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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론과 비평검색

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0권 0호 (2016)

극기에의 실패 ―김승옥 초기 소설 연구

신아현 ( Shin Ah-h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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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승옥 초기 소설을 대상으로 “자기 세계”와 “극기”라는 개념을 검토하였다. 김승옥 소설의 인물들이 인식하는 세계는 안과 밖, 밤과 낮, 혼돈과 질서 등의 이분법적 구조로 분열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 세계”라는 개념을 매개하여 드러난다. 이 개념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성곽 혹은 껍질로 표상되는 경계에 관한 것이다. 김승옥 소설의 인물들은 스스로 설정해놓은 인위적 경계로 인해 분열된 자아 사이에서 심각한 실존적 위협을 겪는다. 분열된 자아 간의 간극을 이겨내는 일은 김승옥 소설의 인물들에게 선험적으로 부여된 임무처럼 그려지며, 이를 위한 인물 각자의 노력은 “극기”라는 자기기만적 용어로 명명된다. “극기”에의 시도에서 성공하느냐 혹은 실패하느냐는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다. 극기에 완전히 실패한 인간들은 작품 속에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반면 극기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인간들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김승옥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일인칭 서술자인 ‘나’가 여기에 속한다. ‘나’의 내면은 의도적으로 은폐되며, 대신 자신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인물의 언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김승옥 소설의 서술 상황 자체가 이미 “자기 세계”의 성곽을 쌓아올린 한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견고한 “자기 세계”는 다른 이들의 죽음이라는 사건에서 비롯한 죄의식으로 인해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균열은 그 자체로 지극히 인위적이고 기만적인 자의식이 만들어놓은 “자기 세계”라는 체계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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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는 가부장적 질서에 억압된 여성 주체가 채식과 거식, 탈의와 실어 등의 반사회적 광기를 발현하는 양상에 치우쳐 있다. 게다가 이러한 연구에서 환기되는 억압된 여성성은, 고통을 주는 남성과 고통 받는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이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한강 작품에서 나타나는 병적 징후는 여성인물과 남성인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이분법적 이해는 합당하지 않다. 한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서사는,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보편적 몸에 대한 인식을 통해 주체와 대상이 관계를 맺고 소통함으로써 상호주체적 관계를 구성 할 수 있는 방안이다. 특히 이때의 보편적 몸은 고립되고 완결된 시각을 지양하고 감각의 상호교차가 본질인 촉각적 세계 인식을 구현하는 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촉각적 세계 인식이, 절망에 빠진 인물들을 어떤 식으로 구원하는지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연구가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희랍어 시간』에는 유전적으로 실명을 언도받은 남성인물과 실어증(aphasia)을 앓는 여성인물이 나온다. 남성인물은 볼 수 없다는 절망으로 인해 물리적 실재를 외면하고 관념적 세계로 함몰한다. 그러던 그가, 시각적 폭력에 지쳐 표상적 언어 행위를 거부한 채 비언어의 세계를 떠도는 그녀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정체성을 획득한다. 이 작품은 몸짓과 몸짓이 어우러져 서로를 주체로 만드는 과정을, 도처에 깔린 관념적 서술들을 넘어,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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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중 여성신성담의 대표작인 「바리공주」와 「니샨샤먼」의 비교연구다. 니샨은 저승여행을 하여 죽은 영혼을 살려온 만주족의 샤먼이다. 바리공주는 딸로 태어나 비참한 삶을 살지만 순종과 자비심, 헌신을 통해 무조신으로 등극한 한국의 무당이다. 두 작품의 비교연구는 9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본고는 기존의 연구성과를 확장하여, 서사구조와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두 작품의 상동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와 같은 접근은 샤먼의 본풀이나 무조신화라는 전제로 두 작품을 파악했던 것보다는 고전적 보편성에 역점을 두고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특히 본고에서는 두 작품의 미학이 발생하는 지점을 ‘여자’이면서 ‘샤먼’이라는 역설적 관점이라고 본다. 여기서 ‘여자’라는 설정은 사회적 관계이자 사적 관계망을 상징하는 것이며, ‘샤먼’은 사회적 직능 혹은 자아실현으로서의 직업세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니샨샤먼」과 「바리공주」의 연관성은 ‘직관’적으로 포착되지만, 실제로 작품구조를 분석해보면 두 작품의 차이점이 역으로 부각되는 결과가 부각된다. 실제 「니샨샤먼」은 성인샤먼의 저승여행담이 주된 내용이지만, 「바리공주」는 딸이기 때문에 버려진 여자아이의 일대기다. 니샨이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여자인 반면에, 바리공주는 순종적이며 헌신적인 일생을 살았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서사구조와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두 작품의 동일한 비극적 보편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니샨샤먼」은 샤먼으로서의 최고의 직능을 이루지만 저승에서 만난 남편을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물에 갇혀 죽고, 「바리공주」역시 아버지를 위한 결혼을 감행하며 아버지를 살리지만, 이승에서의 영화를 거부한다. 필자는 이점에서 두 작품이 여자로 태어나 이생(이승)의 규칙에 편입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다루고 있다고 본다. 즉 여자의 의무와 샤먼으로서의 삶은 역설적 모순관계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에도 유효한 여성들의 딜레마이다. 이 역설적 모순은 두 작품의 고전적이며 보편적인 미학을 형성한다.

‘하위주체’ 형성의 논리와 ‘재현’의 정치학 -197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이평전 ( Lee Pyeong-jeon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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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0년대 소설에 나타난 하위주체의 형성 논리를 정치학적 재현의 과정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시기 하위주체는 엘리트 식민담론에서 배재된 민중의 역사를 불러들인다는 그 본래적 의미를 넘어, 자본의 세계화라는 변화된 조건에서 주체의 억압적 상황을 설명하는 정치학적 재현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 억압적 정치권력과 이데올로기, 산업자본주의라는 현실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대안적 주체로의 하위주체를 문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학적 관점에서 국가간 자본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사각 지대에 놓인 문학 속 주체를 해명하는 일이다. 하위주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포괄하고 전 지구에 다양한 형태로 흩어져 있으며, 자본의 논리에 쉽사리 동화되지 않는 잉여의 속성을 지닌 존재로 간주된다. 나아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양식과 전지구적 차원에서 중첩된 제3세계 여성의 착취 관계와 하위계급의 연대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주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문학과 하위주체와 관련한 논의는 1990년대 초반 서발턴 연구로 시작되었는데, 대부분 식민지 문화연구와 문학/문화비평의 영역에서 하위주체의 단면을 개괄적으로 서술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본고에서는 1970년대 억압적인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산업 자본주의의 다양한 국면을 깊이 있게 검토하면서, 특히 여성, 노동자, 농민으로 상징되는 하위주체의 정치적 재현 과정의 의미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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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쟁기 잡지 『희망』에 실린 두 편의 소설, 김광주의 「동방이 밝아온다」(1951)와 방인근의 「유엔공주님」(1952)을 동시기 매체의 방향성과 연관하여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월간지 『희망』은 전쟁기 문화정책과 대중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출발했다. 그리고 본고에서 논하는 두 소설 중 전자는 적치(敵治) 90일의 서울, 후자는 전시하 부산이라는 공간이 중요한 배경이 되며, 이 같은 공간 설정을 ‘전선과 후방의 괴리 극복’이라는 전쟁기 『희망』의 발행 목표와 관련지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여성 화자를 내세워 전쟁의 참상과 상흔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중 「동방이 밝아온다」는 월북한 남편에게 버려진 여인의 눈을 통해 북한 측 문화선전대의 허위성와 함께 변절한 문화인에 대한 실망감을 피력했고, 「유엔공주님」은 전쟁 중 가족을 잃은 여인의 시선으로 후방 부산의 윤리적 타락상을 형상화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전선과 후방의 통합을 강조하고 대아(大我)를 위한 소아(小我)의 희생을 역설했던, 전쟁 중 『희망』의 시사면의 입장과 조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두 작가는 여주인공을 제외한 인물들의 입장은 철저하게 봉쇄한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여성 화자의 시선으로 모든 작중 행위를 정리한다. 그만큼 작가의 세계관은 경직되어 있으며, 동시대 전쟁을 서술하는 감정은 분노 혹은 개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두 소설은 적치 90일과 후방 부산의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여성 화자를 도구적으로 끌어들여 경직된 윤리의식을 설파한다는 점에서 전쟁기 소설의 특징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공간의 의미와 시대의 재해석 -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론-

전해림 ( Jeon Haer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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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앞장섰던 많은 이들은 독재 정권이 끝나고도 고통을 겪었다.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남들보다 치열하게 싸운 삶의 결말은 남은 것이 없는 허무한 일상과 고통스러운 사회 적응 과정, 독재 체제가 종결되었음에도 이어지는 감시와 규제 등이었다. 독재 정권 하에 불량품으로 낙인찍힌 그들은 제거 되거나 교정되어야 하는 대상으로서 힘든 시간을 보냈으나, 고통스러운 남은 삶 또한 견뎌내야 한다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왜 싸웠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시간이 갈수록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물음을 생산하여 답을 요구했다. 황석영 역시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답을 확인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답을 찾으려 했던 시도가 잘 나타난 작품이 바로 『오래된 정원』이다. 황석영이 1990년 「흐르지 않는 강」 연재 후 1999년 『오래된 정원』을 연재하기까지 약 10년의 공백이 있었는데, 그 사이 그는 사회 운동, 방북, 독일과 미국 체류, 귀국 후 수감이라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치열했으나 이제는 짐처럼 느껴지는 1980년대의 사건들과 그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삶, 사회의 변혁에 대해 깊은 고민이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정원』 발간 이후 활발한 집필 활동이나 작품들의 내용을 고려하면, 『오래된 정원』은 그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어 이후 작품들의 원형 아닌 원형이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황석영은 스스로를 고향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한 자로 여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는 떠돌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정착이 불가능한 현실에 절망한 이들은 대체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오래된 정원』에서도 다른 여타의 요소보다 강조되고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장소다. 갈뫼는 에덴이다. 단, 에덴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남을 전제로 한다. 감옥의 경우 그 자체가 규율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체제지만, 이 작품 내에서는 사회의 억압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대 상황과 유리된 오현우와 시대 상황 속에 있으나 떠돌게 되는 한윤희는 1980년대 독재 체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은 물론 다르게 나타난다. 오현우의 경우 감옥 내에서 극단적인 단식을 선택하여 감옥을 비롯한 체제에 저항한다. 한윤희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으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주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봄으로써 이념의 교조화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황석영 본인은 자신의 굴곡진 삶을 오현우와 한윤희로 나누어 부담을 줄인 후, 일기와 편지, 회상이라는 형식으로 1980년대를 돌아보는 전략을 취한다. 이를 통해 그의 소설은 1980년대를 거울처럼 비춰내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를 새롭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맥락을 재생산하며,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적응을 모색하고 희망을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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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급 이상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 재외국민 및 외국인 학습자들의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및 표현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한자어 개념 지도’의 필요성과 구성 방식, 그리고 실제 적용 사례와 그 효과를 논한다. 국적이나 교육 배경의 다양성을 불문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 외국인 또는 재외국민 학습자는 단순히 어휘의 양적 증대나 단순 이해력이 아니라 대학의 수준 높은 강의를 이해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강하다. 또한 이 학생들의 경우 글쓰기의 기술적 차원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갖추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현실적 맥락을 고려하여 마련한 ‘한자어 개념 지도’는 인문ㆍ사회ㆍ자연 분야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개념어의 한자 대역어로 이루어졌는데, 표의문자로서 보편적인 개념 설명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바탕으로 개념어들 사이의 의미론적인 관계망을 학생 스스로가 설정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중급 이상의 학습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독서 체험을 통해 축적한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추론 능력을 개념 지도와 대비시켜 가면서 사고력과 표현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실제로 약 3년에 걸쳐 강의한 결과, 재외국민반 학생들의 추상적 이해력과 표현력이 현저히 나아졌음을 누차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개념 지도의 활용을 통하여 대학 글쓰기 수업의 본령과 목적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메타 텔레비전 드라마와 반성성 - 「온에어」를 중심으로 -

주현식 ( Ju Hyunsh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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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메타언어란 텔레비전 세계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 TV 드라마 텍스트에 사용된 반성적 장치들을 일컫는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텔레비전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온에어」는 자신이 메타 텔레비전 드라마임을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고의 논의는 ‘메타 텔레비전 드라마’로서 「온에어」의 미학적 성과와 의의를 가늠하려 시작된다. 본론 첫 번째 부분에서는 반성적 장치가 드러내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인공성과 그로 인한 서사적 불연속성을 실제 인물의 카메오 출현, 상호텍스트성 그리고 극중극 등 인물, 대사, 구조의 차원에서 살펴본다. 메타 텔레비전 드라마의 의미 생산은 또한 의미 수용의 양상과 깊이 연루된다. 그래서 메타 텔레비전 드라마의 허구적 세계의 생산이 어떻게 실제 경험 세계에서의 시청자의 수용과 긴밀히 연결되면서도 복합적 양상을 띠게 되는지 본론 두 번째 부분에서는 고찰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생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온에어」의 세계는 허구일지라도 허구를 넘어 허구와 실제를 횡단한다. 「온에어」의 내용이 텔레비전 드라마 자신의 구성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동시에 그 관심은 시청자를 끌어들이면서 텔레비전 드라마 자기 자신의 외부를 지향하게 된다. 시청자가 「온에어」의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 현실을 실제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 현실과 얼마든지 관련지을 수 있는 까닭에서다. 텍스트의 패러독스란 바로 이점을 지칭한다. 그러나 시청자가 극중 세계에 밀착하거나 동일화되는 양상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온에어」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떻게 생산되는 지를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 텔레비전 드라마 텍스트 생산 과정에 대한 비평적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텍스트 제작 현실의 관행이 「온에어」에서 비판될 때 시청자는 극중 세계 외부로 물러나 생소화 효과를 경험하면서 이성적 사유를 거듭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는 극중 세계 내부에 있다가 외부로 물러나오는 식의 궤적을 반복한다. 시청자의 패러독스는 이점을 가리킨다. 메타 텔레비전 드라마 「온에어」에서 시청자는 공동생산자로서 작가이자, 텔레비전을 보는 시청자이며, 동시에 극중 세계에서 제기된 텔레비전 산업 현실의 문제를 고찰하는 비평가로서의 위상 등을 점하는 것으로 다변화되는 셈이다.

신동엽의 『금강』에 나타난 자연 표상과 아나키즘

한상철 ( Han Sangch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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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신동엽의 『금강』에 나타난 중심 표상인 ‘하늘, 대지, 인간’ 사이의 관계 양상에 주목하여, 그것이 동학과 아나키즘 사상이 혼재된 독창적인 작가 의식의 반영임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금강』의 중심 서사는 대립적인 두 자연 표상에 의해 뒷받침된다. 하늘이 이상적 자연에 대응한다면 대지 계열의 표상은 비극적 현실과 관련된다. 하지만 자연 표상의 미학적 의미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과 만나면서 재생산 과정을 거친다. 둘째,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인간의 행위와 정서는 하늘과 대지 계열 표상의 다양한 배치 속에서 극적으로 승화된다. 이 과정에서 하늘 표상은 역사적 시·공간을 넘어선 ‘원수성(原數性)’의 세계를 작품 내부로 불러온다. 반면 대지 계열의 표상은 다양한 인물 표상과 조응하면서 동학혁명의 전개과정을 역동적으로 담아내는 매개체가 된다. 셋째, 『금강』의 표층 서사는 동학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이루어지지만 그 내적 구조를 이루는 정신은 동학사상의 반영에 머무르지 않고, 복합적인 작가 의지에 따라 확장된 사회·역사적 관점과 관련된다. 여기에는 근대적 국가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서의 아나키즘적 세계 구상이 직간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요컨대 『금강』의 서사적 구성은 역사와 이념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문학적 상징 표상의 아포리아를 활용한 서정 양식을 포괄하며,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총체적 세계상을 구현하고 있다.

이청준 소설의 죽음과 해원(解寃)의식

홍웅기 ( Hong Ung-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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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은 다양한 문학적 방식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탐색의 과정을 보여줬다. 이청준 문학이 보여주는 다양한 성찰과 탐색의 방식은 근원적 존재로서 인간을 가치와 의미를 보다 자명한 것으로 형상화했다. 그런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주요한 기제는 해원의 과정이다. 그런데 해원의 과정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혹은 부조리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전제된다. 부당하거나 부조리한 죽음은 현실을 지탱하는 견고한 권력에 균열을 초래하게 된다. 권력이라는 힘의 질서는, 그것이 지탱하는 현실이 온전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권력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부조리함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청준에게 “문학은 불행의 그림자를 먹고 사는 괴물”이며, “삶의 압력, 현실의 압력이 가중되면 이걸 견뎌내려는 정신의 틀을 만드는”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죽음의 문제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주요한 기제로 기능한다. 유한의 존재인 인간의 사유와 행위들이 보다 유의미한 것으로 전유되는 방식, 그 속에는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청준이 말하는 삶의 압력과 현실의 압력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삶의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형상을 생성하게 된다. 그의 문학을 통해 생성된 공간은 그가 체득한 현실에서 결코 실천될 수 없는 가치들의 중요성을 재고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청준 문학을 통해 형상화 된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유는 인간이라는 고유한 존재와 그들이 존재하는 세계와의 관계맺음에 대한 의문에 기초함은 자명하다. 그렇기에 그의 글쓰기는 인간의 삶이 지탱되어 온 여정이며, 지탱되어야 할 방향에 대한 모색의 과정을 함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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