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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ociety of East Asia 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
  • - 해외 등재 : -
  • - ISSN : 2288-833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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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漢文學(한문학)의 역사적 접점과 그 특징

심경호 ( Kyung Ho S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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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일 한문학의 역사적 접점을 몇가지예를 들어 한일 한문학의 비교문학 방법에 대해 고찰하여 보았다. 한문학 형성기에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字書, 韻書, 類書 등을 수용하여 각자 언어적 특성에 맞게 활용하였다. 한국은 7세기 무렵 『切韻』계 운서가 수입되었고, 일본은 대개 8세기에 韻語를 사용하게 된 듯하다. 또한 신라는 국학(682)과 독서삼품과(788)를 설치하여 한문학 소양을 갖춘 문인을 양성하였고, 일본의 奈良朝(710~784)는 『學令』에 의하여 유학과 잡학, 문학 교육을 강화 하였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지식층은 漢文文言에 의하여 시문을 짓기 위해 한자음의 平仄과 韻屬을 학습하고 암기하여야 하였다. 한국의 경우는 신라 말한문문언 사용 지식층의 형성과 고려 시대 과거 제도의 실시와 더불어 한자음의 평측과 운속을 습득한 문인들이 많이 나왔지만 일본의 헤이안 시대와 나라, 가마쿠라 시대에는 그러한 문인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국에서 문자생활에 활용한 한문 문체는 문언어법의 고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변격한문을 포함한다. 다만 科擧에서 부과되고 공적 생활에서 주로 사용한 문체는 문언어법의 고문 문체였다. 이두식 한문 등 변격한문은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판각되어 지속적으로 감상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일본에서 준한문이라고 부르는 和漢混合文體가 발달하고, 그 문체로 작성된 문장이 판각되어 유포된 것과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한자음의 평측과 운속을 습득한 문인들이 일본보다 많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한자한문을 활용한 지식활동에서 평측과 압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었다. 이를테면 조선 전기에 柳希春은 識字敎本으로 『續蒙求』를 엮었으나, 李瀚의 『蒙求』와 달리 압운체계를 구조화하지는 못하였다. 이 『續蒙求』는 1659년에 일본에서 복간되고 享保 연간에는 관판본도 나왔는데, 이후 菅亨의 『本朝蒙求』(1686)을 비롯한 독자적인 『몽구』의 속찬서가 나왔다. 『本朝蒙求』는 나름대로 압운체계를 구조화하였다. 17세기 이후 일본 지식인은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여 그러한 구조화를 실험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압운의 구조를 문자활동에서 능숙하게 활용하는 지식층은 조선만큼 형성되지는 않았다. 한편 조선시대 운서는 『三韻通考』와 같이 3성을 한 면에 제시하고 入聲을 마지막에 두는 방식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奎章全韻』은 4성을 한 면에 배열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聚分韻略』 역시 3성 배열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양국의 운서에서 3성을 3단으로 우선 배열하는 체제는 서로 다른 경로로 『中原音韻』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과거제도는 규범적 지식을 산출하면서 한문학을 발전시켰으나, 지적실험과 감성의 표출을 방해한 면이 있고, 광범한 범위의 사상서나 문예서의 출판과 유통을 제한시킨 면도 있다. 일본의 경우는 에도시대에 출판문화가 발달하고 사상적, 문예적 취향도 다양화되어 조선보다는 광범한 범위의 사상서와 문예서가 속속 간행되었다. 또한 被虜人과 통신사를 통해 조선의 지식세계가 일본에 전해져 에도 문화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양국 지식인은 역할이 달랐으므로, 같은 서적을 열람하더라도 에도 지식인과 조선 지식인의 사상적 지향은 같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 豫知談(예지담)의 양상과 의미

전성운 ( Sung Woon Ch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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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예지담의 양상과 그 작품 내적 기능과 의미를 살폈다. <삼국지연의>에는 천문(天文)의 변화와 참요(讖謠), 서상(瑞祥)과 변괴(變怪), 몽조(夢兆)와 술사(術士)의 예언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예지담이 존재한다. 이들은 하늘의 별자리 움직임과 오행(五行)의 변화, 천진한 아이 들의 노랫말에 내장된 은유와 상징, 대장기 혹은 아기가 갑자기 부러지는 것과 같은 상서롭거나 그렇지 못한 일, 꿈이나 이인(異人), 술사의 말 등을 통해서 인문적 질서의 변화나 특정한 사건의 도래를 예지한다. 이런 예지담은 서사를 추동하여 작품의 미감을 조성하고, 인물의 형상화에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삼국지연의> 소재 예지담은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될 가치가 있다. 특히 <삼국지연의>의 국내 유입과 소 통이 적지 않았던 만큼, 이에 대한 고찰을 통해 국내 소설과의 관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春香傳>의 중국 월극(越劇)으로의 변모양상에 대한 고찰

왕피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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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춘향전>이 중국 월극(越劇)으로 개작된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변모양상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월극 <춘향전>은 조선민주주의인 민공화국 국립고전예술극장의 연출본(演出本)을 저본으로 한 것이다. 개작은 완판84장본으로부터 북한 창극으로의 1차 개작과 북한의 창극 <춘향전>으로 부터 월극으로의 2차 개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차 개작과정에서 관리집단 에 대한 비판과 계급투쟁의식이 강화되고, 춘향의 신분이 처와 첩 사이에 애매 한 것으로 형상화되었으며, 민중들의 형상도 많이 강화되었다. 2차 개작과정 에서 관리집단에 대한 비판은 변학도의 악행에 집중되어 있고, 동비(銅碑)를 세워 춘향을 기념하는 특별한 에피소드를 삽입해서 당시 중국인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감정을 투영했다. 한편,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은 재자가인식의 사랑으로 개작되었고, 완판 84장본에서의 골계와 해학이 많이 약화되었다. 문학작품은 당시의 사회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의 북 한과 중국에서 <춘향전>은 창극 <춘향전>과 월극 <춘향전>과 같은 내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의 문화·역사·정치 등 제반 요소들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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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심청전>과 베트남의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은 양국의 효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민중의 자각의식이 싹트면서 양국에서 공동문어로 사용해왔던 한문을 지양하고 양 국민이 자신의 국어라 생각했던 한국의 한글, 베트남의 쯔 놈으로 창작한 작품이라는 의의가 있다. 또한 한국의 <심청전>과 베트남의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은 양국 민중문학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양국 민중의 기층의식 속에 녹아있는 효 사상을 추출하기에 적합한 작품이다. 양 작품 모두 ‘실명과 개안’의 모티프를 가진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양국에서 공연예술 무대에 자주 오르는 작품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두 작품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양 작품에 나타난 효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양 작품의 문학사적 배경과 작품을 소개하였다. <심청전>은 작가 와 저작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조선 후기에 나온 한글소설로 <심청전>은 판소리로 불리면서 전승되었기 때문에 ‘판소리계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판소리계 소설은 한글소설의 한 갈래로 민중의식의 성장에 따라 출현되어 당대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심청전>은 설화를 소재로 삼아 구전전승 과정을 거치면서 기록된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되며 <심청전>의 형성에 직간접의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는 근원설화는 국내외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견되었다.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은 작가나 저작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쯔 놈 문학이 유행하던 18~19세기에 설화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쯔 놈문 학은 19세기 전후 혼란했던 정치사회 현실로 인해 베트남 민중들의 자아의식 성장에 따라 출현되었다. 쯔 놈 문학은 6·8체와 7·7·6·8체 형식의 쯔 놈 소설등이 있다.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은 870행으로 된 6·8체 쯔 놈 소설로 쭈엔 놈 빙전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다. 또한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은 다양한 공연예술 극으로 만들어져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공연예술 극은까이 르엉이다. 까이 르엉은 남부 지방의 민요와 프랑스 낭만류의 영향 받았다. 이러한 까이르엉은 동서 문화교류의 성공작으로 볼 수 있으며 가장 발전된 무대예술로서 베트남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3장에서는 줄거리, 인물, 배경, 구성, 주제로 나누어 두 작품을 실제적으로 비교하였고, 4장에서는 3장의 분석을 통하여 나타난 양 작품의 효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심청전>의 심청과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에서 토아이 카잉의 효는 모두 부모를 위한 것이나 심청은 친부모, 토아이 카잉은 시부모라는 차이가 있다. 둘째, 심청과 토아이 카잉의 효는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고행과 희생을 감내한 효라고 할 수 있다. 효의 실천 양상에 있어서도 한국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나타나나 베트남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신체 일부를 희생함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나를 버리고 부모님을 살리기 위한 효이고, 베트남은 나의 신체를 부분적으로 희생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살기를 원하는 가족 결합의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 효행의 목적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셋째, 희생의 원인을 살펴보면 <심청전>은 맹인인 친부의 신체적 결함 때문 이었고,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은 남편과의 재회 및 시어머니와 함께 온 가족이 결합하기 위함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넷째, 심청과 토아이 카잉의 효행을 유교적 관념으로 보면 심청은 자신의 친부모에게, 토아이 카잉은 출가하여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남편을 따를 뿐 아니라 그 시부모를 섬기며 효행을 실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상에서 볼 때 한국의 <심청전>에서는 효 사상 그 자체를 강조하면서 자식이 부모를 위해 자신이나 자식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사고를 보이고 있었고, 베트남의 <토아이 카잉과 쩌우 뚜언>에서는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윤리적인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효는 부모님을 살아계시나 돌아가시나 한결같이 내 몸을 다하여 섬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베트남은 가족 결합의 의지를 나타내는 효이다. 이러한 양국 효의 차이를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한국과 베트남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베, 베-한 다문화 가정의 가정문제 해결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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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東(동)아시아 武將傳(무장전) 심포지엄 : 동아시아에서의 <三國志演義>의 수용과 전개 -한국 사례를 중심으로

소메야도모유키 ( 染谷智幸 ) , 한희경(한국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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