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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9권 0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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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라는 법적 개념이 포괄하지 못 하는 ‘성거래’ 양상을 어떻게 문제화할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이 글은 자본주의에서의 젠더화된 성거래에 대한 설명이 인격화된 남녀 2자적 관계의 틀을 넘어 자본의 운동과 섹슈얼리티 거래,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성 간 관계를 보다 정교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고 장자연 사건’을 경유하여 미디어 경제에서의 자본의 흐름, 섹슈얼리티 거래, 젠더의 구성을 탐문하고자 했다.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이 모든 것이 자본 재생산의 순환 속으로 직접 통합되는 방식으로의 경제 구성 변화라는 거시적 흐름에서 여성의 젊음, 외모, 섹슈얼리티가 모두 거래 가능한 상품이자 노동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미디어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자본 재생산의 순환 속으로 통합된 양상과 인간 접촉과 상호 작용이라는 정동적 차원을 포함하는 ‘미디어 정동 경제’의 장에서 여자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들의 정서와 섹슈얼리티가 거래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현재 한국의 미디어 정동 경제에서 연예인은 젠더화된 ‘이미지 상품’일 것이 요구된다. 이에 진입하기 위해 여자 지망생과 신인들은 광범위하고 세분화된 외모관리를 하게 되는데 이는 다시금 ‘여자 되기’ 즉 ‘재여성화 전략’에 따른 비용을 요구한다. 바로 이윤으로 직결되지도 않으며, 그 자체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젠더화된 노동 시장에서 이 비용을 충당하는 일을 하기도 어려운 이 여성들은 부모라는 스폰서가 없는 경우, 이들과 ‘연애’하고자 하는 남성 ‘스폰서’의 접근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때 남성들이 기대하는 ‘연애’는 상호 관계라기보다 그녀들의 이미지, 젊음, 외모의 소유, 이를 통한 감정적, 육체적 재생산이다. 이처럼 어떤 여자 지망생들과 신인들은 미디어에 재현된 그녀들의 이미지와 존재 그 자체가 ‘연애’관계 내에서 수행하는 여러 감정적, 육체적 재생산 노동의 핵심 요소가 되는 ‘애인이라는 노동’을 수행한다. 이 노동은 기획사와 제작 및 투자 단위를 연결함으로써 미디어 경제 전체를 재생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인간 간의 접촉과 상호 작용을 통해 정서의 변이, 사회적 네트워크, 생명권력을 생산/재생산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고 또 착취하는 자본의 흐름과 젠더/섹슈얼리티 체제가 맺고 있는 권력관계에 대한 섬세한 분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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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한국 여성에 대한 혐오와 혐오 발화는 이제 ‘김치녀’라는 명칭에서 볼수 있듯 인종화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현재 강력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오싹한 지표가 뒤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대상인 20~30대 여성 당사자들이 혐오 발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메갈리안(megalian)’ 현상이 주목된다. 이들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그대로 패러디하는 ‘미러링(mirroring)’ 실천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가부장적 성 담론을 서사적 차원에서 반대로 구체화 하면서 성별에 따른 차별과 그 모순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김치남’의 ‘미개’를 비판할 때, 서양 남성을 문명으로 상징하거나 코피노 문제를 아동으로 재현하는 것은 인종주의적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들은 2000년대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찬탄되던 ‘촛불 소녀’였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소수자와의 연대 등으로 논의되었지만, 사실 이들은 1990년대 대중문화의 자장에서 배태되었던 자기 계발적 주체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제 ‘배운녀자’가 된 그들은, 여성이기에 더욱 혹독한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다른 진보적 의제와는 달리 이주민의 발신지로서 아시아를 경계한다. 더 나아가 2000년대 한국의 다문화 정책과 그 지원이 결혼 이주 아시아 여성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에 집중된다는 현실도 지적한다. 실로 2000년대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신자유주의 하 재편되는 가족을 유지하고 관리할 책략인 동시에, 좌파적 민족주의를 약화시키면서 시혜적 국가주의를 주장할 근거로 활용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보육 중심의 여성 정책이 비/미혼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정황도 한몫한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미래 유권자를 포섭하는 정책적 장기 집권 프로세스의 하나로 남성 중심의 가정 창출을 위한 다문화 정책과 그에 성별적으로 관여하는 아시아 여성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사회에 만연하는 여성 혐오와 실종된 인종주의 논의, 그리고 가부장적 가족 재창출과 보육 중심의 여성 정책에서 메갈리안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들의 전략적 혐오 발화는 경합하고 진화하고 있다. 인종화의 대상으로 한국 여성이 다른 인종의 여성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성장 중이었기에 급진적이었던 촛불 소녀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다시 발현될 계기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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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교회주의는 1920년대 말, 일본의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조선인 제자였던 김교신과 함석헌 등에 의해 본격 시작되었다. 해방 후 공동체 구상과 관련하여 무교회주의의 계보는, 김교신을 경유하여 류달영으로 내려가는 맥과 함석헌을 경유하여 이찬갑-홍순명으로 내려가는 맥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류달영은 5.16 군정기 재건국민운동을 통해 스승 김교신의 구상을 국가적 스케일에서 현실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찬갑은 보다 더 무교회주의의 본령에 충실한 소규모의 자족적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류달영의 구상은 후일 정권에 의해 새마을 운동으로 전유되었고, 이찬갑의 구상은 홍순명을 통해 충남 홍성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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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글 목사는 1961년 9월부터 인천에서 ‘산업선교’ 활동을 맡아 한국의 노동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 논문에서는 오글 목사가 인천지역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을 통해 ‘노동자’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신학을 재해석하고 교회를 비판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그가 내세운 ‘산업 민주주의’ 론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오글 목사는 1960년대 초반 인천에서 ‘산업전도’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목회자들이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서 전도 활동을 펼치는 현장 중심의 전도를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노동자를 무시하거나 낮추지 않고‘수난덩어리’인 그리스도를 노동자 대중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노동자를 섬기는 겸손한 종의 자세를 가질 것을 목회자들에게 요구하였다. 오글 목사의 도시산업선교 활동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한 1960~1970년대 세계 교회의 변화와 궤적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특히 1960년대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를 ‘선교’의 중심으로 강조하고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오글 목사는 ‘하나님의 선교’에 입각한 세계 기독교계의 흐름 속에서 노동자들을 포함한 ‘낮은 사람들’의 편에서 ‘교회’ 중심의 신학을 비판하였다. 그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타락’ 했다고 규정하면서 산업 사회에서는 약자인 노동자의 편에 서서 새로운 헌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과정이며 교회에 부과된 책임이라고 하였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산업 민주주의’론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기존의 노사 협조적 산업 민주주의론과는 달리 노동자 중심주의를 견지하면서 ‘참여 민주주의’를 내세운 것이었다. 그의 산업 민주주의 구상 속에는 ‘상향식 민주주의’,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 강조’ 등을 통해 인민 대중의 역동성을 끌어 낼 여지가 담겨있었다. 그의 산업 민주주의론은 산업화의 그늘을 직접 체험한 입장에서 노동자의법 제도적 참여와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참여 민주주의론이 갖는 자유주의적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참여-자기통치’로서의 산업 민주주의론은 노사정 위원회 방식의 제한적 노동 정치와 ‘지도된 민주주의’로 전락할 위험성이 존재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글 목사의 활동과 구상은 1970년대 기독교 계열의 자유주의 기획의 급진성과 보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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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31일 YMCA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장준하는 이른바 ‘복합 사회’라는 용어를 빌려 그 어느 때보다 통일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민족통일 구상의 역사적 선례를 김구의 ‘좌우 합작’에서 찾으려 한 백기완의 논리와 상통한다. 장준하나 백기완 그리고 이들의 멘토였던 함석헌이 민족통일에 역사적, 세계사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주요 전제로 삼는 것은 한민족이 유례없는 고난의 민족이라는 일종의 선민의식과 직결되어 있다. 『씨□의 소리』 좌담회에서 선통일 후민주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요 논거는 통시적으로는 김구의 좌우 합작, 공시적으로는 이스라엘 키부츠로 요약 가능하다. 1970년대 후반 함석헌이 구상했던 ‘민족주의의 세계화’는 그로부터 20여 년 후 김지하에 의해 더욱 구체화된다. 민족을 초극한 생명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있어 그 핵심 사상이 함석헌의 경우 기독교였다면 김지하에게는 후천개벽 사상이 된다. 그리고 통일신라에 고유한 율려 사상이 또다시 선민으로서의 한민족을 정당화해 준다. 다른 한편 김지하가 하필 ‘제3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민중을 논의하고 민족국가의 대안 모델을 제시하려 한 데에서 짐작해 보자면, 그의 율려 사상 및 동북아 생명 운동은 백낙청을 비롯한 『창비』 계열의 민족주의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이기도 하다. 즉, 김지하의 민족주의는 ‘함석헌적인 것’과 ‘백낙청적인 것’ 사이의 절충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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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바야시 히데오의 태평양전쟁 시기 비평을 독해함으로써 그의 비평원리를 추출한 뒤, 그 원리가 만주/조선에 대한 시선에서 궁극의 모습을 드러냄을 논증한 것이다. 1930년대의 고바야시는 당대의 지배적 비평 조류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비평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하는데,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이 이론과 관념으로 사실을 재단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필봉을 세운다. 관념과 이론을 사실을 오도하는 ‘의장(意匠)’으로 비판하면서 고바야시는 작가와 현실 세계가 만나는 날것의 실험을 추출하는 것이 비평의 임무라 주장한다. 193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러한 고바야시의 비평은 중일전쟁 격화라는 맥락 속에서 자유주의의 가면을 쓴일본주의의 발로라고 비판을 받는다.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도사카 준은 고바야시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와 전쟁으로 인한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불안을 고바야시가 개인화하고 신비화하여 순응주의를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바야시는 불안이란 근대적 삶에 내재한 근원적인 것으로, 이를 객관이란 이름 아래 은폐하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라 응대한다. 이렇게 고바야시의 비평 원리는 전시에도 흔들림 없이 견지되었는데, 그 궁극적인 귀결점은 죽음을 관념으로 치장하는일 없이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보통 사람들의 태도이다. 만주와 조선이라는 변경의 땅을 보면서 이러한 고바야시의 비평 원리는 궁극의 구체적 형상을 발견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바야시의 비평 원리를 지탱하는 시각은 죽음의 코기토를 묵묵히 드러내 보이는 ‘말기의 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논문 : 한 "배외주의자"의 서사에서 보는 앎의 문제 -변할 수 있는 현재에서 만나기 위하여-

쇼지마키코(저) , 후지이다케시(옮김)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9권 0호, 2015 pp. 187-220 ( 총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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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일본에서 ``시민의 보수화``나 ``우경화``라 불리는 현상을 상징하는 존재로 간주되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權を許さない市民の會, 이하 수시로 ``재특회``로 줄임)에 주목하여 이 운동의 등장이 현대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밝히기 위해 당사자에 대한 구술 작업을 토대로 고찰을 한것이다. 인터넷상의 게시판에서 생겨난 재특회는 소규모 공부 모임을 개최하는 시기를 거쳐 전국의 각 도도부현(都道府縣)에 지방 지부를 두는 데까지 성장해 왔다. 이모임은 그 전체상을 파악하기 힘든 운동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한편, 기존 우파와도 때로는 융합하면서 ``행동하는 보수``로서의 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다. 또 2007년에 결성된 이후, 특히 한국이나 재일 조선인에게 집중적으로 길거리 혐오발화를 쏟아내며 또 교토 조선초급학교에 대한 습격 등으로 서서히 그 지명도를 높였으며, 일본 내외 언론에서도 많을 주목을 받아 왔다. 이제까지 학계에 의해 주로 이루어진 이 모임에 대한 비판은, 현재의 배외주의가 뿌리 내리고 있을 식민주의의 계보를 파헤치는 데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여전히 중요한 한편, 그것 자체가 동일한 양심적 주장의 대합창이 되면서 논의를 위한 말이나 사유가 점차 멈추는 듯한 경직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모임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증명하는 사실 확인이나 피해자 구제를 호소하는 데서만 논의가 맴도는 광경의 반복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분명 이집단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며 침묵을 강요하는 폭력의 만연을 뜻한다. 또 학문적이거나 정치적인 사색을 위해서 그들을 정면으로 상대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나에게는 이집단과 관련해 논의해야 할 것들이 아직 수없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논점 가운데 하나-식민주의를 논하는 앎의 문제-에서 특히그 도입 부분이라 할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논할 것이다. 혐오 발화에 잉태된 ``증오``는, 폭력이면서도 동시에 열정이기도 하기에 주체를 형성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한 법과 규제를 안이하게 생각하기 전에, 실제로 이 모임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을 통해 혐오 발화의 수사학과,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주체화의 실천인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결론이나 문제 해결을 성급하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생애사라는 형태로 이야기된 구체적인 경험과 심정에 다가서며 그것이 말로 나타날 때의 표출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혐오라고 불리는 문제를 사유할 때의 새로운 관점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또 이런 목적에는 이제까지 대상에 접근할 때 사용되었던 수법이나 앎의 틀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포함되어 있다.

일반논문 :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재생 혹은 개발주의 이후 도시 공간의 모순과 경합

신현준 ( Hyun Joon Shin ) , 김지윤 ( Ji Youn K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9권 0호, 2015 pp. 221-246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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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원론적으로 정의하면 구도심의 낡은 주거지에 중·상류층이 유입되면서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이 개념을 적용하여 서울이나 아시아 도시들의 도심 공간의 변화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개념화하는 다수의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지만, 이 연구들에서는 2000년대 이후 새로운 공간적, 문화적 전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화적·미학적 성향(disposition)의 배치와 전개에 대한 논의가 결여되어 있다· 그 결과 구체적 장소에서 전개되는 일상적인 공간적 실천 및 이를 수행하는 주체에 대한 논의들에 충분히 주목하고 있지 못하다· 이 논문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중앙 혹은 지방 정부의 능동적 개입과 민간 사이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접속되고 도시 재생 정책에서 적극적으로 ‘문화’가 동원되는 사회 경제적 재배치라는 폭넓은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미시적 장소 형성의 복잡한 과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통해 21세기 아시아 도시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변화를 추적할 이론적, 개념적 시좌를 확보한다·

동향과 전망 : 「임화의 영화」 대 “임화의 영화”

손이레 ( I Rhe Soh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19권 0호, 2015 pp. 249-276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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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백문임의 임화의 영화를 중심으로 임화의 눈을 통해 식민지기 조선영 화사를 재사유하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임화의 영화는 식민지기 조선영화가 개념적으로 유동성을 지닌 범주였음을 강조하면서, 그 유동하는 개념 속에서 임화의 영화론을 해석한다. 나는 ‘영화(론)의 주어/주체로서 임화’를 열쇠말로 삼아 임화의 영화가 보여주는 식민지기 조선영화사 기술의 비전과 그 한계에 대해서 고찰해 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백문임의 ‘조선영화 개념의 유동성’에 관하여 논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해당 논의가 식민지기 조선영화사 기술에 기여하는 바와, 동시에 그것이 노정하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려고 한다. 조선영화가 개념적으로 유동했다는 주장은 내셔널 시네마로서 식민지기 조선영화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분절하는 작업에 크게 기여하는 반면, 조선영화가 그와 같은 유동을 통해 제국 일본의 대동아 영화권 프로젝트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던 방향성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 접근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나는 임화가 임화의 영화의 주어/주체로서 어떻게 상정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인 분석에서 임화의 영화는 종종임화를 영화론의 가주어로 후퇴시키는데, 이는 다시 식민지기 조선영화의 주어성/주체성의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임화의 영화’라는 문제로 돌아가서 백문임이 제기한 예술성과 기업성의 변증법이라는 프레임을 재해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임화가 상상했던 조선영화가 하나의 고유성, 즉 어디에도 환원되지 않는 가상적 유동으로 존재했다는 점을 소략하게나마 강조함으로써,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던 ‘임화의 영화’의 잠재성을 논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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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만물의 상품화 현상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노동력 상품과 성상품이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노동 상품은 가장 불행한 상품이며 사실상 자유로운 교환 및 계약 관계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다. 사실상 상품이 아니라는 마르크스의 진단에는 19세기 말 산업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계급 착취를 통찰한 마르크스의 시각이 깔려 있는데 이를 산업 자본주의의 전성기였던 20세기 식으로 풀고 남한의 경제 개발 시기에 적용해 본다면 서비스 이코노미의 저자 이진경의 대답은 인종과 성, 계급이 착취되는 초국적인 현상이라 대답할 것이다. 본고는 이진경의 저작에 대한 서평으로 저자가 포착한 한국 경제 성장사에 드러난 ‘인종과 섹슈얼리티의 트랜스내셔널한 프롤레타리아화’를 검토하고 응답하고자 했다. 이진경의 저작은 젠더 정치학의 관점에서 민족주의의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시각이 두드러진 저작이라 2000년대 이후 식민지 이후를 초국적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관련된 미국의 ‘한국학’의 성과들과 함께 살펴볼 만하다. 저자는 베트남 참전 군인, 기지촌성 판매 여성, 일반 성 판매 여성, 이주 노동자라는 다양한 하층 계급을 각각 군사노동, 성 노동, 이주 노동으로 개념화하고 남한이 노동 수출국에서 노동 수입국으로 변모하는 역사 속에서 적극적으로 연결 짓고 있다. 그의 기획은 주류의 남성 민족주의적 경제 문화사 및 그에 대항하는 역사 어느 쪽에서도 포함되지 못했던 주변인들의 역사인 동시에 한국 경제 성장사의 통시적인 역사 문화사 쓰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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