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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론과 비평검색

Korean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KLTC)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50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5권 0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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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중국 사행에서 중국 동북부 요서지역은 주된 사행노정이었다. 이들 지역을 지나면서 견문한 사실 중에서 본고는 요서 지역 민가에 대한 사행록 서술을 통시적으로 고찰하였다. 가장 이른 기록인 권근의 「봉사록」에도 이미 14세기말부터 이 지역 민가는 일자형 평면으로 지붕마루가 없어서 지붕이 평평하며, 지붕 위를 흙이나 백회를 덧발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김창업과 이의현은 이들 민가에 대해 ‘일자형’ 구조와 지붕 재료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하였으며, 최덕중은 ‘평방자’라 칭하고 ‘괴이하다’ 라는 주관적인 감상을 덧붙였을 뿐 별다른 의견을 서술하지는 않았다. 황재는 요서 지역 민가에 대해 ‘평방자(平房子)’라는 최덕중의 용어를 사용하고 ‘명나라 유민이 명나라가 망해 임금이 없는 것을 슬퍼해서 대들보 즉 지붕머리가 없는 집을 짓고 산다’는 의미를 덧붙였다. 대명의리론에 입각하여 요서 지역 민가에 대해 평한 것으로 이후 ‘평방자’ 대신 ‘무량옥(無樑屋)’이라 명칭이 변하게 되었다. 송시열의 대명의리론을 계승한 권상하의 손녀 사위였던 황재의 이러한 견해는 이후 조선후기 18세기 사행록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며, 19세기 이해응의 『계산기정』에서도 여전히 확인된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황재의 대명의리론 시각에 반박하는 기록들 또한 많아졌다. 즉 요서 지역 민가의 일자형 구조와 평평한 지붕, 진흙 또는 백회로 덧바른 이유가 정치적 의미가 아닌 자연 환경으로 인한 선택이었다는 실학적 시각에 입각한 논의가 정광충, 이의봉, 조환, 김정중 등에 의해 서술되었는데, 이들은 지붕에 덧바른 재료도 단순한 진흙이 아닌 감토(㙳土)를 사용하여 비가 새지 않도록 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송시열이 영도하던 노론 쪽에서 강고한 대명의리론을 부르짖고 있을 때 노론의 대표적 인사였던 김창업과 이의현의 사행록에서도 민가에 대해 ‘일자형’인 집의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해 두었다. 이는 노론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대명의리의 관점에 서 청을 바라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권상하의 손녀사위인 황재에 의해 요서 지역 민가의 형성 원인으로 ‘명나라에 대한 충의’라는 이유가 서술된 후 이러한 의미가 반복되어 재생산되어갔지만, 또 다른 사행록 속에서는 객관적 사실 서술을 중심으로 실학적 사고에 의해 이러한 의견은 극복되어 갔다. 이는 좀 더 세심하게 사행록 속에 나타난 조선 지식인들의 시각차를 고구해야할 것을 시사해준다.

東溟 黃中允의 漢詩 硏究 - 對明 使行詩를 中心으로 -

이성형 ( Lee Soung-hyung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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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기의 문인인 東溟 黃中允(1577~1648)의 漢詩 중에서 對明 使行詩를 중심으로 그의 한시의 일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황중윤의 주문사행은 명이 조선이 후금과 왕래한다는 의심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홍명원의 칙사파견 만류에 대한 명의 의심을 해명하기 위한 차원에서 차견하게 된것이었다. 사행 노정은 북경까지 이동 기일이 보름정도 단축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황중윤의 사행시에서 도강이후로 북경에 도착하기까지 동행들과의 수창시가 없고, 명의 명승이나 유적에 대한 묘사나 소회가 적었다. 황중윤이 옥하관에 체류하고 있을 때에 만력제가 붕서하고, 태창제가 등극하였으며, 奏聞使 二行, 千秋使, 聖節使 등 四行이 함께 체류하여 시문을 수창하거나 태창제의 등극 축하 반열에 함께 참석하기도 하였다. 황중윤의 사행시는 사행 노정에 따른 시상의 전개가 상이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먼저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국내 구간중에는 忠孝兼全에 대한 내적 갈등을 확인할수 있었다. 두 번째로 압록강을 건너서 산해관에 입관하기 전까지의 노정을 이동하면서 창작한 작품에서는 호족의 위협에 대한 경계심이 여러 작품에서 노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산해관에 입관해서 북경에 입경하가까지의 구간에서는 호족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壯遊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네 번째로 옥하관 체류기와 귀국 노정 구간의 작품에서는 동행들과의 활발한 수창을 통해 상대방을 찬양하고 위로하면서 교감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등극 축하 반열에 참여한 뒤에 그 소회를 표현한 작품은 화려한 수식과 찬양을 위주로 하는 작품 세계를 보인다. 아울러 귀국 노정 구간에서도 수창시가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호족에 대한 두려움, 수창 대상에 대한 칭송, 사향지심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윤동주 시의 공간과 장소

심재휘 ( Shim Jae-hui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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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를 살피는 글이다. 특히 그의 시에 나타나는 공간과 장소에 유념하였다. 시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물리적 공간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일종의 상관물이다. 인문지리학에서는 이 공간을 다시 공간과 장소로 나눈다. 공간이 다소 추상적인 관념의 범주에 머문다면 장소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고유성과 구체성의 범주에 든다. 비록 윤동주의 시가 고백을 위주로 하는 사변형의 시이지만 그의 시에도 공간이 있기 마련이어서 그것의 양상과 변화를 살핀다면 동주 시의 특징을 밝히는 방법이 된다. 그 결과,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공간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늘과 거리와 방이 그것이다. 연보에 의하면 윤동주는 열여덟 살부터 시를 썼다. 기독교를 믿는 북간도 이민자의 가정과 식민지 현실이 맞물린 그의 성장 환경은 문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시의 의장보다는 관념성이 강한 시를 짓게 된 것도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임의적으로 그의 시를 북간도 시절과 경성 시절, 그리고 일본 유학 시절로 나눌 때, 초기에는 공간 묘사나 구체적 경험의 구축이 시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분석 대상인 하늘, 거리, 방 등에 공히 나타난다. 하늘의 경우, 초기에는 다양한 상징으로 변주된다. 그러나 경성 시절부터 한 가지 표상공간으로 정위한다. 하늘은 순결무구의 대상으로 나타나며 지상의 화자와 대비가 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계기이자 다짐을 확약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늘은 장소보다는 표상공간에 머문다. 그와 달리 거리와 방은 상징에서 표상공간을 거쳐 장소로 변모한다. 특히 일본에서의 쓴 시들에서는 거리와 방이 자주 나타나며 특별한 경험 공간, 즉 장소의 면모를 보인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장소감을 대동한 결과이다. 장소 연구의 입장에서 볼 때, 윤동주의 시 쓰기는 마지막 시 「쉽게 씌어진 시」의 ‘육첩방’에 이르는 도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육첩방’이라는 장소를 통해 압도적인 현실을 재현하는 윤동주의 생애는 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동시에 나타난 근로기준법 인식 고찰

맹문재 ( Maeng Mun-jae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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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5월 10일 제정된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의 임금, 노동 시간, 안전 및 보건, 재해 보상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사용자가 무시하거나 왜곡해서 적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사회적 환경이나 기업의 능력을 벗어난 수준에서 제정되는 바람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는데, 그 풍토가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그와 같은 면을 박노해, 백무산, 육봉수, 최명자, 송경동 등의 노동자 시인들이 창작한 시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임금은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 자원이라는 점에서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근로기준법에는 임금의 최저한도를 정하여 사용자가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 시간 또한 노동자에게는 중요한 사항이다.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임금뿐만 아니라 적정한 노동 시간도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존재이므로 건강을 잃거나 재해를 입는 경우 삶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용자는 이와 같은 인식이 부족해서 임금이 보장되지 않고, 노동 시간이 작업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해당 노동자로 인해 발생된 경영상의 손실을 만회하려고 재해를 보상하기는커녕 해고까지 단행한다. 노동자의 안전 및 보건 대책을 마련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살펴본 노동시는 이와 같은 현실을 절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시인들은 자신의 작업장에서 체험한 임금 문제와 노동 시간 문제, 안전과 보건 문제, 산업재해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유일한 판매 수단으로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것은 물론 사회적 연대까지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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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이범선 장편소설 『검은 해협』에 나타난 인물 간의 위계를 구성하는 질서를 파악하고, 월남민 남성의 한·일 관계 인식이 소설적으로 형상화되는 방식과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중인물의 성격과 인물 간 위계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것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고찰한다. 『검은 해협』의 인물 관계는 젠더와 내셔널리티에 따라 크게 ‘한국인 남성-일본인 남성’, ‘한국인 남성-일본인 여성’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남성 인물 간의 관계에서는 도덕성을 중심으로 한 개인적 자질에 의해 위계가 결정된다. ‘고결한 인품’이나 ‘자긍심’ 같은, 한국인 남성이 지닌 개인적, 정신적 자질의 우수함은 일본인 남성이 내세운 군사력과 경제력 등 ‘근대적 집단 물리력’을 이긴다. 한편 남성 인물과 여성 인물의 관계에서는 젠더에 의해 위계가 정해지며, 여성 인물의 섹슈얼리티가 제한된다. 일본인 여성은 한국인 남성의 도덕성과 권위에 기대어 보호받는 대신, 일본인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이 역학 관계는 일제강점기 아버지 세대에서 1970년대 아들 세대로 이어지면서, 일본이 경제력을 앞세워 남한의 안정을 위협하는 현실에 대응한다. 나아가 이는 월남민이 한국전쟁 이전부터 고수해 온 자기 가치관의 정당성과 삶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 한·일 관계는 ‘윤리적 가부장(제)의 질서’를 근간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한국이 일본을 ‘포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포용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유지한 채 ‘남성 혈족’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배타적이고 제한적이다. 『검은 해협』에 나타난, 과거의 삶을 관장하던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남한에 정착한 현실에 대응하고자 하는 월남민 남성의 태도는 이범선 후기 소설의 특성과 상통한다. 나아가 전후소설의 주요 문제 중 하나인 ‘월남민의 자의식’이 이후 어떻게 지속되고 변주되었는지 추적할 단서가 된다. 따라서 이범선 작가론의 영역을 ‘전후 단편소설’의 범주를 넘어 1960-70년대 장편까지 확대, 심화한다면, 작가론의 다각적 고찰과 함께 ‘50년대 전후소설의 문제의식’의 통시적 변주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간 인식과 여성에 대한 폭력 - 하성란 · 조경란의 소설을 중심으로 -

류진아 ( Ryu J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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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젠더 지리학의 관점에서 공간과 여성 폭력의 상관성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조경란의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 「천국처럼 낯선」과 하성란의 단편소설 「악몽」, 「새끼손가락」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의 젠더 함의를 분석하고, 공간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를 살펴보았다. 공간은 젠더와 계급 등의 다양한 사회관계가 응축되어 나타나는 사회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이로 인해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다. 공간에 대한 젠더 인식의 차이는 단순한 경험만의 차이가 아니며 그 사회에 내재된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의 차이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이유로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인 구성물로서 보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통해 사회의 정치성과 이데올로기를 밝히는 것이 우리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의 젠더 함의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먼저, 직장이라는 공간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공공의 공간인 택시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간 인식에 대한 젠더 차이와 함께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 보호의 공간, 편안한 공간으로 인식되던 집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간 이해에 대한 젠더 차이를 통해 알아보았다. 공적 영역에서의 위계화 된 질서로 인해 직장이라는 공간의 인식에서 젠더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여성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주로 여성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행해졌다. 이러한 기저에는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공공의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젠더 차이는 자유롭게 공공장소를 이용하고 통행의 자유를 누리는 남성과는 달리 공공장소는 여성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밤늦은 시간 택시를 타는 여성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여성의 선험적 경험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사회 사건들이 여성들에게 직·간접경험으로 인식되어 공공의 공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공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 또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의식이 근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은 여성으로 하여금 집이라는 공간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며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의 장소임을 인식하게 한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여성 폭력은 대부분 남성 보호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일어났으며, 이 경우 보호자의 부재는 침입자에게는 곧 소유의 공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은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에서부터 접근할 때야 비로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의 타자와 정동의 윤리

우현주 ( Woo Hyu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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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속에서 서사화된 소문은 그것의 생산자와 대상의 직접적 관계만이 아니라 소문의 전제가 되는 외부 담론과 그것의 의도, 공명-확산-전환에 따른 공동체의 영향 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본고는 소문 서사에 내재된 사회 메커니즘과 그에 대응하는 주체의 수용 및 타자의 대항 정동에 대한 분석을 목표로 한다. 1970년대 ‘일하는 여성’에 대한 담론은 여성에게 경제적 의무를 부여하고 절대적인 모성의 표상으로 여성을 공동체에 각인시키면서도 국가 가부장에 의해 여성을 배제하거나 성적 일탈로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인물로 그들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박완서 소설 속에서 행상하는 과부나 식모에게 적용된 소문은 이 부분을 정확히 드러내면서 무성화되고 불결한 인물로 그들을 대상화한다. 이후 2000년대에 이르면 자본주의의 일상 속에서 정당한 분배에 대한 담론이 유산, 보상금, 공공 복지에 이르는 불로소득의 개념 속에서 확장된다. 생산성이 부재한 노년의 인물에게 부여된 불로소득으로 인해 대상자는 소문을 통해 반인륜적인 도덕성 결여의 인물로 재현된다. 이렇듯 당대 일상의 지배적 권력 담론은 소문의 공동체에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되어 지속적으로 공동체의 혐오 감정을 양산하고 이들에 의해 타자로 배제되는 인물들은 인간/비인간으로 대별되며 존재가 부정된다. 그러나 소문의 서사에서 주로 타자로 낙인찍히는 박완서 소설의 여성 인물은 여성성의 가시화, 사랑, 몸의 고통, 감정의 교신이라는 정동의 언어로 공동체의 혐오에 전략적으로 포획되거나 그것을 반향하면서 대항한다. 공동체에서 억압받고 배제된 타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소문을 해명하거나 그들의 정동 언어가 공동체에 전이된다는 점에서 박완서 소설은 차별화된다. 무엇보다 박완서 소설의 소문 서사는 소문의 공동체와 대상 타자 사이에 반성적 성찰의 인물을 설정한다. 타자와의 교집합 속에서 중개적 인물들은 타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자신의 무능을 확인하면서 공동체의 새로운 윤리 재건에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는 소문의 발화 진원지가 붕괴되는 과정과 그런 소문에 저항하는 타자의 정동 언어가 공명하는 지점에서 공동체의 윤리를 재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박완서 소설의 특징을 드러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과 오페라 대본 비교 연구

홍혜원 ( Hong Hye-w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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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인간의 본능과 자연과의 친화라는 이효석 문학의 본질적 특징이 압축적으로 담겨져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면서도 고단한 민중의 삶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그려냄으로써 TV드라마, 만화,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새로운 창작물을 탄생시켰다. 이 논문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창작오페라 대본(탁계석 대본과 이승원 대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변이의 양상을 전반적으로 비교, 고찰하였다. 우선 플롯의 측면에서 소설은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여 대화 속에서 회상의 방식으로 과거사건을 불러오는 구성을 보이며, 오페라 대본은 과거의 사랑 사건을 독립된 단위 사건으로 선택하여 시간의 역순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사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플롯상의 차이로 인해 허생원, 성서방네 처녀, 동이 등 인물의 성격에 있어 변화가 나타나며, 또한 나귀 모티프, 꿈 모티프, 씨름 모티프 등의 사용에서도 대본에 따라 추가와 삭제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오페라는 공연을 전제하기에 사건 제시의 현재성, 스토리의 명징성과 단순성, 멜로드라마적 특성을 지니며 앞서 지적한 소설과의 차이는 바로 오페라 대본의 양식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작업은 동일 서사의 매체 전환에서 각 매체의 장점을 적절히 구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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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화기 활발히 생산-유통된 독본 텍스트를 중심으로, 근대적 지식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용된 고유한 담화 구성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담화 구성 전략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 첫째, 내포독자의 기대지평에 부응하는 동아시아 지적 전통의 변용 양상이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이 시기 새롭게 등장한 서구의 근대 지식 개념어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은 구체적인 예시로 매우 활발히 활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둘째, 내셔널리즘적 욕망에 기반을 둔 구별짓기의 수사학이다. 이 시기 독본 텍스트에서 조선은 홍인종이나 흑인종과는 달리 근대 민족 국가를 건설할 역량을 지닌 민족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주변부 민족을 ‘야만부락’으로 호명하는 구별짓기의 전략이 두드러진다. 셋째, 인접 매체와의 결합을 통한 공감각적 담화 구성 전략이 두드러진다. 구술성을 강조한 시가 양식이나, 짧은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대화 형식은 물론, 이미지텔링을 통한 시각적 재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개화기 독본 텍스트는 근대적 지식 개념을 다양한 담화 구성 전략을 통해 형상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임진록」에 드러난 복수담의 심리학적 고찰

권대광 ( Kwon Dae-kw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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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은 임진전쟁 이후 17~19세기에 살았던 조선인들이 만들어낸 공동체적 담화 행위의 산물이다. 막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임진전쟁의 복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복수의 좌절은 ‘잔인성이 없는’ 자아가 외부로부터 공격받은 데서 오는 피해 의식과 조선중화주의가 함께 결부되어 인지적 부조화를 가져왔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복수와 분노의 서사적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흔적은「임진록」에 반영되었다. 「임진록」은 일련의 서사적 과정을 보이는데 이는 침범에 대한 부인, 공격성의 내적 투사, 공포심의 전치, 격분의 서사로 나타난다.「임진록」에서는 임진전쟁의 발발 원인을 개인적 차원에서 찾고자 한다. 또 전쟁의 원인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사후설명편향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일본의 침공을 부인하는 모습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일본의 공격성과 공포를 내적인 역량으로 투사하여 영웅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강홍립의 투항 장면이 부각되어 있는데, 여기서 복수와 징치의 대상이 일본에서 청나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에 대한 패전 의식이 대명의리론과 결합한 흔적으로 보인다. 사명당 서사는 분노의 화소가 극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지점을 보이며, 궁극적으로 힘의 우위를 통한 공격성의 우위를 서사 내에서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전쟁의 복수가 국가적 추동을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다. 서술자들은「임진록」에서 이러한 상처를 복수의 서사적 실현을 통해 앙갚음이라는 정신적 보상, 일본의 재침 의지의 무산, 동아시아의 응징자로서의 자기 정립을 의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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