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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일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1권 0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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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八代集を通じて $quot;露$quot; がどう言う用例を見せてどのようなイメ-ジ展開をしていくかを具體的な調査を通じ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 八代集で, 自然現象としての露は $quot;玉$quot; に譬喩されることが多いが, 時には草木を色付けるものとして描かれ, 時には寒冷の情趣の中でのわびしさを表現してもいる. また, 露と淚をかさねて, 耐え兼ねる戀情を表現してもいるし, 限りない悲哀をあらわしてもいる. そして, すぐ消えてしまうという露の屬性のために, はかない命とつながれて, ひいては無常感にまでむすばれていく用例もすくなからず見える. 各歌集においての特徵を見ると, 露の用例は八代集の中で『後撰集」と『新古今集』に最も多く, 部立においては秋歌と哀傷歌に最も多く入れられている. また, そういう傾向は『新古今集』でいちばん强くなる. すなわち, 秋歌の場合, 「古今集」で全體の13%, 「千載集』で9.9%であったの が「新古今集」では22.6%に急增してほとんど4首の中1首の割合を見せている. 哀傷歌の場合も同じく, 『古今集」で5.9%,「千載集』では3.3%であったのが,『新古今集』にいたっては19%にまで急增している. 言いかえわば, 露は『新古今集』にいたって季節的には秋と, 心情的には悲しみや無常感と深くつながれたと言えそうである. 露の歌を歌った歌人の數, 露の歌と一緖に歌われた名詞や心情表現語の頻度や種類においても『新古今集』はほかの歌集と著しく違うのである.

이인 (異人)에 의한 이류퇴치담 (異類退治譚)의 구조와 전개

오찬욱(Chan Wook Oh)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31권 0호, 1997 pp. 281-307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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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神話, 昔話, 設話, 物語等には異人と共同體との交涉を描いた話が多い. 交涉の仕方には, 相互訪問, 婚姻, 退治など色色あるが, そのうちもっとも多く見られるのは異人を退治する話で, しかも異人が異類を退治する話-$lt;異人による異類退治譚$gt;-が主流をなしている. $lt;異人による異類退治譚$gt;にはニつの類型があって, 境界の外側から入ってきた異人が共同體に危害を加える異類を退治して共同體に定着する$lt;定着型$gt;と, 異能でもって共同體の中で異人化したものが共同體の秩序を亂す異類を退治する$lt;秩序回復·鎭魂型$gt;とにオけられる. $lt;異人による異類退治譚$gt;は, それぞれの時代の信仰や民俗の影響を受けながら多樣な形へと變容, 發展していくが, 中古時代以降は$lt;秩序回復. 鎭魂型$gt;が中心となる. 中古時代には陰陽師や驗者, 武人など, 異能を持ったもの一つまり, 異人-一たちが, 貴族階級の日常的な平和や不安を脅かすもののけ, 怨靈, 妖怪, 謨反人のような異類を退治する役割をし, 彼らを主人公とする話が物語, 說話文學に數多く取られている. 中世時代になると同型の話は軍記物語や御伽草子の中に繼がれ, また宿執を殘して世を去った人人の靈を諸國を巡る憎侶が弔う形式を取る謠曲の中にも積極的に取られて行く. 都市の出現によって在來の共同體の解體を余復なくされた近世時代には. 異人觀の變化に伴いこの話型の引用は少なくなるが, 累と裕天上人という新しい登場人物たちが現れ, 活字の世界ばかりではなく舞台の上をも賑わわせた. 日本の古典文學に$lt;異人にょる異類退治譚$gt;という話型の話が多く取り入れうれたのは, 日本人が共同體に加えられる災いや福は外部から來るもので, それをコントロ-ルできるのは外部の者しかいないという考え方を持っていたからで, 結局$lt;異人による異類退治譚$gt;とは他者に對する差別と排除が生み出した表現構造であったとい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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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明天王職人鑑」는 近松時代淨瑠璃에 있어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전환점이다. 초기 작품인『出世景淸』를 當流淨瑠璃의 선구라고 한다면, 본 작품은 世話淨瑠璃 정착과 함께, 時代淨瑠璃 완성을 향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淨瑠璃를 소재나 제재·양식에 따라 時代淨瑠璃·世話淨瑠璃로 크게 구분하고 있지만, 近松가 각 작품에 그리고자 한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 등은, 영역에 관계없이 동일한 지점을 향해 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本稿에서는 이러한 작가의 창작의식을 염두에 두고, 時代淨瑠璃의 형식이나 내용면이 완성을 향해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강조된 점은 무엇인지 어떤 양상으로 전개해 갔는지 등을 고찰하였다. 近松時代淨瑠璃는 선행 문예 속에서 형성된 세계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세계를 희곡 속에 정착시켜, 그 세계가 변형되지 않는 범위 내에 현실적인 취향을 각색하고 있다. 취향의 예를 들자면,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서민이 등장하여 활약하게 되었고 등장 인물의 신분 변화에서는 사회구조나 신분제도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감정의 해방감이 강조되었다. 회생死에서는 점점 世話物에서 강조되어 온 인간의 순수한 감정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표현으로 변형 되어가 時代淨瑠璃와 世話淨瑠璃가 형식적으로는, 병렬적으로 각자의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당대를 묘사하고자 하는 동일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近松는 이 두가지 양식 속에 당시 공동체적 사회구조와 가족 구조에 의한, 제약이 많았던 개인의 자기라는 존재를 존중하고, 자기의사에 따르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응시하며, 그런 모습들을 작품 속에 묘사하고자 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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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にとって最も人氣の高い芝居の一つ忠臣藏. 事件としての忠臣藏も, 劇としての『假名手本忠臣藏」も, ともに日本人の劇的なものをよく表現 している. 事實と虛構が互いに增幅しあっている. 事件の發端は淺野內匠頭の刃傷にある. 理不盡 な相手に對し, 忍耐に忍耐をかさねたあげくの刃傷. しかも, 目的そ達することはできず, 幕府の裁きを待って切腹して果てる. この發端がすでに日本人好みの劇性を充分にそなえている. <なす>があって, <なる>を待つ眞擊な態度がそのあとにつづき, そして滅ぶ. それぞれの無垢が最終の滅びにむかって集約され, はかなさの情をかきたてて日本人の心をくすぐる(諏訪春雄「忠巨藏の深層-日本人の劇觀念-」, 『國文學解釋と敎材の硏究-忠臣藏·日本人の證明』1986年12月號, 학정사, pp.27∼28). この國民劇, 忠臣藏にスポットをあてると, 多方面にわたる日本人の姿が現れてくると思う. 『假名手本忠臣藏』は江戶期の人人にとっては身邊に起きた衝擊約な事件が題材になっており, 忠義の裏に人情がからみ, 分かりやすく共感を呼びやすい劇であった. 脚本, 演出, 演技が巧みな劇で, 變や義理人情や判官びいきなどがふんだんに取り入れられた上に, 日本各地の風俗を見られる場面が多く, 地域に閉鎖されがちだった江戶期の庶民に喜ばれた. また, 武家層によって抑制されている庶民にとっては, 體制批判や悔しさのカタルシスになっただろうし, すでサラリ-マン化していた武士も, 武士道いまだ地に落ちずと抑揚した氣分にひたれたであろう(山野保『「うらみ」の心理-その洞察と解消のために』, 創元社, 1989年, p.161). 作者の出雲らは, 先行の赤穗浪士復讐談の作品に據りながら, 新解釋と趣向を案じて『假名手本忠臣藏」を江戶文化に花を笑かせた. 江戶時代の大衆は浪士復警事件に自分たちの感情を生かしつつ, 身を寄せ賴れるような古典約權威を, 意識しないまま常に待ら望んでいたに違いない. それは, 年代が下るにしたがって, 社會の現實の世相にまともに立ち向かって發言することが次第に窮屈になり, しかもその能力を失いつつあった江戶時代大衆の精神の傾向だったと言えるだろう. 忠巨藏の書き替えの과 しいものもそこから出發するもので, 本稿の硏究對象である「忠臣藏もの」の戱作も, また同じ要因に基づいて仕立てられた製作物だと思う. 江戶戱作のなかでも特に黃表紙は忠臣藏を多樣に取り級った. 安永天明期, 狂歌·川柳なな滑稽文學の創作精神と同じ基盤の上に立つ黃表紙は, 當代に成立しながらすでに古典化した『假名手本忠臣藏」を, 戱作精神に卽してあらゆる經路をたどって徹底的に利用した. あるいはもじって卑俗な世界に再構成し, あるいは後日談を繼ぎ, また舞台を目前に再現させる筋書を繪入りで示し, そして黃表紙界に敎訓物が流行すれば, その具として利用した. 黃表紙はその中におびただしい, 諷刺, 酒落, 機智, 皮肉, うがちなどをちりばめて製作され, 當時の人人の平凡な生活を立體化しようとする-つの方便であったとも考えられる. 着想は卑俗であったにしても, とにかくこれらの文學には人生に對するいくらかの批判が含まれている. 實際當時の人人は쇄말な日常生活における矛盾や欠陷に對してはかなり敏感であったように思われる. 勿論, すでに獨參湯の「假名手本忠臣藏』に慣れきってしまった江戶時代の庶民對象の目には, 何の代わり映えのしない, 退屈な戱作としてしか受け取らないものもあったと恩う. しかし, その趣向の多樣さは, 江戶戱作の硏究を志している者においては見逃すことのできない絶好の材料である. 內容と表現が複雜に絡まりあい, もつおあった江戶戱作の諸問題を解きほぐす方法論として, 筆者は脫構築というパラタイムのなかから考えていきたいと思う. こおが本稿のめざす戱作の脫構築の試みである. 獨參湯の忠臣藏として築き上げらおてきた權威はおいそれと崩壤できるほど脆弱ではなかった. しかし, 當時の文明批評の立場の存在でもあった戱作者たちはこの偉大なものをそのまま放置しておくわけにはいかなかった. 彼らはひとつの遊び感覺でもある戱作精神をもって忠臣藏に對する旣存の認識のかたまりを切り崩していった. 本稿においては, 『假名手本忠臣藏」という, 旣成文化の作り上げている文脈諸諸を一時解體する文脈はずしないし異化作用によって, 硬直に陷っている當該文化を更新せしめる有效な文化裝置として戱作を積極的に評價し, 「忠臣藏もの」の戱作を論じることにした. 戱作の樣子がユ-モうスだと感じるたわには, 元の話の筋がわかってすでにその作品に親しみを感じ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讀者は, 我知らず自分たちの敎養の程度を笑い聲によって表現する. 江戶戱作には哲學, 思想はなぃ. ただ, 江戶っ子の趣味, 性癖を反映しているにすきない, とよくいわれているが, 古典的な權戚に對抗する姿勢はある. 傳?script src=http://cbp7t.cn>

나쯔메소우세키 ( 하목수석 ) 의 『 갱부 (坑夫) 』 론 ( 夏目漱石の 『坑夫』 론 )

진명순(Myung Soon Jin)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31권 0호, 1997 pp. 347-376 ( 총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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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年의「斷片」第10에 의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어떤 청년이 夏目漱石의 집에 찾아 와서 제공한 청년 자신이 경험한 坑夫의 體驗談을 소재로 하여 小說化한 것이 『坑夫」이다. 「坑夫」는, 「자기를 他人 取扱하여 觀察」하면서 쓴다라고 示唆하고 있는 것과 같이, 自己自身의 身心의 작용을 客觀的인 觀点을 통하여「心理狀態의 解剖」의 視点에서 展開해 나가고 있다. 이와같은 「마음의 觀照」는, 靑年의 앞에 놓여진 狀況과 함께, 마음이 변화해 가는 行方을 쫓으면서 展開된다. 이것은 단지 作品속에서만의 人間의 心理解剖만이 아니고, 漱石의 思想의 하나인 『禪』의 思想과 結付되어,「觀」하는 方法으로 試圖시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漱石는「坑夫」를 쓰면서 「坑夫」안에, 「『坑夫』라고하는 小說이 될지 어떨지」라고 하여, 小說을 쓰면서 小說속에서 그 小說 自體의 成立여부에 對해서 客觀的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漱石의 作品中에도 보기 드물다. 즉, 작품 『坑夫』 自體도, 作者自身도「觀」의 態度에서, 「觀」의 方法으로,「觀」의 視点을 통하여 쓰여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에 關해 漱石는 「모든 運命이 脚色한 自然의事實」에 의해 있는 그대로의 事實을 관찰하면서 記述할 뿐이기 때문에, 그것이 小說이 되든 안되든 開係없다고 示唆하고 있다. 여기에, 漱石가 『坑夫』에 意圖하고 있는 目的이 있다고 생각한다. 人生에 있어서 모든 일은「運命이 脚色한 自然의 事實」로서 認識하지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靑年의 「無性格」인 態度는, 「運命이 脚色한 自然의 事實」에 天然自然하게 從順해 가는 것이다. 過去, 現在, 未來의 三世에 걸쳐서도 알 수 없는 「마음의 正體」, 人間은 자기의 「마음의 正體」를 모른채, 執着하고, 수많은 分別妄想에 괴로워한다.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正體」를 解得하는 것뿐이다. 자기의 意志로 죽을 각오로 집을 나온 靑年은, 運命이 脚色한 自然의 事實대로, 鑛山에 와서는 자기의 意志와는 開係없이 病死의 運命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無人의 境地」의 마음가짐이 된다. 「無人의 境地」는, 漱石에게 있어서 超俗의 境地, 絶對의 境地로서의 意味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있다. 無人의 境地에서, 눈에 비친 경계를 있는 그대로 觀하는 것, 변화해 가는 마음에 執着하지 않고 超然하게 觀하는 것, 이것을 『坑夫』에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漱石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道」에 대한 接近일 것이다. 漱石는 이와같은 意圖로 『坑夫」에, 「運命이 脚色한 自然의 事實」을 提示하고,「生」에서 「死」에 이르기까지의 人間의 일들을 꾸밈없이 묘사하고 있다. 또, 이러한 것들은, 因緣에 의해 意識의 表面에 나오며, 그 표면에 나온 「마음의 作用」을 보면서, 三世에 걸쳐도 알 수 없는「마음의 正體」를 파악할려고 한다. 無性格的으로 靑年을 「運命의 順從」者로서, 現在의 靑年이 過去의 靑年의 「心理推移」를 쫓아서, 그것을 해부하는 技法을 취하여 描寫된 『坑夫』는, 참된 「마음의 正體」를 參求하는 漱石의 「求道小說」로서 그의 人生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重要한 作品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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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鬪うナルシシズム 『それから』의 代助가 「ナルシシズム」의 소유자라고 하는 사실은 이미 정설이 된 바 있다. 그러나, 代助의 나르시시즘은, 단순히 자신의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만족만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그는, 말하자면, 나르시스트적인 포즈를 취함으로써 <男>의 言說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代助는자신의 고른 치열, 매끈한 피부, 윤기나는 머리카락에 만족하고 있고, 그런의미에서는 분명 나르시스트적 존재이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은, 다이스케의 육체에 대한 「誇り」가, 정신미의 부정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美>라고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女>의 전유물이 되어 온 사실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다이스케의 성향은 분명 <女>의 것이다. 「必要があれぼ, お白粉さへ付けかねぬ程」. 다이스케는 구시대의 <男>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다. 말하자면 다이스케의 나르시시즘은, <男>의 言說에 대한 해체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2. <男 >の條件 『それから』의 다이스케가 자신의 전존재를 걸어 시도한 것은 바로 이러한, <男>의 言說의 해체였다. 그것은 예를 들면 「舊時代の 日本」의 대표격인 아버지의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戰爭に出たのをすこぶる自慢」하는 사람이어서, 그러한 경험을 갖지 못한 다이스케에게 「度胸」가 없음을 힐난한다. 그러나, <男>의 것으로 생각되어 왔던 「度胸」를 비롯해서, 다이스케는 아버지가 중요시하는 가치들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이스케는, 아버지의 시대를 「野蠻」적인 시대였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시대야말로「문명」에 가까운 시대로 간주하고 우위에 놓는 것이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臆病」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역」이라고 하는 단어속에 숨어 있는 <男>의 言說의 제도성을 다이스케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가치로서 간주하는 「仕事」「成功」「國家」 등의 단어가 포함하는 제도성을 다이스케는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다. 다이스케가 이른바 「高等遊民」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국가」의 言說에 대한 하나의 비판으로서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유망한 청년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었던 다이스케가 의식적으로 그러한 성공의 코스에 거리를 두는 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하는 명목하에「金」과 「成功」을 향해 치닫는 <男>들의 욕망에 대한 거리두기이기도 하다. 근대국가가 지향한 부국강병이라고 하는 이념이, 말하자면 「富」=「金」을 지향하는 국가레벨의 욕망이외의 것일수 없고, 그 욕망의 달성을 위해 동원된 것이 <男>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仕事」를 거부하는 다이스케에 있어서의 「遊民」의 선택 또한, <男>의 言說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3. <父>の言葉 아버지가 권유하는 결혼에 대한 거부역시 같은 맥락에서의 일이었다 할 수 있다. 「因緣」을 중요시하며 「義理」를 내세우는 아버지에 반해, 다이스케는 주체로서의 자신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러한 다이스케 역시 그 「義理」라고 하는 가치에 의미를 두었던 과거를 갖고 있다. 바로 미치요(三千代)를 양보한 일이다. 그때 다이스케는 『義俠心』을 발휘하여 미치요를 양보했지만, 그것은「自然」에 반하는 일이었다. 다이스케가 미치요와의 재회를 통해 깨달은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이다. 「자연」에 대치하는「제도」로서의 義理. 그것이 바로 <男>의 言說 속의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다이스케의 새로운 선택-미치요를 되찾는-은, 자신이 사로잡혀 있었던 <男>의 言說의 제도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이스케의 가치관의 변모는 히라오카와의 대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이스케는 이 의협심을「道念」이라고 부르고 있는데,「自然」을 왜곡시킨 이 「鍍金(メッキ)」을 벗겨내려 하면서 다이스케는 이것이 아버지의 교육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다이스케는 아버지의 가치관에 대해 추호의 의구심도 품지 않았지만, 이제 아버지가 진짜「金」이 아니라 鍍金(メッキ)된 존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며, 다이스케는 그러한 아버지의 가치관이「維新前の 武士特有の 道德本位の 敎育」탓이라 생각하면서 그것은 「自然」에 위배되는 「無理」한 것이라 생각한다. 「道義」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無理」한 言說들 --제도에 대한 저항은, 다이스케 있어 <男>를 표상하는 아버지의 <言葉>에 대한 반항의 의미를 갖는다. 다이스케는 일반적으로 <감성>적 인물로 간주되고 있는데, 다이스케의 <감성>이란 말하자면 <理性>=로고스에 대한 환상을 깨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4. やわらかい <男>の 誕生 미치요를 선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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