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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4권 0호 (2013)

특집 : 1950~1960년대 테일러리즘과 “대중관리”

황병주 ( Byoung Joo Hwa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9-49 ( 총 41 pages)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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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과학적 관리법의 도입과 생산성 운동은 1960년대 이후의 ``경제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은 경제적인 것이 지배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된 상황을 의미했다. 이 과정은 곧 경제적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기도 했다. 4·19로 확인된 봉기대중을 길들이는 것이 지배질서 유지의 관건이 되는 상황이었고 그 이념형적 주체 형식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였다. 1959년 발표된 김동립의 단편소설 ?대중관리?는 테일러리즘의 도입과 확산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을 징후적으로 보여주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보여주었던 ?대중관리?는 테일러리즘이 초래한 비인간화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함으로써 이후 한국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인간적인 것에 대한 선구적 문제제기를 던졌다. 그럼에도 테일러리즘이 제기한 과학적 관리와 효율성 제고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강력한 영향 속에 생산성본부가 설립되었고 주요 대학에 경영학과가 신설되었으며 일부 국영기업 사업장에 과학적 관리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관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테일러리즘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는 곧 시장의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체의 자기관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생존의 기술, 시장에서 살아가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정치적인 것 또는 사회적인 것과 무관할 수는 없었다. 4·19 국면에서 나타난 부정한 것들에 대한 대중적 분노는 생존의 기술이 경제외적 요소와 긴밀히 연루되었고 이른바 ``공정한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강화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 열망을 경제적인 것으로 전유하고자 한 것이 산업화 전략일 것이며 그 전략의 핵심 운영 메커니즘이 과학적 관리, 생산성 운동으로 나타난 테일러리즘의 논리일 것이다. 요컨대 테일러리즘과 과학적 관리법이 작업장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면서 주체 구성 문제 또한 새로운 차원을 부여받게 되었다. 즉 경제적 합리성과 계산에 의거해 자신의 삶 전체를 조율해가야 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적 주체가 사회의 지배적 주체 형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보인다. 이에 따라 자유 경쟁이 담론과 제도, 관습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이 시스템의 운영 규칙으로서 공정성 담론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이는 곧 개체의 최적화된 관리를 통한 능력 제고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에서 굶어죽을 자유와 대면해야만 했던 주체들의 역사가 기술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특집 : 루쉰(魯迅)의 초상 -1960~1970년대 냉전문화의 중국 심상지리-

정종현 ( Jong Hyun Jeo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51-103 ( 총 53 pages)
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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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60~70년대 냉전기 한국에서의 루쉰 독서사를 재구한 것이다. 루쉰은 사회주의 ‘중공’성립 이전에 죽었음에도 마오쩌둥의 고평을 통해 ‘자유중국/중공’이라는 냉전의 사상지리(ideological geography)에서 ‘중공’에 귀속되었다. 냉전기 한국에서는 루쉰의 좌파적 형상은 유폐되고 우파적 형상이 극대화되어 소개되었다. 1960~70년대 한국의 냉전문화 속에서 루쉰은 그의 경력의 초창기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휴머니즘, 계몽주의자 나아가 반공주의자로 변형되었다. 본고에서는 교과서, 인문교양, 루쉰선집, 세계문학전집 속에서 루쉰이 배치되는 각각의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냉전기 한국에서 그려진 루쉰의 초상이 우파적 형상이 우세한 것이 었지만, 루쉰의 형상 자체가 내장하고 있었던 진보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면모를 변형시켜 저항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흐름이 존재했다는 점을 밝혔다. 이병주의 ?지리산?의 분석을 통해서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휴머니즘에 기반한 혁명가로서의 루쉰을 작중 인물에 투사함으로써 레드 콤플렉스의 임계 지점에서 한국사회의 금기였던 빨치산의 문제를 전면화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1930년대의 중국과 1960~70년대의 한국을 대위법적으로 배치하면서 한국의 루쉰이고자 했던 리영희의 사상적 모색이 이 시기 루쉰 수용의 한 극점이었음을 확인했다.

특집 : 한국 1960~1970년대 사유의 돌파구로서의 중국 문화대혁명 이해 -리영희를 중심으로-

백승욱 ( Seung Wook Baek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105-148 ( 총 44 pages)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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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중국에서 발생한 문화대혁명은 당시 한국 사회의 협소한 사상지평에 충격을 주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리영희였다. 그의 주장은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확산되었지만, 이미 1960년대 말 조선일보 외신부장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의 독특한 중국관이 형성되었다. 문화대혁명은 봉쇄된 사유의 공간을 돌파하여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조건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리 당겨진 예견된 논쟁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였다. 리영희의 문화대혁명 이해는 새로운 인간형을 중심으로 주장되었고, 이는 자리를 찾지 못한 언어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사회주의의 모순을 규명하는 중요한 함의 또한 담고 있었다. 리영희가 멈추어 선 자리를 다시 더 진전시킬 수 있는 요소 또한 리영희의 사유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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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 사회 연구에서 대중 및 대중사회론은 ‘민중’ 개념 또는 민족주의적 민중주의 담론과 달리 지금까지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나 대중사회론은 ‘국민’, ‘시민’, ‘민중’ 등으로 호명하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대중들의 사회인식과 정체성의 상상에 큰 영향을 미친 담론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1971년 2월, 7월에 한완상과 노재봉이 벌인 대중사회 논쟁은 당시 사회학자들의 사회인식과 주체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논쟁이었을 뿐 아니라, 대중사회 담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계기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논쟁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소개된 미국 중심의 현대사회론이나 소외론을 전사로 가지고 있는데, 리즈먼, 콘하우저, 갈브레이드 등 195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의 영향 아래 형성된 대중사회론을 지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고도로 경제가 발달하고 합리적으로 조직화된 풍요한 사회에서, 현대인은 역설적으로 도덕적 가치가 붕괴되는 아노미 현상에서부터 군중 속의 고독과 소외에 이르는 여러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대중사회의 이미지가 유포되었다. 이는 대중사회를 한국이 가야할 사회적 모델로 상상하는 상상의 아메리카니즘의 발로이기도 했지만, 이촌향도 현상이 극에 달한 시기에 도시인들이 소외와 도덕적 혼란 때문에 겪던 내면적 고통에 위로가 되었다. 이 시기 대중사회론은 엘리트주의의 강조 및 정치적 민주주의의 간과라는 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대중을 국가동원의 대상으로 남겨두기 위해 무지몽매한 대상으로 간주하려 했던 국가 지배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는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대중사회론은 1970년대 내내 민족주의적 민중 담론과 평행선을 달리는 반대급부로 기능하면서, 대중사회의 대중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민족문화, 전통문화를 즐기는 민족주의적 민중이 발견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특집 :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를 말하는 언어의 소재에 대하여

도미야마이치로 , 송태욱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179-209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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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감상(鑑賞)의 시대, 조선의 미국 연속영화

백문임 ( Moon Im Baek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213-264 ( 총 52 pages)
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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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1916~1925년 사이 조선에서 상영되었던 미국 연속영화(serial film)의 목록을 정리하고 그 상영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조선의 영화 관람성 (spectatorship)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의 특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그것이 조선에서 최초로 제작된 영화로서 연쇄극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그간 조선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었던 영화사의 한계를 보완할 뿐만아니라 영화담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외국 영화가 지녔던 문화적 위상을 재고 하고자 하였다. 1916년부터 조선의 상영 프로그램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미국 영화로,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1910년대 초중반 인기를 끌었던 연속영화는 <명금(The Broken Coin)>을 시작으로 10년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 면모를 복원해 보았을 때, 양적으로는 같은 시기 미국에서 생산된 연속영화의 78% 정도인 총 155편 정도가 상영되었고 이는 유럽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2.6~5배에 해당하는 규모였으며 일본에서 상영된 것과 비슷한 분량이었다. 또한 당시 단편 위주였던 미국 영화산업의 시스템 내에서 통용되던 관행, 즉 매주 1편(2권)씩 상영되었던 관행과 달리, 조선에서는 각 시기 중심 프로그램의 주종을 이루는 장편 극영화의 형식에 맞게 그 길이와 리듬이 변형되며 정착됨으로써, 연속영화 특유의 변형가능성 (transformativity)이 조선의 맥락에서 로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조선에서는 ‘시리얼 퀸(serial queen)’이 불러일으킨 반향보다는 에디 포로로 대표되는 강인한``남성 스타를 중심으로 하여 아메리칸 바디’가 인지되면서 “활동”하는 ‘활동사진’의 의미가 구성되었다. 조선에서 1919년 처음 시도된 영화 제작 형식으로서 연쇄극은 촬영과 편집에 있어서 초보적인 면모를 지녔으나, 연속영화가 제공했던 야외 로케이션, 액션, 스타시스템을 조선의 구체적인 장소들에서 조선인 배우를 통해 실험함으로써, 조선에서 영화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보여주었다. 장편 극영화와 ‘고급영화’에 대한 지식인의 관심이 담론화되기 시작하고 영화산업 역시 그것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연속영화는 주변화되지만, 대중적 장르에 대한 취향은 고급 예술에 대한 취향과 더불어 또 다른 ‘아메리카니즘’을 형성하고 또 그것을 통해 조선의 근대성을 성찰하는 기능을 하며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기획 : <아리랑>과 할리우드

김상민 ( Sang Min K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265-300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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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아리랑>이 조선영화사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재고했다. <아리랑>(나운규 감독, 1926)은 조선/한국영화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쟁적인 작품이다. <아리랑>은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음에도, 이 영화의 민족적 성격을 두고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논쟁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이분법적 틀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러한 틀 내부에서, <아리랑>은 민족영화로 환원될 수 있는가 또는 없는가의 문제로서만 사유되고, <아리랑>이 조선영화사에 출현하게 된 배경이나 이 영화가 초래한 변화는 쉽게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리랑>이 조선영화사에서 가지는 변별적 특징의 하나로 할리우드 영화의 수용 문제를 적극 검토했다. 식민지 조선영화사에서 <아리랑>과 관련한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은 주로 활극을 중심으로 한 연속영화를 중심으로 파악되어 왔다. 그러나 당시의 영화담론을 보면, 할리우드 영화는 단순히 대중영화로만 수용되지는 않았다. <아리랑>이 참조했다고 여겨지는 영화들의 상당수는 일본영화나 할리우드의 연속 영화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운규가 제작 모델로 밝힌 영화들은 할리우드 장편영화들로, 이 영화들은 1920년대 중반의 담론 상에서 ‘고급’영화로 언급되며 조선에서의 영화매체의 위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아리랑>역시 할리우드 장편영화를 학습함으로써 조선영화에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장편 할리우드 영화가 제공한 새로운 시각적 언어는 동시대 조선을 담론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물론 변사가 개입하는 조선의 특수한 상영방식에 대한 의존은 여전했지만, 영화 자체가 영화의 모델이 됨으로써 영화의 이미지는 고전소설의 세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동시대 조선을 시각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할리우드 장편 영화가 전해준 시각적 내레이션이 신소설과 강담(변사)이 가진 서사적 명징성을 압도한 뒤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기획 : 김동인 문학과 히스테리, 성적 상상

이수형 ( Soo Hyung Y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303-331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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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의미의 성은 선정적인 관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인구와 인체를 조절하고 규율하는 권력의 대상이며, 또한 개인의 주관적인 정체성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요소이기도 하다. 권력과 의학적 관점에서 생식을 목적으로 한 경우 외에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고 정신병적인 것으로 진단된 데에는 19세기 말 널리 유포되었던 퇴화론의 영향이 크다. 당시 퇴화는 히스테리와 쉽게 결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두 병리적 현상이 모두 근대 문명이 인간의 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경학적 관점은 18~19세기에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으로 형성되었으며, 민감한 신경은 풍부한 감정의 원천으로 긍정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경과민에 따른 감정 과잉은 상상한 것을 그대로 믿는 암시, 나아가 히스테리를 낳는 원인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성에 있어서도 감정과 상상은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성은 단지 본능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상상의 문제이며, 따라서 성행위를 통한 본능의 만족이 아니라 성적 상상 안에서 형성된 감정의 만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한국문학사에서 성에 대해서 김동인만큼 일찍이 그리고 깊이 다룬 작가는 드물다. 상상 속에서 감정을 즐기고 탐닉하는 장면이 김동인 소설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지만, 성과 관련된 심리를 깊이 파고들어 근대의 전형적인 성적 상상을 거의 완성된 상태로 제시한 것은 김동인의 독보적인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성적 상상은, 소비에 동반되는 상상과 유사한 구조를 통해 근대적 욕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동인 문학은 단순히 성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성을 통해 당시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적 욕망의 구조를 선구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획 : 근대 과학, 마술, 어린이 문학 -기술(奇術)과 기술(技術) 사이-

한민주 ( Min Ju Ha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333-371 ( 총 39 pages)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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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어린이 담론이 대중적인 과학 이미지 산출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탐구하기 위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발행한 ?어린이?(1923~1932), ?아희생활?(1926~1944), ?소년?(1937~1940)과 당시의 언론 매체인 신문 기사의 ``어린이란’에 초점을 맞춰, 1920~1940년 근대 대중 과학 문화 속에 나타난 아동 과학의 대중화 방식과 그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근대과학에서 ``마술’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살폈다.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스승이 되라고, 또 여러분의 가장 정다운 동무가 되라”고 기획된 어린이 잡지의 취지는 아동과학교육의 방법이자 기능이 되기도 한다. 과학은 대중 소비를 위해 이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포장되었다. 과학자나 지도자들은 어린이 대중 독자를 위해 너무 어렵게 된 언어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이 논문은 근대 아동과학교육의 대중화 방식을 과학지식, 과학서사, 과학유희(오락)의 차원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근대 대중매체의 분석과 식민지 정책의 검토를 통해 과학 동화 및 마술쇼의 등장과 무속의 통제 등이 가져온 영향을 고찰했다. 이 논문은 근대 과학, 마술, 어린이 문학이 ‘기이함’에서 ‘과학기술’로 전이되는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근대 ‘과학’과 ‘어린이’라는 두계기가 조우하는 과정 속에서 식민지 근대의 주체 구성의 일단이 놓여있다는 사실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과학(지식)으로 탈색되는 과정의 면면 또한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요컨대 근대 어린이 과학교육은 어린이의 애니미즘적 믿음을 과학에 대한 믿음으로 전이시키고 집단의 이념(민족/제국)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린이 과학의 교육프로그램 방법으로 마술적 유희를 활용했다.

기획 : 비천한 육체들은 어떻게 응수“應酬”하는가

김철 ( Chul K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4권 0호, 2013 pp. 373-416 ( 총 44 pages)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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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과학과 예술은 식민지의 주민들을 원시화(原始化)-자연화함으로써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어두운 충동들을 타자화하고 억압한다. 이 억압된 충동은 제국의 과학과 예술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이며 열정의 근원이다. 요컨대, 피식민자의 비천한 육체는 식민자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식민자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과의 직접적 대면으로부터 발생하는 공포와 혐오를 매혹과 열정으로 바꿀 수 있게 해 주는 환상적인 통로가 된다. 제국 일본의 근대적 학지(學知), 특히 그 중에서도 체질인류학은 식민지 주민들의 육체를 카메라의 렌즈, 인체측정기, 해부도구 등을 통해 응시하고, 측량하고, 파헤치고, 절단한다. 그것을 통해 피식민자의 육체는 비천하고, 추악하고, 역겹고, 위험한 것이 되고, 무엇보다도, 공공연하게 가시화(可視化) 된다. 근대 자연주의 및 리얼리즘 예술은 근대적 생-정치(bio-politics)의 충실한 동반자로서 이 비천한 육체들의 발견과 함께 탄생했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의 근대문학은 이 비천한 육체들의 형상으로 흘러 넘친다. 식민지의 남성-작가 엘리트들은 제국의 체질인류학적 지식이 제공한 시선을 통해 하층민, 범죄자(특히 여성범죄자), 불구자, 광인(狂人) 등의 비천한 육체를 형상화 하고, 탈식민지의 한국문학사는 이 육체의 형상화를 민족주의 담론과 결부시킴으로써 비천한 것들의 심미화에 고정적인 해석을 부여했다. 그런데 이 비천한 육체들은 다만 보여지기만 하는 것인가? 카메라의 렌즈 너머, 해부학자의 메스(scalpel) 아래 침묵하고 있는 이 육체들은 어떻게 응수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응시하고, 측량하고, 파헤치고, 절단하는 카메라의 렌즈, 해부학자의 메스를 되돌려 주는가? 궁극적으로 그들은 어떻게 보여지는 자로부터 보여주는 자로, 억압의 대상으로부터 저항의 주체로 떠오르는가? 이 논문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식민주이적 폭력에 대해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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