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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2권 0호 (2020)

경와(敬窩) 엄명섭(嚴命涉)의 우환의식(憂患意識)과 수기복례(修己復禮)

이은혁 ( Lee Eun-hyuk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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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와 엄명섭은 일제강점기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현대까지 유학의 이념과 가치를 올곧게 지키며 학문을 닦은 도학자였다. 시대적 전환기에 경와의 우환의식은 ‘도학(道學)’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한말(韓末)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2세대 제자로서 도학을 계승하고,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고향의 금산서사와 전주 향교 등지에서 꾸준히 교육활동을 하였다. 한시를 통해서 본 경와의 우환의식은, 첫째 전통적인 유가의 도가 단절되는 데 있었다. 둘째 우환의식은 유가의 전통이 쇠락하는 데 있었다. 유학의 후계자를 길러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일생동안 교육을 행하며 후학들에게 부지런히 공부할 것을 권장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교육관은 ‘자기를 수양함(修己)’이었다. 순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위한 학문이며 그것이 진정한 학문이라 믿었다. 편벽된 기질의 변화를 추구하되 외적인 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순선한 본성을 회복하여 저마다 대업을 이루어야한다는 수양론적 입장이었다. 이와 같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학문자세는 당시 유학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태도였다. 수양에서는 ‘경(敬)’과 ‘성(誠)’과 ‘조심함[謹]’과 ‘부지런함[勤]을 강조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敬’을 학문과 생활의 기준으로 삼았다.

顔之推的治學思想及對顔氏家族文化發展影響硏究

洪衛中 ( Weizhong Hong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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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顔)씨가문은 위진(魏晉)시대부터 수당시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유명한 호족이었다. 비록 그들은 조정관료사회 중 고관대작으로 명성은 없었으나 높은 문화를 집안에 전수한 가문이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유학을 전수하는 것을 집안의 의무로 여긴 것이다. 특히 수당(隋唐)시기부터 안씨가문은 문화, 학술방면에서 않은 업적을 이룩한다. 이때 안씨가문은 경학(經學)으로 유명해지거나 문학사 방면에서 훈고학을 고증한 것으로 명성을 얻고 예술방면에까지 길이 이름을 남긴다. 이것은 안지추(顏之推)의 학술사상과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그는 이 방면에서 연구토론과 고증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학술사상의 윤리에서 가업계승의 중시와 사상의 내용에서 새로운 것의 창조를 강조한다. 그의 학술사상의 형성에는 세 방면의 연원이 있는데 ‘안지추의 위진남북조시기 학술에 대한 사상적 융합’, ‘안씨가문이 가진 학술사상이 안지추에게 미친 영향’, ‘안지추가 현실학술사상을 거울로 삼은 것과 자기학문의 체득’이다. 안지추는 이러한 것으로 큰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동시에 후대에 전수한다. 이것은 안씨가문의 이후 문화발전에 아주 훌륭한 기초를 닦는 지도역할을 한다.

한·중·일 고전문학 속 여성의 죄와 벌

이경미 ( Lee Kyung Mi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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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韓·中·日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 여성에 대한 정죄(定罪)의 왜곡된 기준과 처벌(處罰)의 전도된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가부장사회의 억압된 여성관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가부장사회 속에서 발생된 여성 특유의 범죄유형으로 1) 질투, 학대 등의 개인·윤리적 범죄 2) 음행, 훼절 등의 사회·제도적 범죄로 나누어 살펴보고, 이어서 그에 대한 처벌로는 1) 출가, 자살 등의 자기처벌 2) 타살, 형벌 등의 사회적·법적 처벌 3) 악몽, 변이(變異)등의 초현실적 처벌의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연구결과로는 고대 韓·中·日 삼국 모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윤리적인 잘못까지 형사적인 처벌을 하였고, ‘부정(不貞)’이나, 가부장적 사회속 여성 본연의 감정인 '질투'조차도 악(惡)으로 정죄(定罪)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죄’와 ‘잘못’의 혼동, ‘악행’과 ‘욕망’의 혼용으로 인해, 당시 여성들에게는 강력한 봉건적 잣대로 범죄화과정이 심화되었고, 처벌에 있어서도 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여성들은 이중고(二重苦)에 신음하고 있었다.

평창 판관대(判官垈)설화의 문화콘텐츠 발굴 및 활성화 방안

이학주 ( Lee Hak-ju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107-133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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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평창군에 전하는 <봉산서재와 판관대>설화를 분석해서 문화콘텐츠 발굴 및 활성화방안을 찾고자 했다. 이를 통해 평창의 관광을 활성화 하고, 평창을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다. 연구방법은 이야기의 중심어인 원형-개념어인 발상-확대어인 연상-경영할동인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신마인드맵에 따랐다. 먼저 <봉산서재와 판관대>설화의 원형과 구조에 따른 각 단락의 중심어를 찾았다. 원형은 ‘아이 밴 장소’ 곧 ‘잉태지’를 원형으로 하였다. 단락별 중심어는 ①판관대와 여행 ②주막의 역할과 사랑의 삼각관계 ③합궁의식 ④주모의 능력과 예언 ⑤선과 악의 대결 ⑥풍수를 추출했다. 다음으로 발상과 연상에 따른 이야기마케팅전략은 문화콘텐츠에서 추구하는 ‘문화상품’과 ‘산업발전’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궁극적 목표인 이야기 마케팅을 접목시켜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문화콘텐츠 발굴 및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첫째는 ‘판관대 여행’과 ‘합궁의식’과 ‘풍수’을 연계한 장소마케팅 차원이었다. 따라서 그 원형이 잉태장소이기 때문에, 어린 율곡이라는 아이캐릭터 만들어 활용하기, 판관대는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합궁한 장소이므로 부부합궁여행지로서의 장소여행, 그리고 태극이 들어간 풍수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주막의 역할과 사랑의 삼각관계’, ‘주모의 능력과 예언’, ‘선과 악의 대결’을 연계한 이야기마케팅 차원이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제안했는데, 하나는 여행지와 숙박시설을 놀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마케팅으로 꾸미기이다. 또 하나는 공연콘텐츠를 활용한 이야기마케팅으로 만들기이다.

텍스트 마이닝을 통한 향가 연구사 검토: 2000년 ~ 2019년 발행 논문을 중심으로

최정선 ( Choi Jungsu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135-169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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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학문 분야에서 텍스트 마이닝과 언어 네트워크 분석방법이 활용되어 다양한 결과를 산출하고 있다. 본 연구는 최근 향가 연구의 동향과 추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향가 주제 논문의 제목과 초록의 주제어를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 분석을 수행하였다. 고빈도 동시 출현 단어분석과 상위 키워드인 향가와 동시에 출현하는 단어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분석을 진행하였다. 향가 연구 논문에서 고빈도 핵심어는 『삼국유사』 이었다. 즉 향가 연구는 『삼국유사』와 밀접한 연결망을 형성하며 향가가 생성된 토대로서 활용되었다. 또한 향가연구가 『삼국유사』 향가 연구에서 『균여전』의 향가로 점차 연구의 영역 변화가 있으며 연구가 문학에서 사회,역사 융합으로 다양화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언어 네트워크 분석은 의미 연결망 분석으로 노드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연결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추출된 상위 핵심어를 중요도에 따라 연결, 공간적 구조로 시각화하였다. 2000년 이후 향가 연구의 경향과 의미를 찾아내고 노드와 연결의 강도 및 특성을 분석하여 보았다. 향가 연구는 『삼국유사』, 향가의 해독, 사상적 배경이 되는 불교, 균여 향가 등으로 연구 영역이 구분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최근 연구 경향으로 향가 교육 방법으로써 패러디가 주요 노드로 드러났다. 또한 동시출현 핵심어의 빈도수와 중심성 분석 결과 향가 작품 <처용가>가 가장 높은 중심성을 보였다. 반면 단일 작품 연구가 집중된 <찬기파랑가> <헌화가>보다 <도솔가> <원왕생가>의 연결정도 중심성(Degree centrality)이 높았다. 최근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텍스트 마이닝 방법으로 향가 연구사를 검토하여 연구의 경향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연구 논문의 핵심어를 공간적으로 시각화하여 향가 연구의 경향을 도출한 의미가 있다. 향가 연구 100년을 종합하는 데이터 마이닝을 추후 연구의 과제로 남긴다.

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의 유배시(流配詩) 연구(硏究)

강석근 ( Kang Seogkeu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171-201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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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숙종(肅宗) 시기에 남인문단의 종장(宗匠)으로 불리던 송곡 이서우의 유배시를 연구한 논문이다. 그는 1680년 10월부터 1683년 2월까지 4년간 함경도 부령에 유배되어, 문집 4권과 5권에 209제(題)의 시작품을 남겼다. 그의 유배시는 조개가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진주처럼 눈물, 회환, 고통, 그리움에서 나온 주옥과 같은 시문이자 북방지역의 박물지(博物誌)이다. 그의 유배시는 첫째, 눈물, 통곡, 함정,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의 정감, 눈물, 통곡으로 쓰는 반성과 회한의 정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팔수편(八雖篇)」은 유배기간의 여덟 가지 악조건에서도 장점만 생각하며 고통의 유배생활을 이겨낸 그의 긍정적 사고가 잘 드러난다. 둘째, 각종 식생과 풍속이 다른 함경도에서 그곳의 이국적인 풍속 등에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아이들을 땅에 묻는 매아(埋兒)의 기괴한 풍속과 모친학대의 악속(惡俗)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경제적, 민속적 측면에서 지역의 특산물인 베[麻布]의 상품성을 적극적 부각시키고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현창하였다. 셋째, 이서우는 불교에 대한 신심이 아주 특별했다. 승려와의 담론은 죽음을 잊게 할 정도로 재미난 일이었고, 유배기간 중 얻은 우울증을 불교적인 수행법으로 극복하였으며, 산사의 사계를 노래한 시 중 겨울을 읊은 시는 고차적인 불교 수행과 지식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조선 후기 내궁방(內弓房) 궁내인(內弓人)의 별조궁(別造弓) 제작실태

장경희 ( Jang Kyung-h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203-240 ( 총 38 pages)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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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활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본고는 조선 후기의 문헌 기록을 통해 우수한 활을 생산할 수 있던 배경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內弓房에 소속된 장인이었던 궁인과 시인을 분석하여 그들의 신분이나 활과 화살의 제작실태, 이것들의 품질을 감독한 관리의 존재, 그 품질검사를 위해 개최한 활쏘기 대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조선의 국왕은 중국사신이나 신하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別造弓에 관심이 많았다. 이것들이 우수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숙종은 ‘知弓品堂上’이라는 관리를 두었다. 영조는 그들이 이것들의 등급을 매겨 單子에 기록하고, 병조에 보고하도록 했다. 특히 활쏘기에 능했던 정조는 신하들의 활쏘기 대회[試射]를 자주 열어 이것들의 성능을 확인했고, 품질이 우수한 활을 만들거나 활쏘기를 잘한 사람을 상을 주어 권장했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까지 내궁방의 궁인과 시인은 일반적인 장인들과 달리 신분적으로 높았는데, 벼슬에 오르지 않은 무인 계층이 종사했다. 그들은 활이나 화살을 제작하는 기능뿐 아니라 무인으로서 활을 쏘는 무예도 탁월했다. 그들 중 우수한 장인들은 20년간 내궁방에서 활이나 화살을 1,000개 이상 제작한 것이 관리와 관청에 의해 확인되면, 높은 벼슬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일부는 40년이나 60년간 제작하기도 했고, 여러 형제가 장인으로 근무하여 장인 집안을 형성하기도 했다. 따라서 본고에서 우리나라 활과 화살의 우수성은 장기간 종사한 장인의 숙련된 기능과 감독자의 꼼꼼한 품질 검사 및 관청의 철저한 기록 관리의 결과라는 점을 밝힐 수 있었다.

중국 ‘고전무(古典舞)’의 성립과 다원화

남종진 ( Nam Jongji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241-270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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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전무’는 1954년에 새로운 무용교육과정으로 만든 ‘중국고전무(中國古典舞)’에서 시작되었는데, 본래 전통 희곡(戱曲)에 남아있는 무용 요소를 발췌한 신단(身段)을 발레의 훈련방법에 접목시킨 것이었다. 이후 무용의 중국적 정체성을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중국의 고유한 문화적 색채를 가미하면서 ‘중국고전무’는 ‘신운고전무(身韻古典舞)’로 진전되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9년에 이르러 둔황(敦煌)의 벽화에 묘사된 무용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돈황무(敦煌舞)’가 만들어 졌는데, 이것이 이론적 체계를 갖추면서 새로운 유파로 인정되면서 ‘고전무’는 마침내 다원화의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1995년에는 타이완(臺灣)의 한당악부(漢唐樂府)가 중세 이래로 푸젠성(福建省) 일대에서 전해지던 이원희(梨園戱)에 근거하여 ‘이원무도(梨園舞蹈)’를 만들었고, 2001년에는 베이징무도학원(北京舞蹈學院)의 쑨잉(孫穎) 교수가 문헌기록과 고고자료를 근거로 역사적 고증을 거쳐 ‘한당무(漢唐舞)’를 재구성해냈다. 이 두 유파는 무용이 지닌 역사성, 전승성, 정체성에 근거를 둔 것으로 기존의 ‘신운무’나 ‘돈황무’와 비교하여 전승의 기제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또 2009년에 이르러 남방의 전통 희곡인 곤곡(崑曲)을 기반으로 ‘곤무(崑舞)’가 창안됨에 따라 ‘고전무’는 마침내 다섯 유파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의 ‘고전무’는 규범성, 역사성, 계승성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무용’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현대 중국의 무용 전문가들이 중국 전통 무용의 동작을 서양 발레의 훈련방법에 접목시켜 창안한 데서 출발한 새로운 춤이다. 따라서 고전무용을 계승한 일반적 의미의 ‘고전무용’과는 다르며, 고전 무용의 분위기를 담아낸 ‘고전풍의 춤’이라는 점에서 ‘모던 클래식(Modern Classic)’의 일종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안외순 ( Ahn Woe Soo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271-303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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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은 ‘청일전쟁(淸日戰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기존의 경우 ‘청일전쟁’의 동기나 원인에 대해서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찾으면서 정작 전쟁과정이나 결과를 논함에 있어서는 ‘동학농민전쟁’과의 관계를 거의 논하지 않고 마치 별개인 것처럼 처리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는 승자 중심의 역사관, 일본 중심의 역사관이 깊이 투영된 결과이다. 이 논문은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논문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청일전쟁’은, 특히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청과 일본이 주축국이 아니고 조선민중과 청, 그리고 일본의 ‘삼국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의 원인은 조선의 부패나 동학농민혁명이 아니라 조선의 일관된 파병중지 요청과 철군 요청을 무시한 일본의 침략야욕이다. 일본은 조선 출병과 주둔에 대해 시종 조선의 자주와 개혁을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정문제로 관여할 바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타국의 최고 주권자가 있는 경복궁을 무단 군사점령 하고, 무력협박 상태에서 각종 친일중심의 개혁논리를 강요하였으며, 심지어 조선이 공식 원조를 요청한 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자국과 공수동맹조약(攻守同盟條約)을 강제로 체결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淸)이 전쟁에서 패하고 떠나자 조선민중들은 조국의 주권을 수호하고자 ‘동학농민전쟁’, 곧 ‘또 하나의 청일전쟁’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정부와 화약(和約)을 맺고 집강소의 협치까지 했던 동학농민(東學農民)들이 다시 농민군(農民軍)이 되어서 소위 ‘근대 문명국’ 일본의 신식 무기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문명 일본’은 사실상 양민을 상대로 학살을 하였고, 게다가 조선정부와 농민군을 강제로 상호 적으로 만드는 반인륜을 저질렀다. 결론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청일전쟁’의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청일전쟁’으로 인해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였다. 즉 1차 기포는 내정개혁을 위해 일어난 혁명으로서 내정 문제였고, 2차 기포는 일본이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벌인 조선의 주권을 침탈 만행에 저항하여 일어난 ‘전쟁’이었다.

역사 ‘기록’과 영웅 ‘출현’의 관계: 신채호의 『을지문덕』 저술을 중심으로

김수자 ( Kim Sooja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42권 0호, 2020 pp. 305-33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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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역사적 상상력’에 의해 과거의 사실이 ‘새롭게’ 재구성되고 역사 글쓰기의 목적의식적 성격이 한국에서 강하게 드러나던 때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후 시기이다. 대표적 인물로 ‘영광스러운 민족사’, ‘영웅의 역사’ 책을 저술한 신채호를 꼽을 수 있다. 신채호는 역사상에 실재했던 국난의 위기를 극복해낸 영웅의 면모를 ‘극대화’시키는 저술 활동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회복을 꾀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역사 영웅을 드러냄으로써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신채호의 첫 영웅전 저술로는 1908년에 발간된 『을지문덕』이다. 『을지문덕』 저술시 신채호는 ‘역사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실제로 국내 역사서들뿐 아니라 중국의 사서들도 섭렵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채호의 『을지문덕』의 저술 동기가 영웅의 출현이라는 기대감뿐이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채호는 『을지문덕』을 저술하며 기존에 영웅의 역사 ‘기록’의 소략함이 영웅의 부재로 이어졌다며 영웅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을지문덕 관련 ‘기록’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꼼꼼하게 정리, 비교 분석하였으며 이것을 책의 한 장으로 구성하였다. 신채호가 『을지문덕』을 저술하기 위해 참고하였던 대표적인 자료들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동국통감(東國通鑑)』, 『동사강목(東史綱目)』,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 『여지승람(輿地勝覺)』, 『성호사설(星湖僿說)』 외에도 중국의 역사서인 『수사(隋史)』 등이 있다. 신채호는 이 책들을 섭렵하며 고려시대 김부식에서부터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고구려사와 을지문덕에 대한 인식을 수용 및 비판하는 자세를 보였다. 신채호는 현재 한국의 힘이 약해진 것은 ‘승리의 역사’의 부재 때문이고 이것은 영웅 역사의 부재 때문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영웅이 부족한 것은 한국역사 속 영웅에 대한 기록의 소력함과 영웅들의 기록을 중심하지 않았던 후손들의 태도 때문이라며 기록의 수집 및 보존을 중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을지문덕』은 발간 이후 지속적으로 신문에 판매 광고가 실렸으며 주요 도시의 책방에서 판매,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이것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후에는 조선총독부가 금서로 분류하여 압수와 수색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좌우대립의 극심한 혼란과 신생 독립국가 수립의 염원을 담은 『을지문덕전』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구한말 신채호가 저술한 『을지문덕』을 저본으로 하고 있으며 달라진 시대적 상황의 혼란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이와같이 해방 이후에도 을지문덕에 대한 재현물에 기초가 된 것은 신채호의 『을지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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