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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권 0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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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 활동했던 문학평론가와 작가들은 종종 조선 문학의 상태에 대한 절망의 심정과 위기감을 토로하곤 했다. 조선 문학작품의 재정적 토대는 빈약했고, 전문작가들은 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독자들은 식민지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대해 무관심한 듯 보였고, 조선 문학보다는 외국문학에 강한 선호감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에 이르자 식민지 조선의 문학생산은 전례가 없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전문작가들이 그들의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작품의 양도 산업적인 규모로 늘어났다. 문화생산에 많은 양의 자본이 유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일본제국에 걸친 초국가적 문학의 영역도 점차적으로 조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그러나 조선 문학 시장이 자본주의 수준의 생산량에 도달하자 1937년 발발한 태평양 전쟁이 출판업계에 전시 통제를 촉발시켰다. 식민지 후기에는 조선 작가들이 조선 문학을 일본 제국에 걸쳐 거주하던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여 일본어로 쓰여진 국민 문학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하였다. 식민지 후기는 급격하게 확장되는 초국가적 미디어 시장에서 조선 문학이 무엇이고 작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식민지 작가들이 그들 자신과 작품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검토함으로써 식민지 후기에 문학작품들의 변화하는 본질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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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콜럼비아(Columbia) 레코드사는 1929년 2월 <長恨夢>를, 1930년 4월 <不如歸> 음반을 각각 발매한다. 이 두 음반의 저본은 도쿠토미 로카(德富蘆花)의 『不如歸』(1900)와 오자키 코요(尾崎紅葉)의 『金色夜叉』(1897-1902)이다. 그리고 이 두종의 유성기음반은 선우일 번안의 『두견성』(1912)이나 조중환 번역의 『불여귀』(1912), 조중환 번안의 『장한몽』(1913)을 거쳐, 신파극 <장한몽>과 <불여귀>를 거쳐, 다시 유성기음반의 형태로 조선에 정착하는 가운데, 새로운 서사로 변용되었다. 이를테면 <불여귀>의 경우 원작과는 달리 남녀평등에 근간한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구가하는 서사로 변용되었고, <장한몽>은 재화의 위력에 굴복한 남녀의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서사로 변용되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호토토기스』가 먼저 번역·번안되고, 신파극으로도 각색되었으나, 후일 <불여귀> 음반보다 <장한몽> 음반이 먼저 발매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종 수로 발매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선 이 두 서사의 원작이 지닌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하나, 그보다는 근대조선의 독자·관객·청취 대중의 취향·욕망, 감정의 구조의 형성 과정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장르·지역·매체의 경계를 넘어서, 한 편의 서사를 상품으로 가공하는 다국적 음반산업 자본의 역동성을 반영한다. 그러한 역동성은 동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통속의 해악으로 비판받았으나, 그것은 근대적인 문학이 수용되고 정착하는 한 사례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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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색』의 신혼여행은 일종의 역사기행으로서 일본 제국의 인종주의적 슬로건을 반영한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 만주는 "동양 행복"뿐 아니라 식민지의 민족주의를 매개하는 장이기도 했다. 만주는 일본의 타자이자 조선의 타자였다. 이광수에게 만주는 민족사의 박물관인 동시에 원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위계질서의 구성적 공간이었다. 만주는 제국과 식민지 민족에 이중 노출되었다. 이는 춘원의 시선에 관광 식민주의가 개입함을 알려준다. 이는 춘원의 민족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 즉 만주 관광은 "대동아공영권"을 `대동아관광권`으로 번역하고자 한 일본의 관광전략을 대표하거니와, 이와 더불어 만주는 조선인들의 민족사를 상상하는 외국 관광지가 되었다. 이렇게 만주는 대중적으로 욕망되고 소비되는 관광 상품이 되었다. 예컨대 이효석에게 만주가 제공하는 꿈과 유혹은 투어리스트 뷰어에 지폐를 지불하며 계약될 수 있었다. 하얼빈은 서양과 동양 사이에 펼쳐졌던 시선의 정치학을 전도시켰다. 러시아 여성은 `외인 정복`의 대상으로서 욕망되고 소비되었다. 이는 이효석이 주장하는 "구라파주의"나 "쭉정이의 사상"과 모순되는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 여인과 "쭉정이"로서 동일화되려는 그의 주관성은 그가 제국의 이등 국민이라는 불가피한 객관성을 장식하는 센티멘털리즘 이상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이는 일마가 복권과 경마에서 돈을 따는 일의 의미와도 관련된다. 즉 이효석은 식민지인의 복잡한 심상지리를 편답한 관광 소설로써 제국의 관광 산업과 "관광낙토"를 긍정했다. 일마는 관광객이 됨으로써 제국의 중심을 확인했다. 물론 그는 도쿄로도 서울로도 서양으로도 귀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하얼빈 여행은 유럽 문명이 하나의 지방 문명이라는 것을 사실상 승인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마는 관광객도 망명객도 아니었다. 그는 방랑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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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주(張赫宙)는 개조사(改造社)의 현상창작공모를 통해 1932년 제국일본의 출판시장에 등장한다. 현상창작공모라는 이벤트는 개조사라는 출판자본이 보도활동, 판매활동, 광고활동을 통해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연출한 이벤트다. 본론에서는 `張赫宙`의 등장이 일본의 출판시장 재편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출판은 불황에 강하다`는 신화의 예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엔본 붐이다. 그러나 張赫宙가 등단한 1932년은 엔본 붐이 끝나고 출판업계는 불황의 늪에 빠진다. 이 시기는 출판 업계가 매출 증대를 위해 새로운 문화상품을 찾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독립적인 출판시장으로 여겨진 적이 없는 `제국의 식민지`가 새로운 영토로서 발견된다. 이러한 출판자본의 재편과정과 맞물리면서 식민지에서 기동하기 시작한 `문학에 대한 투기(현창창작공모)` 시스템은 `식민지 없는 식민지`를 연출하게 된다. `張赫宙(チョウ·カクチュウ)`라는 기호는 `이중언어`가 기능하지 않는 공간의 생산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장혁주의 당선이 연출하는 것은 『개조』라는 잡지를 매개로 같은 꿈을 꾸는 동등한 `독자`라는 의식이고, 이것은 `민족`적인 위계관계를 비가시화 시킨다. 개조사의 전략을 토대로 분석을 할 경우 `張赫宙(チョウ·カクチュウ)`의 `조선`이라는 부가가치가 제국일본의 출판시장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일제-국산(和製)`을 표상하는 일본의 수출 상품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상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상품 `張赫宙`는 그것이 유통하는 시장 속에서 수용자의 이익=관심에 따라 해석을 둘러싼 새로운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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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제시대 식민지의 일어 텍스트 유포 정도를 조사하기 위하여 1905~1945사이에 일본어로 출판된 텍스트들의 유포, 출판역사에 관해 쓰인 주요 일어 자료들을 고찰해 본다. 본 논문은 이러한 텍스트가 단순히 국가라 불리울 수 있는 범위 밖의 상당히 큰 시장에서 유통되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비일본 독자의 존재여부를 시사하고, 이에 관한 일본어 학자들의 명백한 편견을 지적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다양하고 헤테로지니어스한 독자사회를 재구성하기보다는 텍스트를 유일하게 또는 단순히 내이션과 동일시하는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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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문학생산 매커니즘의 `시장화` 전환은 중국 사회구조의 전반적 변화와 더불어 발생했는데, 문학 정기간행물은 가장 기초적인 일환으로서 그 변화를 겪게 된다. `시장화` 전환과정에서 1999년을 전후로 문학 정기간행물계에는 대규모`개판열풍`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문학작품의 발표원칙에도 중요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문학의 심미적 원칙이 시장원칙에 의해 압박받긴 하였지만 이것이 결코 지속적인 `시장화`로 인해 국가의 문학 생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규제가 점진적으로 퇴조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학의 `정상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는 `시장화`와 장기적으로 병존하면서, 부단한 조정과정을 통해 `시장원칙`과의 새로운 결합 지점을 모색하게 된다. `정치영역`과 `경제영역`의 동시적 압박하에서, 중국의 현대`문학 영역`은 어떠한 특수상황에 처하게 되는가? 국가자본과 국내 민간자본 및 다국적 자본은 어떻게 균형지점을 찾아 중국적 특색이 짙은 문학생산 매커니즘을 형성하는가? 이상이 본 논문이 주력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일반논문 : 출판신체제의 성립과 조선문단의 사정

이종호 ( Jong Ho Y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6권 0호, 2009 pp. 195-238 ( 총 44 pages)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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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1940년대 `출판신체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를 규명하고,`출판신체제`의 구축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문학자들이 겨냥하고자 한 지점들을 살피는 데 있다. 1940년 제 2차 고노에(近衛) 내각은 `신체제` 수립이라는 국책의 목표를 제시한다. 이 `신체제`는 기존의 국민국가의 형태를 넘어서는 광역국가, 블록경제의 구상 및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체제`의 하위 부문으로 `출판신체제`가 내지 일본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이것은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출판물의 시작과 끝을 통제하는 방식을 의미했다. 기존의 출판물에 대한 사상적 통제방식인 검열을 넘어서, 출판물의 생산, 유통, 소비 영역에 대한 전면적 통제가 구상되고 실현되었다. 그리고 출판물의 유통망은 대동아공영권으로 확장되었다. 제국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도 이러한 `출판신체제`에 절합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출판의 생산 영역은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하는 통제체제 속에 놓이는 한편, 그 유통 영역은 내지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대동아공영권으로 빨려 들어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출판신체제`를 통해, 출판의 유통영역은 광역화되는 한편, 그 생산 영역은 지역적 통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출판신체제` 아래에서 조선문학의 공간은 내지 일본을 경유하여 대동아공영권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출판 시장 역시 국어라는 일본어를 매개로 하여 조선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출판신체제`로 인해, 확장되는 유통망과 문학공간은 조선의 문학자들에게 새로운 공간 감각과 욕망을 형성시켰다. 즉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확장된 유통망이 제공하는 현실감과 환상은, 조선의 문학자들에게 언제든지 대동아공영권의 중앙이나 변방 어디로든 진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의 욕망과 상상력은 한편으로는 지역적 마디의 관리와 통제를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의 중심 혹은 세계에 대한 욕망과 지역적 통제의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문학자들이 생겨났다. 국가 및 자본의 통제 규격에 맞게 가공된 출판 상품을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생산자인 문학자는 언제나 지역적 관리나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태가 반복적으로 연출되는 상황, 그것이 출판신체제가 만들어낸 한 국면이었다.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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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 잡지들이 만든 문학적 현상을 고찰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비판』과 『삼천리』, 『신동아』이상 세 종의 잡지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1930년대 잡지들은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하나는 식민권력에 의한 문화적 폭력(검열)이었고, 다른 하나는 잡지시장에서의 경쟁이었다. 이 이중구속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를 잡지의 편집자들은 문학에서 찾았다. 그들은 문학을 통해 발언했고, 문학을 가지고 경쟁했다. 문학은 잡지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적 구성체가 되었다. 『신동아』는 전문작가의 육성이라는 문학시스템을 통해 대중과의 접속을 도모했다. 『삼천리』는 문학의 정전들을 생산·유통시키는데 일조하며 잡지시장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그리고 『비판』은 문학평론의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잡지시장에서 생존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문학이란 이와 같이 권력과 시장의 논리에 근거한 매체들의 생존경쟁의 장(場)에서 생산·확산된 것이었다. 이 글은 상품으로서의 근대문학 연구가 중요한 학적 과제임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데 에서 의의를 갖는다.

일반논문 : 『소년』의 과학

조형래 ( Hyung Rae Cho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6권 0호, 2009 pp. 273-30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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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서구의 발달된 과학·기술 지식이 조선 내부에 대대적으로 유입되었지만 과학이라는 개념의 정립 및 그 실천과 관련하여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특히 1900년대 초반이었다. 특히 「소년」은 `과학`을 당시의 중요한 학지(學知)로서 취급하고 있었던 유력한 잡지 중 하나였다. 이것은 서구 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특수한 학제이자 실천으로서의 사이언스의 번역어로서 카가쿠(科學)라는 말이 일본에 정착되고, 일본의 대학제도 내부에서 과학의 제반 학과가 설치되고 있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소년』에서 주로 `이과`로 나타나고 있는 과학이란 무엇보다도 실험이라는 고유한 실천 및 진리생산 및 사실재현을 위한 정교한 글쓰기의 형식을 도입·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당대의 조선인들로 하여금 자연과 세계의 객관적인 인식을 가능하도록 하는 기준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생물의 하위범주로서 인간을 자연 내부에 정위하는, 인간정신의 보편화에 관한 인식론적 전회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이란 정의 만족과 관련된 1910년대 조선의 문학론의 탄생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담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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