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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9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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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김현승 시에서 시의식이 심층부를 표상하는 ‘어둠’과 그 속에 자주 등장하는 청각심상의 양상과 그 변모과정에 주목하였다. 그의 시에서 어둠은 시간의 경과에 의해 ‘빛’이 소멸된 세계이기도 하고, 밝은 ‘빛’이 무한히 넘쳐나서 생긴 것이기도 하다. ‘밤’은 절대자 ‘당신’을 지칭할 때도 있다. ‘당신’은 빛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밤의 광채 속에 담아두는 역설적 섭리의 주관자로 제시된다. 청각심상은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감각인데, 영혼과 신앙을 위하여 ‘아름답게 실명(失明)’한 상태에서 귀로 듣는 소리이다. 중기시의 화자는 영적 개안(開眼)을 얻어 절대자의 소리,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God’s disembodied words)’을 감득하고자 한다. 그 음성은 주로 ‘종소리’로 비유되고, ‘먼뎃 소리’, ‘먼 나라의 말소리’ 등으로 직접 지칭되기도 한다. 시인은 어둠 속의 청각심상을 통하여 신과의 교감을 이루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도 한다. 중기시 이후 김현승 시인의 고뇌는 신의 피조물로서 절대자의 음성에 절망하거나, 그것을 ‘고독’의 시의식으로 대체하고자 한 데서 비롯된다. 신을 떠난 후기시에서는, 어둠이나 청각의 성격도 달라진다. 실명을 통한 청각적 개안이나 ‘종소리’를 거부하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시를 통하여, 어둠 속에 빛을 비추기도 하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시가 스스로 울림을 일으키게 한다. 고독의 극한에 이르러서는 청각대신 촉각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고독은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보석’이기보다 어둠의 흙속에서도 썩지 않는 ‘순금’ 같은 것이 되고자 하며, 자신의 시는 절대자의 ‘종소리’가 아니라 ‘금빛 저녁종’이 되어 스스로 울리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뱃고동 소리’를 배경으로 지닐 뿐이며, 그의 고독추구는 영혼의 신음소리가 끊어질 듯하며, 시인 자신은 육신의 가랑잎 소리만 낼 뿐이다. 마침내는, 그의 시가 더 이상 빛을 발하지도 울리지도 못하게 되자, 신에게 귀의 한다. 그의 마지막 시들은 다시 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빛과 어둠의 상호조화 속에서 절대자의 음성에 리듬을 맞춰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시에서 ‘빛’과 ‘어둠’은 조각들처럼 서로 부딪치며 “커다란 하나의 음악”이 되어 인간존재의 불완전함을 노래해준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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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소리-뜻(프로조디)을 중심으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윤동주의 「별헤는 밤」의 리듬을 분석한 논문이다. 「님의 침묵」은 비음의 느리고 다정한 어감을 통해서 나를 떠나야 하는 님의 망설이는 몸짓, 사라진 사랑의 맹세와 거기에 속박된 자신의 운명에 대한 깨달음, 이별이 가져다준 슬픔과 불안과 고통을 형상화했으며, 유기음과 경음의 결합을 통해 님과의 만남과 이별에서 오는 환희와 고통, 기쁨과 슬픔을 구현하였다. 이 둘의 결합이 “님의침묵”이라는 극적인 모순형용으로 나타난다. 「별헤는 밤」은 유음들의 연속으로 별들이 가득한 가을 밤하늘을 구현한다. 이 소리-뜻은 “멀리”를 거쳐 “어머니”에 이르고, 이 크고 빛나는 별로 인해 겨울에서 봄으로, 부끄러움에서 자랑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이행한다. 이 과정에는 “어머니”에서 촉발된 순음들의 지원이 있다. 소리-뜻은 소리와 의미를 동시에 구현하는 리듬의 기저단위이며, 이를 통해 드러난 분절체와 연속체는 현대시의 리듬을 탐색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준다. 두 시의 리듬 분석을 통해서 새로운 리듬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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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50년대 전후세대 시인들이 겪었던 언어적 정체성의 문제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적 실험을 시도했던 김종삼의 시적 특질을 검토한다. 전후세대에 속하는 시인들의 시에는 불필요한 한자들과 어색한 통사구조, 그리고 새로운 문화적 체험에 의해 만들어진 낯선 언어들이 불규칙적으로 등장한다. 이 세대에게 모국어로서의 한국어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정규교육 과정에서 한국어 대신 일본어로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그러므로 1950년대 시인과 시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당시의 언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위에서만 가능하다. 익숙한 일본어와 낯선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던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의 그들의 시를 언어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보았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들은 모국어가 사라진 언어적 진공상태에서 새로운 시적 언어를 발견하거나 발명해내는 과정으로 시를 썼다. 1950년대 김종삼은 일본어를 우리말보다 더 잘 아는 비교적 젊은 시인, ‘일본어 세대’에 속했다. 그는 일본어의 억압, 한국어의 강제가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시적 언어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비록 생경한 외래어와 많은 한자어가 등장하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언어의 순수성이었다. 그것은 언술 주체를 시에서 소거하면서 언어 그 자체의 물질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언술 주체가 부재하고 언어의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그의 시들에서, 하나의 배경에 불과했던 것이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의미가 확연해지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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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삽화란 ‘소설 언술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효과들에 대한 시각적 재현으로서의 서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설 삽화는 소설 언술의 다양한 서사적 국면을 재현하며, 그것을 시각적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온전한 서사체이다. 따라서 올바른 삽화 연구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소설 텍스트에 대한 정치한 분석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삽화의 내적ㆍ외적 구성원리를 규명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삽화 이미지가 소설 언술과 맺고 있는 서사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함께 조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특히 본고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1910년대 초반, 근대적 서사 장르로서의 소설 문학 형성기 신문연재소설 삽화의 경우, 소설 언술과 삽화 이미지가 맺고 있는 관계는 매우 독특한 상황에 놓여있다. 삽화가 소설을 일방적으로 모방하고 재현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안에서 삽화는 특별한 목표를 위해 소설 언술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자기 구성의 논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때로는 일반적인 통념을 훨씬 벗어난 상황, 요컨대 소설 언술이 삽화 이미지의 내용과 형식을 오히려 모방하는 모습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신문연재소설의 생산에 있어서 나타나는 상호텍스트적인 소통의 상황은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문학 연구자로 하여금 단순한 소설 연구 이상의 것, 즉, 근대 소설 형성기의 ‘신문연재소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서사 매체들끼리의 경쟁과 조화, 균형에 관한 역동적인 관계를 모색해야만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문학적 실험을 시도하고 학습하는 공간인 동시에, 문학과 독자와의 서사적 소통이 가능한 열린 장으로서의 신문연재소설 공간에서, 소설 삽화는 근대적 서사 장르로서의 소설이 형성되는데 필요한 중요한 타자로 기여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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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송영 소설의 가짜·사기·도둑의 의미를 해명함으로써, 1970년대 발전주의와 근대적 동일성의 심성구조에 대한 저항과 투항의 양상을 논구하고자 했다. 송영 소설에서 ‘진짜’와 ‘가짜’는 상투어로 등장하고, ‘가짜’를 옹호하는 의식마저 발견된다. 송영은 진짜와 가짜를 명백히 가르는 의식을 의심하고, 가짜를 단호히 처단하는 권력을 혐오하며, 분명하고 확실한 세계를 거부한다. 즉 송영의 소설은 이분법의 거부를 통해 근대적 이성의 횡포에 저항하는데, 이는 당대 미만했던 근대적 동일성의 심성구조에 대한 저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송영 소설에 대거 등장하는 사기꾼과 도둑은 당대의 폭력성을 거의 동일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게 모방하면서 조롱하고 위협한다. 출세지상주의, 물신주의, 권력 지향성, 위계구조 등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데, 이들은 당대 미만했던 발전주의와 근대적 동일성과 관련 깊은 바, 결국 사기꾼과 도둑이 겨냥하는 것은 발전주의 내지 근대적 동일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만치 않은 저항의지와 전복적 에너지를 내장했음에도 송영 소설은 당대 발전주의에 투항하는 면모도 보인다. 이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각종 비행에 대한 면죄부로 전제하고, ‘하면 된다’의 정신과 근면·성실·자조의 미덕을 지당하게 수용하며, 때로 자본주의적 가치를 전면화하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투항은 최종결과가 아니라 과정적인 것으로서, 전체 소설에서 송영은 저항과 투항 사이에서 분열을 거듭한다고 보인다.

1990년대 이후 CIS지역 고려인 문학 연구 - 박 미하일의 소설을 중심으로

이상갑 ( Lee Sang-gab ) , 정덕준 ( Chung Duk-joon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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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90년대 한ㆍ러수교 이후에 발표된 박 미하일의 작품을 중심으로 CIS지역 고려인 문학의 한 변화양상을 살펴보았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그리고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는 이 지역 고려인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혼란한 시대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가 그것인데, 그러나 현실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박 미하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사랑'에서 그 탈출구를 마련한다. 박 미하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고려인들은, 그들이 러시아인도 한국인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상실'을 느낀다. 그들은 러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상실’은 근원적으로 ‘언어 상실’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모국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상실’에서 또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없는가? 주지하듯 한 문화가 ‘민족문화’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고려인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며, 그 ‘민족문화'가 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견인된다면 큰 의미가 없다. 한ㆍ러수교 이후 CIS지역 고려인은 러시아인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러시아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그들에게 ‘상실'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러시아인도 한국인도 아니기 때문에 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견인되는 것을 경계(警戒)한다. 한ㆍ러수교 이후에 발표된 박 미하일의 소설은 이러한 CIS지역 고려인 문단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준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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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10년대 번안된 『장한몽』의 서사가 한국 장편소설에 수용된 양상에 주목하면서 『장한몽』이 한국적으로 변용되면서 나타났던 특징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식민지시기 대중의 욕망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장한몽』에 나타난 욕망하는 여성 인물형과 돈과 사랑 사이의 갈등 서사는 1920년대 『재생』 그리고 1930년대 『적도』와 『찔레꽃』에서 비판적으로 재해석되었다. 『재생』은 물질에 유혹 당했던 여성 주인공의 속죄로 이상적 사랑이 회복 가능하다는 『장한몽』의 결말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욕망하는 여성의 타락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타락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타락한 현실 속에서도 남성 주체는 인간의 존엄함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킴으로써 이 작품은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망을 반영하였다. 『적도』에서는 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물질적 허영을 신성한 연애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이전 시대의 유물이라고 파악하며 냉소하였다. 신성한 연애를 추구했던 인물들은 모두 사랑에 대한 환상 때문에 현실 속에서 사랑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도』는 자기희생으로 실현 가능한 사랑을 결말에 그려내면서 순결한 주체와 신성한 연애에 대한 대중의 소망을 표현하였다. 『찔레꽃』에서 돈과 사랑의 갈등 관계는 관념의 차원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 도식은 사랑의 가치를 지키는 여성의 순결을 의심하게 하는 편견으로 작용하였다. 사랑은 이러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음모와 대립하게 된다. 그래서 돈이냐 사랑이냐 사이의 선택의 갈등은 외부의 억압에서 사랑을 지켜내려는 수난의 구조로 전환되었다. 당대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거치고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식민지시기 대중들은 사랑을 불가능하게 했던 모든 요소들을 시대에 따라 재해석하며 사랑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였다.

이상의 『12월 12일』에 나타난 주제의식과 서사생성원리 연구

최선영 ( Choi Sun-young ) , 이진송 ( Lee Jin-s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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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은 이상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자 소설로서 계보상 가장 처음에 쓰인 처녀작이다. 때문에 이상의 자전적 성격이 짙게 배여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상의 첫 소설인 『12월 12일』에 대한 단독 연구는 미진한 편이었다. 발굴 이후 이상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특성을 담아내고 있다고 주목 받으면서도, 『12월 12일』의 해석은 전기적 요소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12월 12일』을 이상의 각혈 체험이나 양자 체험과 결부해 이상이 당시 느꼈을 법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생에 대한 허무 의식의 흔적들을 이상문학의 정신적 기원으로 해석한 것이 지배적인 것이다. 가족사적 체험에서 이상이 느낀 억압이나 충격을 『12월 12일』의 서사적 전개와 연결시키는 해석도 꾸준하지만 소설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서사 전개에서 드러나는 취약성이나 형식적 미숙함, 등장인물의 입체감 부족, 주관적 관념에 함몰되어 있는 점 등이 장편소설에 미달하는 단점으로 지적받는다. 『12월 12일』이 이상 문학세계의 해명을 위한 부수적 텍스트로 활용되거나, 첫 소설의 의의로서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12월 12일』을 기존의 논의에만 가두어두는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12월 12일』이 장편소설에 미달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소설의 기준에 비추었을 때 유효한 평가이다. 일반적인 소설의 기준을 만족하는 것은 일반적인 소설이다. 이상이 소설적 규범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면 독해 역시 그것과 결별해야 한다. 이상은 이 시기에 모던과 사실주의 창작 방식 사이에서 방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더니즘 소설이란 자아와 세계의 간극을 보여주는 서사의 해체 속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소설이라는 통상적인 형식에 따라 사실주의 방식으로 그려낸다면 이상 문학이라는 서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12월 12일』을 이상의 처녀작으로 써 뿐만 아니라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단편 소설의 형식 파괴와 기법실험의 징후적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점의 혼종에서 오는 한계와 빈번한 작가의 논평이나 캐릭터 설정 등도 단순히 작가의 미숙성으로 폄하되던 기존의 연구 방법에서 벗어나 작품의 서사생성 원리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더니즘 소설과 사실주의 소설 양극단의 기로에 선 작가의 갈등 흔적을 좀 더 깊게 천착하는 작업이다. 이는 이상이 『12월 12일』을 시작으로 불행한 창작가로서 소설쓰기라는 작업을 고뇌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또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작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12월 12일』의 서사생성 원리와 작동 방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로써 그러한 요소들이 소설의 주제인 ‘운명’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규명하고, 더불어 이상 문학에서 『12월 12일』이 놓이는 지정학적 위치를 되돌아 볼 것이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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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의 작가들은 번역 혹은 번안에 대한 개념 인식이 박약한 상태였고, 그래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포괄적인 저술 행위를 했다. 따라서 필자서명 뒤에 덧붙여진 ‘작’, ‘역’, ‘번안’ 등의 지표들은 지금까지 적극적인 해석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본 논문은 근대 초기 신문의 번안 연재물이 어떤 식으로 필자를 표기하고 있는지에 주목하였다. 1920년대 초 몇 년간은 우리 문단과 문인들에게 있어 저작 및 번역, 번안의 개념이 토론의 의제로 제기되고 점진적 합의에 의한 방향성을 획득해 가던 시기였다. 특히 번안이라는 행위의 개념은 그 자체로 애매모호한 것이어서 이 시기 이전과 이후 양상이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서사 텍스트를 연재하면서 신문 지상에 ‘번안(飜案)’이라는 표지를 처음 사용한 예는 1922년 『매일신보』에서 발견된다. 그만큼 근대 초기의 소설사 자료에서 ‘번안’이라는 용어는 낯선 것이다. 번안의 시대에 번안이라는 말은 없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번역과 구분되는 번안이라는 의식은 존재했을지 모르나 저작과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왜곡되었고, 따라서 번역 행위와 관련한 의식만이 명징했을 뿐 창작과 번안의 경계는 계속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후 다수의 번역 및 번안 작품에서 연재물의 필자가 필명 뒤에 ‘역’ 혹은 ‘번안’의 표지를 부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번안 작품에 번안이라고 드러나게 밝히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문인들이 ‘번안’ 개념을 ‘저작’ 개념과 구분하여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중요시할 필요가 있다. 1922년 이후의 각 신문 소설 연재 난에서는 ‘번역’ 아니면 ‘저작’이라는 구분으로부터 ‘창작’ 아니면 ‘번역ㆍ번안’이라는 구분으로 인식의 틀이 이행해 가는 양상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번역’이냐 ‘번안’이냐 하는 구분은 때에 따라 모호하게 처리되더라도 순수 창작의 독점적 지위는 전에 없이 강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각 매체의 연재 지면에서 원작과 원작자를 명기하고 ‘번안’이라는 표지를 드러내는 것이 일반화되는 양상은 이러한 문인들의 의식이 조금씩 표출되고 문단적 합의를 이룬 결과라고 하겠다.

1950년대 활자매체 『명랑』 ‘스토리’의 공유성과 명랑공동체

최애순 ( Choi Ae-s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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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은 신태양사의 황준성에 의해 1956년 1월 창간되어 『아리랑』과 더불어 대중문화의 매체구실을 톡톡히 하였다. 활자매체 『명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잡지의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명랑소설’도 아니고, ‘영화’라는 영상매체이다.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활자매체 『명랑』이 ‘영화’라는 영상매체를 ‘스토리’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1950년대 대중들은 마치 현재의 대중들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도 인터넷의 기사로 내용을 모두 접하며 다른 사람들과 일상대화를 주고받듯이, 대중오락잡지 『명랑』을 통해서 ‘영화’를 직접 보지 않고도, ‘스타’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명랑』내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1950년대 『명랑』은 도시와 농촌, 도심과 변두리가 도시문화를 같이 향유할 수 있는 ‘매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명랑』에서 어떻게 영화와 스타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로 담아내고 그것을 또 독자는 어떻게 소비했을까. 『명랑』의 ‘스토리’는 시골 한가운데서 그 밖을 나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치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온 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이야기꾼들이 청중을 상대로 수다 한 판을 벌이는 구술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스캔들 기사가 사실인지에 관한 확인 여부라든가, 스타의 사생활이나 개인의 비밀에 대한 보장의 여부라든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것은 화제의 중심으로 재미나 오락의 일환일 뿐이다. 『아리랑』에 실려 있는 소설은 그야말로 혼자 읽는 재미로 그치지만, 『명랑』의 스토리는 혼자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산간지방에 있어도, 군대에 가 있어도 도시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공유성’이야말로 『명랑』의 판매부수를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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