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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9권 0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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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실용적 글쓰기 가운데 하나가 ‘자기소개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글쓰기 교과 과정과 교재 개편은 학생들이 원하는 실용적이고 실효성 있는 글쓰기와 거리를 두고 있다. 본고는 ‘자기소개서’를 대학 글쓰기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한 대상이라는 전제 하에 그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인 서사적 구성 방식의 글쓰기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서사적 진술과 구성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서사는 인류가 시간에 대한 이해를 구조화하고 조직하는 가장 주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에서 성장 과정 기술에 있어 사건의 선택과 진행을 인과적으로 배열한 연대기적 플롯 구성은 읽는 이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인상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영웅서사에서 주인공은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하여 한 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구성 방식에서 인물은 어떠한 문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여 오히려 단점이었던 것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형태로 나아간다. 자기소개서에서 장점과 단점을 기술하는 방식 또한 서사적 구성의 전략적인 배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자기소개서는 자신을 주관적으로 소개하는 글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다’란 것을 객관적으로 이해시켜야 하는 글이다. 이와 같은 사항은 자기소개서가 이를 보고 평가하는 이가 어떻게 이 글을 파악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의도를 헤아리며 해석적 지점을 고려한 글쓰기는 면접에서 추가적인 의문이나 세부사항에 대한 질문과도 관련되기에 이를 반드시 생각하고 헤아릴 필요가 있다.

현대시 아이러니 교육에 관한 시학적 검토

정끝별 ( Jeong Keut-by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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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는 세계에 내재한 모순성, 표면과 실재의 이면성, 진술과 맥락의 대조성 등으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이중성을 인지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현대시의 주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시인은 물론 독자에게도 이러한 이중적 맥락을 인지하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언어를 통해 감각해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아이러니시론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대학에서 시행되는 아이러니 시론 교육의 어려움은 아이러니의 유형 분류상의 혼란과, 아이러니와 역설 간의 착종에 있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본고는 개념상으로는 아이러니와 역설을 구분하되 유형 분류에서는 역설을 아이러니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 논의했다. 이를 전제로 아이러니가 텍스트의 어느 지점에서 그리고 어떻게 발생하는가라는 아이러니의 발화점과 작동원리를 중심으로 아이러니 유형을 재분류했다. ① 모순형용의 아이러니는 이미지와 비유 차원에서 발생하는 긴장성을, ② 반대진술로서의 아이러니는 어조와 화법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대조성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③ 극적 전환의 아이러니에서는 사건과 행위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반전성이, ④ 시적 진실로서의 아이러니에서는 의미나 인식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역설성이 강조된다. 이 네 유형은 아이러니의 원리와 기능을 설명하는 교수모형이기도 해서 한 편의 시를 통해 실제 분석의 사례를 보여주고자 했다.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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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윤동주 시 세계에서 공기 이미지로 묶어낼 수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 이미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하늘’과 ‘바람’과 ‘별’이 윤동주 시에서 핵심어인 것은 그의 자선시집의 제목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이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하나의 상징에 하나의 결정적 개념을 부여해버리는 닫힌 상징 체계 연구 경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윤동주 시에서 이미지는 이렇게 결정적인 하나의 의미로 확정되기보다는 텍스트 내부에서부터 정동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며, 변용되고 이행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기존 연구에서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의 의미체계를 하나로 확정짓지 않고, 윤동주 시 세계 전체를 살펴서 어떠한 ‘이미지-사유’를 보여주는지 살피고자 하였다. 먼저 기존 연구에서 유교의 ‘천(天)’ 개념이나 기독교의 절대자로 해석되었던 ‘하늘’을 1934~1937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을 모두 살펴서 (1) 천공 자체로서 하늘 이미지, (2) 바다/물/비와 연관된 하늘 이미지, (3) 새/날개와 연관된 하늘 이미지, (4) 달/밤과 연관된 하늘 이미지, (5) 새벽/아침과 연관된 하늘 이미지로 계열화 하였다. 그리고 이들 이미지 세계가 1938~1942년 사이의 시들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변용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두 번째로 ‘바람’ 이미지 역시 기존 연구자들에게 연구자의 직관과 선택된 연구작품 범위 내에 제한되어 해석되었던 의미 체계를 1934~1937년 사이에 초기작들에 나타난 바람 이미지를 모두 살펴본 결과 (1) 시적 주체의 세계 인식, (2) 시적 주체의 내면세계 각성, (3) 현실의 시련과 고난, (4) 시적 주체와 타자의 만남의 매개체, (5) 자연물로서의 바람 등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하게 변용되는 바람의 이미지가 후기시 작품에서 어떻게 변하고 역동적인 세계를 구현해내는지 논하였다. 세 번째로 ‘별’ 이미지는 앞선 두 이미지와 달리 초기시에서 단 두 번만 사용되어졌다. 그러다가 「별헤는 밤」에 이르러 ‘하늘의 별’과 ‘지상의 별’ 사이에서 역동적인 상승과 하강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적 주체가 단독자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표상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로써 윤동주 시에서 공기 이미지들은 하나의 의미체계에 갇혀있지 않고 정동적 동요를 만들어내며, 인간의 사회적 삶과 나란히 ‘제2의 자연’으로서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정체성을 형성해내는 ‘이미지-사건’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의 시간의식 - 발터 벤야민의 시간 개념과 관련하여 -

이혜원 ( Lee Hye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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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독특한 시간 개념을 참조하여 윤동주 시의 시간의식을 새롭게 조명해본다. 벤야민은 메시아주의를 바탕으로 진보적 역사철학과 대비되는 초월적이고 불연속적이고 주체적인 시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종교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 내면성과 저항성을 대립적으로 파악했던 윤동주 시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과 달리 이러한 윤동주 시의 이질적인 측면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윤동주의 시에는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는 역사적 시간과 그와 전혀 무관하게 종교적 시간이 지배하는 탈 역사적 시간이 병존한다. 역사적 시간에 속해 있는 시적 화자는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무력한 개인으로서 비애를 토로한다. 반면에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시들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의 위력이 작용하는 ‘다른’ 시간에 대한 상상을 드러낸다. 기억은 탈 역사적인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개인적인 실천의 행위이다. 윤동주의 시는 지배적인 시간의 이면에 놓인 실패하고 버려진 시간들을 기억을 통해 되살린다. 벤야민이 그랬듯이, 윤동주 역시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현재와의 연속성에서 벗어나 있는 예외적 시간으로 새롭게 경험하며, 아직 종결되지 않은 행복의 가능성과 다가올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윤동주는 역사적 시간의 바깥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새로운 길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내면의 갈등을 넘어 결연한 의지에 도달하게 된다. 억눌리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되살리는 이러한 시적 시간은 벤야민의 ‘지금시간’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시간에 균열을 내는 혁명적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윤동주는 역사적 시간의 중압을 체감하면서 그것을 초극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을 꿈꾸었다. 승자의 역사에서 억압된 삶을 기억하고 되살려내는 그의 시적 시간은 미학과 윤리를 탁월하게 결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처절한 내면의 고투 끝에 윤동주가 도달한 소명의식과 새로운 시간과의 조우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기억할 만한 인상적인 장면에 해당한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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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사건을 재현하려는 문학적 증언자였다. 살아남은 자가 지닌 죄책감과 수치가 단편 「봄날」부터 장편 『봄날』까지 지속된 문학적 재현과 증언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봄날』 이후 임철우는 역사적 짓눌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재현적 글쓰기는 사건이 주체에게 남긴 수치와 부끄러움이라는 정동을 표현할 수 없었다. 재현이 도달하지 못한 자리에서 『백년여관』이 요청된 것이다. 『백년여관』은 재현과 증언의 글쓰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체를 되돌아보게 하는 윤리적 글쓰기가 사건 이후 문학의 처소임을 말해준다. 본 연구는 이를 위해 작품 속 ‘케이’와 ‘당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케이’(박효선)는 5·18 당시 작품의 화자인 ‘당신’에게 세 번의 전화를 한다. 살아 있는 케이의 소환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신’이 ‘케이’를 외면함으로써, 임철우라는 자아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탄생하게 된다. 이를 표현하려 한 것이 재현적 글쓰기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순옥’과의 대화는 자기 연민이 중심인 자아의 글쓰기가 이웃한 타자의 아픔과 슬픔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나-돌아보기’의 지속적 행위를 통해 정작 이웃한 타자의 고통에 무감했다는 윤리적 성찰에 도달했을 때 『백년여관』은 쓰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돌아보기’라는 행위가 5·18과 함께 제주 4·3 사건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원혼들처럼 말할 수 없는 자들을 영도라는 섬으로 소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본고는 ‘케이’의 존재를 세 층위로 분석하고, 이를 각각 임철우의 다른 자아의 표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각각 다른 글쓰기의 방법이 공명함을 밝히려고 했다. 첫 번째 ‘케이’는 도청에서 빠져나온 존재로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임철우라는 자아를 표상한다. 자기고백의 글쓰기가 여기에 조응한다. 두 번째 ‘케이’는 오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증언하려는 존재로서 문학을 통해 광주를 재현하려는 임철우라는 자아를 표상한다. 재현과 증언의 글쓰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 ‘케이’는 죽음 이후 ‘영도’에서 ‘당신’을 소환하는 목소리로서 임철우라는 자아를 타자들의 고통과 신음에 귀기울이게 만든다. 현실의 언어를 초과하고 재현이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마치 ‘박수무당’처럼 원혼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타자-되기’의 글쓰기가 사건을 지속적으로 현실로 소환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었다. 본 연구는 이 ‘타자-되기’의 글쓰기를 오월 광주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현재화하는 임철우의 글쓰기 방법론이라는 결론을 제출하고자 한다.

이병주의 「허상(虛像)과 장미(薔薇)」에 나타난 4.19의 문학적 전유 양상

손혜숙 ( Son Hye S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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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이병주의 「虛像과 薔薇」를 중심으로 이 작품에서 4.19라는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소환되는지, 그것을 통해 무엇이 환기되고,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지를 추적해 보았다. 먼저 이 작품은 허벅다리 통증으로 표상되는 전 호의 몸의 기억을 통해 봉인된 4.19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어 그것을 환기시키면서 당대 정권이 만들어가고 있는 역사에 균열을 내고 있다. 몸의 기억이 작용할 때면 전 호는 그 때의 정신과 의미,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그 기억을 타자와 분유한다. 이것은 당대가 구축하고 있는 균질적인 역사와 소리 없이 맞서는 행위이며, 그 기억의 심연에 포진되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는 행위이다. 소설은 몸의 기억과 타자와의 분유를 통해 그날을 소환하여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호를 4.19를 증거하는 흔적으로 내세워 그의 삶을 통해 민주적 기억을 활성화하여 그날의 의미를 다시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4.19를 이끌었던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와 애도의 방식이 된다. 전 호가 몸의 기억을 통해 4.19의 의미와 기억을 추동하였다면, 민윤숙은 4.19의 의미가 필요한 당대의 현실을 투사하고 있다. 물질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당대의 문제를 경제 동물화 된 민윤숙의 삶과 세속적인 성공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지적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민윤숙의 성공은 외모와 남성에 의해 좌우되어 최고의 요정 마담으로 귀착된다. 민윤숙의 성공이 요정 마담으로서의 성공에 그친 것은 진정한 성공이 불가능한 시대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이러한 시대의 병폐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4.19의 민주적 정신이 또다시 필요하다는 것의 방증이다. 이에 반해 근대화와 경제 성장을 표방했던 당대에서 청빈하게 살아가기를 고집하는 형산은 그러한 사회를 거부하는 존재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평생을 반속적으로 살았던 형산의 삶을 통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4.19의 의미를 지키는 깨끗한 삶이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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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 대한 인식은 자아와 차이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의 삶의 양식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존재는 항상 삶의 규칙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며, 그들은 우리의 삶을 공격해 올 수 있는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농후한 존재들이다. 이런 면에서 좀비는 인간과 공통된 생활 양식을 갖지 않는 존재이자, 인간을 공격하려는 이방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펭귄의 「어둠의 맛」은 좀비의 공격성을 서사의 중심에 두기보다는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지적해내는 데 집중한다. 경제 자본의 결핍은 자본가들의 욕망에 의해 또 다른 경제 자본의 결핍을 불러오면서 인간을 하위주체로 내몰아간다. 미디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시뮬라크르와 그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하이퍼리얼은 ‘타자화 전략’과 ‘정형화 작업’을 통해서 하위주체를 하위주체로 고정화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미디어를 만나 은밀한 식민주의 메커니즘을 완성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식민주의 메커니즘을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허황된 욕망에 경도된 하위주체의 엇갈린 자아정체성은 동질성의 거부를 불러온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식민성은 더욱 견고화된다. 좀비 묵시록으로서 「어둠의 맛」은 단순한 좀비 서사물로 읽혀서는 안 된다. 본 작품은 자본주의사회에 잠재된 식민주의 전략을 형상화하고 있다. 「어둠의 맛」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를 상징적인 존재 ‘좀비’를 앞세워 꼬집어내고 있는 비판적 시선이다.

재독 한인 소설에 나타난 개발독재시대의 기억과 자기표상

이상진 ( Lee Sang-jin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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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00년대 이후 발표된 재독한인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개발독재 시대 파독이 가져다 준 삶의 변화가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재독한인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독일에서의 정주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상태에서 다양한 목적에 따른 이주와 정주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것을 가족 해체와 가족 만들기, 문화통합과 역문화충격, 여성이주자 문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주나 정주 과정에서 가족은 중요한 변수로 그려진다. 가족 분리로 인한 불안과 고립감 때문에 국내 가족이 해체되고 한독가정을 꾸리는 이야기나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파독광부와 간호사가 집단적으로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정주의 다양한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정주이후 독일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변화하고 소통하는 한인들의 긍정적 이야기 한편에서는 고국의 변화된 모습에 역문화충격을 받고 귀향을 포기하는 이야기도 있다. 고착된 기억과 관습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문화적 경제적 수준차이에서 오는 박탈감 때문에 귀향할 수 없는 경계인의 처지가 쓸쓸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부장제의 내면화와 고착으로 인한 성역할 갈등과 노동착취, 가정폭력 등도 주요한 주제이다. 이 중에는 개발독재시대의 여성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소설이 많다. 여성작가조차 자기 속의 가부장적 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문제를 은폐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비주체적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 소설 「지도의 암실」 연구

최윤정 ( Choi Yun-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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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발표된 「지도의 암실」은 불연속적인 문맥의 반문법성, 파편화된 이야기의 반서사성, 분열된 주체의 다관점성 등, 그 난해성이 문제적인 텍스트였다. 따라서 기존의 다양한 연구들은 텍스트의 해독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래서 미적 모더니티로서 「지도의 암실」의 의의를 포괄적으로 범박하게 제기하거나 세계의 재현불가능을 독서불가능성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에 머무르고 마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방향의 논의는 「지도의 암실」 텍스트의 여러 구성요소들의 난해성을 난해한 대로 남겨두는 논의가 될 수 있다. 「지도의 암실」이 이상의 사상을 소설화해 놓은 것이라는 기존 평가는 이 텍스트가 이상 사유의 많은 핵심들을 내장한 텍스트라는 암시를 준다. 따라서 본고는 「지도의 암실」에 표기되어 있는 몇 가지 중요 모티프들을 해독하여 「지도의 암실」의 구체적인 의미를 제시해보려고 했다. 이때, 「지도의 암실」의 모티프들의 해석은 이상의 다양한 산문 텍스트들을 중층적으로 읽는 과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렇게 이상의 다양한 산문 텍스트들에서 「지도의 암실」 모티프들의 의미 해석의 단초를 제공받음으로써 「지도의 암실」 해석의 난해성을 조금이라고 해소해 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의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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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67년 개봉된 문예영화 <산불>과 <까치소리>를 통해 당대 문예영화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두 편의 영화에서 원작은 어떤 방식으로 각색됐고, 영화 관련 담론은 어떻게 형성됐으며, 또 홍보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포괄적으로 논의한다. 두 영화는 모두 태창흥업에서 제작했고, 감독 김수용이 연출을 맡았으며, 해외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또한 영화의 제작 과정에는 과잉 생산의 시기 원작이 있는 영화를 우수영화로 간주하던 시대 배경 및 문예영화를 외화 쿼터 확보 수단으로 인식했던 제작사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었다. 그런데 <산불>과 <까치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중심에는 원작자가 있었으며, 영화 홍보 과정에서도 문인들의 이름이 강조되었다. 곧 원작자의 이름은 문예영화의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었기에, 제작사는 영화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가치와 동료 문인들의 호평을 강조했다. 그런데 당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문예영화 <산불>과 <까치소리>의 경우, 원작의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남녀의 애욕을 전경화하면서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부각했다. 또한 제작사는 권위 있는 영화매체를 통한 좌담회 자리에 원작자를 소환해 영화의 예술성을 강조했으며, 홍보 과정에서는 영화를 호평한 문학인들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곧 당대 문예영화는 저질영화와 구분되는 예술영화로 인지되었으나, 제작사는 외화 쿼터를 확보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원작자의 권위에 기대어 영화 관련 담론을 만들어갔으며, 또한 작품을 홍보했다. 이는 1960년대 한국형 문예영화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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