Korean Confucian Thought

( Ahn Woe-soo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9권 0호, 2018 pp. 223-254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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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전통사상 속에서 비폭력적 사유 전통을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비폭력 사유전통을 살펴봄으로써 원시유가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비폭력 사유를 살펴보았다. 공자는 춘추시대 폭력이 질서의 기준이 되는 것을 목도하고 비폭력적 질서, 나아가 평화에 의한 질서 구축을 위해 인(仁)과 예(禮) 질서 복구를 추장하였다. 이것이 유교의 창시이다. 맹자는 예질서 회복이 어려운 전국시대의 본질을 인지하고 인(仁)과 의(義)의 질서 수립을 역설하였다. 공맹의 이러한 사상은 후진들, 특히 조선의 다산에게서는 인(仁)/서(恕)의 사상을 나타났다. 다산에게서 인은 ‘타인을 향한 사랑’이고, 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을 자신과 같은 시선에서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인/서 개념은 본질적으로 ‘비폭력’ 지향뿐만이 아니고 ‘적극적인 평화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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