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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5권 0호 (2013)

기획

백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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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발성영화로의 전환기에 조선영화계가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할리우드의 문화적 영향력을 밝히고, 조선영화의 ‘로컬리티’ 문제를 ‘내셔널 시네마``의 관점에서 읽어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1930년대 중반, 조선 영화계는 조선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적 자질을 발견하는데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고, 보편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미학적 자질을 ‘로컬리티’라는 개념으로 포착 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로컬리티’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감각했던 동시대의 ‘리듬’과 ‘템포’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된 문제였다. 기존의 영화 연구에서 조선영화 의 ‘로컬리티’ 문제는 ‘제국 일본의 조선영화’라는 틀속에 주로 논의되어 왔고, 그 결과 제국 일본의 정책적 자장 안으로 수렴되는 논리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조선영화의 ‘로컬리티’ 담론은 ‘조선적인 것’을 전시하는 것과 같은 ‘내용’의 문제라기보다 영화적 연출법과 같은 ‘형식’의 문제였고, 이는 상호교통 가능한 국제영화(inter-national cinema)라는 장(場)과 연동된 개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광제가 연출한 <군용열차>(1938)는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본고의 문제의식이다. ‘최초의 친일영화’로 규정된 <군용열차>는 조선 영화계가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작품이자 형식과 연출의 차원에서 조선영화의 ‘로컬리티’를 실현하려는 시도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군용열차>라는 작품이 그 내용에 있어서 ‘선전영화’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해석 가능성 또한 열려 있기에, 새로운 독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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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영화(일본영화와 조선영화)의 일정한 상영 비율을 보장한 ‘활동사진영화취체 규칙’(1934)은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제국 일본을 통틀어 최초의 쿼터제였다.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쿼터제를 시행한 배경을 1930년대 전반기 일본 영화 산업의 시장 확대, 식민지 조선의 영화 관람 문화의 특수성과 조선총독부의 동화주의 정책, 그리고 문화보호주의를 강조한 제국의 문화 통제 기획과 안티아메리카니즘의 전유 등 다층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에서의 쿼터제 실시가 조선의 관람 문화를 동화주의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식민 당국의 기획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할리우드의 영향력을 축출하고 명실상부한 ‘영화 제국’으로 도약하고자 했던 일본의 기획과 연관되어 있으며, 중일전쟁으로 본격화되는 미국과 일본사이 필름 전쟁의 전초전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과학과 반항 -염상섭의 『사랑과 죄』 다시 읽기-

황종연 ( Jong Yon Hwa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5권 0호, 2013 pp. 87-133 ( 총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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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실의 청개구리」 이후 소설에서 염상섭은 계몽되고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주체성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은 신의 대신 과학을 신봉하고, 산골 대신 도시에 거주하고, 유랑 대신 반항을 추구하는 인간 군상을 그리는 가운데 나왔다. 그 탁월한 예가 1927년과 1928년 사이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사랑과 죄』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탐구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소설은 과학의 힘에 대한 계몽사상적 믿음과 함께 자연주의적 인간관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이야기에 핵심적인 것은 염상섭이 주로 슈티르너 읽기로부터 획득한 것으로 보이는 개인주의적 자아 이해이다. 이 소설을 전례 없는 사상소설 작품으로 만들어준 중요한 장면의 하나에서 저자는 아나키즘과 볼세비즘의 대립을 모르던 시대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정치적 연대를 노스탤지어풍으로 상기한다. 이 소설의 젊은 인텔리겐차는 투르게네프의 바자로프를 개작한 것으로 읽힐 법하다. 그들은 조선의 식민지화에 책임 있는 아버지들과 대립하며 반항 또는 혁명을 꿈꾸고 있다. 조선에서 청년 주체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한국식 노블은 『사랑과 죄』에서 완성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안티테제로서의 "반둥정신(Bandung Spirit)"과 한국의 아시아 상상(1955~1965)

장세진 ( Sei Jin Cha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5권 0호, 2013 pp. 135-169 ( 총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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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체제에서 아시아라는 개념을 논하고자 한다면, 아시아·아프리카 회 의(반둥회의)와 그것이 한국 사회에 야기한 역사적 경험을 충분히 반추할 필요가 있다. 1차 개최인 1955년부터 2차 회의가 좌절되는 1965년까지 이 회의를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은 한국의 아시아 상상의 내용과 구조 자체를 구축하는, 일종의 `누 빔점(point de capiton)`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시아라는 지역주의적 (regional) 상상은 그 자체로 고립되고 폐쇄적인 논의가 아니라, 위로는 글로벌한 차원의 냉전 서사와 아래로는 현지(local)의 내셔널리즘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유동적인 담론 상의 구조물이었다. 먼저 글로벌한 차원에서 이 글이 주목한 것은 이 회의를 전후하여 아시아 지역내 냉전 구도가 미·소 대립에서 미·중 대립으로 점점 옮겨 갔다는 점이다. 이 글 에서는 특히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와 더불어 부상한 중국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 보았다. 한편, 로컬 차원에서 아시아 담론은 국내 내셔널리즘과도 긴밀히 결부되어 있었다. 아시아를 어떻게 정의하고 아시아의 현 위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국내 민족주의가 감당해야 할 과제 또한 다르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이 글에서 제기하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950년대 중반 반둥회의라는 국제적·지역적 사건을 통해 한국의 아시아 담론은 어떤 새로운 지형속에 놓이게 되었을까? 아시아라는 지역 단위의 상상은 국내 내셔널리즘의 조류와 결합되면서 어떤 특성들을 갖게 되었을까? 내셔널리즘의 협애한 울타리를 넘어 보다 큰 연대의 흐름과 조우할 수 있었을까? 만약 불가능했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고,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반추할 수 있는 역사의 지혜와 통찰은 무엇 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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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수기를 식민지 시대에 쓰인 농촌을 무대로하는 소설들-이광수의 『흙』(1933)과 심훈의 『상록수』(1935), 그리고 이기영의 『고향』(1934) 및 『처녀지』(1944)를 통해 검토해 보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농촌마을 구성원이 마음의 총화로써 공동체적 쇄신을 이루어 개발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면서 자력갱생을 그 방침으로 내세웠다. 『흙』과 같은 소설들 역시 자력갱생을 농촌 쇄신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과연 자력갱생은 농촌을 잘사는 공동체로 지켜낼 것이었던가? 식민지 시대에서 농촌의 자력갱생은 민족의 대지를 구획하는 상상을 통해 불가피하고 또 바람직한 길로 여겨졌다. 살여울을 잘사는 공동체로 만들려한 허숭(_흙_)의 노력은 이광수가 언급한 민족개조의 기획을 상상적으로 개진한 의미를 갖지만, ``현 사회조직``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농촌의 쇄신을 도모한 자력갱생의 꿈은 애당초 국가의 기획안에 있었다. 농촌 공동체가 총동원을 위한 국가기구의 공공성에로 포섭되게 마련이었다면, 허숭과 같은 인물은 국가의 사업을 대행한 형상이 되고 만다. 이기영의 『처녀지』(1944) 역시 특별한 대안적 공간으로서 농업 공동체 건설의 전망을 제시했지만, 주인공 남표가 도모하는 개척은 만주 오지의 조선인 마을을 제국에 편입시키는 방법이었다. 농촌 개척을 위한 남표의 지극한 성심이 제국에의 봉공(奉公)으로 나아간 이유는 공동체적 쇄신으로 획정되는 공간이 국가에 의해 재허(裁許)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국가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결과로 보인다. 즉 그가 이룩하려 한 공동체는 국가의 형식에 종속된 것이어서 그의 단호하면서도 심각한 형상은 통치의 절대성을 구현하고 있었다. 농촌의 공동체적 쇄신과 국가의 쇄신을 포함되는 부분과 포함하는 전체의 관계로 놓는 구도는 농촌이 자력갱생으로 국가적 총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한 새마을운동에서 그대로 재연되었다. 새마을운동 수기는 이니셔티브를 행사하는 특별한 농민인 지도자의 관점을 관철시킴으로써 공동체적 쇄신을 통해 농민의 지위를 높이는 국가적 ``멤버십 획득``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새마을의 새 농민이 낙후한 피해 대중의 위치를 스스로 벗어나 새 국민으로 정위되어야 했다면, 이 이야기에 의빙된 농민의 욕망은 농촌에 머물수 없었다. 더구나 농촌의 개발이 산업 화라는 국가적 개발의 방향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자력갱생은 농촌을 잘 사는 공동체로 지켜 내는 방법일리 만무했다.

북한소설의 "과로" 양상과 전쟁의 수사 -"수령" 과 긍정인물의 성격 형상을 중심으로-

최강미 ( Gang Mi Cho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5권 0호, 2013 pp. 213-249 ( 총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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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북한소설이 드러내는 여러 측면의 과잉성에 주목하여 북한소설 서사의 성격을 탐색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인물 형상화 문제와의 관련성하에 전체 작업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생산현장을 다룬 소설에서 헌신을 표현하는 주요 이미지인 노동에 대한 태도를 ``과로``라는 용어로 포괄하고 수령이 표면화 된 정도가 대조적인 두 소설을 대상으로 과로의 양상을 비교 분석하고 이를 해석해 보고자 했다. 과로는 1960년대를 전후한 문학비평에서도 그 조짐이 발견된다. 특히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으로 대표되는 인민들의 극한적인 생존 경험과 새것과 낡은 것의 투쟁이라는 역사 인식, 그리고 전형적 환경에 대한 논의 등은 정전 이후에도 서사가 요구하는 전쟁 상황의 연장과 과로로 형상화되는 희생성의 관계가 어떤 구도 위에 놓이는지 보여 준다. 대표적인 수령형상문학 계열 소설인 「큰 심장」에서 수령의 과로는 종종 직접 서술로 제시되어 모호함과 오해를 최소화하며 대부분 타인들의 흠모의 정서로부터 포착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수령은 과로에도 뚜렷한 지향을 지닌다. 따라서 그의 노동은 과도하지만 실수나 낭비가 없다. 수령의 목적은 단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인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양하는 것이다. 수령형상문학 계열의 긍정인물은 긍정적인 과로의 자질을 갖고 있지만 수령의 올바른 영도와 접촉한 후에야 비로소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성을 발휘하게 된다. 그의 과로는 수령에 비해 간접적 서술이나 묘사를 통해 표현된다. 서사 내에 수령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우뢰소리」의 긍정인물은 과로의 일차적인 목표가 문제 해결에 있다는 점에서 수령형상문학 계열 소설의 긍정인물과 같다. 그러나 그 과로의 원천인 전쟁 기억을 환기시켜 주는 매개로서의 수령이라는 권위는 없다. 따라서 전쟁 경험이라는 신성한 원천 자체가 서사 전면에 등장한다. 이 세유형의 인물들에는 모두 과도한 노동 태도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를 추동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전쟁 경험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면에서 공통적이다. 현실에서 전쟁의 수사는 전쟁 상황을 비전시에도 연장하여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동원을 일상화하는데 기여한다. 북한 서사 역시 전쟁 수사의 일반성을 반영한다. 동시에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제로 빈번히 과로가 등장한다는 특수성을 갖는다. 즉 북 한소설에서 긍정인물의 희생정신을 찬양하기 위한 형상화 도구로 빈번히 등장하는 과로의 패턴은, ``전시의 노동 강도를 요구하는 일상``의 반영이며 이는 북한의 소설 서사가 지닌 여러 측면의 과잉성중 하나로서, 본질적으로 노동 강도가 높을 수 없는 사회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한 현실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일종의 균형 전략일 수 있다.

노동의 로고스피어 -산업-금융자본주의 회랑의 삶-언어에 대하여-

김예림 ( Ye Rim K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5권 0호, 2013 pp. 251-286 ( 총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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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쓰여진 노동자의 자기 기술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즉 산업사회의 생산-노동 체계로부터 포스트산업사회의 생산-노동 체계로의 이행 과정에서 노동자 글쓰기가 어떤 식으로 현실의 국면적 차이나 유사성을 반영하면서 생산되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1970년대~1980년 대 노동자 글쓰기의 전형적이고 결정적인 성격은 공장 노동자의 자기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다. 1970~1980년대 노동자 글쓰기(노동수기)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석정남과 유동우의 글이다. 두 텍스트는 1970~1980년대 노동자의 ‘성숙’과 ‘성장’에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비해 최근에 나온 젊은 노동 주체의 자기 기술은 주로 자신의 여러가지 노동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젊은 노동주체의 자기 기술은 저임금 임시-일용 노동 박물지의 형태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서사 는 계속되는 ‘이동’의 서사이며 희망 없는 ‘버팀’과 ‘지탱’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관통하는 노동자 글쓰기는 대의될 수 없는 존재의 고통과 자기 구성의 능력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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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한국의 사회구조 변동과 문화 형성과정은 대체로 ``단절``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왔다. ``암흑기``와 ``해방기``라는 명명법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1940년대는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제국-식민지 체제기와 탈식민-냉전 체제기로 양분 되었다. 하지만, 식민지 시기 정치적, 제도적, 문화적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 와 문화 형성, 개인의 정체성을 재구축하는데 영향을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방 이후 과거 식민지 시기의 체험과 기억은 극복/지양되거나 굴절/변형되어 한국 사회와 문화 형성의 핵심적인 동력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연속``의 관점에서 1940년대를 동일한 지평 위에 놓고 바라보는 것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와 문화 형성 과정에 있어서의 중층적이고 혼종적인 현상을 구명하기 위해서 필수 적이다. 하지만 이질적이고 분열증적인 개인들의 정체성 구축 과정에 대한 세밀한 탐구나,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적 조건들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엄밀한 접근이 이루 어졌을 때에만, ``연속``과 ``단절``의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1940년대 한국 사회와 문화, 문학 이해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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