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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0권 0호 (2016)

자기를 지우면서 움직이기-"한국학"의 난관들

김철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9-20 ( 총 12 pages)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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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보편에서 매개적 보편으로 -한국학에서의 보편 문제-

김항 ( Hang K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21-46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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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학에서 이뤄진 이른바 근대성 논쟁을 서양철학사의 보편문제와 연동시켜 독해함으로써 한국학이 지향할 보편문제를 시론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편문제란 12세기에 아라비아를 경유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스콜라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제기된 주제이다. 아벨라르는 보편의 보편됨은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사태(status)’라고 답했다. 이후 보편문제란 이 사태가 어떤 것인지를 규명하는 철학사의 문제로 남겨져왔으며, 이는 문장 바깥의 어떤 존재로 불안에 떠는 형이상학적 질병으로 잔존한다. 이 보편문제를 염두에 두고 한국학에서의 근대성 논쟁을 살펴보았다. 우선 근대성 논쟁이란 한국이 과연 근대라는 보편에 귀속될 수 있는지, 귀속된다면 그 경로는 어떠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근대성 논쟁은 근대를 절대적 전제로 가정하여 실체화했고, 이에 대한 비판이 내재적 발전론 비판의 형태로 제기되어 근대성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자는 근대를 실체화함으로써, 후자는 근대를 분해하여 또 다른 집합으로 한국을 귀속시킴으로써 보편의 보편됨이란 문제를 논의에서 지워버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의 내재적 발전론을 보편문제와의 연관속에서 독해했다. 이를 통해 가지무라의 조선학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조선과 일본을 매개함으로써 고정된 보편을 내파하는 매개적 보편임을 제시 했다.

학회 없는 학술지, 포괄적 한국학의 꿈:『한국학보』의 경우

서호철 ( Ho Chul Seo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47-8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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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은 여전히 확립된 학문분야나 방법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이며 모색이다. 그동안의 한국학의 성취와 한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한국학의 ‘기원’ 못지않게,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1970년대 이래의 학문적 실천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1975년 12월 창간되어 만 30년을 맞은 2005년 통권 120집을 끝으로 종간된 계간 학술지 『한국학보』이다. 경제 적으로 어려웠고 학술장의 규모도 크지 않았던 당시에, 계간 학술지를 30년 동안 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학보』는 특정 분과학문이 아니라 포괄적인 한국학을 지향했고, 독특하게도 학회나 대학 연구소가 아닌, 일지사라는 상업 출판사가 주도한 학술지였다. 따라서 『한국학보』는 당시 한국의 각 대학이나 학회고유의 학풍이나 세력관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반면, 원고 모집이나 재정적 운영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학보』가 그린 ‘한국학’이란 서구 근대학문의 방법을 한국적 대상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서구 근대를 ‘보편’으로 상정한 시대적 한계는 있지만, 반대로 그것은 한국의 ‘근대’, 한국에서 근대로의 이행 과정의 연구를 통해 식민사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한국학보』에 실린 논문들은 물론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적 접근이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대개는 국문학, 국사학, 한국사회사 등 개별 분과학문의 주제를 다룬 연구들이다. 그래도 그런 연구들을 한데 모을 수 있도록 자리를 제공한 것은, 한국학 발전에 끼친 『한 국학보』의 중요한 기여다.

편집자 최남선과 『소년』이라는 매체-심급

박슬기 ( Seul Ki Park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87-11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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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출판물로 구성된 문화로서의 근대를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소년』이며, 이 잡지는 편집자 최남선과 출판사 신문관을 연계시키며 편집자 최남선이라는 이름의 권위를 강화시키고 실질적으로 저자-독자의 네트워크라는 현실적 장을 구성시켰다. 『소년』은 독자로서의 ‘소년’이 알아야 할 근대적 지식의 총체를 전달함으로써 근대적 지식 공동체를 형성시켰다고 여겨지는데, 이때 『소년』이라는 매체는 독자에게 근대적 지식을 전파하고 수용케 하는 도구이자 매개체로 간주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소년』이 겨냥했던 독자란 실체가 명확하지 않으며, 『소년』이 수록한 지식 또한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측면에서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니다. 편집자 최남선은 지식을 수집 하고 그것을 잡지의 지면에 배치함으로써 실제로는 이 『소년』이라는 매체를 텅 빈물질적 기호로 만들었다. 독자인 소년은 『소년』의 현실태이자 『소년』 그 자체이며, 『소년』이 전달하는 지식은 역시 『소년』 그 자체다. 즉 배우고 알아야 할 독자 소년과 그들에게 전달할 지식은 모두 『소년』과 함께 탄생하고 『소년』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소년』은 그러나 실제적으로 근대적 지식 공동체를 탄생시켰고, 이러한 측면에서 텅 빈 매체로서의 『소년』은 이 현실적 장을 탄생시키고 규율하는 유일한 실체(물질적 매개), 즉 심급으로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해석자의 과거, 편집자의 역사 -최남선의 『소년』과 매체의 물질성-

최현희 ( Hyon Hui Choe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113-14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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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남선이 편집한 근대 초기의 잡지 『소년』지가 갖는 매체로서의 물질성 차원에 집중하는 텍스트 분석을 시도한다. 이 분석을 통해 2000년대 중반의‘문학에서 담론으로’의 전회 이후 이뤄져 온 매체론적, 독자반응론적, 제도론적해석에서 간과되어온바, 『소년』지의 텍스트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소년』지를 비롯한 여러 텍스트 분석에 있어 한국근대문학의 담론적 복합성이 강조될 때, 궁극적으로 남는 의미는 근대라는 것의 무한한 복합성이었다. 결국 이는 역설적으로‘근대’로부터 모든 내용을 말소하여 ‘근대’라는 텅 빈 이름만을 남기며, 해석자의 현재성에 맞서는 절대적 과거라는 시간성으로 ‘근대’를 환원시키게 된다. 반면 문학뿐 아니라 여러 다른 분야에 있어 한국 역사상 근대의 시작을 알린 것으로 평가 받는 『소년』지에는, 절대로 과거가 될 수 없는 현재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소년』지가 근대적인 혹은 근대라는 가치를 역동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소년』지가 매체로서의 자기를, 어떤 궁극적이고 기원적인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는 차원에 위치시키고 있기에 그러하다. 복수의 텍스트들을 무작위로 수집하여 산만하게 편집하여 출판하는 방법으로 자기를 생성시킴으로써, 『소년』지는 ‘근대’든 무엇이든, 어떤 것에도 환원될 수 없는 자기 자체만의 층위를 도입하였다. 『소년』지 자체만의 층위를 일러 이 글은 ‘매체의 물질성’으로 명명하며, 이를 세계에 도입하는 데 개입하는 주체성을 일러 ‘편집자’로 명명한다. 결국 『소년』지가 갖는 궁극적 의의는, ‘근대’의 재현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떤 초월성도 없는 현재적 세계에 출현시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소년』 지의 진정한 근대성이며, 이를 읽어내는 해석자는 『소년』지라는 과거의 텍스트를 자기의 현재에 끼워넣음으로써 『소년』지가 창출한 편집자적 주체성을 스스로 구현 할 수 있게 된다.

역사의 일요일, 역사 이후의 일요일 -김남천,채만식,이효석의 경우-

이경훈 ( Kyoung Hoon Lee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145-177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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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과 「순공 있는 일요일」의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되어 있으며, 일요일을 맞아 청년임을 궁극적으로 벗어난다. 이들에게 일요일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표시하는 하나의 역사적 위치다. 그런데 공일로서의 일요일은 봉급생활자의 생활을 전제하며, 봉급생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향이 필요했다. 즉 전향자는 이념과 사회운동을 포기함으로써 공일을 가질 수 있었으며, 따라서 그 공일에 “인생의 일요일”과 “노동하는 날”은 이미 통일되어 있었다. 한편 「속요」에서 서술되듯이, 주인공의 공일은 기독교 신자인 가족들의 주일이 기도 했다. 그러나 운동가들이 전향했듯이, 대동아공영을 외치는 시국 속에서 유명 한 기독교 지도자 역시 가십거리로 전락함으로써, 결국 찬미가와 유행가는 구분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림」과 「오디」의 인물들이 캐나다인 목사를 추억하거나 “바르타자아르”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메시아적인 멈춤”으로서의 “부정의 일요일”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염소 양”과 “태평양 양”의 암시적 의미와 더불어 “바 다의 향수”와 관련되는 동시에 대동아의 대륙과 대립된다. 그러나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염소 양”은 그 자체로 모순인 동시에 양과 염소를 나누기 어려운 역사적 상황을 표현한다. 운동에 실패해 죽는 광준보다는 “하나님 맞잡는 기술자”로서 “절대적 주인”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염소일 수 있다. 따라서 「등불」의 주인공이 “나는 살고 싶다”고 중얼거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신이 부정성과 타자성을 본질로 하는 “염소 양”임을 고백하며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영화는 어떻게 "반도예술영화"로 호명되었는가 -<한강(漢江)>의 일본 배급을 중심으로-

정종화 ( Chong Hwa Chu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179-210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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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어 발성판으로 기획된 <한강>이 일본 ‘내지’의 유럽예술영화 배급사인 도와상사로부터 후반 작업을 지원 받아 완성된 사건에 주목해, <한강>이라는 조선영화의 어떠한 요소가 도와의 ‘내지’ 배급을 결정짓게 했을 것인가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먼저 조선영화 <나그네/다비지>가 ‘내지’영화사와의 합작으로 일본에서 배급된 선례를 통해, 조선인 감독의 ‘내지’ 영화촬영소 수련 경험, 기술 제휴의 제작과 ‘일본어 자막판’이라는 배급 방식 그리고 조선영화에 대한 일본영화계의 담론적 수용 양상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강>의 제작과 도와상사 의 배급 과정에서도 유사한 맥락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글은 ‘내지’영화계에서 조선영화가 ‘향토색’, ‘조선적인 것’ 등의 담론을 기반으로 ‘반도예술영화’로 명명되는 상황을 주목하였다. 하지만 조선영화는 도와상사가 배급하는 예술영화 관객층에 ‘예술영화’로서 수용되지는 못했다. 조선영화 <한강>의 ‘내지’ 이출 사례는, 영화 매체를 둘러싼 식민지와 제국의 흥미로운 역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 문학의 정전화 과정에 대하여 -고등학교 『국어』,『문학』 교과서의 경우-

최현식 ( Hyun Sik Cho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211-265 ( 총 55 pages)
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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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상 텍스트와 ‘정전’, 그리고 『국어』·『문학』 교과서의 연관성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된다. 이상 텍스트는 1950년대 중반 에세이 「권태」가 처음 실린 뒤 사라졌다가, 198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날개」와 「거울」 등이 다시 실리게 된다. 이런 사태는 ‘국정 교과서’의 목표, 즉 건전한 국민 육성과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의식 확산을 ‘전인적 인간형’의 태반으로 보았기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전통 의식과 한국적 정서를 계승하고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보수적 민족문학의 주류화 현상과도 관계 깊다는 것이 이 글의 전제다. 이를 위해 1930년대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국문학선집과 전집, 이상 문학 선집과 전집의 발간 현황을 살펴보는 한편 그와 관련된 유의미한 평론과 연구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조연현, 김동리, 서정주, 백철 등이 편집자로 참여한 선(전)집은 이상을 신심리주의 내지 순수문학 의 일파로 간주했다. 하지만 임화, 김기림을 위시한 대부분의 평자는 이상의 형식 실험과 언어파괴 현상을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운동으로 보았다. 이글 역시 여기서 이상 텍스트의 ‘정전’화 가능성을 찾는다. 이에 반해 현재 이상 텍스트의 교과서 등재는 학생 중심의 교수·학습을 중심에 둔 ‘문학 능력’의 강화를 위해 선택되었다는 인상이 짙다. 이와 같은 ‘강의 요목’의 성격은 텍스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언어적·문화적 실천을 중심에 둔 콘텍스트, 다시 말해 ‘학습활동’ 의 대폭적인 강화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상 텍스트의 정전화 능력이 유지, 보존, 강화되기 위해서는 이상 텍스트와 국어의 갈등, 모순투성이의 추와 악까지도 문학 대상으로 삼은 ‘시적인 것’에 대한 투기(投企)를 재평가해야 한다.

전후일본 70년과 복수의 평화주의 -SEALDs의 운동과 정동-

조경희 ( Kyung Hee Cho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0권 0호, 2016 pp. 267-299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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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5년 일본에서 진행된 SEALDs(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의 안보법안 반대운동에 초점을 맞춰 운동을 둘러싼 각 세력들의 반응과 갈등과정을 검토하였다. 3·11 대지진과 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일본사회의 밑바닥을 보게 된 청년들은 2015년 안보법안에 반대하여 수십만명이 전국의 거리에 나섰다. SEALDs 운동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생 특유의 활발한 시위 형식도 그렇거니와 그런 젊은 세대가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평화주의의 근본을 묻고 “리버럴 세력의 결집”을 호소하는 원칙성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SEALDs의 주장은 운동경험이 있으면서도 ‘공허한 주체’로 전후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죄책감과 자존심에 어필할 수 있었다. 한편, SEALDs의 운동이 고조되는 과정에서는 그들의 역사의식과 평화의 내용을 둘러싸고 기존 좌우대립뿐만 아니라 세대, 젠더, 국적 차이로 인한 다양한 갈등요소들이 분출되었다. 예컨대 SEALDs는 시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좌익 세력의 폭력성을 비판하여 오히려 경찰들과 협조관계를 맺었으며 또 운동과정에서 국민적 주체를 세우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이와 같은 SEALDs의 ‘보수성’은 SNS를 통해 논란을 일으켰으나 SEALDs의 지지 자들은 오히려 비판을 봉쇄하고 토론보다는 즉흥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여기서는 반안보운동에 특화된 강박적인 시간의식과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연구는 전후 70년을 맞은 일본사회에 축적되어 온 역사적 균열을 드러냄으로써 서로 다른 복수의 평화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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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역사는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야기 분석은 역사이해의 기본적인 문제이다. 신형기의 『시대의 이야기 이야기의 시대』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연구성과임이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 중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반공주의와 발전주의에 주목해서 그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했다. 반공주의는 초기 국가와 국민 형성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 핵심적 요소가 빨갱이였다. 빨갱이는 일종의 기표 효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그것은 대상의 속성과 본질로 이해된다기보다 빨갱이라는 기표가 들러붙음으로써 구성되는 존재이다. 결국 빨갱이라는 낙인은 곧 주권 권력을 포함한 발화자의 기표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것은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절대적인 기표이다. 결국 대중은 주권 권력에 의해 국민으로 호명됨과 동시에 빨갱이라는 호명의 가능성이 항상적으로 주어짐으로써 비로소 구성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발전주의는 공동체의 번영을 약속하는 가장 대표적인 근대적 이데올로기이다. 근대 사회에서 최고의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국가와 민족으로 이해된다. 다양한 층위의 공동체에 대한 상상은 대부분 민족 단위의 거대 공동체로 수렴되는 경향이 강했다. 사적 소유권에 입각한 소유권적 자유가 강화되는 조건 하에서 공동체의 발전은 곧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과 긴밀하게 연동되었고 국민경제라는 집단살림 의 통합을 가속화했다. 시장의 자유 경쟁이 강화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은 자기계발의 주체로 거듭나야 되었고 국가발전을 위한 생산적 주체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시장의 공정성이 구현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대중의 저항은 불가피했고 그것을 이념적으로 표현하는 기표가 곧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거의 모든 저항을 과잉 대표하게 됨으로써 정치적 보편 언어가 되어갔는데, 여기에 휴머니즘과 같은 인간학적 담론이 결합되어 한국의 저항 언어를 구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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