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일본어교육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Education Association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005-70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4권 0호 (2008)
6,300
초록보기
文學において空間の示す意味は果たして大きい。李箱文學における東京はまさにその通りである。本稿は、李箱文學の原点ともいわれる芥川文學を通して、主として<東京行>および東京の示す意味を探ったものである。先行硏究において單獨的な論は見當たらない。まず、二章では、李箱の<東京行>について考察した。先行硏究において槪して自殺と同一槪念と見做されてくるが、實は文學的、芸術的指向性を求める旅という觀点に立ち、論を進めて行く。論證のための資料は意外に乏しく、そこで、作品や家族や知人などの證言を資料として扱った。その結果、具體的な目的意識は見い出せなかったにせよ、芸術や文學に對する熱い思いが確かめられた。三章では、東京嫌惡について考えた。李箱の期待とは裏腹に、東京は嫌惡に滿ちたトポスに過ぎなかった。しかしながら、その嫌惡の念は單純に物質的な西洋近代文明によるものではなく、自ら追い求めていたある精神的な指向性に巡り合えなかったためであろう。そこで、否應なしに芥川龍之介や牧野信一に原点回歸せざるを得なかったと見定めた。四章では、芥川文學をもって李箱の<東京行>および東京に對する嫌惡意識を考えた。まず、芥川の東京嫌惡に觸れ、芥川の場合は西毆近代文學に基づいた全面的な自己否定の樣相を示す一方、李箱にはそのような己への否定意識は見當たらないと見做した。それから京城への鄕愁は心身とも疲れ果てた李箱を生理的に感覺的に誘うものに過ぎず、思想的なところにまで及ぶもの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李箱の內部の奧底に秘められた京城への鄕愁感情の意味を細かく讀み取るまでには至らなかったこと、また、牧野信一に觸れていながらも具?的な論證はできなかったこと、それから論全體が推論に終っていることなどは本稿の限界であり、これからの課題でもある。
6,000
초록보기
日本は獨島を領土として編入した1905年の100周年を期して2月22日を「竹島の日」と定める條例を可決し國民と國家の關心を促した。しかし日本は過去において旣に同じ主張をしていた。外務省は嘗て漁民たちが幕府の許可を得て渡海し禁止された17世紀の出來事と1905年の侵略行爲、終戰以後に連合軍と結んだ條約に歷史的正統性を求めながらその所有を主張しているのである。しかし于山島と鬱陵島などの島で構成される于山國は513年に新羅により征伐が行なわれて以來朝鮮の領土であったので、そのような正統性は認められない。日本の漁民が竹島を見顯(發見)したということは、日本がその島を朝鮮の領土と認めていた時代的認識と矛盾するものであり、1905年の一方的な領有權宣言は侵略の一環として行われたことであるため、日本が侵略行爲を反省したことによりその效力は旣に喪失した。今に至って帝國主義の侵略を象徵する1905年の100周年を記念し、そこに正統性を求めるということ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國際平和を誠實に希求するという日本の憲法の姿勢とも背馳する。そしてこのような矛盾的思考が古代以來の日本の民族精神であるという意見が出される根處を提供するものである。1696年に日本人の渡海を禁じた領域に竹島/松島が含まれなかったとの主張も成り立たない。松島は竹島に附屬島嶼であったので、松島だけを目的地とする渡海は行われなかった。渡海を禁じられた漁民が松島へ渡海したことが無かったということがそれを立證する。かく日本が主張する全ての正統性は虛構に基づいたもので竹島を領有すべき正統性に成り得ない。またそれは國際的信賴を裏切り、侵略を正當化する恐れのある主張である。變わることなく1905年から正統性を求めることはそれを肯定、稱替することであると同時に、今後の侵略を予告するものであり、警戒を要する。

일본 만화에 나타난 중국인의 이미지에 관한 고찰

장용걸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237-260 ( 총 24 pages)
6,400
초록보기
これまでに「美味しんぼ」という漫畵が中國人のイメ一ジを如何に表現されているかについて分析來てきたわけである。それを要約するとつぎのようである。一つ、中國社會はとても不平等的な階級社會であることを强調している。中國人として周大人という日本の華僑が登場する。この人は先代から日本で住み着いてきた人で、金持ちであり、華僑社會のなかでは相當の地位を持っている。その人はとても禮儀正しくおとなしい。しかしこの人とは對照的な人が登場するが、彼の壻になる人と、料理人である。料理人は自分が作った料理に對して山岡が批判したので、自分の包丁を振り回した人である。そこで周大人が料理人を引き留めることを見せる。そしてその料理人も周大人の前ではおとなしくなることを見せる。つまり周大人が料理人を階級を持って支配している樣子である。そして彼の壻の問題の時も壻になる人が周大人を怖がっているとか、周大人の娘を本當は自分の妻になった人であるけれど口癖になったようにお娘樣と呼んでいることとか、周大人の奧さんを奧樣とよんでいるとか、周大人を丹那樣とよんでいることとかを見せながら、こういうことは使用人根性から拔け出してないからだと叱るのである。美味しい料理を作るためには力が必要である。そのためには使用人根性を棄てることであると主張するのである。そして人民服を使って一種の中國人のステレオタイップを形成している。二つ、中國人の食文化は我我が絶對に食べられない食べ物を食べている人間として表現している。もちろん、雁屋は意圖的ではないけど二種類の姿を見せているのである。一つは、文化相對主義の觀点から日本の捕鯨について西洋の反論をまた反論するために中國の特別な食文化を見せるのである。もう一つは、中國人は野性動物を食べる我我とは違った人間であることを暗默里に見せているのである。
5,700
초록보기
ペリ一來航を契機とする對外的および國內における政治的·軍事的緊張に對し、幕府は機構改革と組織の擴充を通じ、これに對應しようとした。特に、外交と軍事上の必要によって企畵·設立された洋學機關の蕃書調書(開成所)にも、學政改革をはじめとする一連の改革や新企畵が實施された。つまり、幕府はこの機關の改革と組織の擴充を通じ、この危機を打開する一つの試みとして推進しようとした。本稿では、このような狀況の中、實際蕃書調書(開成所)內で、どのような變化が起き、またそれが持つ特徵と意味は何か、それが可能になった背景には何があったのか考察する。具體的には1860年から1868年の期間を對象とし、また機關の呼稱は便宜上開成所と統一する。考察の結果、1860~1866年の期間には、外交上の必要から語學敎育の擴大と殖産興業と軍事關連技術の開發のための學科新設、またそれに伴う機關の性格の變化、それから敎官たちの硏究分野も語學以外に自然科學と社會科學にも廣がるようなことが起きた。また、1867~1868年の期間には、軍事官僚の養成とそのための開成所敎官の職務?制の調整、陪臣出身生徒の取り扱いの變化、日講の開催、府內に公議所設置とその際の役割단當などのことが起きた。以上から、幕府は對外的環境の變化に對應するため、緖改革を開成所內で實施し、時代の變化に能動的に參加しようとしたし、そのための制度的要素の提供にも努めた。しかし、幕府の解體が早く訪れ、成果らしきものは明治になって出てきた。その意味で、幕末と明治初期の洋學敎育と硏究は連續性を持っているし、また幕末の直轄學校の洋學敎育は近代敎育の源流ともいえるだろう。ほとんどの試みはすでに幕末に開成所などで行われたからである。また、それが幕末に可能になった背景には、定着學問の基礎という社會的要素、學者のような人材的な要素、幕府の支えのような制度的要素があったから可能であったと思う。

韓日兩國の家族構造の變化が老人扶養に及ぼす影響

정희순 ( 鄭姬順 ) , 안병곤 ( 安秉坤 )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279-301 ( 총 23 pages)
6,300
초록보기
본고는 한일 양국 가족 구조의 변화가 노인부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가족 구조의 변화와 추이를 근거로 하면서도 그런 요인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에는 어떤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 공통점과 차이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비중을 두고 한일 양국 가족 구조 변화가 노인부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첫째, 子女數의 減小에서 그 속도가 한국이 일본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노동 인구의 감소를 초래하며, 비 노동 인구에 대하여 과도한 부양을 요구한다. 그리고 노인 인구의 증가는 일본에 이어 한국은 세계 제2위 장수 국이 될 전망이다. 또한 평균 세대원수의 감소는 한일 양국 모두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상대적인 인구 감소를 가져온다. 따라서 가족 내에서 노인을 부양하는 기능은 약화되어 노인부양의 사회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둘째, 家族 周期 變化 측면에서 가족 형성기 및 확대기의 한일 양국은 모두 시기적인 차이는 있지만 초혼 연령의 상승과 출산율의 저하로 인하여 매우 단축되고 있고 동시에 자녀 부양 기간은 오히려 짧아졌다. 그러나 가족 해체기 기간은 한일 양국 모두 평균수명의 증가로 부부만의 가족생활 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노부모 부양 기간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족 주기 단계의 변화 양상은 자녀의 양육 기간이 축소되고 부부 중심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전업 주부의 재취업과 여가 생활의 욕구를 높이게 된다. 또한 노인들만 남게 되어 노인부양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 家族 世帶 單純化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노인독신가구``가 높은 비율을 보이는 것은 한국 보다 일본의 평균수명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 비해서 시설 등에서 거주하고 있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 비해 일본의 경우 노인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더 많이 마련되어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편, 한일 양국 모두 ``2세대가구``가 증가하는 것은 노년기 가족의 특징인 ``만년형 동거``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기존 3세대 이상의 가구에서 자녀와의 동거 형태가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려하면, ``노인독신가구``와 ``노인부부가구``는 노인부양을 어렵게 하며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화가 요구된다. 넷째, 家族 形態의 多樣化에서 나타난 특징은 ``독신가구``와 ``한부모가구``의 증가이다. 초혼연령의 상승은 젊은층 ``독신가구``의 증가를 가져오며, 저출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노인부양을 공급하는 자원의 감소를 초래한다. 또한 한국의 IMF 외환위기와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불황의 장기화는 가족해체를 가속화 시켰다. 그 결과 한일 양국 사회의 높은 이혼율과 각종 문화적 유행어의 양산은 ``한부모가구``가 늘어나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노인부양이 전통적으로 가족 내에서 이루어져왔던 점을 고려할 때 전통적 가족 형태에서 노인과의 관계가 훼손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족 내에서의 노인부양의 문제점은 결국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적 부양 책임감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여러 요인들을 종합하여 볼 때 시대적 사회적 변화에 따른 한일 양국 가족구조의 변화는 노인부양이 전통적으로 가족 내에서 이루어져왔던 점을 고려할 때 가족 내에서 노인을 부양하고 보호하는 기능이 약화되는 노인부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양국의 가족 구조 변화에 나타난 노인부양 문제는 한 가정의 가족 문제에서 사회문제로 이전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과 노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부양 책임감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