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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론과 비평검색

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8권 0호 (2013)

이기영 소설의 개제(改題) 양상과 그 의미

김영애 ( Kim Young-ae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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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 말기와 해방기 출판 관행 및 이기영의 월북과, 그의 작품이 개제된 사실 사이에 주목할 만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를 규명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궁극적으로 이기영 소설의 개제는 작가의 의지가 아니라, 출판업자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행위로 귀납된다. 곧 출판업자가 프로문학의 대표 작가였던 이기영의 소설을 통해 상업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성과 계몽성이 강한 원제목을 좀 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제목으로 수정한 것이다. 본고는 해방 전후로 두 편의 개제작이 확인되는 이기영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의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식민지시기에 발표한 이기영의 장편소설이 단행본으로 재출간되는 과정에서 『신개지』는 『순정』으로, 『생활의 윤리』는 『정열기』로 바뀌고, 작품의 일부가 누락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개제작들이 확인되는 다른 작가들과 비교할 때 이기영 소설의 재출간 과정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측면은 좀 더 신중한 논의와 고찰을 요한다. 해방을 전후로 등장한 개제작들은 분명 출판업자들의 상업주의 전략에 의해 탄생한 국적 불명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는 작가와 출판계, 문단의 공생을 위해 기획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의 출현이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혼란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출판계, 문단이 ‘개제’라는 무리수를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상황에 대한 고려와 이해 역시 필요하다. 본 연구를 통해 작가와 개제 행위 간 명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개제라는 행위를 둘러싼 작가와 출판 상황, 그리고 사회적 맥락의 총체를 읽어낼 수 있다면, 이는 개제를 통한 작가의식의 변모 혹은 출판계의 상업주의적 행태가 초래한 혼란상 등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신개지』와 『생활의 윤리』의 개제 양상은 당시 출판 시장의 혼탁함과 상업주의적 행태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동시에, 저작권이나 판권에 대한 인숙 수준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이 작품들은 창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를 중시하기 시작한 시기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근대 저작권 개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젠더정치학의 관점에서 본 이기영 - 초기 단편을 중심으로

이채원 ( Lee Chae-won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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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민촌 이기영의 작품 세계는 계급과 리얼리즘이라는 분석 틀을 통해 해석되어 왔다. 본 논문에서는 젠더정치학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다. 젠더는 인간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층위이면서 사회적 계층, 민족, 인종 등의 다른 정체성의 층위들과 연결되어 계급을 형성한다. 따라서 젠더정치학의 관점에서 이기영의 텍스트들을 분석했을 때 기존의 사회주의 계급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볼 수 없었던 보다 중층적이고 유동적인 계급의 의미망들을 밝힐 수 있다. 젠더는 온갖 이데올로기들의 연결고리이면서 가부장제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지배 이데올로기와 연관관계에 있다. 또한 젠더는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젠더에 대한 연구는 사회구조와 문화적 무의식 그리고 이를 만들어내는 권력관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이기영의 텍스트가 내포하고 있는 젠더정치학은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양성평등과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봉건제도의 희생자였던 여성인물이 계급 인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여성 성장서사를 구성한다. 특히 계급적 억압과 성적(性的) 억압의 이중 억압을 겪어야 했던 하위계층 여성들의 저항과 성장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는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젠더정치학의 기본 명제를 잘 보여준다. 이기영이 형상화 한 여성 인물들은 단지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봉건사상’과 ‘가정지옥’과 ‘문맹’과 ‘남자에 대한 예속’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때로 ‘윤리’와 ‘도덕’으로 포장된 기존 규범에까지 저항하기에 상당히 진보적이다. 더 나아가서 배타적 섹슈얼리티에까지 저항하는데, 자신의 감정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솔직함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상당히 급진적이다.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결혼제도와 보수적 가족주의로 안착할 때 이는 부르주아적이며 반동적일 수 있으나, 이기영의 텍스트에서 형상화 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은 계급투쟁 더 나아가 인간해방의 정신과 연결된다. 이기영의 이러한 문학적 실천은, 계몽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유연애를 동경했던 당대의 우파 민족주의 계열의 작가들과 다른 방향으로 향했으며 계급의식에만 경도되었던 여타 카프 계열 작가들과도 변별된다. 일상의 정치학에서 때로 차별과 편견이 도덕이나 윤리의 이름으로 규범화되기도 한다. 특히 윤리나 도덕으로 포장된 배타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위반은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혁명보다 더 불온하고 더 어려운 것일 수 있는데, 이때 문제적이 되는 경우는 남성보다는 여성이기에 이는 젠더정치학의 측면에서 관심 있게 조명하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의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가 완고한 것이었다 해도 그에 대한 저항 담론을 이기영의 텍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존의 가부장제 패러다임 속에서는 사랑과 결혼도 식민지 점령이 될 수 있으며 타자를 식민화 하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비록 이기영의 텍스트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못했으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과 그것을 향한 단초들이 곳곳에 제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젠더정치학의 관점에서 의의 있는 담론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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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의 한국시에는 시인이 처한 비극적 운명에 대한 표상화를 통해 윤리적 성찰과 모럴 의식을 드러낸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본고는 임화(林和)의 1930년대 후반 시 창작에 나타난 ‘시인’ 표상과 비극적 운명론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임화가 견지하고자 했던 윤리적 주체로서의 내면적 모럴과 그 진정성을 밝혀내고자 했다. 이는 1930년 후반 한국시에 나타난 다양한 운명론의 계보를 추적하려는 기획의 일부이다. 임화 시에서 운명론은 시기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카프 해산기의 임화는 일제의 압박으로 주체 절멸의 위기에 빠진 자신의 상황을 ‘운명’이란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이때 시적 주체는 파시즘적 현실 앞에서 왜소한 존재로 위축되어버린, 무기력한 자아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소위 ‘현해탄’ 계열의 시에 이르러, 임화는 위대한 이념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갔던 ‘청년’의 운명에 주목하고 이를 ‘위대한 낭만정신’의 견지에서 노래하였다. 물론 객관적 현실의 중압으로 인해 청년의 긍정적 ‘운명’ 예찬이 불가능해지자 임화는 「주유의 노래」의 경우처럼 반어와 역설을 통해 왜소화된 ‘시인’의 모습을 자기고발하고 부정적인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1930년대 말기에 임화는 당시 상황을 시인의 입에 마이크 대신 ‘재갈’이 물린 것에 비유하고, 다시 ‘시인’의 ‘비극적 운명’을 노래하기에 이르렀다. 임화에겐 이것만이 ‘육체’가 비대한 현실 속에서 그 ‘육체’의 길과 구별되는 ‘시인’으로서의 ‘정신’의 길을 걸어갈 유일한 방법이었다. ‘시인’의 정신의 길은 일제가 강요하는 사이비 인륜성에 맞서 내면적 모럴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임화는 ‘밤의 시인’이란 역설을 동원하여 암흑기 현실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타자로서의 시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자고 새면」(1939)은 이러한 시쓰기조차 더 이상 불가능해진 비극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시적 주체는 ‘시인’의 진정한 모럴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 운명론을 적극 드러냈다. 그가 그려낸 ‘시인’의 마지막 운명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시쓰기 행위를 중단하는 것, 그러니까 ‘시인’의 정체성을 폐기함으로써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고 ‘진정한 시인’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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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화자-발화의 양상을 중심으로 1919년 이후 1925년까지 이어진 상해판 『독립신문』 소재 시가를 살폈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1910년대 중반부터 한국 근대시의 선구로서 작품을 발표해왔던 김여제의 작품을 중심 사례로 분석하였다. 시형식뿐만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서도 『독립신문』은 3.1운동이후 생겨난 국내의 매체들에 대하여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민족과 독립이라는 역사적 문제를 우선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었다. 매체의 주필진이었던 이광수와 주요한은 조국애나 동포애를 기반으로 망국의 통한과 비극성을 고발하고 독립과 광복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매체의 주류적 경향을 이끌고 있었다. 김여제는 「萬萬波波息笛을 울음」을 위시한 1910년대의 작품들에서 외부 세계와 대립을 선언하고 내면으로 초월하던 당대의 상징주의적 경향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독자적인 화자를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1919년에 이르러 『독립신문』에서 민족주의적 시가들에서 1910년대 이전의 계몽기시가와 구별되고 초기 상징주의나 『폐허』 류와 구별되는 화자-발화의 양상을 통하여 새로운 계몽적 주체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측면들을 종합할 때 『독립신문』의 김여제가 동시기의 조선에서는 금지되어 불가능한 표현들이 억압과 자의식의 검열 없이 등장하고 있었던 상해라는 공간에서 동인지류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시적 주체를 성취해가고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여제는 근대초기 시인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러한 조건들과 그로 인한 고민들 속에서 즉 시의 존재이유, 시적 주체와 발화형식의 문제 등에 관하여 누구보다 앞선 자리에서 첨예한 대응과 실천을 보여 주었다.

동요작가 목일신의 문학적 생애

이동순 ( Lee Dong-soon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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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동요작가 목일신의 문학적 생애를 추적하여 정리하여 문학사적 위치를 해명하였다. 목일신은 항일운동가의 삶을 살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부친 목홍석 탓에 일찍 사회에 눈떴다. 그가 동요를 창작하게 된 것도 부친이 가르쳐준 우리말 글쓰기 덕분이었다. 전주 신흥학교에서 삐라를 직접 만들어 배포한 혐의로 퇴학을 당한 것도 부친의 영향 덕분이다. 이런 관계로 그의 동요는 민족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의 문학적 생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목일신은 1930년 전주 신흥학교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전주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로 인해 전주 신흥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였고 그 후 고향인 고흥으로 돌아가 오로지 동요 쓰는 것에 매달렸다. 그래서 1930년에 쓴 작품만 무려 63편이나 된다. 이 점은 그가 동요로 항일하고자 하였다는 것과 어린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말한다. 둘째, 어린이를 주체적인 타자로 설정하고 ‘어린이-되기’로서 동요를 썼다. 그가 발표한 지면의 대부분은 민족 언론이었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였고, 일제가 전시동원체제를 가동하던 때 절필함으로써 민족정신을 지켰다. 이것은 결국 ‘어린이-되기’의 한 차원이었다. 한편으로 목일신의 동요에는 많은 곡이 붙었다.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들의 대부분이 곡을 붙여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자전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셋째, 그는 동요만 쓴 것이 아니고 당시 유행하였던 신민요와 유행가의 가사도 썼다. 그가 쓴 노랫말들은 유명한 가수들이 레코드로 취입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국어를 가르쳤고, 탁구부 코치와 연식정구 코치 겸 감독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목일신은 항일에 앞장섰으며 커다란 문학적 족적을 남기고 있는 작가이다. 올해는 목일신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아동문 학사는 그에게 문학적인 위치를 찾아줘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김구용의 「소인(消印)」에 나타난 수금의식(囚禁意識) 연구

이수명 ( Lee Su-myeong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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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의 「소인(消印)」은 살인의 누명을 쓰고 취조를 받는 ‘나’가 무죄를 주장하고 항변하지만 실제로 살인을 했는지의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송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중편소설 분량의 산문시이다. 본 논문은 「소인(消印)」의 ‘나’는 표면적으로는 무죄를 진술하지만, ‘나’의 하루 동안의 상황을 추적해 보건대, 살인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나’에 의해 자행된 거미나 나비의 살해, 강간범의 살해 시도가 작품 속 녹빛 외투 여자의 피살로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복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강박으로 이해된다. 반복과 강박의 결합은 반복강박이나 운명강박으로 전개되고 이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을 행위의 반복에 대한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존재로 이해한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반복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소인(消印)」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살인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요컨대 「소인(消印)」에 나타난 수금의식(囚禁意識)은 바로 이러한 반복과 강박에 수금되어 있는 ‘나’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수금이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감방에 갇혀 있다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반복강박에 수금되어 있는 내면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김춘수 시의 변화에서 역사와 사회가 지니는 의미 연구

전병준 ( Jeon Byung-joon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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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김춘수의 시 가운데 초기에서 중기로 이행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시편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그의 시의 변화 과정의 원인을 진단하는 하나의 관점을 마련할 수 있는지 검토하였다. 김춘수는 존재론적 관심에 집중한 시를 쓰는 한편 자신의 시작 기법을 창안하기 위해 고투하거니와, 시에서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형성하고자 한 무의미시론의 정립 과정과 자신이 역사의 피해자이며 그런 까닭에 역사 허무주의자이며 역사 부정주의 자임을 강조하는 시점이 겹쳐 있다. 기존 연구는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폭력과 동일시하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시에서 탈각시키고자 했다는 그의 발언에 주목하여, 이러한 특성을 그의 중기시의 특성인 무의미시와 결부시키는 논의가 대다수였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에서 간과해온, 역사와 현실과 사회에 대한 반성적 탐구가 뚜렷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를, 시론과의 관련 아래 살펴봄으로써 김춘수 시학의 변화와 추이의 원인을 진단하였다. 김춘수의 시와 시론의 중요한 특징은 역사에 대한 거부와 부정에 있는바, 이는 김춘수의 시적 지향이 순수시에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판단되어 자주 언급되었다. 그 자신이 겪은 일제 강점기와 감옥 체험은 자주 그의 산문에서 언급되는데, 이러한 기록에서 주목할 것은 존재론적 관심과 무의미시의 기획과 동시에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의 형상을 통해 말해질 수 있는 관념의 세계를 다룬 것이 존재론적 시라면, 말의 피안에 있는 관념의 세계에 다가서고자 한 실험의 결과가 무의미시라 할 수 있고, 또한 말을 온전히 그 대상과 결부시킬 때 생성되는 것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을 드러내는 시라 할 수 있다. _꽃의 소묘_와 _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_에 실려 있는 「우계(雨季)」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과 「그 이야기를……」이 역사와 사회에서 소재를 취한 시로, 여기서 김춘수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며 역사의 폭력을 고발하고 감옥체험의 부끄러운 순간을 고백한다. 특히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부분이 중요하게 판단되는데, 이것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순간이며 동시에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순간을 기억하면서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이중적이며 모순적인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서 탈출을 시도하였고, 그것의 시적 형상화가 바로 무의미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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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출판경찰월보』는 조선총독부 출판경찰에 의해 1928년 9월부터 1938년 11월까지 발행된 비밀 검열 자료이다. 현재 12권을 제외한 전체 111권의 자료가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식민지 시기 일제의 출판 검열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단행본 정보의 경우 출판 금지 목록을 통해 출간되지 못한 서적들의 제목과 발행인, 발행소, 금지 사유 등이 이 자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는 특징이 있다. 출판 금지 처분 때문에 발행되지 못한 단행본 목록 가운데에는 최소 30여 편의 출판 금지 소설들의 정보와 금지 사유가 기록되어있으며, 이 목록 중 상당수는 현재까지 출간이 확인되지 않는 새로운 작품들이다. 본고는 이 같은 소설들을 대상으로 그 발행인과 발행소, 출판 금지 사유 등을 추적하였으며, 그 결과 많은 수의 작품들이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적 성격을 이유로 검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치안 방해, 풍속 괴란 등의 이유로 출간되지 못한 소설들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이 소설들의 존재는 일제강점기 한국소설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단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4월 혁명 이후의 공백과 탈공백

박대현 ( Park Dae-hyun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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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두 개의 혁명이 존재한다. 4월혁명과 5ㆍ16군사 쿠데타가 그것이다. 5ㆍ16군사정권은 4월혁명 이후의 공백을 점유함으로써 탄생한다. 4ㆍ19와 5ㆍ16의 본질은 바로 공백과 탈공백에 있으며, 이는 혁명주체의 부정성(negativity)과 실정성(positivity)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박태순이 응시한 것은 바로 혁명의 공백과 부정성이며, 바로 그것이 5ㆍ16군사정권이 들어선 근본적인 원인이다. 5ㆍ16군사정권은 4월혁명 이후의 공백을 반공이념과 근대화론을 통해 채워나갔으며, 이는 혁명의 공백을 탈공백화하는 것이자 혁명의 부정성을 실정성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반면에 비판적 지식인들은 공백과 부정성의 측면에서 혁명을 사유했으며, 이는 4월혁명을 추상적 관념으로 받아들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혁명담론의 분열은 4월혁명에 관한 1960년대 문학이 혁명 당시의 현실을 재현하거나 그 열광에 도취된 문학작품을 제외하고는 대개 혁명의 공백과 부정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4월혁명의 문학적 형상화가 쉽지 않았던 근본 원인을 드러낸다.

김원일의 『노을』에 나타난 ‘죽은’ 아버지의 귀환과 이중 서사 전략

박찬효 ( Park Chan-hyo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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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노을_은 김원일이 불가해한 남성 주체가 등장하는 초기단편에서 벗어나 문학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본고는 이 작품이 표층적으로는 당대 사회의 반공 이념에 부합하는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면적으로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려고 한다. 작가는 70년대 사회에서 월북한 아버지를 불러내기 위해 소년 갑수와 중년 갑수의 시점을 이용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버지와의 개인적 화해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아버지를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은 반공 이념에 충실한 소시민 중년 갑수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소년 갑수를 의도적으로 교차 서술하여 아버지를 순진한 사회주의자로 이미지화하고 연민의 대상으로 재설정한다. 이러한 과정은 함구했던 아버지를 발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개인적인 화해를 가능케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버지를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백정은 사회주의자가 지닌 낙인을 의미하는 언표이며, 작가는 아버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우는 작업을 수행한다. ‘꿈’ 등의 몽환적 배경을 이용한 시점 교차 서술로 남북의 이념 대립을 비판한다. 겉으로는 사회주의만을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궁극적으로는 남한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폭력성까지 드러낸다. 또한 소년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와 중년 갑수의 회상에서 드러난 김삼조의 이미지를 불일치시켜 인위적으로 서사에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전에 제시했던 백정 김삼조의 이미지를 교정함으로써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유령으로 배제되었던 아버지를 사회주의자로써 역사적 차원에 배치시킨다. 요컨대 _노을_은 ‘아버지와의 개인적 화해’라는 표면적인 서사가 절정에 이를수록 아이러니하게 ‘폭력적인 사회주의자였던 백정 아버지’의 이미지를 교정시키는 양상도 강화되는 이중 서사 전략으로 ‘죽은’ 아버지를 다시 한국의 역사 속에서 불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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