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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0권 0호 (2013)

영화 『피에타』의 문학적 상징성 연구

권성훈 ( Kwon Sung-hun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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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김기덕의 영화 『피에타』를 문학적 상징의 관점으로 보았다. 지라르와 지젝의 폭력 이론을 통해 ‘상징적 언어로서의 기호’ ‘상징적 언어로서의 몸’ ‘신화적 상징으로서의 동물’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고, 그것을 문학적 상징 구조인 기호 상징(N.프라이), 원형적 상징(휠라이트) 모티브 상징(귀에린) 등으로 탐구하면서 존재에 가해지는 폭력성에 대한 양상과 의미를 살폈다. 상징적 언어로서의 기호는 영화에서 현실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상징적 언어로 작용한다. 기호를 통해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는데, 이때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풍자하면서 폭력적인 자본주의 모순에 대하여 기호적 욕설로서 폭력을 가한다.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폭력적인 현실을 상징이라는 기호로 보여줌으로써 폭력성이 확대 및 증폭되는 효과가 발휘한다. 상징적 언어로서의 몸과 신화적 상징으로서의 동물은 공통적 양상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신화적 상징을 통하여 폭력을 모방하여 반복적으로 행사하고, 희생양적인 제의적 의식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도가 존재의 몸에 대한 극단 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폭력의 모방심리로서 폭력이 폭력을 생성한 것처럼 반대로 폭력은 폭력을 통해 해소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한 자를 통해 희생양이 됨으로써 영화가 끝나는데, 이것은 종교적 희생양으로 종교적 제의로 비쳐진다. 이렇게 폭력에 대한 재판은 폭력의 연장이며 폭력만이 폭력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의 폭력성이 상징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물리적 폭력으로서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욕망성, 환상성, 제의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 상징은 상징적 체계를 넘어 폭력적인 현실 문제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영화의 폭력은 지배적인 위치를 지키려고 하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폭력을 재현하고 있다. 현상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폭력의 대상은 주로 일정 집단 내의 피지배층들이다. 이것을 지라르의 욕망이론으로 볼 때 ‘자본주의’라는 ‘주체’는 ‘이데올로기’를 ‘매개체’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층’을 ‘욕망의 대상’으로 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저항하기 위해 종교적 폭력을 매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폭력적인 현실 체제에 대해 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써 종교적 폭력을 상정하여 상징적 기표를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난다.

「라산스카」의 의미에 대한 시론(試論) -김종삼의 시와 음악

김지녀 ( Kim Ji-nyeo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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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김종삼의 연작시 「라산스카」의 시 형식을 음악 형식과의 관련 아래 살펴보고자 한다. 김종삼은 20년이 넘도록 라산스카를 창작, 개작했지만, ‘라산스카’의 의미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라산스카’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출되었지만 여전히 그 의미가 명확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에 이 논문은 ‘라산스카’를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랩소디」를 구성하고 있는 음악 형식, 랏산(Lassan)조와 프리스카(Friska)조가 결합된 조어(造語)적 의미로 제안하고 김종삼의 시 「라산스카」를 형식적 차원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제안은 첫째, 김종삼이 시어에 대한 염결성이 매우 강했고 순수한 언어를 지향해 조어나 낯선 외래어를 모어로 전사해 시어로 활용했다는 점, 둘째, 고전음악에 심취해 그것과 관련된 지식이 풍부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음악의 형식을 시의 제목이나 소재로 차용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라산스카」는 총 6편이 발표되었는데,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된다. 하나는 제목이 같지만, 내용이 서로 다른 시들의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작품을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분연해 발표한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에서는 시행의 템포에 주목해 작품을 분석한다. 이 경우의 작품들이 주로 리스트의 「헝가리랩소디」를 구성하는 음악 형식인, 랏산조와 프리스카조가 결합된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느리고 빠른 템포가 한 작품에 동시에 작용할 경우, 시 전체에 흐르는 비애의 정서를 절제해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에서는 한 작품을 분연해 독립시켰다는 특성상, 세 편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는 시에 구현된 시행의 템포 조절에서 오는 리듬의 창출보다는 시의 언어 그 자체가 내는 순수한 소리에 집중하고 그 소리가 내는 여운을 강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런 시들은 감정이 점차적으로 소거되는 양상을 보이며, 언어의 급격한 감소가 시를 미완의 형식처럼 만들고 있으나 그것은 최소한의 언어가 창출하고 있는 여백을 통해 순수한 소리들이 운동하며 발생하는 리듬을 형성해주는 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창작 방법을 통해 김종삼은 시에서 의미가 아닌 형식을 강조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시를 구성하는 언어적 자질의 중요성과 구성 방식을 음악 형식에서 차용함으로써 김종삼은 당시 시의 형식을 중요하게 강조했던 김춘수와 함께 한국 현대시에서 새로운 언어, 새로운 시의 형식에 대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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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시공을 뛰어넘어 한국의 문인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크게 불러일으킨 마르크 샤갈(Marc Chagal)의 회화 텍스트가 김춘수의 시 텍스트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박상우의 동명소설 간의 상호텍스트성, 그리고 김춘수와 박상우의 두 작품 간의 상호텍스트성에 대해서 논의해 보았다.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샤갈이 그의 고향 비테프스크를 꿈꾸며 그린 <나와 마을>, <비테프스크 위에서>, <오븐 앞의 어머니>라는 세 편의 회화 이미지를 몽타주하고 있다. 샤갈의 세 작품을 관통하는 포괄적인 주제는 하시디즘(Hasidism)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고향(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무의미시 계열의 작품으로, 봄눈이 내리는 이국적인 샤갈의 마을 풍경을 통해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다.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샤갈의 <나와 마을>을 비롯하여 3편의 회화작품에서 이미지를 차용하였으며, 기법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의 병치라는 점에서 샤갈 회화의 입체파적 요소와 상호텍스트성을 갖는다. 박상우의 단편소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김춘수의 시에서 제목을 그대로 패러디하고, 눈 내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차용했다. 김춘수의 시가 시간적으로 겨울과 봄의 터닝 포인트에서 봄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반면, 박상우의 소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터닝 포인트에서 지난 연대에 대한 허무주의와 그리움, 그리고 새로운 연대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동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봄에 대한 기다림을 이질적인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표현한 김춘수의 시에 대한 패러디와 현실과 환상을 병치시킨 샤갈의 몽환적인 그림의 인용을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박상우에게 샤갈은 현실과 환상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세계,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꿈과 판타지를 표현한 화가로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상우는 1990년대의 새로운 문예사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적 기법의 하나인 패러디를 주요기법으로 사용한 1990년대적 작가이다.

식민지 배경 종로액션영화 <장군의 아들> 연구

송효정 ( Song Hyo-joung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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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두한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가 한국 영화사와 문화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의미와 한국적 장르영화로서의 특이성에 주목한다. 김두한은 폭력과 위계, 반공주의와 테러리즘, 혈통주의와 가부장적 남근성이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성의 일부를 제유하고 있다. 김두한은 식민지 후반기-해방기-냉전기를 거쳐 한국 근대사를 특이한 방식으로 대변하는 서민영웅의 한 전형이다. 그는 독립투사의 아들로 태어나 종로 수표교 아래서 거지패거리로 성장했다. 식민지 시기엔 종로 주먹의 일인자가 되었고 해방기에는 우익 테러리스트로 활동했으며 냉전기에는 정치 깡패에서 국회위원으로까지 변모했다. 김두한의 무용담은 라디오, 텔레비전, 소설, 영화 등 매체를 달리하며 지난 20세기 후반기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주기적으로 소비되어 왔다.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식민지 후반기인 1939년에서 1940년대 초반까지의 종로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식민지 경성 나아가 조선의 상징공간이던 종로-명동을 배경으로 하여 깡패들의 갈등을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의 인종적 헤게모니 투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제작된 ‘명동액션영화’에서부터 이어지는 ‘종로액션영화’에 등장하는 종로-명동은 식민지 후반에서 전후 냉전기에 이르는 계층적, 민종적, 이념적 위계와 갈등이 압축된 지정학적 담론공간이었다. 본 연구는 명동-종로액션영화로 이어지는 한국형 액션영화의 맥락을 살핀 후 <장군의 아들>이 지닌 한국형 액션영화로서의 특징을 살펴보려 했다. 본 시리즈는 고전 갱스터 영화와 마찬가지로 실존했던 깡패들의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과 실존 인물들이 지닌 ‘식민지적 특수성’에 의해 한국형 액션영화로서의 차별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장군의 아들>은 자본과 권력을 욕망하던 갱스터의 몰락으로 서사가 일단락되지 않는다. ‘인정과 의리’를 강조한 ‘맨주먹’ 액션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적 액션영화의 특이성이 드러나는데 이는 동아시아 내셔널시네마로서의 액션영화라는 맥락에서 중요하게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임권택의 영화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대중 관객의 감성적 민족주의를 동원하여 흥행을 이끌어낸 종로액션영화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승리의 의지와 내면성의 발전을 이끌어내지 않으면서 영화의 결말에서 최종 승리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이는 여타의 종로-명동액션영화가 주제적으로 민족주의나 반공주의를 강화해간 전략과는 다른 지점이다. 민족주의와 선한 가치가 승리하기를 열망하는 관객의 기대지평이 상상적으로 연출하는 결말과 감독이 실제 연출한 결말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성찰과 최종 판단은 비판적 관객의 몫인데 이것이야말로 탁월한 상업영화로서 <장군의 아들>의 차별점이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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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TV드라마 <카스테라>와 <낙타씨의 행방불명>을 대상으로 각색자가 원작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영상으로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분석한 글이다. 두 드라마의 원작인 박민규의 단편소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가벼움의 미학’으로 표현되는 2000년대 소설의 독특한 징후를 드러낸다. 전통적 서사방식에서 벗어나 있는 박민규의 소설은 영상으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보인다. <카스테라>는 원작에 없는 여성인물 ‘미령’을 등장시켜 두 편의 원작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주제의식과 함께 멜로드라마성을 강화한다. <낙타씨의 행방불명>은 주인공 ‘정식’의 캐릭터를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변형시켜 보다 밝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때 ‘미령’과 ‘정식’의 캐릭터는 드라마의 분위기와 주제의식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카스테라>는 원작에서 보이는 유머와 경쾌함을 걷어낸 자리에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아낸다. 너구리와 기린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장면이 <카스테라>에서 배제되어 있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낙타씨의 행방불명>은 훨씬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원작의 유머와 재미가 박민규의 문체에서 비롯된다면 <낙타씨의 행방불명>의 유쾌함은 ‘정식’의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원작의 환상성 또한 <낙타씨의 행방불명>에서는 CG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이처럼 상반된 분위기와 주제의식을 표현하고 있지만 시청자의 공감과 감동을 유도하기 위해 두 드라마는 개연성 있는 사건 전개와 등장인물의 갈등을 강조함으로써 전통적 서사방식으로 회귀한다. 박민규의 소설에 나타난 포스트모던한 특징이 사라진 대신 시청자들의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낸 것은 ‘친숙함’과 ‘일상’이라는 텔레비전의 매체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린 각색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2000년대 소설이 영상화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각색자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파트’ 건축과 공간 질서의 생성과 파괴 -197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이평전 ( Lee Pyeong-jeon )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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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70년대 공간의 질적 양적 변화와 주체의 무의식적 욕망이 ‘아파트’라는 건축물에 어떻게 투사되고 소설에 재현되는가를 살피고 있다. 아파트는 당대 사회의 정치 경제적 변화를 반영하는 상징이면서 동시에 도시 주체의 존재론적 성찰 공간, 자본주의의 현재적 삶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 아파트는 그곳의 삶과 존재의 문제, 시대와 역사, 정치의 흐름, 계층적 구분과 의식 세계의 다양한 국면들을 검토할 수 있는 유효한 연구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도시 빈민 층을 형성하면서 안정된 주거 공간에 대한 열망은 더욱 증대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에 반해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본격화된 이후 이들의 삶은 도시 공간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배제되고, 차별화, 계급화 된다. 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아파트를 전통적 의미의 ‘집’이 아닌 고립된 개인이 거주하는 삶의 부정적 공간으로 인식한다. 이후 아파트는 주체의 성적 일탈을 꿈꾸는, 또는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노인들이 유기되는 획일화되고 폐쇄된 자본주의 도시 공간의 상징적 건축물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1970년대 소설에 재현된 아파트는 당시 급격히 진행된 자본주의화가 부추긴 공간 모순과 그로 인한 주체들의 의식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당대 도시의 형성과 변화 과정, 국가 정책과 경제 성장에 따른 공간과 계층의 분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인접 학문과의 영향 관계를 살피는 유의미한 경로가 될 수 있다.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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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김영수의 대표작 「혈맥」(1948)과 원작의 성공적인 영화화 사례로 평가되는 김수용의 「혈맥」(1963)을 통해 장르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검토하고,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김영수는 희곡, 소설, 시나리오, 방송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작가로, 그의 창작 궤적이 다양한 장르의 교섭과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사실주의계열로 분류되는 김영수 희곡의 특징은 제한된 공간에 다양한 인물 군상을 배치하고, 이들이 동시에 움직이도록 설정함으로써 당대의 명암을 함께 조망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작가는 상대적으로 계몽성을 희석시키고, 극의 초점을 분산시켜 여러 인물들의 삶의 단면을 제시함으로써 이들이 속한 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조명코자 했다. 영화 「혈맥」은 김영수의 희곡을 영화화한 사례 중 원작의 설정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 「혈맥」에서는 징용노동자였던 원칠의 과거가 삭제되고, 백옥희는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 거북은 새 시대의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인물의 입체적 면모는 희석되고 갈등선은 보다 단순해지게 된다. 또한 원작과 비교할 때 영화는 원작의 배경이 되는 해방공간 혹은 영화가 촬영된 당대의 시대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신 가족 이야기, 곧 ‘핏줄’의 문제에 집중한다. 특히 영화는 반공과 경제 개발 논리가 결합된 민족주의를 제창하며, 근대화된 공장에서 하층민들의 전망을 찾는다. 이 같은 타협적 결말은 4.19의 가능성이 좌절된 60년대 초반의 시대적 한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 「혈맥」 이후에도 원작 「혈맥」은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됐고, 가장 최근의 연극 「혈맥」은 원작의 캐릭터와 플롯, 주제의식 등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영화 「혈맥」과 2013년의 연극 「혈맥」은 각각 5.16 이후의 시대논리를 여과 없이 반영한다거나 관객과의 소통에 일정부분 도달하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환 작업은 원작이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재해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곧 관습적 독해를 넘어 텍스트가 무한히 확장되어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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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창작된 유치진의 실질적인 마지막 희곡, 「한강은 흐른다」는 1956년 록펠러 재단의 초청을 받아 미국 연극계와 브로드웨이 뮤직컬, 할리우드 영화계를 시찰하고 난 후 집필되었다. 종래의 구심적인 삼일치식 고전극 형태의 작법을 지양하고 각 장면을 풀어 헤친 원심적 구성의 키노드라마로서 이 작품을 창작하였다고 유치진은 술회하고 있다. 때문에 실제 시나리오는 아닐지라도 희곡 작품으로만 간주될 수만은 없는 해석적 잉여가 이 작품에는 남아 있다고 생각된다. 조명과 음악, F.I와 F.O 등의 장치를 활용해서라도 연극무대를 영화 이미지처럼 보이게 하고 마치 영화처럼 작동하게 하려 한 그의 극작술의 의도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이지 않을까? 변형된 형식에 내재된 문제의식을 온당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곡적 독법 이외의 논의가 아울러 요청되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본고는 시작한다. 연극은 3차원의 예술이며, 영화는 2차원의 예술이다. 즉 연극의 주요 속성은 감각적으로 현전하는 배우의 신체성에서 찾을 수 있으며, 영화의 주요 속성은 카메라가 투사하는 현실 이미지의 평면적 스크린에서 찾을 수 있다. 연극적 무대는 배우가 자리한 시공간을 정적으로, 고정적, 연속적으로 다루게 된다. 반면 영화적 스크린은 카메라의 편집에 따라 그 같은 신체적 제약에서 벗어나서 시공간을 역동적, 유동적, 불연속적으로 다루게 된다. 연극 공간에서는 배우의 몸과 관객의 몸이 공현전하므로 배우와 관객의 대면에 따라 공동체적 황홀경의 순간이 곧잘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스크린을 목도하는 어둠 속 객석의 관객은 영화감독의 의도 하에 편집되고, 조합된 장면 이미지를 추수해야만 하는 고독한 개인으로 종종 비유되곤 한다. 두 예술 사이의 이러한 차이점을 고려했을 때 근대 사실주의 희곡의 개척자인 유치진이 그의 최종 희곡 텍스트에서 영화적 기법을 도입하려한 것은 유치진 연구나 희곡사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변별적 대목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여 “원심법적 수법”의 사용이라는 유치진의 언급이 지적하듯이 영화적 구조나 형태를 환기하거나 모방함으로써, 「한강은 흐른다」의 텍스트적 구성이 영화적 실천에 대한 환각을 어떻게 낳고 있으며,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또한 무엇인가 같은 상호매체적 연행(intermedial performance)과 관련된 문제를 본고는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주시대의 과학소설 -1970년대 아동전집 SF를 중심으로

최애순 ( Choi Ae-soon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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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이란 용어는 이미 「과학소설 비행선」처럼 식민지시기부터 있어 왔다. SF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쥘 베른과 H.G.웰즈의 작품은 식민지시기부터 번역되었으며, 2010년에야 완역된 『도롱뇽과의 전쟁』의 작가 차페크도 1920년대 박영희가 「인조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었다. 그러나 식민지시기에 성인대상으로 번역되었던 과학소설은 해방 이후가 되면서 국내에서는 ‘아동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소년소녀 공상과학전집, 소년소녀 과학모험전집 등 ‘소년소녀용 전집’ 형태로 출간되고 번역되기 시작한 과학 소설은 국내에서는 1990년대까지도 거의 대개가 아동용으로 출판되고 있었고, 1990년대 이후에야 완역본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1970, 1980년대까지 국내 독자가 읽었던 SF는 대부분 아동전집을 통해서이다. 1960년대까지 과학잡지를 통해서 간간이 소개되던 SF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소년소녀 과학모험소설전집이나 과학소설전집들이 간행되어 SF라는 낯선 장르가 정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소년소녀 과학소설전집은 국내에 SF를 가져오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국내 아동전집 SF는 웰즈의 우주인이 침입해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과학에 대한 공포보다는 진보ㆍ발전에 대한 욕망을 담아내고 있다. 과학이 진보하여 ‘우주시대’가 열리고, 좁은 지구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제국들은 이제 지구 밖 ‘우주’로 관심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우주개발, 우주정복, 우주전쟁, 우주 식민지, 화성 탐험대, 우주선, 별나라, 혹성, 은하계, 은하방위군 등의 용어가 만연됨에 따라, ‘우주’ 관련 소재가 SF전집에서 우위를 점유하게 되었다. 1970년대 아동전집SF에 담긴 미국의 과학신화는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미국의 욕망이 담긴 한편, 미국의 성공신화를 쫓아가고픈 우리의 욕망도 배어 있다. 3차 교육 과정 개정의 목표에 ‘국가발전’을 위한 목표가 크게 부각되는데, 이는 미국을 쫓아가는 것이 국가발전을 이룩하고 후진국에서 탈피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과학소설전집의 해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쥘 베른과 웰즈는 오히려 과학 소설전집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 과학소설전집에서 쥘 베른과 웰즈의 뒤를 이어 새롭게 부상하는 인물은 하인라인과 아시모프이다. 세계아동문학전집의 구성이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의 순으로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수순을 따른다면, 과학전집은 미국 작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각 전집의 1권이 ‘미국’이다. 그야말로 미국의 선진국화를 모델로 삼고자 하는 발전, 선진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

「줄리어스 시저」 번역 연구 -1945년 이전의 번역을 중심으로

황정현 ( Hwang Jung-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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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근대문학에서 「줄리어스 시저」가 번역, 수용된 맥락을 검토, 분석하여 번역 텍스트의 특성과 의미를 추론했다. 「줄리어스 시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이다. 이후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은 한 차례 더 번역된다. 두 차례의 번역은 모두 원작의 3막 2장을 번역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번역 동기나 형태 등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나아가 번역 텍스트의 의미 형성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첫 번째 번역인 정노식의 「□루타스의 웅변」은 ‘독자의 교양 함양과 자유정신 고취’라는 계몽적 의도를 담고 있다. ‘머리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노식은 이 글을 희곡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명한 웅변의 원고’로 보고, 독자의 공부에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번역했다. 이러한 계몽적 의도는 번역 형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노식은 로마 시민의 대사와 지문을 생략하고 브루터스의 말을 통해 그 내용을 간접 언급하는 식으로 바꾸고, 둘로 나누어진 브루터스의 대사를 이어붙여 한편의 완결된 연설문 형식을 만들었다. 또한 뒤이어 나오는 안토니의 연설을 제거함으로써, 브루터스의 대사에 담긴 ‘독재 타파’와 ‘민중의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했다. 국권 상실 이후라는 당대의 시대적 환경과, 이 글을 게재한 _학지광_이 청년층의 근대적 교양 및 실력 함양을 논한 잡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노식의 이러한 번역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 자유를 되찾자는 계몽사상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루타스의 웅변」이 강한 계몽성을 띤 데 비해, 이광수의 「줄리어쓰 씨서」는 번역자와 시대상황의 갈등을 반영한 거울 텍스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광수는 독자의 이해를 염두에 둔 기존의 번역 태도를 버리고, 작품 이해를 도울 만한 설명없이 3막 2장을 원작 그대로 옮겼다. 이 작품이 당시 독자층에게 생소한 것이었던데다 복잡한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한 일간지 신년호에 이 글이 게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이루어진 데에서 이 작품의 거울 텍스트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이광수는 애국애족을 자처했지만 민중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광수가 평소 자신의 생각을 문학 활동으로 표출해 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줄리어스 시저」의 브루터스와 로마 시민의 관계는 당시 이광수의 심경과 상황을 반영한 거울 텍스트로 읽힐 수 있다. 이처럼 「줄리어스 시저」의 두 번역은 시대적 당위성에서 비롯된 계몽성, 그리고 번역자의 자아와 시대의 갈등을 반영한 거울 텍스트적 성격이라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작품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 채 ‘원작 그대로’ 옮기는 것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이상적 번역’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한국 근대문학의 외국 문학 수용 과정 중 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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