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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2권 0호 (2012)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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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일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기, 기존의 상식과 도덕, 전통과 습관이 붕괴하고 있다는 의식이 뚜렷하게 등장하던 ``비상시``를 ``식민지 전시 레짐``으로 규정하고, 그 성격과 작용 기제를 분석하면서 문학이 놓여 있던 자리를 고찰하고자 했다. ``비상시``는 식민지/제국 체제의 동일성/차이의 정치에 전선/총후라는 정치적-의미론적 장치가 중층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식민지/제국 체제 전체를 관통해 중요한 변동이 야기된 시기였다. 이 변동의 핵심은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에서 정치적 성격을 도덕적 의미로 대체하는 ``탈정치의 정치``, 그리고 식민지의 예외상태를 식민지/제국 체제 전체로 확장하는 일종의 ``식민지연장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전선/총후라는 정치적-의미론적 장치는 이른바 ``사실``의 세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유일한 힘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비상시``에 문학은 위기에 처하게 되는 데, 이 위기란 다름 아닌 서사적 주권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데서 기인한다. 서사적 주권성의 상실은, 임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성/세태의 분열로 나타났다. 서사적 주권성의 상실은 단지 서사적 주체가 허구의 세계를 장악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허구 안에 사실을 기입함으로써 언어적 구성물을 사물화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제국적 주권권력의 유동적이고 예측불가능한 결정 아래 운명이 내맡겨지는 세계에서 필연성/우연성, 허구/사실, 질서/혼돈, 가능성/불가능성, 궁극적으로 삶/죽음이 구별되지 않는 사태가 출현하게 되었고, 그 시기 문학은 ``기술적(技術的)인 기술(記述)`` 속에 이 ``비상시``의 상처를 각인하고 있다.

특별논문 : 주권성과 문법 ; 전쟁,혁명,회화

이케가미요시히코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2권 0호, 2012 pp. 43-63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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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패전 이후, 전쟁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민주주의 재건을 향해 민중에 의한 광범한 전후혁명이 일본에서 개시되었다. 오늘날 이것은 ``공산당주도``라는 한마디로 요약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는 공산당과는 무관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다. 전후 직후부터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 조직되었으며, 서클운동이라 불리는 운동이 전국에서 전개되어 갔다. 그로써 많은 민중들은 시를 짓고, 미술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냉전의 개시와 함께 철저히 탄압받게 된다. 주체적으로 참가했던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패전에 버금가는 두 번째의 패배였다. 하지만 그 패배는 전후사에 있어 패배라 자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정확히 두 번째의 패배인 것일까. 태평양전쟁 중, 일본은 한창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모든 층의 국민은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예술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가들은 전쟁을 그리고, 찬미하는 전쟁화를 그렸다. 이는 곧 예술의 패배라 할 수 있다. 전후 직후의 상황을 아방가르드 화가로서 살았던 카츠라가와 히로시(桂川寬)에게 전후혁명이란, 화가로서 새로운 일본을 그리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전쟁 중에 패배했던 회화적 저항을 새로운 혁명이라는 전쟁상태 속에 지속시키며, 수행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전시 중에 화가들이 이룰 수 없었던 저항을 10년 늦게나마 이루어보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번째의 저항도 탄압에 의해 억압되어,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게다가 이 저항은 단지 권력에 의한 탄압으로 인해 망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보세력에게마저 부정되었고 심지어 경멸당했다. 그 결과, 그들의 경험을 오늘날까지 되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망각된 역사를 카츠라가와 히로시의 궤적과 작품으로 결실을 맺은 두 개의 저항과 좌절의 과정을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2011년의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세 번째의 패배를 맞은 일본에 대한 힌트를 탐색해 본다. 진정한 저항의 가능성은 이 패배의 자각에 대한 탐색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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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층은 대중사회 형성의 기본적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mass)의 등장은 임금 노동자들의 양산이라는 사회 형태 및 인구구성 비율의 질적인 변화와 직결된다. 중간층 귀속의식은 대립적 계층구도를 약화시키며 대중사회로의 이행에 중요한 연결 고리로 기능한다. 한 사회에 중간층이 얼마나 두터운가는, 그 사회의 건전한 경제발전과 공정한 분배구조를 가늠하는 지표라는 점에서도 중요하게 인식된다. 한때 ``일억 총중류``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일본 사회의 높은 평준화와 일본인의 두터운 중류귀속의식을 자랑하는 말로서 널리 회자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독특한 호명- ``중류(中流)``라는 말은 내실이 용이하게 파악되지 않는 용어로, 서구의 미들클래스처럼 구체적 분류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중류``는 역사적 실재로서보다는 기호(이미지와 통계수치)로 유통되어오며 다양한 논쟁들을 양산해 왔다. 이 연구는 ``90% 중류``의 평등신화로 대변되는 일본의 대중사회 상황 하에서, ``중류`` 혹은 ``중류의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탄생, 육성되고 소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중류`` 탄생의 직접적 배경으로 거론되는 고도성장기의 담론을 중심으로 ``중류`` 생장의 이면을 짚어보고, 중류라는 범주의 모호하고도 논쟁적인 성격을 부각시킨 이른바 ``중류논쟁``의 양상을 검토하였다. 또한 전후 국민국가의 재건과정을 거치며 어떠한 맥락에서 대중이 국민으로 재호출되고 기능하는지를 전전(戰前)과의 관련성 속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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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후일본의 대중사회 담론과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 반대투쟁을 둘러싼 서사를 통해 ``대중``과 ``시민``이라는 집합적 주체가 교차, 길항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20세기 초 서양국가에서 등장한 대중사회론은 일본에서 고도성장의 출발시점인 50년대 중반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어 정치와 경제, 권력과 민중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첨예한 논점들을 제시하였다.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은 대중사회론을 마르크스주의와 전후계몽사상에 대한 커다란 도전으로 받아들여 논쟁을 벌였으나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 ``너무 이른 논쟁``으로 평가되는 이 논쟁 배경에는 ``시민사회`` 단계를 겪지 않고 ``대중사회``(mass society)로 이행한 일본의 특수성이 있었다. 그런데 60년 안보투쟁의 충격은 ``대중``에서 ``시민``으로의 일종의 ``역코스`` 과정을 준비하였다. 일부 지식인들은 안보투쟁의 과정에서 ``대중``이 아닌 저항하는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그들의 각성과 주체화를 촉진하였다. 민주주의 옹호를 외치며 저항하는 주체들은 마르크주의적 ``시민(bourgeoisie)``이 아닌 ``시민(citizen)``으로 새롭게 호명되었다. ``시민주의``로 불린 이 새로운 흐름은 ``시민``을 노동자가 아닌, ``직업인``과 ``생활인``의 양립으로 파악하는 시각으로 특징 지어졌고, 자율적인 ``생활인``라는 말은 그 후 일본의 사회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주의``가 취한 온건한 통일전선은 ``투쟁하는 노동자``라는 인간형과의 단절의 계기를 확고히 함으로써 안보조약개정을 저지하고자 하는 실질적 과제와 멀어져 갔다. 대중사회화가 민주주의의 후진성과 결합할 때 무한한 외연 확대로 인해 정치적 핵심이 떨어져 가는 역설을 60년 안보투쟁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반논문 : 고바야시 마사루(小林勝)와 최규하(崔圭夏)

하라유스케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2권 0호, 2012 pp. 137-166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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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패전후 일본에서 조선문제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온 작가 고바야시 마사루(1927~1971)의 사상적 핵심인 조선에 대한 향수의 거부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고찰한다.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식민자 2세였다. 만년의 에세이「``그립다``고 해서는 안 된다(「懷しい」と言ってはならぬ)」(1971년)와 이 에세이에서 반성적으로 반추하고 있는 초기의 단편소설 「일본인 중학교(日本人中學校)」(1957년)를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이 소설에서 고바야시 마사루는 1940년대 대구에서 보낸 자신의 중학교 시절의 한 일화를 소설화했다. 동경고등사범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 영어교사가 실은 조선인인 줄 알게 된 일본인 학생들이 그의 민족성을 모욕하고 결국 학교에서 쫓아내고 만다. 고바야시는 실화를 바탕으로 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을 포함한 그들 식민자 2세의 식민주의적 정신구조를 생생하게 그렸다. 그런데 마지막 에세이에서 그는 그 신임영어교사가 실은 대한민국 외무부장관 최규하였음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았다고 썼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조선을 "``그립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핵심적인 근거 중 하나이다.
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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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20년의 기간 동안 고려인(고려사람)은 이전처럼 고정된 장소에 계박된 상태로부터 ``탈영토화``되어 과국적 이동을 수행해 왔다. 고려인의 재이동(remigration)은 발산적 경로들과 복합적 층들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고려인의 한국으로의 이동은 그들이 갖는 역사적 뿌리와 사회적 연고가 글로벌 경제가 명령하는 이주의 일반적 흐름에 적응·변형되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다. 고려인들의 한국 체류의 양적 규모는 2007년의 방문취업제의 실시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로 약 1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특히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의 온 고려인들의 비중이 높다. 한국에서 고려인들의 커뮤니티는 상대적으로(예를 들어 중국 조선족에 비해) 비가시적이지만, 서울과 부산의 대도시들의 일부 지역에서 상권이나 집거지구 형태로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제조업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의 육체노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점에서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일반적 상태와 다르지 않다. 또한 가족 분산이 일반화되어 있고, 그 가운데 일부는 가족 재결합에 제도적·현실적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 교회는 재한 고려인들의 사회적 관계와 소통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습득하고 한국문화에 적응한 일부 고려인 엘리트들이 양언어성(bilinguality)을 활용한 과문화적 자본(transcultural capital)을 통해 전문직과 자영업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한국인과 접촉하면서 부단한 문화적 교섭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성``보다는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엄존하는 차이``를 더 많이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고려인들은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들에 동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재)축조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고려인들은 자신들 고유의 ``민족`` 정체성을 부단히 재정의하고 있지만, 이때의 민족은 그 속성 상 과국적이고 과문화적이며 남한에서의 이 용어의 지배적 의미와 상이할뿐더러 때로 경합적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한국 체류, 혹은 ``재한(한국 체류)``이란 복수적인 지리적 장소들에서의 국제적 체류의 부단한 이동의 한 국면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특별기고 : 아베 코보의 『타인의 얼굴(他人の顔)』에서 드러나는 전쟁기억과 인종문제

리처드캘리치만 ( Richard Calichma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2권 0호, 2012 pp. 217-236 ( 총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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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아베 코보의(安部公房) 주요 모티브 중 하나인 ``유령``을 재해석함으로써, 『타인의 얼굴(他人の顔)』(1964)을 전쟁기억과 인종문제의 관점에서 독해한 글이다. 아베 코보에게 있어 ``유령``은 인간의 사상이나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역사적 기억의 힘을 의미한다. ``유령``이라는 모티브의 등장을 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15년 전쟁과 관련된 아베 코보의 소설들 속에서 살펴볼 때, 그 역사적 기억이 곧 전쟁기억을 상기시킴은 명백해진다. 그의 소설에서, 유령에 대한 반복되는 언급은 역사적 망각, 즉 전쟁을 망각하려는 힘에 대항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현대일본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이 사실 전시 중의 폭력에 대한 억압된 기억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얼굴』에서, 이러한 폭력은 특히 재일조선인을 매개로 하여 일본제국주의가 야기한 인종차별의 문제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전쟁과 인종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타인의 얼굴』을 재구성함으로써, 전쟁기억과 인종문제의 흔적이 전후 내셔널 내러티브의 논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억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타인의 얼굴』은 전쟁이라는 과거 그리고 전후라는 현재의 관계성을 비판적으로 재고할 수 있는 계기적 텍스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담론 : 나의 생애와 학문, 그리고 조선 -뒤늦게 온 청년의 만년(晩年)에 대하여

니시카와나가오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2권 0호, 2012 pp. 239-255 ( 총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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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과 쟁점 : 재일조선인과 디아스포라 담론

이한정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2권 0호, 2012 pp. 259-284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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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근 2년 사이에 디아스포라 개념을 적용한 국내의 재일조선인 연구를 대상으로 디아스포라 담론이 재일조선인 연구에서 어떤 논점을 유발시키고 있는지를 살폈다. 그 결과 국민국가라는 형식을 탈피하는 매개체로서 디아스포라 개념을 활용하면서도 ``민족``이라는 자장 내에서 재일조선인을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논하는 양상을 살폈다. 디아스포라 개념을 적용한 재일조선인 연구는 국내외의 ``탈경계`` 논의를 이끄는 쪽에서 전개되고 있으나, 재일조선인의 현실은 국가와 국가의 경계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디아스포라를 적용해 탈경계를 논하는 재일조선인의 연구는 재일조선인의 위치를 탈경계 논의에 전유하고 있는 데에 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을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규명하는 연구는 아직 민족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국 관념의 편향성을 띠고 있다. 재일조선인을 범주화하여 ``그들``로 바라보는 맞은편(한국인)의 시선이 상호관계에서 배제나 억압이라는 힘의 작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재일조선인은 다면적 모습과 다양한 실상을 띠고 있다. ``그들`` 중심의 사고에서 재일조선인에 관한 연구가 전개될 때 맞은편에 서 있는 쪽의 자기 갱신이 가능한 성과가 도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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