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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권 0호 (2008)

특집논문 : 한국/학의 근대성과 로컬리티 ; 주변부에서 한미관계를 매개하는 한국학

앙드레슈미트 ( Andre Schmid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4권 0호, 2008 pp. 9-34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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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지난 15년간 미국 대학에서 한국학의 성장을 이룩하게 한 제도적이고 지적인 원동력을 검토하고자 한다. 한국학은 이를 지원하는 해외 재원의 설립이라는 물질적 토대뿐 아니라, `네이션`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초국적 연구 경향, 일본 제국 연구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같은 지적인 변화, 그리고 한국인 학생의 증가 등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의 변화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학은 동아시아학이라는 주변부 학과에서도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족적인 한국학에 머물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고립될 위험이 있다. 사실 한국의 전근대와 근대는 미국 대학들에서 지적인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많은 중요한 논쟁들에 한국의 경험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으므로 한국학 연구자는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세계속의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인문학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영어로 출판된 연구 결과물이 극히 적은 편이고, 이는 영어가 국제적 학문 세계의 공용어로 사용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학이 국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한다. 따라서 한국 대학들의 세계화 노력과 영어판 한국학 잡지들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것과 같은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아직 고정화되어 있지 않은 한국학은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학 분야 내의 긴장, 제도적 토대와 지 적 경향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미국 내 학자들과 한국의 동료들 사이의 협력에 대해 성찰할 때 한국학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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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es Verne의 Deux Ans de Vacances [이 년간의 휴가](1888)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된 다음 한국어로 번역됐다. 본고에서는 먼저 각 언어로 된 번역을 서로 대조하면서 각각의 번역서가 어느 책을 원본으로 삼고 번역되었는가를 고찰했다. 그 결과, 영어로 번역된 Adrift in the Pacific과 A Two Years` Vacation 가운데 후자를 사용하여 모리타(森田思軒)가 일본어 번역 『십오소년(十五少年)』을 출판하였으며, 그 일본어 번역을 사용해서 다시 양계초(梁啓超)가 『십오소호걸(十五小豪傑)』을 낸 것이 밝혀졌다. 차례로 이루어진 이들 번역은 모두 번역할 때 사용한 원전을 간추리고 문장을 바꾸고 덧붙이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완전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많은 독자를 얻고 오랫동안 읽혀왔으며 영향력도 컸다. 한국어 번역서 『십오소호걸(十五小豪傑)』은 중국어 번역을 사용하여 다시 간추리고 변경을 가하면서 나왔으나 부분적으로는 일본어 번역을 참조하고 있다. 이 한국어 번역이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것이 없다. 본고에서는 다시 각각의 번역의 특색을, 잘못된 번역이나 바뀐 부분 등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한국어 번역에 대해서는 일본어와 중국어 번역을 대조하면서 약간 자세히 기술했다. 한국어 번역의 경우 일본어 번역과 차이를 보이고 중국어와 비슷한 부분도 있으나, 그 어느 것과도 다르고 한국 고유의 독특한 부분도 보인다. 한국어 번역은 전통적인 이야기책의 문체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에 사용된 단어에는 번역자가 여러 가지로 생각한 흔적이 보여, 개화기 당시의 한국어의 새로 운 언어 표현 능력에 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결과는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 필연적으로 수용자에게 어떤 정신적 작용을 끼쳤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특집논문 : 한국/학의 근대성과 로컬리티 ; 한국 근대소설과 "평양"이라는 로컬리티

정종현 ( Jong Hyun Ju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4권 0호, 2008 pp. 89-127 ( 총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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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라는 로컬리티는 근대 한국의 자기구성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평양`은 조선이라는 전체 속에서는 지방이면서도 고구려의 고도(古都)로서의 `중심`의 역사적 기억과 대한제국기 이래 근대 조선사회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중심/주변"의 복합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지역이었다. 애국계몽기 조선의 민족주의 저널리스트와 역사가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사 서술을 통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주체적 자기구성을 수행하였으며, 동시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담론과 서술에서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낙랑으로 이어지는 조선 문화의 식민성과 타율성을 강조하는 역사상이 주조되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역사지식은 교섭, 경합, 길항하면서 `평양`이라는 지방성을 구성하였다. 식민화는 조선 전체를 지방화하면서 평양의 로컬리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식민지-제국의 판도 안에서 중앙/지방의 위계적 권력 관계는 여러 형태로 작동하게 된다.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문화적 지방화는 중앙의 군림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이태준의 「패강랭(浿江冷)」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평양은 조선을 기표하며 제국의 지방문화로서의 조선문화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대변하는 표상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석훈의 「여명(黎明)」이 증거하듯이, `평양`은 조선을 매개하지 않은 채 제국이라는 균질적인 네이션의 지방으로 표상되기도 했다. 1930년대 이후 `평양`과 관련된 좌담, 저널리즘, 문학작품 등에는 일본 제국이라는 네이션의 전체성 안에서 `평양`이라는 지방성을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중심으로 재정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드러나 있다. 일본 제국 안에서 평양은 민족문화가 보존된 `고도(古都)`라는 민족주의적 맥락 속에 있는가 하면, 새로운 제국의 지리에서 중심으로 대두한 자부심이 겹쳐 있었다. 『모던일본 조선판』 등에서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심미적 시선에 의해 조선을 대표하는 섹슈얼한 여성의 이미지로 표상하는가 하면, 중일전쟁 이후 병참기지화 한 평양 일대의 공업지대를 식민통치의 성과인 모더니티의 표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냉전질서가 형성되고 분단이 고착되면서 평양은 북한의 새로운 정치적 중심으로 재구성되었으며, 월남민들에게는 실향의 로컬리티의 원천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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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직후부터 북한이 수행하려 한 중심화 프로젝트의 전말을 북한문학을 통해 살피려는 것이다. 흔히 사회주의에 입각한 국제적 연대는 그 `내용`을 공통된 기반으로 하여, 각 민족 나름의 `형식적인` 차이를 아우름으로써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족 간의 차이는 중심과 지방으로 나뉘었고 중심에 의한 내용의 전유가 진행되어 왔다. 여기서 중심화 프로젝트란 사회주의라는 보편적 내용을 민족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지방화), 지방을 중심으로 만들려는 기도였다. 지방이 중심을 자처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 간의 실제적인 위계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방법일 수 있었다. 이러한 기도는 1950년대 중반을 넘기며 북한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갖고 이른바 `주체`의 길을 가게 되면서 일층 본격화된다. 중심화로서의 민족화는 북한식 민족주의가 지향해 온 바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김일성은 공산주의자이면서 전투에서도 `두루마기`를 입는 민족적 영웅으로 그려졌거니와(「백두산」), 천리마운동기에 이르면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항일빨치산과 김일성은 `조선 공산주의`의 기원으로 간주된다. 이 시도는 이념적 중심을 민족적 주권성 안으로 옮기려 한 것이었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 걸쳐 전개된 민족적 특성 논의에서 또한 민족은 나름의 `형식`뿐 아니라 나름의 `내용`을 갖는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공산주의의 민족화는 보편적 내용이라는 것을 거부한 결과였다. 혁명을 위해서는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는 혁명의 형태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을 때 `내용`이 막연히 보편적일 수는 없었다. 북한은 이미 그러한 혁명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 그것이었다. 1990년대의 `작은 대국`론에 의하면 북한은 세계에서 꿋꿋이 사회주의를 지키는 `사회주의의 유일한 성새(城塞)`였다. 비록 작은 나라지만 이념이나 사상적으로는 대국임을 자처함으로써 북한은 비로소 중심화 프로젝트를 달성한다. 그러나 그 결말은 스스로 말하고 있듯 편집적 고립의 심화였다. 고립된 중심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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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현대 한국사회를 규정해온 지역성과 문화정치의 상관 구조를 읽고자 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식민지시대의 문화-정치의 한 국면을 표현하는 로컬리티 개념의 사용이 문제가 있음을 우선 지적하고, 1960년대 이래의 중앙(서울)과 지역 간 관계 구조, 또 그러한 구조를 형성하게 하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주목했다. 해방 이후 국민국가로서의 대한민국(한국)과 그 문화가 포지한 지역성(지방성)은 식민지시기의 그것과 다른 위상을 갖게 된다. 한국 내부에서 형성되는 중앙성과 지역성, 그리고 그것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한 외부적인 것의 관계는, 강력한 중앙정부의 구축과 그의 매개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 매개작용은 근대화와 뗄 수 없는 관련을 갖고 있다. 이는 곧 박정희 정권에 의해 `한국문화`가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중앙은 지역의 문화를 선별하여 `한국 문화`에 등재하고 불필요한 것은 지역과 `과거`에 그대로 남겼다. 전승에 성공한 지역의 문화는 `전통문화`로 다시 자리매김되고, `세계적인 것(서구적인 것)`과의 접촉과 변용에 의해 중심의 자리로 진입한 것은 새로운 대중문화로서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미디어와 근대적 지식제도가 작용하여 `한국문화`는 함의와 외연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정치와 지역성의 구조는 깨어지고 있다. 지역적인 것은 `전통적인 것`, `민족적인 것`과 여전히 강박적으로 결부되기도 하지만, 이 요소의 작용은 이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지역적인 것이 걸치고 있던 `낡은 것`, `전근대적인 것`의 가치도 탈락한다. 오늘날의 지역성은 내부적 근대화의 속도가 아니라 `세계화`의 속도가 빚는 차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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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로컬`, `세계`라는 국민국가의 `경계`에 대한 감각이 특수와 보편이라는 근대적 틀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연구대상은 전시체제기(1937-1945년) 조선에서 간행된 매체에 실린 좌담회이다. 이 시기 개최된 좌담회에는 국민국가적 경계에 대한 감각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조선에서 열린 `좌담회`는 일제에 의해 사상이 통제, 관리되는 잡지나 신문에 식민지 지배국과 피식민지국의 차이를 지우는 수사법과 게재방식에 의해 실린다. 좌담회의 전체 발화상황은 일본어만을 것, 좌담회의 주제 등, 발화자인 일제와 수행자인 조선 지식인 이라는 위계에 의해 지배당했다. 즉 일본제국주의의 눈으로 포착된 세계상의 변화를 `좌담회`라는 제도적 틀로 실험하는 동시에 참여자들의 신체에 각인시키는 장이었다. 전시체제기의 좌담회란 변화하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 속에서 겪는 문제들을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하는 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눈을 통해 더 확장된 공간, 더 진보된 시간이라는 척도에 의해 구성되었고, 그 척도는 권력으로 기능했다. 따라서 좌담회의 시공간은 경계에 대한 감각을 바꾸긴 했으나, 그 감각을 구성하는 동력 자체를 변화시키진 못했다. 따라서 좌담회에서 변화된 경계에 대한 감각은 조선인들이 기대한 것처럼, 러시아 블록, 유럽 블록처럼 지역 공동체의 형태가 아니었다. 인종주의에 기초해 조선, 일만지, 남방, 만주 등의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 안에 위계를 나누는 형태였다. 대동아 공영권의 시간이란, 언젠가 도달해야 할 시간을 목표로 놓고, 그에 맞춰 현재의 시간을 바꾸는 형태였다. 즉 좌담회의 시공간은 위계가 없는 전체이며 근대를 초극한 시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대 이후 형성된 시공간적인 위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이때 경험하는 경계에 대한 감각은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실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제가 세계와 지역을 상상하는 지도 속에서 감각적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세계의 일부분으로 통합됨으로써 균질화되고, 균질화됨으로써 위계화된다. 이는 삶이 번역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에 대한 믿음, 보편이 진보라는 감각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주의는 식민지 일상을 완벽히 포섭할 수 없었다. 일상생활의 불평, 불만, 유언비어가 유행하게 되며, 춘향전을 둘러싼 좌담회에서는 조선의 문화를 일제의 시각으로 번역해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임화를 비롯한 문학가들은 번역 불가능한 지점, 통약 불가능한 지점을 이야기 한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불만, 번역 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보편과 특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보편이 특수로, 특수가 보편으로 재현될 수 없는 매끄럽지 않은 지대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시체제기 좌담회가 보여준 경계에 대한 감각은 세계와 지역에 대한 새로운 틀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권권력의 새로운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세계와 지역이 보편과 특수라는 관계성이나 벗어나 통약 불가능한 지점으로부터 사고되어야 한다는 점, 진보한다는 감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공간에 대한 상상을 요구한다는 점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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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 `조선`을 둘러싼 지방성, 지역주의 담론은 1930년대 이후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로의 지리적 확장 움직임 속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40년대 전반 `국민문화(國民文化)` 시기에 활발하게 전개된 지방성에 대한 논의는 일본 문화를 중앙으로 하여 그에 대응하는 각각의 지방문화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제국-식민지 사이의 헤게모니 투쟁의 한 국면을 보여준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지방성 논의와 관련해서 가라시마 쓰요시(辛島驍), 데라다 에이(寺田瑛) 등 일본인 논자들은 조선문화 자체의 독창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국민문화의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역할을 강조했는데, 이는 국민문화라고 하는 정해진 범주 안에서 지방문화의 위치를 재정립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최재서, 김종한 등의 조선인 논자들은 이러한 지방성 담론을 전유해 조선문화의 새로운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다. 한편, 이들과 달리 제국의 경계를 넘어 조선의 지방성에 대해 인식했던 이효석은 조선문화를 제국의 지방문화가 아니라 세계문화 속에서 바라보고 위치시키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소설 『화분』과 『벽공무한』은 `지방`을 벗어나 `세계`를 지향한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행위와 욕망, 그 좌절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화분』의 서사는 식민지 조선 지식인이 제국의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선 `세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벽공무한』의 서사는 이러한 `구라파주의자`가 자신이 설정했던 경성/하얼빈, 지방/세계라는 지리적·문화적 경계의 동요 속에서 조선으로 되돌아온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결국, 이 소설들의 서사는 `제국`과 `식민지`가 중첩되어가고 있었던 `세계` 속에서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탈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반논문 : 아편의 시대, 아편쟁이의 시대 -현경준의 「유맹」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이경훈 ( Kyoung Hoon Lee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4권 0호, 2008 pp. 263-289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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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의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진 아편과 마약 중독은 역사적 절망과 주체의 몰락을 인식하고 감각하게 한 서사의 근거이자 묘사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아편 중독은 일제 말기 식민지의 육체와 정신이 봉착하고 탐구한 본질적인 풍속이었다. 『인문평론』에 발표된 「유맹」은 현경준이 『광업조선』에 발표한 「유맹」과는 다른 작품으로서, 「심문」, 「중독자」, 「마약」 등과 더불어 재만 조선인의 아편 중독문제를 취급한 하나의 문학사적 계열을 이룬다. 특히 「유맹」은 아편중독자를 수용한 "특수부락"의 삶을 통해 한 시대의 "몰락"보다는 만주국과 일본제국의 정책에 매개된 재만 조선인의 "갱생"과 만주의 "개척"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적 지향은 이 작품이 『마음의 금선)으로 개작되면서 더욱 구체화된다. 그러나 만주국의 아편 정책은 정부에 의한 "마약 전매" 및 그를 통한 재정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말하는 "장래"란 결국 "왕도낙토"와 "대동아공영"의 이념적 환상에 근거하며, "희망"은 빈농 구제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아편 재배를 장려하는 일본 국가의 계획에 정신적으로 중독되었음을 표현한다. 이렇게 「유맹」은 국가가 기획한 "재생"과 "쇄신"을 서사의 핵심적 문제로 수용함으로써, 오직 국민으로서만 자기를 규정하기에 이른 식민지 시대 말기의 또 다른 환각을 보여준다.

일반논문 : 최재서(崔載瑞)의 Order

미하라요시아키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4권 0호, 2008 pp. 291-360 ( 총 70 pages)
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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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친일파` 최재서의 문학 이론가/지식인으로서의 사상적 편력을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문학 연구로부터 서거 후 출판된 세익스피어론까지 여러 저작들을 정독함으로써 그려내고자 하였다. 특히 경성제국대학 시절의 영문학 연구가 이후 그의 사상적 편력에서 어떻게 관통, 혹은 굴절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경성제국대학 영문학회 회보』를 중심으로 하는 최재서의 영문학 연구는 주로 어빙 배빗(Irving Babbitt, 1865~1933)의 강한 영향하에서 `반-낭만주의`를 그 사상적 핵심으로 한다. 그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의 이론을 계보학적으로 해체함으로써 그 기원에 `주지적(主知的)` 요소를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반 -낭만주의적 문학의 최고봉을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 1882~1957)의 `풍자`에서 찾아내고자 하였다. 최재서의 `풍자문학론`은 배빗의 비평성과 루이스의 파괴성을 기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정치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 위한 문학 이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묘함 속에서 `질서(order)`가 항상 외부로부터의 `명령(order)`으로서 내려지는 식민지 상황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있다. 잡지 『인문평론』을 간행한 의도에는 그가 모범으로 삼은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 편집의 잡지 『크라이테리온(The Criterion)』에서 보인 `phalanx` 이념을 참조하는 등, 문화를 방위하고자 한 `인민전선`적 요소를 볼 수 있다. 물론 최재서 자신에게는 서인식이나 박치우 등이 보여준 `<번역>을 통한 저항`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평론』 이후 최재서는 『국민문학』지를 간행하면서 당초 제국 일본의 폭력적 포섭에 대해 `조선문학`의 주체성을 이론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엘리엇의 `전통론`을 바탕으로 `일본문학의 질서`를 이론화한 이 시도는 그 주체(발화의 위치)를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제국 일본으로 `전향`시킴으로써 한층 더 그 이론을 `제국주의적 국민주의`로 구체화하고 강화한다. 여기서 최재서의 문학이론은 `떠받드는 문학(まつらふ文學)`이라는 순전히 `정치주의`적인 모습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일본의 패전으로 `제국의 Order`가 붕괴된 이후 그는 정치를 거부하고 `문학의 Order`에서 주체화의 계기를 찾아낸다. 이러한 주지주의(主知主義, 정치주의 비판)―정치주의―비―정치주의라는 전향과 재전향을 통해서 일관된 것은 `Order`를 최종 심급으로 하는 `주체화`의 이론이다. `Order`가 외부로부터 내려지는 식민지 상황 속에서 `이론으로의 의지`가 파탄나는 과정을 통해 식민지 상황하의 `이론` 그 자체의 `비극`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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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 일제의 식민지 규율 권력으로서의 무속 담론, 민족 담론으로서의 무속 담론이 상호 대립하고 포섭되는 양상과 이 복잡하고 이율배반적인 메커니즘이 김동리의 문학 속에서 어떠한 독특한 변증법적 양상으로 형상화되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동리 무속소설은 일제 식민주의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방식으로서 조선의 원형적 전통을 재정립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노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는 무속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가 종교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조선의 무속은 고유한 종교/전통이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선택된 전통(selective tradition)"으로 볼 수 있다. 김동리 소설에 형상화된 무속세계는 서양과 대비되는 조선의 고유하고, 순수한 것을 분리해내고, 이를 관념적으로 심미화, 신화화하는 방식으로 창조된다. 이 방식은 심미화, 신화화라는 기제를 통해서 초월성이 강화되고, 보편성 혹은 보편주의로 환원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각 대상들이 지닌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수렴되도록 만드는 핵심적인 매개체는 "운명"이라는 개념이다. "운명"은 유한한(불연속적인) 생명체로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공포"에 대한 인식 및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김동리는 인간의 생명성과 자연의 생명성을 일치시키는 방식에 의해서 "공포"가 신화적으로 극복되는 양상을 다소 몽환적이고, 신비적으로 형상화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김동리의 무속소설은 감정, 혹은 정동(情動)이라는 심리적 기반에 기초한 통합의 서사이다. 각대상들을 아우르고 동일화시키는 통합의 서사는 근본적으로 근대적 관점에서의 인과적 유대가 아니라 "공감(共感)"의 유대이다. 그러나 "공감"의 유대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개인, 민족, 국가가 처한 특수성을 소거하고 탈역사화하는 작용을 담당하게 된다. 더욱이 이 공감의 유대가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논리성을 확보하게 될 때, 견고한 사회적 신념의 체계로 정립되며 그 사회의 권력 주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 즉 "공감"의 유대에 기반을 둔 보편성, 보편주의, 인본주의(인간주의)에 대한 강조는 일제 식민통치 체제라는 권력이 불균등한 사회(혹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현 체제의 비합리적 상황과 모순을 은폐하고, 일원론적 통합의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점이 김동리 문학(관)이 일제 식민지기의 사회, 역사적 상황과의 상호작용과정에서 갖게되는 이중적, 역설적 성격의 근본적인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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