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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6권 0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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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일본 니가타현 수력발전소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조선인 노동자 ‘학살사건’은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 사이에서 진행된 본원적 축적의 단적인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토지에서 분리된 조선의 소작인들은 현해탄을 건너면서 노동자로 변형된다. ‘학살사건’은 제국 일본의 전력 네트워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둘러싼 공방 속에서 발단하여, 전기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그 내용이 유통·확산되었다. 그러면서 식민지에 대한 제국의 지배 및 노동에 대한 자본의 포섭 사이에서 발생한 그러한 공방을 역전시킬 정치적 흐름과 긴장을 창출하였다. 제국에서 전력/전기통신이라는 전기네트워크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반란과 봉기의 잠재력이 형성되고 유동하는 생명과 삶의 연결망이었다. 전력망과 전기통신망의 결합을 통해 구축된 제국의 네트워크는 이중나선구조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하나의 회로는 민족(인종), 계급, 젠더 등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생산하며 신체들에 분할선을 긋고 위계화를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형성된 주체(성)들은 임금노동과 강제노동의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으로 포섭되어 죽은 노동의 네트워크를 구축해갔다. 또 다른 회로는 주어진 정체성에서 출발하되 그 정체성에 고립되거나 한정되지 않고 여타의 진동하는 주체들과 접속함으로써 끊임없이 생성변화하였다. 그리하여 제국에 맞서는 새로운 주체성을 창출하며 산 노동의 네트워크를 구성해나갔다. 요컨대 제국 일본은 노동의 제국이었다. 죽은 노동의 제국이었고, 산 노동의 (대항)제국이었다. 염상섭은 ‘학살사건’을 식민지와 제국 사이에서 발생한 본원적 축적의 과정으로 분석하며, 그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노동의 방략을 제시하였다. 궁극적으로 그는 노동이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율적인 인간의 활동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는 노동자의 주체성에 주목하였고, 이는 노동의 기술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의 현실적 조건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하여 염상섭은 식민지와 제국이라는 조건 속에 놓인,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노동자 간의 연대를 항상 고려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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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0년대 중국의 혁명문학 논쟁에서 주체 논의에 초점을 맞춰 살펴봄으로써 중국에서 무산계급과 그 문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성되고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위해 본고는 창조사에서 이 개념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검토함과 동시에 이와는 다른 논의를 펼친 태양사와 루쉰 등의 입장을 펼쳐 맞대어 살펴보았다. 무산계급문학론이 구성되는 과정과 주체로서 무산계급과 지식계급이 어떻게 호출되는지 그 과정을 주요하게 검토했다. 곧 1920년대 후반 상하이에서 진행된 혁명문학 논쟁을 재조명하면서 혁명문학 논쟁의 상이한 면모를 제시하고 그 현실적인 의미를 따져봤다. 기존의 논의는 무산계급 작가가 없는 무산계급문학론을 틈 없는 매끈한 논리로 재봉하여 이 비약을 봉합했다고 한다면 이 논문에서는 현실과 담론의 괴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이를 다르게 보는 논의는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무산계급문학론의 전개 과정을 분산적으로 다뤄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창조사의 논의와는 결절적인 태양사의 논의를 부상시켰으며 혁명문학파 외부의 작가인 루쉰 등의 논의들을 부분적으로 대조해보며 창조사가 주도한 혁명문학론-무산계급문학론의 특징을 살펴봤다. 논쟁의 단선된 면을 연관 짓고 다시 펼쳐 내는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혁명문학 논쟁을 주도한 창조사 논의의 문제성을 드러내고 혁명문학 논쟁이 포함하고 있는 주체성의 문제를 재고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중국에서 무산계급 작가의 존재를 이론적,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난점이었다. 중국의 혁명문학론과 무산계급문학론에서 무산계급 작가의 신체는 분명하게 포착되지 않는다. 문학계에서 텅 빈 무산계급작가의 신체를 대체하는 주체로 소자산계급 출신인 지식계급이 불려온다. 이렇듯 혁명문학론과 무산계급문학이라는 목표는 지식계급을 주체로 소환함으로써 달성된다. 중국의 혁명문학 논쟁은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여느 지역보다 그 도약과 소환의 흔적을 진하게 남기며 무산계급문학론을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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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신종교 단체인 백백교와 백백교가 저지른 희대의 살인사건은 그와 관련된 다양한 텍스트를 산출했다. 그것은 사법 당국의 수사 기록을 비롯하여, 신문·잡지의 기사·논설, 그리고 소설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이 모두 백백교의 실체와 백백교 사건의 전말을 내러티브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백백교와 백백교 사건의 내러티브들이다. 특히 이 텍스트 모두 서술 주체들마다 서로 다른 의도, 욕망, 신념을 투사하여, 백백교와 백백교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쓰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래서 이 텍스트들은 백백교와 백백교 사건을 둘러싼 내러티브적 실천이기도 하다. 그 실천들을 통해 서술 주체들은 백백교와 백백교 사건을 정치적·사회적으로 단죄하기도 하고, 이용(소비)하기도 했으며, 제국과 그 이데올로기의 위기, 식민지 조선 사회에 대한 오인(誤認)을 깨닫기도 했다. 또한 내러티브적 실천 과정에서 과학(계몽)의 권위와 문학의 소명은 동요하기도 했다. 요컨대 백백교·백백교 사건과 관련한 내러티브들은, 사실 혹은 진실을 구성하는 과정, 인식론적 도식, 그 결과로서 내러티브의 본질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또한 그것이 한 사회에서 서로 다른 입장의 서술 주체들 사이에서 매우 다면적인 의사소통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백백교·백백교 사건을 둘러싼 내러티브적 실천들은, 그 내러티브들을 둘러싼 다층적 맥락(정치, 사회, 역사 등)을 드러내는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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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통계’는 그 자체로 식민지를 재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국이 식민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드러내 줄 수 있다. 이 글은 식민지 통계 자체가 재현하고 있는 식민지상과 그 상에 대한 피식민자들의 전유 방식을 검토함으로써 ‘식민지 통계’에 대한 해석적 접근을 시도해 보려 한다. 특히 일제 말기 전시동원체제부터 해방 후 미군정기에서 출현한 ‘유령인구’라는, 셀 수도 없고 세지 않을 수도 없는 형용모순의 현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유령인구’라는 통계의 모순성을 드러내는 키워드를 통해 과학적 사고의 하나로 이해되어 온 통계가 지니는 문제점과 정치성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근대 인구통계학은 맬서스의 인구론과 조응하면서 조선의 종말을 선언하는 파국의 상상력에 닿아 있었다. 따라서 맬서스의 정책적 전유는 인구의 이동뿐만 아니라 식량 위기감을 조성하는 데 적극 활용되었다. 식량 위기만큼 국민을 대통합시키기 좋은 방책은 없을 것이다. ‘쌀’ 문제가 가장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는 ‘미곡통제정책’이 실시되었던 해방 전후의 전시체제였다. 전시체제는 ‘식량안보’의 문제가 가장 중요해지는 시기이다. 따라서 해방전후는 식량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자주 인구조사와 통계가 이루어졌고, ‘셀 수 있는 것’과 ‘셀 수 없는 것’의 구분이 첨예화되었다. 이 글은 해방 전후 인구조사와 통치 과정 속에서 ‘유령인구’가 발생하고 계승되는 도정을 따라가며 근대 식민지 통계와 문학의 정치성을 고찰해 보려 한다.

일반논문 : 염상섭 초기 문학의 재인식-「제야(除夜)」 연구-

김영민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6권 0호, 2014 pp. 155-18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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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여성 인식 혹은 여성주의에 대한 태도가 산문과 소설에서 서로 차이가 난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그가 산문의 경우와 달리 소설에서는 일관되게 가부장적이고 여성에 대한 혐오주의적 태도를 보였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제야」의 직접적인 창작의 동인은 1921년 매일신보 에 번역 연재된 각본 「인형의 가」에 있다. 「인형의 가」의 줄거리를 염두에 두고 나혜석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면, 이를 바탕으로 염상섭은 한 편의 소설을 구상했던 것이다. 「제야」의 이야기 전개 구조는 「인형의 가」의 이야기 전개 구조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인형의 가」와 「제야」는 모두 여주인공이 남편에게 용서받는 ‘기적’을 기대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정작 그 용서가 선언되었을 때, 여주인공들은 남편의 용서를 수용하는 일을 거부하고 각자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염상섭의 초기 산문에 나타난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여성 문제였고, 「제야」는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접근한 염상섭 최초의 소설이다. 초기 산문의 최대 관심사를 작품화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제야」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제야」에 반영된 염상섭의 자연주의적 문학관 역시 지금까지 주목 받던 것 이상의 깊이가 있다. 작품의 결말에서 정인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최가의 피가 전해지는 일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 염상섭이 여주인공 정인의 고통스러운 삶의 요인을 근본적으로는 유전과 환경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개벽 연재본에는 없는 마지막 한 문장이 단행본에 추가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제야」의 결말은 역설적으로 염상섭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의 다면성에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염상섭은 야차 같은 삶을 살아온 인간에게도 보살의 마음이 숨겨져 있음을 작품의 결말에서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제야」는 정인이 죽음을 앞두고 남편에게 써 보내는 서간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염상섭이 「제야」에서 선택한 서간체 형식은, 작가와 등장인물 사이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여주인공 정인이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서술 형식이었다. 「암야」에서 촉발된 혼인 제도에 대한 심리적 갈등과, 「표본실의 청개고리」에서 시도된 인간의 행태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해가 있었기에 「제야」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염상섭의 문학 세계에서 「제야」가 차지하는 위상은 단순히 「만세전」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초기 산문의 최대 관심사를 작품화하고 초기 삼부작에 투영된 인생관을 집약해 표현한 작품으로서의 독자적 가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논문 : 한국문학의 금욕주의자들 -자율성을 둘러싼 사랑과 자본의 경쟁-

강지윤 ( Ji Yun Ka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6권 0호, 2014 pp. 189-221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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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위한 욕망의 개방은 개인의 자율성을 드러내는 가장 핵심적인 서사적 기제였다. 그러나 관계의 개방성이란 사랑에 내포된 오랜 핵심적 관점, 독점적이고도 영구적인 합일이라는 관점과 충돌한다. 매혹의 이 끌림에 스스로를 내맡긴다는 것은 주체를 대체 가능한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로운 개인의 관념을 촉발하고 있던 또 하나의 힘, 자본의 논리-모든 것의 교환가능성-는 관계의 개방에 대체가능성이라는 위협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 ‘개인’의 법적 근거가 배타적으로 재산권의 행사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관념을 둘러싸고 사랑의 담론은 ‘자본’이라는 요소를 자신의 경쟁 상대로 삼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가능성의 과잉이라는 서사적 난국에 처해 식민지의 강력한 민족주의는 개인들의 사랑의 욕망과 배신의 소용돌이를 해결하는 존재로도 이용되었다. 이러한 서사적 해결 방식은 한국 근대문학사에 영향력 있는 문법을 제공했다. 즉 대주체로의 귀속에 의해 대체 가능성의 무한 연쇄로 이어질 수 있는 서사의 불안정성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이광수의 흙,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상록수등 ‘브나로드’ 운동이 자극한 한국형 귀향소설들은 이러한 문법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시도들은 자율적 개인의 의미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식민지의 ‘민족’이라는 상위주체는 ‘결여’의 상태로 언제나 ‘필요’를 요구했다. 귀향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발적으로 ‘필요의 대상’이 됨으로써 ‘개인적 욕망’이라는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한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원인은 언제나 대주체의 필요로부터 제공받는, 자율적 존재의 역설적 모습을 재현한다. 주인공들의 귀향 그리고 그들의 연인들의 귀향의 성격은 모두 ‘개인적 욕망으로부터 면역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은 주체와 사랑의 서사로부터 자본의 문제를 지우려는 강박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주인공의 귀향이 배경으로 하는 도시와 농촌의 대립 구도는 ‘불필요한’ 자본주의적 욕망의 잉여를 오로지 도시에 거주(居住)하게 하려는 분리의 욕망처럼 보인다. 특히 이 소설들이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결론적 관점인 ‘동지적 사랑’이라는 관념은 주인공들의 욕망이 ‘무엇을 원하는가’라기보다 ‘무엇을 원치 않는가’라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궁극적으로 드러낸다. 마침내 주인공들은 육체와 정신의 온전한 합일이라는 사랑의 서사가 지향하는 소망 상태에 도달하지만 이 합일의 과정은 순수하고 건강한 농촌에서 연인을 만나는 형식이 아니라 도시로부터 이주해 온 연인들이 그들의 육체에 남아 있는 ‘물신’의 흔적을 고통스럽게 제거함으로써만 얻어지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대주체로의 귀속에 타자를 분리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계기인, 자본이라는 계기를 없앰으로써 결국 주체는 동일자와의 사랑에 도달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적 금욕주의자들의 여정은 이렇게 관계의 개방성이 관계의 동일성으로 귀착된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전히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의 위대함에 비례해 한국 근대문학에 타자성의 자리가 좁아져 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일반논문 : 혁명과 기념 -4,19혁명 기념시 연구-

김나현 ( Na Hyun K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6권 0호, 2014 pp. 223-247 ( 총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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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에는 어린 학생들부터 기성 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필자들이 폭발적인 양의 4·19혁명 기념시를 발표했다. 본고의 목적은 4·19혁명 직후 발표된 여러 기념시를 독해하여 혁명이 시적으로 기념되는 최초의 방식을 살피는 데에 있다. 우선 여러 기념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써야 한다’는 의무감의 정체를 살피고, 필자들이 ‘시’라는 형식을 선택하게 된 전략적 이유를 분석했다. 특히 그들이 운용한 의인법과 돈호법에 주목하여, 혁명의 기억을 발화할 수 있는 인물형상 주조 과정을 살폈다. 혁명의 주역이 된 이 ‘무명 우상’은 대개 어리고 순수한 학생 형상으로 나타났다. 기념시 쓰기와 읽기를 통한 우상화 과정은 4·19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한 단면을 보여 준다.

동향과 쟁점 : "제국의 위안부"를 읽는 법

윤해동 ( Yun Hae Do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6권 0호, 2014 pp. 251-277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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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라는 저작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해 전략의 일환으로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탈구축할 필요를 역설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내세운 새로운 개념이 ‘제국의 위안부’라는 것이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단순히 ‘적의 여자’와는 다른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조선인 위안부는 ‘빈곤한 제국신민’ 출신이었으며, 일방적 강제동원의 대상이 아니었다. 요컨대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는 동지적 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제국의 위안부가 전쟁의 지옥을 견디는 힘은 그들 사이의 연민과 공감에서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내세우는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와 성노예 그리고 ‘강간적 매춘’ 혹은 ‘매춘적 강간’ 사이를 동요하고 있던 존재였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인 위안부를 동원한 주체는 조선인 업자 혹은 포주였으며, 그런 점에서 위안부의 이용이 완전하게 제도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위안부들은 조선인 민간업자들에 의해 ‘강제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 국가의 책임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상징적이고 도의적인 차원의 것에 한정되는 것이었다. 저자가 내세우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수사는 대단히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에 대한 감수성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다. 일본 우익이 자행하고 있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 곧 반인도적범죄행위의 해결 방안을 위안부 문제에서 구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 예리한 감수성을 확보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될 때,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울리고 있는 요란한 경고음에 대해서도 합당한 대응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위안부문제와 현실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를 연결시키는 인식론의 비약이 아니라 그 연계 고리를 차단하는 ‘인식론적 단절’ 행위가 현재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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