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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敎(Nestorianism)는 Nestorius로부터 비롯된 東方 基督敎의 한 흐름이다. Nestorius는 예수에게는 완전한 神性과 완전한 人性이 함께 존재한다는 ‘神人兩性說’과 ‘마리아非聖母說’을 주장하였고, Cyrilus는 예수의 神性만을 강조하는 ‘單一性說’과 ‘마리아聖母說’을 주장하여 대립하였다. 431年 에베소宗敎會議에서 Nestorius는 異端으로 定罪되고 Egypt로 流配되어 451년에 죽는다. Nestorius의 제자인 Bar Soma가 페르시아로 도피하여 神學校를 세워 宣敎師를 양성했고, 天山山脈을 거쳐 唐나라로 傳播된다. 635년 阿羅本(Alopen) 일행이 唐의 수도 長安에 들어왔고, 太宗이 이를 허용한 후 敎勢가 확대된다. ‘光明한 종교’라는 의미로 ‘景敎’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德宗 시대가 景敎의절정기로서, 景淨(Adam)이 碑文을 작성하여 781년에 <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건립되었다. 碑文에는 景敎의 歷史와 敎勢 및 敎理가 적혀 있고, 側面에 65명의 景敎 僧侶의 이름이 시리아 문자로 적혀 있다. 景敎는 唐 末期인 845년의 會昌禁敎와 879년의 黃巢의 亂에 타격을 입어 쇠퇴하였다. 1908년 펠리오(Pelliot)에 의해 敦煌 石窟에서 三威蒙度讚 , 尊經 의 景敎 文獻과 人物 塑像이 발견되었다. 序聽迷詩所經, 一神論, 志玄安樂經, 宣元至本經 의 景敎 문헌도 敦煌 石窟에서 流出된 것이다. 阿羅本이 번역 한 經典으로는, 예수의 가르침과 一代記가 서술된 序聽迷詩所經 과, 唯一神에 의한 天地創造와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한 一神論 이 있다. 景淨이 번역한 經典으로는, 預言者 22명과 漢譯 經典 35부의 이름 기재된 尊經, 예수가 탄생할 때 天使가 부른 <大榮光頌>을 기록한 三威蒙度讚, 예수가 安樂道에 대해 설명하는 志玄安樂經, 景敎의 道에 대해 설명하는 宣元至本經 이 있다. 景敎는 1) 마리아를 神母로 숭배하는 것을 반대하고, 2) 十字架 이외의 形象은 사용하지 않고, 3) 死後의 贖罪論을 부인하고, 4) 승려의 結婚을 허용하는점에서, 改新敎(Protestantism)와 相似하다. 1956년 慶州에서 발굴된 遺物 가운데 石製十字架와 예수를 안은 마리아像이 있어, 統一新羅(676~935)에 景敎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87년 慶北 榮州 王留洞 ‘분처바위’에서 統一新羅 末~高麗 初에 造成된 것으로 추정되는 岩刻 人物像이 발견되었는데, 像 주위에는 ‘□□□□’라는 히브리語文字와 ‘耶蘇花王引導者刀馬明’과 ‘名全行’이라는 漢字가 새겨져 있다. 이岩刻 人物像도 手勢와 발가락의 露出 및 服裝의 文樣에서 景敎와의 관련을 찾을 수 있다. 渤海(698~926)의 유적 여러 곳에서도 十字架가 발견되었다. 13~14세기 元代에 景敎는 ‘也里可溫(Erkegun)’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행했다. 高麗에 들어와 활동하던 元의 景敎 敎徒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征東行省의 平章政事로 임명되어 高麗의 奴婢制를 革罷하려 했던 기와르기스(闊里吉思)이다. 景敎가 韓國 佛敎와 교섭하며 그에 끼친 영향, 그리고 韓國 古典文學에 남긴 흔적 등에 대하여 필자는 앞으로 관심을 갖고 探究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