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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ociety of East Asia 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
  • - 해외 등재 : -
  • - ISSN : 2288-833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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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계일기에 나타난 저자의 의식세계와 그가 바라본 중국像을 살펴 보았다. 儒者 노인은 유교 윤리덕목을 두루 갖춘 조선사대부의 전형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시상황에서 노인이 지탱한 근간은 義의 윤리이다. 공적으로는 大義의 실현을 위해 조선에 있을 때는 참전하였고 일본 포로로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탈출하여 천자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사적으로는 부모와 임금에 대해서 무한한 효와 충을 보였으며 바른 것을 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모두 상의 예의를 지켰으며 변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서는 강한 응징심리를 보여주었다. 중국 사대부들과 교류함에 있어서는 본인 역시 조선의 사대부라는 계층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아 현지 사대부들과 당당하게 교류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예에 큰 관심을 갖고 소상히 금계일기에 적어둔 면이 각별하다. 노인은 개인, 국가, 천하는 동심원으로서 임란에 明의 파병은 천자가 인을 행한 것이기에 당연하나 조선 역시 자체적으로 항전해야 한다고 의식하고 있었다. 노인이 본 중국은 풍요로움과 물력이 대단하였으며 중국인들 역시 의기가 충후하였다. 이런 유교의 본고장에서 노인은 수신의 기회를 얻었고 천자로부터 “공의 충은 문천상 같고 절은 소무와 같다”는 칭찬을 들었으며 자신이 정리한 응변복수책을 천자에게 올리는 義도 행해 천하의 중심부에서 사대부로의 직책을 온전히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은 조선의 재조지은의 나라일뿐더러 儒者 노인에게 있어서는 나라와 자신을 포함한 재조지은의 나라로서 아주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삼국유사』 「원성대왕」조의 원성왕 형상

박성혜 ( Park Seongh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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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유사』 「기이」편에 수록된 「원성대왕」조를 고찰한 것이다. 「원성대왕」조는 5개의 단위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존의 논의는 여러 단위담중 일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 글은 단위담 전반을 대상으로 논의를 확장하여, 「원성대왕」조라는 이름 아래 원성왕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주지하다시피 원성왕은 신라 하대의 성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원성대왕」조를 구성하는 단위담은 각각 북천신, 만파식적, 호국룡, 여의주 등을 중심 소재로 삼아 원성왕의 왕으로서의 탁월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첫 번째 단위담은 신라의 모태가 되는 사로국 때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했던 북천신을 문화적 표상으로 끌어와서, 신라 왕조의 신, 즉 시조로부터 왕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원성왕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단위담은 중대 왕권의 상징이자 신물인 만파식적을 원성왕의 아버지인 효양이 원성왕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는 상대의 시조에게 권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신라 중대의 계승자로 자리한 원성왕을 강조한다. 세 번째 단위담은 당나라 사신과 하서국 사람들이 조장한 위기를 극복하고, 호국용들을 구해오는 원성왕이 그려진다. 앞서 두 번째 단위담에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것과 더불어 당나라의 사신으로부터 탄복을 자아내는 원성왕의 형상은 복잡한 대외관계 속에서 신라를 지키는 왕의 형상이다. 특히 하서국 사람 2명이 호국용에게 주술을 걸어 잡아가는 형상은 원성왕이 즉위하던 당시 경쟁자였던 김주원이 하서량, 즉 명주로 물러나고 그의 아들과 손자가 각각 원성왕의 손자인 헌강왕 때에 반란을 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네 번째 단위담은 자라에게 보시를 베풀었던 사미 묘정이 그 보답으로 자라에게 구슬을 받고, 이 구슬로 인해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당나라 황제까지 만나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 구슬이 당황제가 잃어버렸던 여의주였다는 내용이다. 『장자』 외편에 실린 상망일화를 끌어와서 새롭게 구성된 이 단위담은 불교의 유사(遺事)를 기록하려 한 『삼국유사』의 편찬 의도와 관련하여 불교의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원성왕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성왕 증손자인 애장왕 때에 이르러 원성왕은 신라 왕실의 제사인 오묘(五廟)에서 ‘원성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봉안되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신라 하대의 열조(烈祖)로서 인식되었다. 원성왕 사후에 지속되었던 의례와 당대에 향유되었던 다양한 설화 및 역사적 사실들은 원성왕을 둘러싸고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였다. 여기에 승려 일연의 편찬의도까지 더해져 역사적 인물이자 동시에 설화적 인물로서의 원성왕이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씨삼대록>의 ‘순씨’ 우행(愚行)에 나타난 웃음의 의미

윤준섭 ( Yoon Joon-seo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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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삼대록>에서 순씨는 우행을 통해 주변 인물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유씨 집안 여성들이 순씨를 보고 웃는 것은 따듯한 웃음보다 비웃음에 가까웠다. 그 웃음은 순씨의 외양이나 문화적 취향의 결핍, 투기, 음주 등 부녀자의 덕목위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순씨는 주변 인물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 마음은 남편 유세필을 향한 것이었다. 이 모습은 유교적 예법에 충실하여 자신을 엄숙하게 단속했던 유씨 집안의 여성들과 대비된다. 이 점에서 순씨가 유씨 집안의 여성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양상을 다시 볼 수 있다. 순씨는 자신의 본능대로 우행을 저지르지만 유교적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유교적 예법에 얽매여 스스로 본성을 억누르는 유씨 집안의 여성들의 삶이 본성에 충실한 순씨의 자유로운 삶과 비교할 때 웃음거리가 된다.

18~19세기 중국에서의 세책(貰冊) 문화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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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찍부터 출판 및 서적 유통이 발달한 중국에서 과연 세책(貰冊, 도서대여)도 융성했는지를 살피고, 그 세책 독서문화의 의미를 고구하고자 했다. 한국 내 중국 세책 관련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도 세책 관련 자료와 논의 자체가 많지 않다. 그것은 실제 중국에서 세책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서포(稅書鋪)라는 세책점(도서대여점)이 있었고, 보증금과 대여료[租賃, 또는 租費]를 받고 17세기 이후로 강남 지역과 북경 등 대도시에서 통속소설을 빌려 읽었던 사실을 일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중국 서적 유통과 독서 문화 이해에 있어 부분적 의미를 제공할 뿐이다. 서적 출판 및 유통 시스템이 일찍부터 잘 갖춰져 다양한 책 매매가 가능했던 데다 장서 의식이 컸던 중국인 독자에게 있어 책을 직접 구매하는 것은 매력적인 소비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 서민 독자들(여성 포함)은 대여비가 구매비보다 저렴했기에 세책 소설을 즐겨 찾고, 애용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빌릴 때 맡기는 보증금이 구매비용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아 세책이 일반 소비자에게 폭넓게 다가가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은 세책 문화가 발달한 한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등과 비교할 때, 특수한 지점이라 할 것이다. 비록 세책문화가 활성화되진 못했지만, 중국에서는 책방에서 빌려주던 통속소설을 음란서적 내지 불온서적으로 규정짓고 금지령을 내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이 청대에 집중된 것으로 중국세책업은 17세기 이후에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중국의 세책 문화는 세계 세책문화 발달 및 쇠퇴 요인을 이해하고, 세계 세책문화 지형도를 그리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말하는 영웅 -제주 조상본풀이에 나타난 영웅의 죽음과 말을 중심으로-

조현설 ( Cho Hyun-so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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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영웅은 어떤 얼굴을 지니든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양이목사본>의 양이목사는 제주민의 공마 헌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한다. <부대각본>의 부대각은 집안의 보존을 도모한 ‘부집’ 사람들에 의해 희생당한다. 희생을 통해 제주의 두 조상신본풀이는 제주민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영웅의 형상을 제시한다. 희생에 즈음하여 두 영웅은 후손들에게 ‘나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제주의 일월조상굿은 이 유언을 재현하는 의례이다. 그런데 이 유언에 표현되어 있는 제주민들의 목소리와 정체성은 같지 않다. 양이목사처럼 현실의 권력에 칼로 맞서는 저항도 있지만 부대각처럼 목숨을 내걸고 신에게 등장하는 저항도 있다. 그러나 저항의 형식은 달라도 두 영웅이 유언을 통해 외부의 힘에 저항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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