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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5권 0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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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고조된 1950년대에 점령이 종결된 일본에서는 다채로운 미일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인적교류 및 정보선전활동이 촉진되었다. 본고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이후의 미일문화관계 재구축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한 록펠러재단의 도미지원을 받은 아가와 히로유키(阿川弘之)가 귀국 후에 발표한 장편소설 『캘리포니아(カリフォルニヤ)』(1959)에 나타난 ‘아메리카’ 표상이 냉전 하의 문화정치적 문맥에서 갖는 함의를 고찰함으로써 문화냉전이 일본전후문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전쟁을 그린 작가로 알려진 아가와 히로유키의 초기 작품군에서는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가 중요한 주제를 이룬다. 하지만 1955년 미국유학을 전후하여 아가와 문학에서 원폭의 주제가 소실되고, 새로이 부상한 것은 일본계미국인의 표상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아가와는 다양한 세대의 일본계미국인 등장인물의 증언을 통해 미국을 그려내는데, 작품의 내러티브는 배일이민법(排日移民法)이나 제2차 세계대전 하의 일본계 강제수용과 같은 부정적 역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종 및 에스니시티 간의 갈등 문제를 점차 극복하고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미국의 모습으로 수렴된다. 본고에서는 특히 소설 속에 나타난 일본계미국인 2세 경영 농장의 묘사에 주목하여 USIS영화 <농촌청년의 캘리포니아 방문>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양자의 유사성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인종문제의 극복과 근대적 풍요로움으로 상징되는 아메리카의 이미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소설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냉전문화외교와 친화적인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소설 『캘리포니아』는 일본어 독자들이 일본계미국인 등장인물들과 동일시하면서 그 표상에 투영된 미일간의 화합을 상상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미일문화관계의 긴밀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50년대 미국과 일본의 괴수영화와 핵 - 지구, 블록, 국가의 착종 -

이영재 ( Yi Young-jae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5권 0호, 2018 pp. 47-81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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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핵이 야기한 전지구적 공간의 변용이라는 관점 하에서 1950년대 만들어진 미국 SF영화와 괴수영화, 일본의 괴수영화를 핵과 관련된 일련의 순차적 계기들 속에 위치시켜 분석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1950년 한국전쟁과 이 전쟁이 끝난 직후 이루어진 1953년의 ‘핵의 평화이용’ 선언, 1954년의 비키니 수폭실험과 그것이 야기한 대중 반핵운동의 등장이라는 계기들이 그것이다. 미국이 ‘전쟁’이 아닌 ‘치안 유지 행위’라는 명목으로 개입한 첫 번째 전쟁인 한국전쟁 당시 만들어진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은 지구 내전에 개입, 조율하는 외계인의 형상을 통해 ‘지구적 리바이어던’의 성립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되는 지점과 맞물려 있는 <심해에서 온 괴물>은 완전한 타자로서의 냉전의 적이라는 전형적인 형상을 보여주는(이 파충류는 곧이어 개미, 문어, 게, 거미 등등의 뮤턴트들로 이어질 것이다) 한편 핵으로서 핵을 패퇴시킨다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핵전략의 명료한 반영을 보여준다. 비키니 수폭실험 당시의 일본 어선 피폭사건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진 일본산 피폭 괴수영화 <고지라>는 <심해에서 온 괴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미국 괴수영화와 전혀 다른 형상의 측면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영화이다. 미국 괴수영화와 달리 유사인간적 괴수의 형상을 한 고지라에는 역사적, 지정학적 다의성과 함께 공멸의 무기/풍요와 번영의 에너지로 분기된 핵의 이 가상적 분할선 자체가 기입되어 있다.

냉전과 ‘원숭이’ 표상

남상욱 ( Nam Sang-wook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5권 0호, 2018 pp. 83-114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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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냉전기 ‘문화냉전’과 ‘냉전문화’의 양상을, ‘원숭이’ 표상을 통해서 살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구를 양분하는 진영 논리 속에서 적과 대립하고 아군을 규합하기 위한 지구적, 학제적 차원의 문화 전략을 ‘문화냉전’으로 부를 수 있다면, ‘문화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전개된 적에 대한 동물 표상을 일단 중지하고, 뇌를 가진 인간의 형상으로 재규정함으로써 아군으로 규합하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문화냉전’에 대한 반발이나, 혹은 묵인이 독특한 냉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피에르 불이나 오에가 문화냉전이 강제하는 ‘인간’의 형상을 의문에 부치는 형식으로 ‘원숭이’를 소환했다면, 영화 ≪혹성탈출≫ 속의 ‘원숭이’ 표상은 그러한 ‘문화냉전’에 동조하거나 묵인함으로써 실은 냉전체재를 유지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냉전기 문화의 양상은 미국의 문화전략의 일환임을 실증하는 것만으로도, 혹은 그것을 망각한 채 이루어진 다양한 문화적 행위를 냉전의 산물로서 해석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규명될 수 없고, 양자를 횡단하는 시도들을 통해서 좀 더 제대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이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냉전이 단순히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하나의 인식론적 좌표 중 하나로서 여전히 문제를 남기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기계, 노동, 신체 - 노동소설의 해방전/후와 신체성의 전환-

차승기 ( Cha Seung-k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5권 0호, 2018 pp. 117-15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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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접속은 새로운 행동과 신체를 발명한다. 기계-기술은 그에 앞서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인간 주체의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기계-기술은 ‘매체=중심’으로서, 그 ‘안에서’ 인간 주체의 형태가 발명된다. 이렇게 볼 때, 기계와 인간이 접속하는 현장을 서술하는 노동소설은, 인간(노동자)이 해당기계-기술 속에서 주체화되고 특정한 사회적 신체를 획득하는 양상을 징후적으로 포착한다. 해방 전후 노동소설에 나타나는 기계-인간 관계를 주목할 때, 흥미롭게도 극단적인 신체성의 전환이 발견된다. 식민지 당국에 의해 그 노동 능력이 체계적으로 평가 절하된 피식민 노동자들은 민족의 계급화와 계급의 민족화가 구조화된 식민지 공장에서 기계와 만나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기계-도구 연관의 리듬에 안정적으로 맞춰갈 수 없었다. 따라서 식민지 노동소설에서, 기계와 만나는 노동자들의 신체는 대부분 기계에 의해 훼손되거나 파괴됨으로써 가시화된다. 그러나 기계를 멈추는 파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기계-도구 연관 속에서 형성된 집단적 신체의 내적 리듬이 활성화된다. 반면, 해방 직후 이북명의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주의적 개조에 복무하는 ‘해방된’ 민족의 노동자는 기계-도구 연관 속에 유기적으로 접속되는 협동적 신체성을 획득한다. 사회주의적 테일러리즘과 강력한 도덕성이 결합된 노동 속에서 노동자의 신체는 거대한 노동국가의 세포가 된다. 식민지 시기의 노동소설과 달리 해방 직후 북한소설에서는 ‘휴지’를 위한 협동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협동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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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휘의 「물결은 메콩강까지」는 베트남 전투병 파병이라는 당대의 사회적 이슈와 관련하여 상당히 직접적인 친정부적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 이 글에서 주목한 것은 이 작품이 파병을 찬성하는 근거로 전형적인 냉전 논리인 반공주의를 동원할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해 과거 아시아ㆍ태평양 전쟁에 학병으로 참전한 경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우휘의 텍스트를 단지 베트남 파병이라는 개별적인 사안 뿐만 아니라 한일협정 체결이 상징하는 ‘65년 체제’라는 보다 포괄적인 맥락에서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당시, 학병은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 국면을 거치면서 민족의 수난과 역사의 피해자로 스스로를 일관되게 상상하게 만드는 아이콘이었다. 수난자로서의 피해의식이 공론장에 팽배해 있는 가운데, 이 정서를 파병 국면으로 연결시킨 것이 바로 선우휘의 「물결은 메콩강까지」였다. 이 텍스트의 내적 논리에 의하면, 미국 편에 서서 베트남전에 가담하는 것은 과거의 전쟁들-아시아ㆍ태평양전쟁, 한국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의해 개인이 원하지 않는 운명을 맞이하는 일이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텍스트는 운명을 감내하는 영웅적인 비극의 윤리를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설파했다. 물론, 이 시기에 학병 체험을 정면으로 다루며 쓰여진 학병수기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반전(反戰) 평화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전은 과거 전쟁들에 국한해서였고, 현재 진행 중인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65년 체제’가 반(反)식민의 저항적 민족주의의 정서를 최대치로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국 반일민족주의로 협소하게 고착된다. 이로써 현재의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신식민주의에 적극 가담한 스스로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되는 결과가 된다.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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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0-60년대에 ‘재일조선인 2세 남성’에 의해 촬영된 ‘재일조선인 1세 여성’의 이미지를 ‘현재’ 일본사회의 관점에서 회고적으로 활용하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 <해녀 량상>(2004)과 <하루코>(2004)를 ‘자기/민족지’라는 용어로 분석하고 있다. 두 영화에서 (재일조선인에 관한 일본인의 기술이라는 의미에서의) 민족지와 (재일조선인이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기술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민족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기술하는 관점 또한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복수의 민족지적 기술에 의한 중층적 서사를 이룬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두 영화들에서 간과될 수 있는 다양한 텍스트적 행위들의 관계와 결절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러한 중층적 서사를 ‘자기/민족지’라는 용어로 전유한다. 민족지의 주관적 기원이 자기민족지에 의해서야 드러나며 그것은 과거 민족지의 대상이었으나 포스트콜로니얼 상황에서 자신의 문화를 민족지적으로 기술하려는 사람들의 실천 속에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에 삽입된 다양한 ‘과거’의 이미지들은 주목을 요한다. 재일본문학예술가동맹 출신의 카메라맨이자 영화 <하루코>에 등장하는 ‘재일조선인 1세 여성’의 아들이기도 한 인물이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에 걸쳐 촬영한 두 영화 속의 흑백 이미지들은, 포스트콜로니얼 상황에서 재일조선인들이 보여준 집단적인 시각문화의 실천이라는 맥락과 결부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맥락으로부터의 분리를 시도한다. 이 글은 우선 두 영화에 편입된 회고적 필름이 그러한 민족지의 시각적ㆍ주관적 기원을 어떻게 전유하며, 그것이 현대 일본 사회의 관점 안에서 어떻게 재전유되는지 살피기 위해, 두 영화의 ‘귀국’ 관련 시퀀스에 강조된 두 여성의 ‘얼굴’ 이미지가 (탈)의미화되는 맥락을 추적한다. 그리고 <해녀 량상>과 <하루코>에서 ‘과거’와 ‘현재’가 구조화되는 방식을 살피기 위해, 각각 ‘번역의 운동’과 ‘자기/민족지적 욕망’에 중점을 둔 독해를 시도한다. 결론을 대신하면, 두 영화의 서사적 완결성이나 의도와 어긋나 있는 두 여성의 말에서 ‘친숙함’과 관계있는 ‘서사적 욕망’을 간과하지 않을 때, ‘자기/민족지’적 표상 체계의 복잡한 연쇄, 혹은 ‘재일 1세’를 각각 ‘자기해부’와 ‘카테고리’의 대상으로 삼는 ‘재일 2세’와 ‘일본 사회(학)’의 기억 프로젝트 틈새/너머에서 작동하는 대항 서사(counter narrative)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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