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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론과 비평검색

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6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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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장에서 ‘민중’ 논의는 민족문학운동의 중요한 이념적 좌표이자 저항세력의 연대성,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자리해왔다. 식민지 시대의 카프 해산 이후에 임화를 위시로 하여 진보적인 문학인들을 망라하여 전개한 ‘민족문학’은 해방 직후의 좌우익 대립 시기, 전후 문학 시기의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논의들, 그리고 마침내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1960년대부터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개조와 진보적인 변혁 프로그램의 주창, 시행의 한 축을 담당했다. 백낙청과 ‘창비그룹’은 그 과제를 ‘시민문학론’으로 제기하였다. 4.19세대의 문단 진출은 한국사회의 근대화를 자신들의 역사적 과제로 삼아 문학의 비정상적인 특별하고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하였다. 다른 여타 분야의 저조와 폭압적인 독재권력도 한몫을 했지만 상징적이고 감성적인 문학 특유의 힘이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민중들에게 근대화와 한국근대사의 미해결 과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의 필요성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시민문학론’을 통하여 ‘시민’의 역사적 역할을 강조하고자 했던 백낙청이 ‘민족문학론’으로 선회하고 다시 ‘민중문학’을 민족문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채워넣으면서 ‘민중’ 논의는 한국문학사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과 ‘적대적 공생관계’로써 냉전의 한반도적 지속성을 강화하고자 한 음모가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계급과 계층을 연합하는 보편적이고 실제적인 존재로서의 ‘민중’은 바야흐로 저항세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한때는 ‘대중’ 개념이나 ‘민족’ 범주에 밀리기도 했으나 ‘민중’은 역사의 주인이자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 역사적 실체의 제3세계적 버전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중’ 개념이 지닌 모호하고 관념적인 차원이 동일성의 철학으로 비판, ‘다중’의 문제의식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네트워크 권력시대에 걸맞는 개인 주체의 자발성과 자율성, 변화무쌍한 성향과 더불어 사안과 상황에 따라 무수히 변수가 많고 변화 생성하는 ‘무위의 공동체’의 어떤 공통성을 모색, 경합하는 사유가 전개될 때라야 ‘민중’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다중’의 운동전략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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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는 식민지부터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시기 동안 소설가, 헌법학자, 교육자, 정치가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한 한국의 엘리트이다. 이 논문은 유진오의 이력 가운데에서 주로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에 나타난 교양과 교육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다. 그의 교양교육론은 해방 이후의 한국대학의 교양교육의 형성과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었다. 유진오에게 이념으로서의 교양과 실천으로서의 교육 그리고 문화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공동체적 삶의 자유로운 성장을 지속적으로 촉진하고 보증하는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고, 무질서를 지양하는 것이었다. 이 논문은 젊음과 교육에 대한 유진오의 비전을 근대적 소명의식으로 읽고자 했다. 그에게 교양과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실천은 한국적 근대성의 형성에 대한 열망이었다. 해방 이후 유진오의 글쓰기에서 일관된 것은 전쟁, 혁명, 쿠데타와 같은 비상사태 에서 근대성의 물적 기반과 문화적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말기 유진오가 보여준 행적에서 드러났듯이, 분투와 소명,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실과 규범 사이에 빚어지는 모순을 절충적으로 해소하려는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도래할 민중’과 장용학 소설의 인물들

류희식 ( Ryu Hee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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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우리문학에서 통용된 민중개념의 한계를 검토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인 들뢰즈와 가타리의 ‘도래할 민중’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개념으로 장용학의 소설을 검토해 봄으로써 새로운 민중개념의 실효성을 살피고자 한 글이다.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형성된 1970~1980년대의 ‘민중’개념은 근본적으로 국민국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본성이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라는 점, 그리고 동일성에서 근원하는 폐쇄성 등과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들뢰즈(가타리)의 민중은 국가, 민족, 가족 등의 억압에서 자유로운 신체들이다. 그런데 그 민중은 미국의 ‘보편적 이민시기’와 소련의 국가화되기 전 ‘소비에트시기’에 존재하다가 사라져 잠재화되어버렸다. 결국 들뢰즈에게 민중은 발명(현실화)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소수적인 것, ‘소수(자)되기’가 중요해진다. ‘소수(자)되기’는 국가의 코드인 표준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든 잠재력을 펼치는 생성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적인 것이 생성의 과정에서 국가장치와 만나면 전쟁기계로 전화된다. 장용학 소설은 국가의 포획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국가가 신체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로로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또 그들은 포획장치인 국가의 한 극인 법-장치와 대결하기도 한다. 특히 유고로 남겨진 「氷河紀行」은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 국가장치를 파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에 대항하는 전쟁기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들뢰즈의 ‘도래할 민중’과 그것을 위한 ‘소수(자)되기’ 개념이 모든 문학작품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용학 소설을 통해 볼 때, 이 개념은 침체기에 있는 우리 문학과 문학 연구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해방후 고통의 재현과 병리성 - 반공체제 속 ‘부랑자’와 ‘비국민’ -

박숙자 ( Park Suk 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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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전후 반공 체제 하에서 개인의 실존적 ‘고통’이 병리적 증상으로 전치, 변용되는 양상에 대해 살펴보려고 했다. 196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민/비국민을 구별, 대립시키는 통치기제에 따라 비국민이 호명, 양산되었는데, 특히 ‘부랑하는 자’가 정화되어야 하는 비국민의 표상으로 단속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우범성’이 높다는 이유로 단속, 격리 대상으로 지목되었는데, 전후 부랑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개 경제적, 역사적, 정치적 격변에 따라 양산된 월남민, 이촌민, 탈향민, 이산민 등으로 이들은 엄밀히 말해 정치적, 경제적 난민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경계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요소로 인식되었고, 이에 따라 병원, 감옥, 보호소 등에 격리조치 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병리적 증상이 ‘살아있지만 죽어도 무방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신체적 기호로서 고통이 신체에 고착, 물화되는 것으로 보았다.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자들에게 ‘병리적 증상’은 고통의 물화이다. 또한, 당대 소설을 통해 ‘비국민’으로 호명되는 과정에서 자기 감시와 검열이 작동하기도 하고(「오발탄」), 국가주의 시스템으로 이웃관계가 포섭되기도 한다(「한씨연대기」)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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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시기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 분신 자살 이후 지식인과 노동자의 연대가 이뤄졌다. 전태일은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문학 연구는 전태일의 글 자체에 주목한 연구가 드물었다. 이 연구는 전태일이 남긴 일기·수기·편지글을 살핌으로써, 전태일이 지향했던 세계관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목적이 있다. 전태일이 남긴 글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졌는지는 그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논자는 전태일 일기가 <주간조선>과 <신동아>에 실리고 난 후에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로 간행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전태일의 글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확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민종덕과 이승철을 꼽을 수 있다. 전태일의 글은 ‘이름 없는 수많은 전태일들’이 노동자로서 ‘자기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태일이 직접 쓴 글들은 산업화시기 한국 노동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전태일은 1967년 2월 14일부터 1967년 3월 23일 ‘사랑과 실연’의 감정이 담긴 일기를 남겼다. 전태일은 ‘스스로 철회한 사랑의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전태일(全泰一)’이라는 기존의 이름을 ‘전태일(全泰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꿨다. 이름의 변화는 정체성의 변화이다. 전태일은 실연의 경험을 통해 ‘공부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인간의 평등권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다. 전태일이 1969년 가을에 쓴 두 편의 수기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본 중요한 기록물이다. 전태일은 가난과 궁핍,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세 번의 가출을 했다. 자신의 개인사를 글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그것에 대한 대결의식을 펼쳐보였다. 전태일의 돋보이는 표현능력이 드러나는 글은 「친구 원섭에게 쓴 편지」이다. 이 글은 약자들의 세계와 공감하려 몸부림 전태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공감하는 자로서 간절히 공감받고자 하는 마음이 이 편지에는 담겨 있다. 전태일의 일기·수기·편지글은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 동료 노동자들은 동등한 수평적 관계에서 전태일의 글을 읽고 감동했다. 민중의 진솔한 글이 민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동등한 감성과 표현’으로 인해 공감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일기·수기·편지글에서 인간의 평등권에 대한 인식, 평화시장 내 노동문제의 공동체적 해결, 공부를 통한 미래설계,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전태일은 ‘전체의 일부’로서 약자들을 포용하려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전태일의 사상은 평등적 인권의식, 민중도공동체에 대한 열망, 공부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규한록>의 발화지향에 관한 해석의미론적 연구

김보현 ( Kim Bo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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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한록>은 해남윤씨 팔대종부인 이씨 부인이 자신의 시모에게 쓴 편지이다. <규한록>은 편지를 주고받는 당사자들, 그 가족에 대한 사적인 정보와 이미 공유하고 있는 정보들은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편지를 쓰는 발신자의 입장을 두드러지게 반영한다. 게다가 <규한록>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발신자의 억울함, 절실함, 분노, 체념 등이 뒤섞여 드러남으로써, 발신자의 주장을 모순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한다. 그러나 표면에 흩어져 있는 언어들을 통해 <규한록>의 발신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하면서도 설득적이다. 본 논의는 이러한 <규한록>의 발화가 지향하는 의미를 해석의미론적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해석의미론의 주제부 분석은 <규한록>표면의 모순된 언어들을 유형화함으로써, 텍스트를 주관하는 의미적 줄기인 ‘재물의 행방’과 ‘양자의 문제’ 및 이에 대한 인물의 태도를 도출하는 데 기여한다. 변증부 분석은 <규한록>의 두 가지 갈등을 구성하는 인물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규한록>의 행위자, 이씨 부인과 시삼촌의 서사는 대결적 통합체를 통해 ‘재물’과 ‘양자’에 대한 갈등을 구체화하고, 친화적 통합체를 통해 발신자가 제기하는 문제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서사적 사건에 대한 이러한 재구성은 발신자의 발화사건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보여주고, 발화의 목적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이씨의 편지는 집안사람들이 자신에게 지위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있음을, 나아가 자신이 종부로서의 권한을 찾는 일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도전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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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아기장수>설화를 아기부모의 입장에서 서술된 피해자서사로 읽어낼 수 있다고 보고, 서사담론을 구성하는 서사구조의 요소들을 분석하여 독해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분석을 위해 서사구조를 서사층위와 담화층위로 나누었다. 우선 서사층위에서는 주요 사건들을 세 개로 나누어, ‘부모’를 각 사건의 행위주체로 삼아 사건의 전개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사건의 전개를 통한 서사적 논리는 아기살해의 필연성을 담지하고 있다. 담화층위에서는 아기와 부모 간의 담화, 아기와 (부모 외) 다른 인물 간의 담화, 연행현장의 담화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부모와 아기 간에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불완전한 상황이 포착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비소통성이야말로 아기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거나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는 부모 행위의 원인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연행현장의 담화를 통해서도 아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가 누구에게 전가하고 있는지, 아기의 죽음에 대한 향유층의 감정은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아기장수>설화에서 아기를 살해한 부모는 가해자이기에 앞서 ‘피해자’로서 권력층의 비언표화된 명령에 적극적으로 굴종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서사적 세계에서 그려지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공동체 내부에 만연해 있는 죽음과 멸족에 대한 공포감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희망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압도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아기장수>설화가 광포설화로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민중의 비극적 세계관과 회한, 그리고 희망에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민중이,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갖게 되는 패배의식과 자신들의 행위로 빚어진 비극적 결과에 대한 나름의 합리화가 뒤섞여져 전승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아기장수>설화는 반드시 희망을 말한다기보다는 아기의 죽음과 부모의 무력함이 다름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는, 민중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채 구술 전승된 측면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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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은 시 생명의 본질을 자연으로 보았다. 그는 자연인 ‘경’과 정신적인 교감인 ‘정’을 감각적이고 미적으로 표현한 시를 우수한 시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지훈 시의 본령은 자연의 발견에 있는데 한자문화권에서 자연이란 단순히 물질적 현상계를 의미하지 않고 인격화된 존재나 신적 존재, 또는 도나 진리의 구현체로 인식되었다. 경과 정, 객관과 주관과의 교융을 통해 그의 정서나 의식세계를 형상화 했던 조지훈은 동양문화권의 시적 형상 사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조지훈 시관의 핵심을 통합하는 시적 범주이자 그의 시 정신을 해명할 수 있는 주요 개념이다. 그가 바라보는 ‘자연’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글은 조지훈의 작품과 시론을 통하여 조지훈이 동양문화권의 전통시론에서 자연성의 구현과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를 구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조지훈의 시와 시론이 지향하는 바와 한국시의 뿌리를 함께 살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지훈은 시의 세 가지 기본 성격을 <관조하는 시>와 <우아한 시>, <비장한 시>로 나누어 살폈는데, 이것은 그의 시관의 핵심을 통합하는 시의 범주라고 판단된다. 이는 한국 시의 전통에 심연을 이루는 동양 자연의 미학적 자질과 닿아있는 대목이다. 조지훈은 시 「고풍의상」을 통해 우리 고유의 의상을 깊이 바라보고 그 본성을 파악하는 지적 직관, 즉 관조미를 보여주었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내면적으로 그 자연을 느끼고 스스로가 그것의 생명과 함께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인 <우아한 시>인 「산방」을 창작했으며, 시 「절정」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비장미를 보여준다. 조지훈은 이 시들을 창작함으로서 창작주체와 시적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성’이 구현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조지훈은 서구적 근대서정시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사유를 담기 위해서 자연표상을 통해 인생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조지훈 시는 서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통에 심연을 이루는 동양의 미학적 자질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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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진건의 「그립은 흘긴 눈」의 텍스트를 한국과 일본의 ‘정사’의 비교 문화적 맥락에서 그 의의를 고찰한 것이다. 1924년 폐허 이후 에 발표된 「그립은 흘긴 눈」은 현진건의 일련의 ‘정사’를 제재로 한 작품의 흐름에서 파악된다. 그의 정사를 제재로 한 작품은, 1923년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한 강명화의 사건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근대의 낭만적 사랑의 허위를 포착”했다는 선행 연구의 지적을 바탕으로 「그립은 흘긴 눈」을 강명화 사건과 일본의 ‘신주’라는 두 가지 기축 위에서 작품 특유의 ‘야유’의 웃음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해명했다. 다시 말한다면, 현진건의 「그립은 흘긴 눈」은, ‘강명화 사건’의 배경과 일본의 ‘정사’의 비교 문화적 시각에서 텍스트 특유의 웃음의 아이러니 생성이 해명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사’를 일종의 문화 번역으로서 다루었다. 즉, ‘정사’ 모티프야말로 낭만적 사랑과 죽음의 의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이문화(異文化) 번역의 시각이 요청된다. 나아가 텍스트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일본의 ‘신주’ 문화의 영향을 가시화함으로써 ‘정사’ 모티프의 ‘한국적’ 형상화가 일본의 그것과의 대비적인 구성을 확인했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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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문학에 대한 논의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의 시각으로 이루어져왔고, 의미 있는 연구 성과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최인훈의 장편소설이나 희곡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최인훈의 단편소설들에 대한 연구는 드물다. 이제까지의 최인훈 문학에 대한 연구에서 단편소설은 상대적으로 외면당해온 것이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밝힌 대로, 그의 단편소설은 광장 화두 등 최인훈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의 원형질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바다의 편지」는 화두 의 압축본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 스스로 자신의 소설 전체를 3부작으로 읽히기를 바라고 있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이 글은 바로 이 점에 주목, 최인훈의 단편소설들이 내보이는 ‘주체’의 모습들을 분석하여 주체성의 변화 양상을 살피고, 이를 통해 최인훈 단편의 담론과 작중인물, 그리고 작가의 세계인식, 나아가 최인훈 소설의 특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최인훈은 그의 「인간의 Metabolism의 3형식」에서 인간을 세 가지 차원의 주체성을 지닌 생명으로 보고 있다. ‘생명주체’ ‘문명주체’ ‘환상주체’가 그것인데, 이를 라캉의 주체 개념을 원용하여 규정해보면 ‘속박의 주체’ ‘갈등의 주체’ ‘자유의 주체’로 바꿔 정의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라캉의 주체 개념을 원용하여 최인훈의 단편소설을 세 가지 주체로 나눠 살펴보았다. ① 기호와 이데올로기에 속박되어 체념하는 작중인물들의 주체, 즉 ‘속박의 주체’(「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 「수(囚)」), ② 사회와의 연계를 자신의 실존과 결부하여 갈등하는 주체, 즉 ‘갈등의 주체’(「웃음소리」 「우상의 집」 「구월의 다알리아」), ③ 그러한 갈등을 처절하게 겪어내고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주체, 즉 ‘자유의 주체’(「바다의 편지」)로 분류하고,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로부터 「바다의 편지」에 이르는 주체성의 변이 과정을 통해 최인훈 단편의 주체가 사회 상황에 어떻게 대체하고 극복해 나가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심 내용을 얻을 수 있었다. ① 의 ‘속박의 주체’는 상상계로 회귀하려는 욕망에 갇혀 있는 주체이며, 최인훈이 말한 ‘DNA(닫힌 안정)’ 층위에 속하는 주체이다. ② 의 ‘갈등의 주체’는 상징계 진입에 고뇌하는 주체로서, DNA'(열린 불안정) 층위에 위치하는 주체이며, ③ 의 ‘자유의 주체’는 기호 세계를 벗어난 주체, DNA∞(열린 안정) 층위의 주체이다. 다시 말하여, 최인훈 단편소설의 주체성은 ‘속박’에서 ‘갈등’을 거쳐 ‘자유’의 주체로, ‘닫힌 안정’에서 ‘열린 불안정’을 거쳐 ‘열린 안정’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성의 변화 양상은 그의 장편소설들에 원형적 인자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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