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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3권 0호 (2017)

‘실학’과 과거의 해석

강명관 ( Kang Myeong-kwa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3권 0호, 2017 pp. 9-37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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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은 실재하지 않았다. 실재했던 것은, 사족들이 사족체제의 모순을 제거하여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던 자기조정 프로그램일 뿐이다. ‘유가적 경세론’에 기초한 그 자기조정 프로그램은 모순이 심화된 조선 후기에 와서 보다 방대하고 체계적이며 정교한 형태로 드러났다. 다만 이 자기조정 프로그램이 모순의 제거에 실제 적용된 적은 거의 없었다. 실학은 20세기 이후 한국사의 내재적 근대 설정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계,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의 역사적 현상과 텍스트의 해석에 깊이 개입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일종의 편향적 해석을 갖게 되었다. 예컨대 조선 후기의 상품·화폐경제는 이 용어를 구사해도 좋을 정도로 전면화된 것도 아니었고, 『북학의』와 같은 텍스트가 그 변화에 상응하여 저작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북학의』는 상업과 통상의 중요성을 말하기는 했지만, 그 방점은 상인의 이윤, 혹은 이윤의 절대가치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잉여의 교환에 찍혀 있었다. 또한 그것은 여전히 유가의 상업관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내재적 근대, 화폐유통, 상품·화폐경제 ‘실학’에 대한 부조적 서술이 갖는 문제는 단순히 과거와 텍스트를 편향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아니 시장사회!), 근대국가 등을 역사적 필연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드러내 놓고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지금-이곳의 이윤-화폐의 획적과 상품의 소비를 제외한 어떤 가치도 배제된, 경제가 전면화된 삶, 국가 권력이 인간을 ‘여지’없이 지배, 관리, 통제하는 삶에 역사적 필연성을 부여하게 된다. 20세기 이후 실학의 구성과 연관된 시각에 근거한 역사와 과거 텍스트의 해석을 다시 검토한다는 것은, 단지 이질적인 새 해석의 제출이란 차원을 넘어서, 지금-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삶의 파국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0세기 이후 지금까지의 실학 연구의 문제의식과 그 찬란한 성과에 경의를 표하지만, 이제 또 다른 해석으로 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사회성격 논쟁과 마르크스주의 - 역사적 사회과학과 박현채 -

서동진 ( Seo Dong-ji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3권 0호, 2017 pp. 39-70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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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우리는 사회성격 논쟁 속에 투여된 담론들을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적 사회과학으로 분할하며 박현채의 이론적 개입을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이론적 실천의 사례로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는 사회성격 논쟁을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이 상연되었던 독특한 무대로서 분석하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결산은 유보되거나 아니면 비판을 추월한 거부로 대체되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거나 결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성격 논쟁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토론이 제기될 수 있는 일차적인 후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으로 돌아가 보았자 우리가 마주하게 될 마르크스주의는 거의 박현채의 마르크스주의일 것이다. 그것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아니라 발전단계론과 사회구성체론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으로 학문적 검열을 피해 가공 처리된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사회성격규정을 위해 드러나게 또는 은밀하게 제시된 그의 역사변증법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자신이 논쟁하고 씨름할 대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이론 없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이론적 신체 즉 저자, 어휘, 개념, 텍스트, 논쟁 등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상상하는 출발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갱신’의 그늘 - ‘창비’라는 문제 -

김예림 ( Kim Ye-r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3권 0호, 2017 pp. 71-96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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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창비』가 일련의 담론적 실천을 통해 실행한 ‘자기 갱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창비』가 생산한 민족민중(문학)론, 제3세계(문학)론, 분단체제론, 87년 체제론 그리고 동아시아론의 전개를 ‘재현’이라는 문제틀에서 조명한다. ‘재현’은 사회·정치·경제적 하위의 타자를 중심으로 인식론적 지도를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말하도록 해 주고 그들을 위해 말한다는 지식 집단의 상상-의지-실천 체계 전반을 뜻한다. ‘재현’은 지식생산 주체의 “열정”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장소다. ‘재현’ 속에서 그들은 대사회적 책임을 발명하고 존재증명의 계기를 마련한다. 『창비』는 1960년대 이후 재현 권한 자체를 성공적으로 선점하고 실행했다. 『창비』를 비롯한 한국의 진보 엘리트는, 민중-지식인 사이의 거리는 좁히고 싶거나 좁혀질 수 있거나 좁혀져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신념을 공유했다. 1970~1980년대의 창비는 재현(가능성)이라는 상상과 믿음의 체제에서 움직였고 또 이 체제를 강화하는 지적 기반을 그 어떤 집단보다도 열성적으로 구축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창비』는 재현의 논리와 전략을 구현하며 자기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체제론화’ 과정을 밟는다. 분단체제론, 87년 체제론, 동아시아론은 이 변화를 보여주는 산물이다. 이 글에서는 민중문학, 제3세계(문학)론 계열을 ‘주체성-프레임’으로, 분단체제론, 87년 체제론, 동아시아론 계열을 ‘체제-프레임’으로 명명한다. 이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꼬이면서 연속되고 있다. 주체성-프레임에서 체제-프레임으로의 전환 맥락을 규명하면서, 『창비』가 체제-프레임의 대건축술이 지우고 망각해 버린 복잡한 미로를 발견하는 새로운 과제를 감당해야 함을 주장했다.

영화적 리얼리즘의 “계획적 건축” - 식민지 조선의 논픽션 외화에 대한 노트 -

스티븐 정 ( Steven Chu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3권 0호, 2017 pp. 99-130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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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쟁점은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논픽션 외화들에 대한 것으로, 크게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우선 본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논픽션 영화들을 추적, 검토하고자 한다. 당시의 아카이브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세계 각국의 논픽션 영화들이 무작위로 상영되기보다는 일련의 논픽션 외화들이 역동적이면서도 세밀하게 관장하는 선별 과정을 통해서 당시의 관객들에게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율은 식민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태도와 통치 구조에 못지않게 일본과 조선 내에 형성된 상업적 배급과 전시의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 논문의 두 번째 목적은 영화 매체가 개념화되고 보여지고 탐구되는 과정에서 해외 논픽션 영화들이 가졌던 역할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리얼리즘이나 핍진성을 둘러싼 논쟁들이 영화 기술이 도입된 초기 시기를 거치며 활성화되긴 했지만, 논픽션 영화들은 이러한 논쟁과 직접 관련이 있기보다는 예술 형식으로서 영화의 지위, 기구적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인 정치학, 그리고 보다 폭넓게는 제국들이 경합하는 세계 내에서 조선의 위치를 둘러싸고 계속되었던 논쟁들과 관련해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대에 등장한 디아스포라적 주체들 - 21세기 한국 공연예술 속 새로운 경계인 -

우미성 ( Woo Mi-seo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3권 0호, 2017 pp. 131-159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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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디아스포라 연구가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대인들의 이산의 역사에서 출발했다면1990년대 디아스포라 연구는 이주를 경험한 소수 인종, 민족집단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에 바탕을 둔 정치사회적 연구로 확장되었다. 21세기 디아스포라 연구는 정치, 종교적 차이, 테러에서 촉발된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을 각 대륙이 수용하는 양상과 사회 계급에 따라 더 복잡한 갈등이 파생되는 현상을 보인다. 국가 간의 경계를 넘는 물리적인 이산뿐만 아니라 교통 수단의 발달로 자본, 노동의 잦은 이동 현상,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만들어낸 글로벌문화 환경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이산의 정서를 일상화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21세기 관점에서 바라본 디아스포라 연구는 더욱 미시적인 고찰을 요구하는 현상학적 디아스포라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의 20세기는 일제강점기, 해방, 전쟁, 미군정 체제와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며 재건과 뒤늦은 산업화를 동시에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디아스포라 집단들을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사후 기억과 유사한 메커니즘의 정서적 이탈을 야기했다. 본 논문은 2013년 한국 공연예술 무대에 올려진 선미 쇼맷의 일인극 <한국 여자되는법>과 김은성의 <목란 언니>에 등장한 두 디아스포라적 주체인 한국인 국제 입양아와 탈북자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사회가 근대화 시기 파생시킨 경계인들의 경험을 통해 한국적 디아스포라의 현상학적 특징을 추적한다. 이 두 작품에 등장한 새로운 경계인들은 혈연에 기반한 전통 민족 중심주의에서 세계화된 시민사회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민족의 역사를 이해하고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한국인의 집단적 열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두 디아스포라적 주체들은 전 지구화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는 민족 정체성이나 민족 구성원 같은 전통적인 관념들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며 끊임없는 사회적 협상 과정을 통해 경계를 확장하고 재정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전복적, 초국가적인 존재들이다.
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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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 도사카 준과 김남천의 풍속 관련 담론들을 분석하며 그들의 문제의식이 교차하는 양상을 추적했다. 도사카 준과 김남천이 ‘풍속’ 개념에 주목한 배경에는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이 처해 있던 사회적 조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시기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는 의상, 두발 등의 영역 다층적 영역에 풍속통제가 가해지고 있었고, 대중들은 그러한 통제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분위기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도사카 준과 김남천은 ‘풍속’을 새롭게 개념화하며 전시체제의 통제 하에 있던 일상의 영역을 비판하려 했다. 그 비판의 이면에는 한 사회의 ‘풍속’과 ‘도덕’을 변화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지향이 깃들어 있었다. 김남천의 경우 도사카 준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풍속’ 개념을 사용했지만, 그 개념들은 식민지 조선의 상황, 그리고 자신의 구체적 창작 경험과의 관련 속에서 발화되고 있었다. 김남천은 ‘민속’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한 당대의 상황을 염두에 두며 ‘풍속’에 대해 논했다. 김남천은 사라져 가는 ‘민속’을 부흥시키는 작업보다는 ‘풍속’을 통해 자기 자신, 더 나아가 한 사회의 습속을 문제 삼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풍속’ 개념의 재인식 작업은 로만 개조론 및 이를 구현한 『대하』창작으로 이어졌으며 김남천은 『대하』를 통해 1930년대 후반 풍속에서 위협받고 있던 단독적 자신을 계보화하여 드러내려 했다. 『대하』의 문제의식은 당대의 풍속을 비판한 「풍속시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와 같은 풍속 비판 담론은 민속적이거나 이국적인 풍습으로 ‘풍속’을 사유했던 당대 공론장의 논의들과 충돌하고 있었다. 전시체제로 사회가 이행해 가던 1930년대 중·후반 ‘풍속’과 ‘풍속통제’를 비판적으로 문제 삼은 도사카 준과 김남천의 태도에서는 제국 일본의 통치 권력 확대에 대응하여 ‘통치 받지 않으려는 기술’을 고민하기 시작한 흔적이 발견된다. 1938년 감옥에 갇힌 도사카 준은 전시체제로 이행해 가던 제국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에 비판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된 반면, 일본보다 세밀하게 일상을 규제당했던, 식민지 조선의 비평가 김남천은 이전보다 빈번하게 풍속을 문제 삼아야 했다. 도사카 준의 부재, 그리고 김남천 혹은 익명의 필자가 수행했던 풍속 비판 담론은 1938년 전후로 구축된 제국/식민지의 통제 시스템에 미세한 균열 지점이 존재했음을 환기시킨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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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월남 시인으로서의 한하운 시의 특징을 새롭게 살피려는 목적에서 출발한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의 문학 전반에서 강조된 나환자라는 조건을 월경 체험 및 반공 내셔널리즘의 맥락 속에서 재독할 것이다. 즉 대표시의 주된 심상인 ‘문둥이’가 해방 이후 월남 시인의 문학적, 정치적, 역사적 표상으로 확립되는 과정을 재구하고자 한다. 『보리피리』(1955)의 「자서」에서 한하운은, “동면(冬眠) 육 년 후 이번 처음 불과 2개월 동안의 분망 중에서 급작히 지난 방랑 여정을 엮은 회상시가 바로 이 시집”이라며 시집의 발간 동기와 의의를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한하운시초』(1949) 이후 6년 만에 발간한 이 시집은 다른 무엇보다 “지난 방랑 여정을 엮은 회상시”이다. 여기서 한하운의 절망과 소외가 ‘방랑’의 서사로서 재현될 때 ‘월남’경험이 반복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방랑을 소재로 한 시는 대개 한하운의 월경 체험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그리고 월경의 순간마다 나환자의 신체성이 의미심장하게 재현되는 가운데 ‘문둥이’는 한하운 시의 핵심적인 표상이 된다. 『한하운 시초』에는 냉전과 분단의 압력에 대해 의구심을 표출하는 ‘문둥이’ 심상이 두드러졌다. 『한하운 시초』 재판에 추가된 시편도 마찬가지이다. 한하운은 자신의 월남 이력과 창작 활동이 남한사회의 반공 블록 안에 무차별적으로 편입되면서부터 그 환멸의식과 비애의 감정을 문둥이의 서러움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맥을 도외시한 채 우리는 한하운을 나문학으로서만 기념해 왔는지도 모른다.

세계 상실에 맞선 생명의 영가(靈歌) - 한하운의 시세계 -

고봉준 ( Ko Bong-ju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3권 0호, 2017 pp. 237-268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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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에게는 항상 ‘문둥이 시인’, 토속적·자연적 세계를 배경으로 한 서정 시인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초기 연구는 주로 한국적인 서정이라는 맥락에서, 최근의 연구들은 그가 ‘나병’ 환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의 삶의 이력이 본격적으로 재검토되고 있으니 한하운 문학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보완되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논문이 한하운의 문학 세계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논점은 대략 세 가지이다. 첫째, 한하운은 유년의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나병’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사실상 죽을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며 살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강제된 방랑에 착안하여 그의 문학을 고향 상실과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장소에 대한 갈망이라는 맥락에서 읽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객관적인 ‘공간’과 달리 친밀성이 본질인 ‘장소’에 대한 관심은 한하운의 시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둘째, 한하운에게 삶의 과정은 ‘인간’, ‘국민’, ‘시민’ 같은 근대적 주체의 범주에서 배제·추방되는 경험이었으니, 그에게 ‘감정’에 기초하는 문학이야말로 자신이 타인과 동일한 ‘인간’임을 증명해 주는 장치였다. 이것이 그가 산문이 아닌 ‘시’를 선택한 이유이다. 그가 반복적으로 자신의 시를 ‘생명의 영가’라고 주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하운에게‘시’는 미학의 대상이기 이전에 그것의 행위 주체가 ‘인간’임을 보증하는 인간적 행위였다. 셋째, 토속적·자연적 세계를 배경으로 한 한하운의 시세계는 최근까지 한국적 정서라는 시각에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그가 의식적으로 ‘자연’을 시적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오직 ‘자연’만이 자신을 배제·추방하지 않는 긍정의 세계로 경험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이중적인 의미에서 ‘고향’ 표상이라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하운에게 ‘문학’은 ‘삶’과 평행 관계에 있으며, 그의 시세계는 결국 세계 이해의 맥락에서 해석될 때에 그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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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한국의 역사적 우익을 새롭게 발굴함으로써 ‘우익’이나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들이 유포한 좌우파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 의해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우익’으로 지목된 이들의 주축은 『사상계』 지식인들로, 이들의 기원은 식민지 시대 서북 지역 기독교 계열의, 제국의 고등교육을 받고 학병으로 끌려 간 학병세대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남한 단정 수립 이후 월남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반공주의자이기는 했지만, 친일로부터 자유로웠고 미국식 근대화론을 열성적으로 주창한 이들이기도 하다. 『사상계』 지식인들은 조국 근대화와 민족주의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박정희 정권의 통치엘리트들과도 상당히 유사한 에피스테메를 공유한다. 그러나 『사상계』 내 ‘한신’계열의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일단의 지식인들은 국가주의에 맞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에 가장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통일이나 노동에 관한 진보적 아젠다를 제출하고 광범위한 시민운동으로 발전시킨 것은 이들 기독교 진보 진영의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설계자들』에서 적극적으로 평가된 기독교 진보 진영은 저자의 주장대로 한국의 정통 우익이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는 동시에 해방기 중도파 세력의 계보를 잇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계승자로서 한국 진보 정치 세력의 기원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읽어내고자 했다. 자유주의는 흔히 종말을 맞이했다고 진단되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창궐하는 신보수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자유주의 특유의 해방적 기획은 여전히 당분간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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