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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77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권 0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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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국사` 혹은 `국사`의 체계 속에서, 조선전기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근대`를 향해 발전하는 도상에 있는 `근세`로 설정되고 있는 이 시기는 세종대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사` 상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발전`이 출현했던 시기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과 `변화`들은 현재까지도 서구와 일본을 통해 근대적 문물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근대 한국의 근대성이 발원되고 있던 고유한 기원으로 인식되어지고 있으며, 근대 국민국가인 대한민국의 원형과 같은 이미지로 이해되면서, 근대 국민국가 창출과 유지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시각과 이를 통해 파악되고 재현된 조선전기의 역사상은, 당대의 맥락 속에서 조선전기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사실 서구 혹은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근대성을 보편적 기준으로 삼아 그와 비슷한 것을 `한국사` 속에 설정하려는 근대 국민국가의 시선과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논문은 해방 이후 자신의 근대성의 기원을 그 고유한 전통 속에서 찾아내려 했던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사` 상의 조선시대상(朝鮮時代像), 즉 비합리적인 것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귀족제적인 것에서 관료제적인 것으로, 미신적인 것에서 경험적 지식으로, 전제적인 정치에서 민본적인 정치로, 중국적인 것에서 조선적인 것으로의 `변화` 혹은 `발전`으로 규정되어 온 이 시기의 역사상이 매우 통국가적(transnational)으로 구성된 것임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이 시기의 역사상이 한국 근대성의 고유한 기원임을 주장해 온 `한국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는 서구로부터 발원하여 일본을 통해 전해진 근대성을 보편적 기준으로 해서 마련된 근대 국민국가 기획의 구성물이었으며, 때문에 그러한 기획과 그 결과물 속에 `한국사학`이 저항의 대상으로 삼았던 제국주의의 논리와 영향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사`상의 조선시대상, 특히 조선전기라는 시대상이 어떤 과정을 통해 `중세`보다 `근대`에 더욱 가깝게 접근한 `근세`로 파악되었는가를 살펴보고, 그러한 위치에 맞는 역사상을 구성하기 위해 `한국사학`이 그간 강조해 온 주요한 개념과 주장들, 즉 `양반관료국가`, `중인`, 세종대 `과학기술 및 문화의 발전`, `사대`와 `교린` 등을 학설사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국사`라는 체계가 어떠한 논리에 입각해서 어떠한 세부적인 연구영역에서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축적하면서, 조선시대와 관련된 현재의 역사상과 연구지형을 만들었는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그 `가까운 기원`을 드러내고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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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소년』, 『청춘』, 『시문독본』 등 1910년대를 전후한 최남선의 출판 활동에 나타난 한문전통의 국역 양상과 한국 한문고전 형성의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조선총독부 교과서인 『조선어급한문독본권1』를 위시한 당대 문헌의 고전 수용 양상 및 번역문체와 비교해 보았다. 이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고전 번역 및 수용은 통사적 일관성을 결한 『시문독본』의 국한문체 번역 문장이었는데, 나름의 규범과 번역 원칙을 지킨 1910년대 당시 조선총독부의 교과서 문체보다 더 많은 인쇄물에서 사용되고 또한 1920년대까지 큰 파급력을 지녔다. 당시의 언어 관습에서는 한문을 대하는 일정한 규정이 없는 편이 `시속`에 가까웠던 것이다. 『시문독본』의 혼란한 번역 형식은 최남선이 주도한 10년 가까운 출판 활동과 한문고전의 정리작업 속에서 형성된 절충의 형태였으며, 그것은 아직 조선시대의 문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소년』의 의욕적인 띄어쓰기와 문장부호 적용은 사라졌고, 일본식 문장부호의 사용도 수용되지 않았다. 문장부호가 없기에 통사적인 구분이 모호하고, 한문구절도 계몽기에 비해 더 자주 분리는 하고 있으나 일관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형태의 문장이 더 널리 언중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번역의 과정에서 직역과 완역이라는 원칙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전과 문법이 형성되지 않은 언어로 이루어지는 번역이라면 이 원칙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최남선이 설정한 `시문(時文)`이었으며, 문장규범의 차원에서는 조선 전래의 형태와 유사하나 한문구절의 분할에서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 양상의 것이었다. 최남선의 번역은 사전과 문전이 없는 과도기를 넘는 나름의 노력이었으며, `국문`의 이름으로 한문전통을 수용하는 국역 작업과 고전 정리작업에 초보적이나마 단서를 열었다. 당시의 한국에 있어서 보편과 민족이라는 이율배반적 이념이 한문전통에 모두 투영되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권1』이 『논어』, 『소학』 등의 한자문화권 보편의 경전을 동문동종(同文同種)의 이름 아래 강력한 매체로 사용했던 것을 보면 그 이중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종종 `신문화운동`이라 호칭되는 최남선의 초기 문화 활동에서 한문전통의 영향력은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하였듯이, 근대적 국민국가의 문화를 지향하던 최남선의 출판과 문화사업에서 한문전통의 정리와 번역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번역은 국가와 국민, 국문에 대한 의식이 곳곳에 드러나 `국역(國譯)`의 지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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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기미독립 선언서를 분석하여 독립선언이 가능한 조건과 논리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기미독립 선언서 연구는 선언서에서 주장한 조선의 독립이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명한 민족의 권리였다는 인식하에 텍스트를 접했던 이유로, 기미독립 선언서(동시에 분석한 여러 선언서들도 마찬가지로)가 실은 보이지 않는 단절과 배제를 기초로 해서만 선언 가능한 텍스트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기미독립 선언서에서 주장하는 것은 과거 대한제국의 체제를 회복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일본에 의한 식민지 통치 체제를 긍정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이제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조선민족의 체제를 새롭게 정초하려는 선언이며, 따라서 현실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민족`이 독립을 `선언`한 행위임으로 기존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매우 폭력적인 선언서라 할 수 있다. 독립 선언의 권리를 실재했던 역사와 현실적인 실정법 관계에서 구하지 않고 추상적인 민족에서 찾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에 대한 단절과 민족의 기원에로의 비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육당에게 있어서 이 비약은 한(韓)에서 조선(朝鮮)으로의 민족명의 전환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이후 민족의 기원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로 구체화 된다. 또 하나 기미독립 선언서에는 민족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관계지우는 사유가 보이는데 이 사유 속에서는 독립된 존재로서의 `개인`이 소외되고 있다. 즉 민족공동체가 타 민족으로부터 독립된 공동체라는 인식과 동일한 가치, 즉 개인이 개인의 집합체인 민족으로부터 독립된 개체라는 관념은 독립 선언서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민족과 개인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립선언서에서의 개인은 민족이라는 개념 속에서 집단에 귀속되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기미독립 선언서는 과거 역사와의 단절과, 개인의 배제라는 조건하에서 선언 가능한 텍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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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게일(James Scarth Gale)의 「한국의 마음」(Korean Mind, 1898)과 이에 대한 정재각의 번역본(1947) 사이에 내재되었고 검토되지 않은 세 줄기의 역사에 주목했다. 이는 조선어가 영어와 동등한 번역이 가능한 근대어로 성립하는 과정의 역사, 그리고 「한국의 마음」이 서구인 조선학의 하위분야를 구성하는 역사, 마지막으로 「한국의 마음」이 지닌 결핍을 그의 조선문학 연구가 보완하는 역사이다. 이 글에서는 세 줄기로 얽혀진 혼종적인 역사를 서양과 조선이라는 두 대척점의 관계망이 보여주는 불연속점을 중심으로 개괄해보았다. 「한국의 마음」은 <민족지, 사회의 풍습과 정황>이란 언더우드의 서구인 조선학하위항목을 구성하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 게일에게 조선의 민족성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며, 서구와 조선 사이의 거리가 사라질 때 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독자적인 조선의 민족성은 서구와 조선 사이의 거리를 지우기보다는, 양자를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두 대척점으로 고정해버리는 방식을 통해서 구축될 수 있었다. 이는 조선의 근대어가 생성되는 과정, 즉 서구의 학술개념을 체현할 영어에 대응되는 조선어가 생성되고, 이후 조선어 대역어 자체로 조선학의 하위분야를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과정과 궤를 같이했기 때문이다. 게일은 전승되던 과거 조선의 문헌을 통해 조선인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서구와 대등하게 배치시킬 수 있는 조선학의 하위분야를 구성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선의 근대어, 영어, 일본어가 뒤섞인 혼종 속에서 조선의 근대문학에 대한 배제와 한문문헌에 대한 탐구를 통해 구성된 것이었으며, 그가 보기에 이는 급격한 전변에 의해 조선이 상실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의 근대어란 매개와 근대 문학이란 외부가 없었다면 게일은 조선인이 상실한 이 민족성을 기술할 수 없었다. 그가 조선문학연구를 통해 구축한 민족성 그 자체는 이러한 혼종성에서 기원한 것이며, 게일 그 자체가 오늘날 문학연구에 있어서는 하나의 혼종적인 기원일지도 모른다.

일반논문 : 식민지근대와 공공성 -변용하는 공공성의 지평

윤해동 ( Hae Dong Yu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8권 0호, 2010 pp. 163-195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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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공공성 논의는 공공성을 실체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은유로 간주한다. 식민지공공성은 식민지기의 정치사 나아가 식민지 자체의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 수용한 개념인 것이다. 식민지공공성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규정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개념의 동아시아적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식민지기 실체적 사회의 형성을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공공성의 영역을 매스미디어의 수용자영역과 준공공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식민지공공성 논의는 더욱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피식민자들은 지배적인 공공성 담론의 틈새를 엿보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지배적 여론을 넘어서려 하거나(`사회적인 것`의 정치화), 그것을 비틀어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거나(수용자 공공성 담론), 수면 아래로 잠복시켜 일상 속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준공공영역의 형성). 이런 방식 이외에도, 식민지 나아가 국민국가에는 수많은 방식의 공공성 담론과 공공영역화의 방식이 존재할 것이다. 국민국가 내부에서만 보더라도 새로운 공공성 논의는 화석화된 공사영역의 구분을 교란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이를 통하여 더욱 급진화된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전지구화와 아울러 전지구적 시민사회의 형성이 운위되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 공공성의 퍼스펙티브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제 국민국가 내에 함몰되어 있는 전통적인 공공성 논의로는 새로운 전망을 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공공성의 공간은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넓어진 공간에서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다른 방식으로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논문 : 박제의 조감도 -이상의 「날개」에 대한 일 고찰

이경훈 ( Kyoung Hoon Lee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8권 0호, 2010 pp. 197-220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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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의 마지막 장면은 종종 미스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일어난 일로 오독되었다. 심지어 그것은 자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옥상이 아니라 거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오독은 화자가 직접 설계한 것이다. 그는 근대 건축물의 높이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독서의 맹목을 발생시켰다. 건물의 높이는 날기와 잘 어울린다. 자살로 읽는 것은 도시의 위험성과 그에 대한 공포를 함축한다. 따라서 그 오독은 지극히 역사적이다. 한편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는 주체와 타자, 시각과 촉각을 종합하는 「날개」의 인식론이다. `박제`인 주인공은 보지 못한다. 그는 촉각의 존재다. 아달린 갑의 발견과 더불어 그의 시각은 회복되고 사회에 대한 통찰로 심화되지만, 이는 시각의 개별적 작용을 넘어선 투시적 종합이다. 투시는 대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일종의 접촉 행위며, 근대 사회 속에 뒹구는 이 자기 기투(企投) 속에서 시각과 촉각의 대립은 지양된다. 이는 조감도의 원리이기도 하다. 조감도는 시각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풍경은 종이에 접촉됨으로써 그림이 된다. 한편 카메라 렌즈가 셔터에 의해 열렸다 닫힐때 풍경은 사진으로 고정된다. 눈을 깜빡이는 `조(鳥)`와 `오(烏)`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진은 탄생한다. 모든 조감도는 오감도로써(서) 완성된다. 이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의미와도 관련된다. 건축가로서 시선의 주체였던 주인공은 이제 시선의 대상인 룸펜이 되었다. 그는 천재와 박제 모두를 자기 자신으로써(서) 한꺼번에 어루만졌다. 날개는 `책임의사`와 `실험동물`을 매개하는 존재의 위치를 표상한다. 이렇게 그는 문사를 의사에 비유한 춘원의 조감도 안쪽에 결핵이나 매독에 감염(접촉)된 환자의 오감도를 선포한다. 이는 독자들의 착각과 오해를 낳은 이유다. 독자들은 「날개」를 냉철히 바라볼 수만은 없었을 터이다. 작자가 계획한 대로, 아마도 독자들은 주인공을 만져왔던 것이다.

일반논문 : 전향자와 그의 아내 -룸펜 인텔리겐챠와 자기반영의 문제들

강지윤 ( Ji Yun Kang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8권 0호, 2010 pp. 221-251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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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른바 `전향소설`들에서 나타난, 룸펜 인텔리겐챠로 그려지는 지식인 형상과 이들이 자신들의 아내와 빚는 갈등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보고자 했다. 이 갈등을 `지식인의 윤리`·`사회의 윤리`와 `가정의 윤리`·`생활의 윤리` 사이의 대결구도로 정식화해보았는데 이러한 정식화가 의미있는 것은 이 대결구도가 전향이후에야 지식인 문인들이 자신들의 사생활을 재현하고 있는 소설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며, 혹은 다르게 말하면 전향 이전에는 전자의 윤리가 후자의 윤리에 의해 한 번도 도전받아 본 적이 없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대결구도를 가능하게 하는 소설 내적 조건이 바로 `아내의 말`이다. 전향 소설 속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남편들을 향해 쏟아지는 아내들의 폭언은 또 `가정의 윤리`·`생활의 윤리`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기능하면서 지식인 남편들의 `지식인의 윤리`·`사회의 윤리`를 해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향문학 속 아내라는 인물 형상은 전향 이전의 문학사 나타난 그들의 과거 형상과 비교할 때 더욱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민족주의 계몽 서사에서부터 사회주의 계몽 서사에 이르기까지 계몽 서사의 주인공들이었던 `청년`의 연인으로서 `청년적 내면`의 가장 심층부에 존재하는 자율적 감성, 그 최고의 구현인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들과 `청년`들에게 독립적인 타자로 존재했다기보다는 `청년`들이 자기 자율성의 권능을 표현하는 수단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향소설 속에서 아내들은 남편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목소리로서, 말로서, 발언으로서 존재하면서 전향소설 속에 반영된 지식인상의 자기 해체가 종래의 사랑의 문법의 해체와 연동(聯動)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논문 : 신화의 창출, 무법의 창출 -한국영화의 만주표상

이영재 ( Young Jae Yi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사이間SAI  8권 0호, 2010 pp. 253-293 ( 총 41 pages)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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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만주군 출신 장교가 일으킨 쿠데타와 거의 동시에 한국영화에는 식민지시기 만주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액션영화가 도착하였다. 이 동시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주물` `대륙물`로 불리워진 이 영화들은 약 10년의 짧은 기간 동안 국가 주도의 산업화, 근대화라는 60년대 한국영화의 요청에 대한 조응으로서 스펙터클 액션대작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된 도시 하층계급 남성들이라는 안정된 관객층을 대상으로 한 B급 하이브리드 장르영화로의 전이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러 급격히 사라져갔다. 이 장르 내부의 변모는 초기 만주물이 견지했던 강력한 국가주의 서사가 약화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만주물이라는 이 `통국가적` 장르가 반공 전쟁영화라는 지평으로부터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만주물이 대한민국이라는 분단국가의 정치공동체의 성립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모순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의 기초를 이룰 것인데, 즉 전쟁과 내전의 교착이 그것이다. 내전에서 비롯된 한국 전쟁영화의 딜레마가 적이라는 형상의 이중성에 놓여있다면, 식민지의 외부에서 교전공간을 상상하는 만주물은 말 그대로 죄와 부채없는 장르로서 국가의 기원을 보증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 만주라는 공간의 외부성이야말로 이 서사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현재의 주권국가는 독립`군`의 형태로서 그곳에 개입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흔적-국가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강력한 민족주의 서사의 구축을 위해 필요한 전쟁의 이미지, 적의 필요성이 식민지의 외부인 만주에 교전 공간을 상상하도록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공간의 역사성 아래서 교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주권 간의 경쟁과 개인과 집단의 귀속 여부라는 어려운 난제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민족주의 서사로서의 저항의 역사가 완성되어 민족이 영생하는 것으로 규정되고, 그 위에 번영이라는 근대화의 논리가 중첩되는 순간, 이 장르의 `쓸모`는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외부의 상상력은 내부로 전이된다. 만주물이 끝난 자리에 일련의 깡패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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