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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9권 0호 (2020)

한국전쟁기 남한사회의 공간 재편과 욕망의 동력학 - 염상섭의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

오태영 ( Oh Taeyou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9권 0호, 2020 pp. 15-4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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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인구의 이동을 낳았고, 그를 통해 사회적 공간의 생성 및 변화를 급격하게 추동했다. 특히 전선의 이동에 따라 경계가 유동적으로 구획되고, 그것들이 인간 삶의 조건으로 작동하면서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통제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공간의 재편은 복잡다기한 지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한국전쟁 발발 이후 염상섭의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인공치하 서울과 임시수도 부산으로 재편된 남한사회의 공간과 그러한 공간 재편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추동했는지 살펴보았다. 한국전쟁 이후 염상섭의 장편소설들은 인공치하 서울과 임시수도 부산의 공간 재편 과정을 흥미롭게 서사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욕망이 그와 같은 공간 재편을 추동한 정치경제적 조건들에 의해 발현되거나 강화되는 양상을 예리하게 포착해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조응한 인간의 존재 방식을 탐색하게 한다. 그것은 전후 냉전-분단 체제하 남한사회의 공간 재편의 방향성과 인간 삶의 조건으로서 자본주의적 욕망의 시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재생되는 전쟁, 반복되는 서사 - 한국전쟁 소재 북한소설의 육체성 -

김민선 ( Kim Minsu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9권 0호, 2020 pp. 73-10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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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전쟁을 그 소재로 삼은 북한문학 텍스트에서 육체성이 드러나는 순간들을 다소 거칠게나마 살피고자 한다. 테크놀로지의 격차를 인간의 의지로 극복하기 위해서, 북한의 한국전쟁 서사는 적에 대한 분노를 강조한다. 이 분노는 불리한 전황을 이겨내는 의지와 열정으로 형상화되지만, 이와 동시에 기계에 비해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가 드러난다. 이에 군인의 육체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리며, 북한의 소설은 기계에 대항하는 육체들에서 배고픔과 같은 나약함을 지워내려는 시도를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전후 창작된 소설에서 기계에 대항하는 군인들에게 신체의 ‘나약함’은 극복해야 할 한계이자 서사 안에서 점차 소거하여야 할 것이 된다. 특히 ‘조국해방전쟁’이 수령의 형상화와 맞물리며 승리한 전쟁으로 공식화되고, 영웅의 서사가 반복될수록 전쟁의 육체성, 전투를 위한 재생산의 장면들은 후면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전형의 반복은 일견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북한의 소설을 단순한 서사와 단면적 인물로 채워 넣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학은 고정된 관습만을 따르지 않는다. 전형이 견고해지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변형이 생기며 관습은 전유된다. 북한의 소설은 역설적으로 관습을 전유하여 당대 사회를 은유한다. 예컨대 신체의 한계와 배고픔의 고통을 노출하는 1995년의 소설은 한국전쟁을 그 배경으로 함으로써 텍스트 바깥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이로써 ‘조국해방전쟁문학’은 일종의 세부 장르이자 환상으로 기능한다. 이 세부장르의 관습은 텍스트가 놓인 당대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건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장으로도 읽힌다.

『청맥(靑脈)』 혹은 실종된 유산들의 아카이브 - 1960년대 중반 통일 담론을 중심으로 -

장세진 ( Chang Seiji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9권 0호, 2020 pp. 75-114 ( 총 40 pages)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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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靑脈』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운동(6.3)의 국면에서 창간된 교양 잡지였다. 이 논문은 『청맥』을 매개로 4.19 시기 통일 논의들이 어떤 양상으로 1960년대 중반의 공론장에서 다시금 전유되며 소환되었는지, 또한 4.19시기와는 어떤 차이를 보이며 새롭게 담론의 구조와 내용을 변모, 쇄신시켜 나갔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려 한다. 『청맥』을 1960년 시민혁명이 탄생시킨 담론 상의 적자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잡지가 4.19의 주역인 ‘청년’이라는 기호를 적극적으로 전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특히, 『청맥』은 4.19 직후 가장 혁신적인 특징을 보였던 통일 부문의 담론을 보존한 일종의 사회적 아카이브 역할을 담당하면서, 1960년대 중반의 국제 · 국내 환경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제약 조건 아래서 통일 논의의 외연과 내포를 꾸준히 업데이트 해나간 실험적 지면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4.19 시기 대표적인 시민사회의 두 가지 통일론(남북협상론, 중립화통일론)이 『청맥』이라는 지면을 통해 어떻게 당국의 검열과 법적 제재를 피해가며 스스로를 갱신하면서 새로운 담론적 시도를 선보였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알 수 있는 것은 이 잡지가 다극화된 냉전의 국제 정세와 제3세계 민족주의의 흐름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는 가운데 ‘평화’라는 개념을 자신의 전략적인 캐치 프레이즈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평화는 통치권력의 근대화 개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통일을 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개념이었다. 『청맥』은 이처럼 평화 개념의 토대 위에서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는 한편, 동시에 세계시민과 영구 평화 사상을 통해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넘으려고 시도했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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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으로 인해 촉발된 이산가족 집단의 운집 현상과 이들 이산가족의 성격을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간 방송사적 의의라는 측면에서 조명된 이 특별 생방송은, 엄밀히 말하자면 ‘남한 내부의 이산가족’들 즉 월남민과 전쟁 미아들로 이루어진 전쟁난민 집단의 자발적인 운집이라는 예외적인 국면을 보여주고 있고, 이에 한국전쟁사 측면에서도 특수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주요 논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일반적으로 ‘남북 이산가족’으로 뭉뚱그려진 방송의 구도를 ‘국내 이산가족’, 즉 월남민과 전쟁 미아 등으로 세분화하고, 이로써 드러나는 전쟁난민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과 이들이 보유한 집단적 감정의 성격에 대해 논의한다. 둘째, 전쟁 난민들의 예외적인 존재 표명과는 별도로 이 생방송이 ‘전쟁의 비극과 인도주의적 대화’라는 이산가족 찾기의 상투적인 문법으로 무차별하게 포괄되거나 반공교육의 본보기로 추상화되는 과정을 살핀다. 마지막으로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다룬 소재로 한 소설 및 영화를 대상으로, 이들이 내부 소외자인 월남민과 전쟁 미아들의 가족 찾기 서사를 다루는 방식을 분석한다. 가족 상봉에 내포된 숭고한 가치와 세속적 욕망의 혼재 양상을 주목하는 이들의 작업이 분단 정치의 화법에 의해 은폐되곤 하는 전쟁 난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논의한다.

한국전쟁과 문학적 자기 기술 - 박완서와 이청준의 ‘말년의 서사’를 중심으로 -

임유경 ( Lim Yukyu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9권 0호, 2020 pp. 149-182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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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전쟁 체험 세대가 말년에 겪게 되는 시대 전환의 경험에 주목하면서 해당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이 남긴 텍스트가 일종의 ‘문학적 자기 기술’로서 어떠한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고찰한다. 이 논문의 주된 문제의식은 평생을 바쳐 소설 쓰기에 전념한 몇몇 작가들이 말년에 이르러 그들의 소설이 시작된 시점인 ‘한국전쟁’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논문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일찌감치 ‘전쟁’이라는 원체험을 자기의 문학적 근원으로 삼았던 대표적 작가인 박완서와 이청준이다. 분단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작가들이 1990년대에 접어들어 시대적 전환을 목격하며 한 세대의 일원이자 작가로서 자기의 삶을 반추하고 ‘문학적 자기 기술’을 시도한다는 점은 주의 깊게 관찰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정치적 역변과 문학적 변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던 1990년대에 ‘생애의 역사화’를 통해 ‘전쟁 세대’로서 자기를 재인식했고 이 과정에서 새롭게 대면하게 된 문학적 딜레마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감당하고자 했다. 이 작가들이 말년에 남긴 글들은 전쟁에 대한 증언을 여전히 시도하면서, 동시에 자기 변호적 서사를 구축하는 일을 수행한다. 전쟁 서사를 쓺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서술하고 세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작품은 냉전체제의 해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역사적 전환의 시대에 특정 세대 작가들이 봉착하게 된 새로운 딜레마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들이 가졌던 시대 인식의 논리와 모순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던 문화적 산물로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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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바르트를 위시한 헤르바르트 학파의 교육학은 근대 동아시아 즉 개항 후의일본과, 구한 말 근대계몽기에 소위 ‘선진문물’의 하나로서 외국의 교육적 방법론을 배워 당시의 교육을 바꾸고자 했던 한국의 교육학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헤르바르트 학파의 교육학은 이 시기 동아시아 지식인을 통해 여러 갈래로 독해되어 활발히 수용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근대 조선의 교육학 형성의 한 중심축을 차지한 유근(柳瑾, 1861~1921)이 『대한자강회월보(大韓自强會月報)』에 연재한 「교육학 원리(敎育學原理)」가,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교수인 나카지마 한지로(中島半次郞, 1872~1926)가 교육학 강의를 위해 저술한 교재인 『교육학원리(敎育學原理)』를 저본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이 두 사람의 저술과 번역이 당대 헤르바르트학파 수용과 어떤 구별점을 갖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카지마 한지로의 『교육학 원리』는 도쿄전문학교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만든 ‘강의록’의 일종으로, 공개된 자료로는 간행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 간행된 다른 과목의 강의록을 가지고 어느 정도는 연대를 추정해 볼 때, 1897~1900년 사이에 출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나카지마 한지로가 도쿄전문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한 1900년~1904년간 출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유근의 「교육학 원리」 연재가 1906년 12월부터 연재가 시작되었으므로 어느 쪽으로 보든나카지마 한지로의 『교육학 원리』 교재가 유근의 「교육학 원리」보다 먼저 출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카지마 한지로가 도쿄전문학교에서 강의한 강의록 혹은 교 재라고도 할 수 있는 『교육학 원리』와 유근이 『대한자강회월보』에 연재한 「교육학 원리」를 살펴보면 오히려 번역자의 저본에 대한 충실한 번역과 효과적인 내용전달을 위한 축약적 서술이 돋보이지만, 번역본의 목차와 저본의 목차가 다르고 때에 따라서는 번역어를 선택하거나 맥락을 번역하는 데에 있어 저본과 의미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번안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연배로는 유근이 앞서지만 두 교육자 모두 유사하게 근대 조선과 근대 일본의 교육학 연구의 선구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였다. 이 둘은 근대 동아시아의 교육학의 주요 내용인 지, 덕, 체에 관한 교육과, 이를 계승하며 심성의 확대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지, 정, 의 교육의 방법론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근은 나카지마 한지로의 『교육학 원리』를 번역할 때, 번역 순서를 바꿔가면서 지육편과 정육편의 번역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당대 조선에서 헤르바르트학파의 육학 수용이 훈육편에 초점이 맞춰 있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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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0년 전후 장지연과 이인직의 여성서사들을 중심으로 여성-국민담론이 초과되고 균열되는 양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민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가족-국가의 삼각형이 대한제국기 여성담론의 지배적인 구조였다고 해도, 그 3항의 절합이 매끄럽게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여성-국민론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초과하는 여성의 불온한 욕망을 자극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식민화로 국민-국가 자체가 ‘사산’되면서 굴절되기도 했다. 장지연과 이인직의 여성서사들에 재현된 ‘비혼여성들’과 ‘미친 여자들’의 형상에는 이러한 균열과 남성작가들의 봉쇄 전략, 이를 초과하는 잉여의 흔적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장지연의 『애국부인전』은 국난 극복을 위한 여성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면서도, 여성이 가족을 매개하지 않고 국가(공적 영역)에 접속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 일상에서는 ‘미친 여자’라는 낙인과 ‘죽음’이라는 처벌로 제어됨을 보여준다. 한편 식민지하에서 장지연의 논개 표상(『여자독본』, 『삼강의 일사』, 『일사유사』)은 ‘충’의 의미가 탈색되고 유사-열녀의 의미가 강조됨으로써 가부장적 가족 질서 내로 재포섭된다. 『혈의 누』에서 부인교육에 헌신하겠다는 옥련의 공적 사명은 오로지 구완서의 국가 기획 안에서만 유효할 수 있었다. 병합 이후에 발표된 『모란봉』에서 옥련은 구완서의 부재(국가 기획의 좌절)와 결혼의 유예로 공적 영역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구완서를 향한 유사-정렬만을 고수하는 퇴행적 모습을 보여준다. 옥련의 서사공간이 조선으로 바뀐 순간 돌연히 등장한 ‘미친 여자’ 장옥련은 이상적 문명세계가 아닌 조선의 현실에서 여성의 ‘가출/출가’가 초래할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김옥련의 퇴행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은세계』의 본평부인이라는 또 다른 ‘미친 여자’의 형상은 일방적으로 문명을 추구하는 남성 인물들(작가 자신)에 의해 버림받은 민중(하위주체)/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죄의식과 귀속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텍스트들의 이러한 복합적 결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여성을 국민으로 호명하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일면적 비판을 넘어 젠더와 계층, 식민지적 모순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상황과 여성들의 다양한 탈주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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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갑은 한국 사회학의 1세대 학자이다. 그는 식민지 시기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대에 코넬대학에서 1년간 연수하고 돌아와 서울대학교에서 정년 때까지 사회조사방법론을 강의했다. 그는 여러 회고에서 일본에서 배운 사회학은 ‘과학적인 검증과 조사방법이 결여’된 것이고, 미국 사회학에서 본격적인 자신의 학문이 시작되었다고 진술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식민지와 단절하고 새로운 보편으로 등장한 미국과의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가 수학한 도쿄제국대학 사회학 프로그램은 유럽과 미국 사회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었으며, 실증적인 사회조사방법도 활용하고 있었다. 이만갑의 미국 연수는 문화냉전에 관여했던 록펠러재단의 펠로십 지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귀국 후 그가 수행한 본격적인 농촌사회조사 연구도 또 다른 냉전의 문화기구였던 아시아재단(Asia Foundation)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만갑의 사회학이 한국전쟁과 문화냉전을 거치며 구성된 미국의 냉전 지식으로서의 사회학의 자장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학 제도는 세계적 문화냉전과 연관을 가지면서도, 원조자들의 의도와는 다른 특수한 수행성을 보여주었다. 이만갑의 삶과 학문적 이력을 도해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전후 일본의 전향연구사(1945~1991) - 일본 민족 중심주의적 발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

히로세요이치 ( Hirose Yoich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9권 0호, 2020 pp. 297-33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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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전향은 공산주의의 이념의 문제로 간주된다. 일본에서는 소련의 붕괴로 전향 연구의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에 본고는 소련 붕괴를 전후해서 한국에서 전향 연구가 시작된 점에 주목, 거기서 논의하는 조선인 전향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산물이라는 점, 일본민족중심주의적인 발상을 바탕으로한 일본 전향 연구로는 조선인 전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 설정을 토대로 제2장에서는 패전 직후의 전쟁책임론부터 소련 붕괴까지의 전향론이 사상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①공산당 지도자를 통해 체현되는 비전향의 권위가 절대적인 가치기준인 시기(1945~55), ②전향과 비전향의 우열관계를 해체하는 전향 연구가 발표된 시기(1956~62), ③전후 전향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1985~63), ④전후 전향이 전향 문제의 중심에 놓인 시기(1964~74), ⑤전향 연구가 정체하고 의미를 잃은 시기(1973~91)의 다섯 시기로 나누어 서술했다. 이를 통해 전후 일본의 전향 연구가현재의 쇠퇴 상황에 다다른 경위를 밝혔다. 제3장에서는 전후 일본의 전향 연구가 외부성의 상실을 어떻게 가시화하는지에 대해 ①오쿠무라 히로시(奥村宏)의 법인자본주의론, ②식민지 시대 조선인 전향자나 1970년대 한국의 전향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보도를 통해 고찰했다. 먼저법인자본주의론의 의의를 검토해서 전후 전향으로 불리는 현상이 회사에 귀의하는 형태로 천황제에 전향하는 형태와 동일함을 밝혔다. 이어 재일한국인유학생 간첩사건을 둘러싼 보도를 분석해 일본 전향 연구자가 그 보도를 통해 조선인 전향자 나 한국의 전향 문제를 새로운 전향 문제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외면해버렸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일본 전향 연구가 현재적 의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전향 연구의 사상사가 외면해온 외부성, 즉 식민지 지배의 부의 유산으로서의 전향 문제에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재난 서사와 사랑 담론 - 201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

서세림 ( Seo Serim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29권 0호, 2020 pp. 335-362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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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국 소설의 재난 서사에 나타난 사랑 담론의 양상과 의미에 대해 연구하였다. 코로나 시대, 재난의 실제화 앞에서 고통 받는 현실에서 재난 서사의 담론들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인류 역사에서 재난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재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다. 문학이 재난을 대하는 방법도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기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여전히 그것은 주요한 문학적 인식의 장으로 의미가 있고, 이 글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도 그와 관련된다. 본고에서는 2010년대 이후 최근의 한국 소설에서 발견되는 재난 서사의 경향성을 이해하면서, 특히 사랑 담론을 중심으로 해당 작품들을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장은진의 『날짜 없음』,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그리고 백민석의 『해피 아포칼립스!』 등 세 편의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재난 서사에 나타난 사랑 담론의 의미를 분석했다. 장은진의 『날짜 없음』에서는 ‘생활’의 상실이자 ‘사랑’의 회복으로 서의 재난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재난으로 파멸을 앞둔 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선택을 통해 낭만적인 유토피아적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진영의 『해가지는 곳으로』에서는 기존의 제도와 관계 등을 뛰어넘어 가족, 혈연 및 성별 등의 문제를 초월할 수 있는 혁명적 사랑 담론이 재난으로 파괴된 세계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백민석의 『해피 아포칼립스!』에서는 종말 앞에서 압도적으로 커진 불안과 무기력으로 인해 인간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죽음의 순간 상상하는 하나의 꿈과 같은 사랑 담론이 제시된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영웅의 존재와 희생으로 재난이라는 예외상태를 손쉽게 봉합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면서도 암담한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길을 찾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더불어 그러한 고민의 과정은 2010년대 이후의 현실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세 편의 작품들에서 궁극적으로 사랑 담론은 재난으로 촉발된 삶의 폐허화에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모색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랑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오래된 전제는, 재난서사의 특수한 상황 설정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재난 속에서도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세 편의 작품들에서 ‘하나’의 세계가 아닌 ‘둘’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인물들은, 자신이 기존에 머무르던 세계에 안주하지 않는 선택을 보여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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