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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apanese Modern Association of Korea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45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0권 0호 (2015)

「헐벗은 삶」과 정치의 붕괴 -잃어버린 전후 70년, 그리고 50년-

마키노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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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부터 일본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취해 왔는가. 달리 말하자면, 전후 일본은 무엇을 상실했는가. 둘째, 전후 일본은 국제관계, 특히 한일국교정상화에 성공했는가. 달리 말하자면, 일본은 국제적·국내적으로 평화 실현에 노력하며, 법적 정의를 실현했는가. 셋째, 일본 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은 「올바른 삶」(bios)을 향수했는가. 넷째, 현대 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과학 기술은 국내외 국민의 「올바른 삶」에 상응하는 「희망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상과 같은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첫째로, 현재 일본에서는 평화헌법에 적합한 민주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은 노력을 통해서 획득한 민주주의·입헌정치를 상실했다. 둘째로, 전후 70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셋째로, 일본의 정치는 붕괴상태에 빠져 있고, 「헐벗은 삶」(zoe)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넷째로, 8월 14일의 수상 담화에 대한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은 미국을 예외로 국제적 불신감을 강화시키고 있고 동아시아로부터 고립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정치의 붕괴를 막고, 국민이 상실한 것을 회복하며, 이웃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첫째로, 「7·1 쿠데타」 이후,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를 인간의 「삶」의 양의성과 관련해서 해독한다. 둘째로, 현대 정치의 붕괴와 그에 따라 발생한 「헐벗은 삶」의 여러 문제들을 밝히고자 한다. 셋째로, 필자는 「7·1 쿠데타」가 상징하는 일본의 「정치 붕괴」에 의해서 적나라하게 노출된 「헐벗은 삶」의 상황에 대해서, 정치의 본래 모습을 탐구하기 위한 「올바른 삶」의 의의를 규명한다. 넷째로, 「정치 붕괴」는 아베정권이 목표로 하는 분쟁의 해결 방법이 「자율형 무기」의 활용을 촉진시키고, 「7·1 쿠데타」의 최종 국면으로서 「헐벗은 삶」에 의한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위기에 노출시키는 리스크를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전후 정치의 붕괴에 가담한 「미국 예외주의」의 공죄를 지적하고, 바람직한 시대의 도래를 위한 방향성을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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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지형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구도를 특징으로 하지만, 특히 광복 60주년 장면과 광복 70주년 장면 사이의 10년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일본은 전후 60년과 전후 70년의 차이는 그리 특별한 의미는 없어 보인다. 한국의 산업화-민주화 구도와는 달리 일본의 정치지형은 개헌-호헌의 구도가 갈등 관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전후체제를 탈피하는 구도이다. 그러면서도 애국심, 교육재생, 731포즈를 하나의 계열언어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 교육재생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본질을 말하자면, 교과서 파동, 야스쿠니 참배, 교육기본법 개정, 호헌-개헌 문제 등은 한국이나 중국과 갈등을 일으킬 문제라기보다는 일본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일본 내의 정치적 성숙과 협동적·지성적 상호작용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만 전전·전중·전후의 문제에 책임 있게 임하는 일본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바른 일본, 강한 일본, 아름다운 일본, 새로운 일본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본 한일관계

고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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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70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은 한일우호와 협력을 도모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올해 8월 14일 발표된 아베담화는 그 기대를 크게 저버리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베정권의 보수적인 움직임은 한국인의 대일감정을 자극하고, 한국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있으며, 양국 여론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일 양국 국민들이 함께 역사와 적극적으로 대면하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화해하고, 기억해가며, 미래를 창조해가는 일, 그리고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한일우호를 구축하고, 나아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과제를 함께 실천해가는 일은 한일우호와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시민의 교류와 이해와 연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교육에서 ‘동아시아시티즌십교육’과 ‘글로벌시민교육’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고에서는 첫째로 역사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불성실한 자세를 ‘제2의 죄’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 둘째로 글로벌시민교육의 관점에서 한일 양국 시민이 함께 실천해나가야 할 교육 과제를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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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처음 교육현장에서 사용된 『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 각 국 간의 갈등해소와 평화추구’라는 목표아래, 하나의 사건이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지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과목은 목적의 당위성을 뒷받침해줄 서술내용이 불충분하였다. 이에 본고는 『동아시아사』서술상의 문제점을 보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이 재현하고 있는 전쟁기억을 통해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살펴보고, 『동아시아사』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였다. 평화자료관이 재현하고 있는 전쟁의 기억은 첫째, 일본의 침략을 ‘대동아공영권의 허구’라는 전시를 통해 이론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밝혔다. 둘째, 전시 내용의 대부분을 조선인과 중국인의 전쟁피해 실태와 전후보상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셋째. 나가사키의 조선인 원폭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였다. 특히 강제 노역된 조선인과 중국인들에 대한 증언기록은 이 자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특징적인 기록물로서 로컬 자료관으로서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었다. 평화자료관이 보여준 전쟁기억은 『동아시아사』의 교육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첫째,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의 구체적인 실상과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입장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둘째, 동아시아의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관련 기관과 개인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평화자료관의 전쟁기억은 공공기억이 포함하지 못하는 기억을 보완할 수 있었다. 평화자료관이 보여주는 전쟁의 기억들은 국가가 기억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재현하여 그간 역사의 수면 아래에 있었던 사실들이 역사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카 씨를 비롯한 그와 뜻을 같이하는 개인들의 노력, 그리고 기록의 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고 있는 일본인들의 노력을 엿볼수 있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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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따라 연합국최고사령부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 근거에 의거하여 한국영토로 처리했다. 연합국은 독도를 무인도로 간주하여 영토적 지위 결정을 피했다. 일본은 대일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 결정되었고, 한국이 평화선을 선언하여 독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독도를 고유영토로서 인식하고 있고, 일본은 ‘다케시마’가 근대 국제법의 영토취득 이론에 의해 취득한 영토라고 생각한다. 한일 양국 간에 이러한 영토인식 차가 있다. 지금은 세계보편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독도문제의 해결방법은 일본이 세계보편적인 가치관을 갖는 날까지 독도의 영토주권이 침탈당하지 않도록 해서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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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를 제3기로 구분해서 일본의 신문 속 「험한」언설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1기 : 1992-1998>일본군의 「위안부」문제를 외교문제로 쟁점화하는 한국정부에 대해서, 그 이전까지 한일우호에 전념해 온 일부 사람들의 사이에서 한국과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이것을 「험한」감정이라고 기술했다. <제2기 : 1999-2011>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을 통해서 활발해진 한일 민간교류와 월드컵, 그리고 2003년부터 시작된 한국 드라마의 유입을 통해서 한류가 시작되었고,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가 「느끼지 않는다」보다 상회한 시기이다. 하지만 월드컵 보도와 북한의 납치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공간에서는 「험한」언설이 확산되었고, 이는 「만화혐한류」를 기폭제로 해서 일반 사회로 분출되었으며, 재특회의 재일코리안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 등의 형태로 인터넷 밖의 시민 공간으로 확산되었다. 그라나 같은 시기, 산케이와 아사히 모두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한 대부분의 기사가 「험한」언설로는 표현·게재되지 않았다. <제3기 : 2012 2015>「험한」언설은 혐한서적을 비롯한 보수계 잡지, 주간지, 일간 지 등을 통해서 불특정다수인 일반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기에 발족한 한일 양국의 현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역사인식의 차이로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일 양국의 미디어는 서로 배타적 내셔널리즘의 언설을 전개했다. 이와 같이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한일관계를 배경으로 「험한」언설 역시 한국 국민모두가 「반일」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반일」외교, 「반일」행위라고 라벨링하며, 「험한」의 모든 원인은 「반일」보도를 하는한국 미디어와 「반일」국가인 한국정부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일 언론과 일본군위안부 -보도양상 및 미디어 프레임 분석?

김동윤 , 오명원
한국일본근대학회|일본근대학연구  50권 0호, 2015 pp. 141-168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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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일 양국의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언론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를 보도양상과 미디어 프레임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 것이다. 보도양상에 있어, 한국과 일본 언론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중요한 현안으로 다루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국가 이익과 이해에 기반한 민족주의적 보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이와 같은 국익 중심의 민족주의 보도 관행은 현재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 현황에 대한 진단, 일본군위안부 갈등 원인, 그리고 그 해결 방안에 대한 프레임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이 추구하는 이념적 지향성이 보도양상과 미디어 프레임에 일정한 차이를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추론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국익 중심의 민족주의의 보도 관행을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의 보도 자율성과 다양성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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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日本語と韓國語の副詞‘全然(zenzen)’と‘전혀(cheonhyeo)’を對照分析し、類似点と相違点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ものである。BCCWJと말뭉치(malmungchi)の資料から‘地の文’と‘會話文’の出現から‘全然(zenzen)’と‘전혀(cheonhyeo)’の文분の差を見ると、‘全然(zenzen)’は‘會話文’に58.9%が現れ、11.0%が現れた‘전혀(cheonhyeo)’に比べて出現頻度が高いことから、‘全然(zenzen)’はより話し言葉的で、‘전혀(cheonhyeo)’はより書き言葉的であると言える。逐語譯が可能である場合でも文분の相違はあり得るということである。呼應する述語の品詞は、否定形の場合も肯定形の場合も、後に來る品詞が、動詞、名詞、形容詞の順で現れる。そして、呼應する述語形式は、‘全然(zenzen)’と呼應する述語が否定形の場合は 610例(74.6%)、肯定形の場合は208例(25.4%)であり、‘전혀(cheonhyeo)’と呼應する述語が否定形の場合は506例(73.1 %)、肯定形の場合は187例(26.9%)で、現傾向が非常に似ている。‘全然(zenzen)’と‘전혀(cheonhyeo)’と呼應する述語の種類も、‘全然(zenzen)’と呼應する述語として一番多く現れるのは‘名詞+ない’で、‘違う’‘分からない’‘名詞+しない’‘知らない’の順であり、‘전혀(cheonhyeo)’の場合に一番多く現れるのは‘名詞+없다(ない)’で、‘하지 않다’‘다르다’‘모르다’‘名詞+되지 않다’の順であることから、呼應する述語順が似ていることが分かる。‘全然(zenzen)’と‘전혀(cheonhyeo)’は、意味用法において類似していて、肯定形より否定形とより呼應度が高いことでも共通している。また、否定形と呼應する 述語の出現傾向も類似度が高く、呼應する述語の種類の順位の近似さからも類似度の高いことが確認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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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세계』는 1895년 1월 1일 하쿠분칸에서 창간되어 한 달에 두 번, 총 587권 정도를 발행한 뒤 1933년 1월에 폐간된 소년을 대상으로 한 종합 잡지이다. 창간된 이후 5년간 소년 잡지로는 유일하게 연간 발행 부수가 매 년 백만 부를 넘겼고 거의 매해 발행 부수가 150만부에서 200만부를 유지됐다고 통계되고 있다.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소년 대상 종합 잡지이며,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아동 잡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소년세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어 미학습자가 접할 수 있는 관련 연구 자료 또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지금까지 면밀히 다루어 진 적이 없었던 1895년에서 1897년까지의 발행 초창기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소년세계』에 소개된 조선의 ‘이야기’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조선상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비위 생적’이고 ‘비근대적’인 조선상은, 일제 강점기 이후 식민 통치정책으로 이어지는 조선상의 기본 틀로 작용하게 된다. 『소년세계』를 통해 ‘유순(優柔)한 상대’로 그려지기 시작한 조선은, 이후 총독부가 내세운 ‘유순(優柔)’이라는 새로운 덕목을 지향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한 한반도 지도 형상에 대한 논란의 시발점도 『소년세계』에서 찾을 수있었다. 독자들의 능동적인 참가에 의해 조선이 일본의 우월함을 반증하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목격할수 있었다. 또한『소년세계』를 통해 1895년에 세 편의 조선 전래 동화가 소개된 사실도 확인하였다. 이 세 편의 동화는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로 쓰였다는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일본 소년 잡지에 소개된 최초의 조선 전래 동화이자 조선 최초의 전래동화집인 『조선 동화집』보다 무려 29년이나 먼저 소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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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불안한 환경에서 전쟁미망인과 복원병의 생활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미망인 지요코는 아들 유이치를 보육원에 맡기고 요릿집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하지만, 미망인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쫓겨난다. 복원병 스기모토 역시 가까스로 직장을 구했지만, 그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스기모토와 동생 겐지가 사랑하는 여인들은 전쟁미망인이다. 먼저 겐지가 전쟁미망인 유리코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진다. 불안해진 스기모토는 지요코와의 결혼을 위해 직접 시골로 가지만 부모님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겐지는 유리코가 떠나고 난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하쓰시마로 떠난다. 그러나 스기모토는 지요코와 함께 하쓰시마로 가 바다를 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 두 형제와 전쟁미망인의 사랑을 모델로, 사회 인습에 좌절하는 모습과 용기 있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요코 역시 차츰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기모토와의 결혼을 자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이렇게 후미코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전쟁미망인과 복원병 문제가 정부시책보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에 의해 해결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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