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비교문학검색

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7권 0호 (2015)

소설과 기하학의 역설에 관한 비교연구

정익순 ( Ik Soon Chu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7권 0호, 2015 pp. 313-337 ( 총 25 pages)
6,5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유클리드의 『원론』에 나오는 공리들이 기하학의 패턴에 적용되면서 철학과 수학의 영역으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수의 개념이 어떻게 문학적 관점으로 나타나는지를 발견하는데 있다.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추상적 기호에 대한 언어적 표현과 체계적으로 발전한 대수학적 방정식을 문학의 사고체계에 대입할 경우 적어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피타고라스의 정리,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수학적 설명,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위한 논리, 그리고 무한의 개념을 해결한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이론들은 수학의 계보를 이룬다. 철학과 수학이론의 용어들인 사물 그 자체, 증명, 무한과 역설 그리고 운동과 변화의 개념은 유사하지만 다른문제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발생하는 차이점들을 소설의 사건들과 동시에 배열함으로써 문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수학의 직관과 형식논리를 문학의 작품과 연결하여 사유한다는 것은 탐구의 영역을 확대하는 융합의 문제이다. 그러한 시도는 이미 있었지만 문학과 수학의 언어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경계가 있다. 단순한 용어의 차용이나 공식을 이용한 문제제시의 한계를 넘어 기존의 사유방식을 극복할 수 있는 초월적인 개념이 접점을 이루는 곳이 존재할 것이다. 문학에서도 최소의 영역과 최대의 영역에 존재하는 수학과 철학의 역설의 문제를 미세한 표현으로 분할할 수 있다면 단순한 차이점의 발견을 넘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것이다. 이 논문은 2차원의 문제를 문학작품에 적용한 애보트의 『플랫랜드』를 기준으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에 나오는 수학적 요소들을 추출하여 역설과 문학적 상상력의 문제를 비교한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와 번역 -번역행위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리나 ( Ri Na Han ) , 조재룡 ( Jae Ryong Cho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7권 0호, 2015 pp. 339-358 ( 총 20 pages)
6,000
초록보기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프리모 레비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휴머니티를 지키려는 시도를 ‘번역’을 통해 행했다. 이탈리아 문화에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차지하는 그의 독특한 위치와 나치 수용소 체험은 레비의 내면에서 번역에 대한 관점과 생각을 촉발시켜 외현화한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번역의 조건이자 목적이 된 휴머니티와 인간으로서의 생존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확장시킨 사건이었다. 인간과 인간다운 삶을 성찰하는 레비의 번역관은 도식화되고 이론화된 번역이 아닌, 생존하고 기억함으로써 이어갈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번역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본 논문은 프리모 레비의 텍스트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e un uomo 』를 중심으로 ‘인간성’을 지키려한 레비의 번역관과 그것을 실행한 그의 번역행위를 살펴보려한다. 레비는 단테의 『신곡』<지옥>을 또 다른 수용수 장에게 번역하여 들려줌으로써 폭력에 대항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생존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레비가 『신곡』의 <지옥>편을 선택한 것은 수용소가 ‘지옥’ 그 자체임을 알리고, 살아 있는 인간의정신을 파괴하려 한 나치의 잔혹성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레비는 호모 사케르적인인간의 의지로 번역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것은 수용소가 지향하는 비인간적 상태에서 인간성을 구하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세상의 숨어있는 가치를 하나의‘재현’으로서 번역한 레비는 번역의 경계를 허물고 번역의 의미를 확장시킨 번역가라할 것이다.

동아시아 "바리데기" 이야기의 구조와 공간적 의미에 관한 연구

최성실 ( Sung Sil Choi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7권 0호, 2015 pp. 359-386 ( 총 28 pages)
6,800
초록보기
<바리데기>는 서사무가나 신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어온 이야기다. 동아시아에 퍼져 있는 바리데기, 혹은 이와 유사한 바리데기 이야기에는 아시아의 무교, 도교, 불교, 유교 등과 같은 다양한 종교, 철학적인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한국의<바리데기>는 보다 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서사구조로 민간에서 구전되어왔다는 특징이 있다. <바리데기>의 ‘바리’는 특정한 역사적 실체로서 어떤 인물을 지칭한다기보다는 버림받는 자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접근해야한다. 공주로서의 바리가 아니라 우리를 대변하는 버림받은 아이, 바리데기라는 해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바로 그 상상력의 원천에는 바리데기 서사의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 우선 <바리데기>는 멜로드라마와 흡사한 서사구조로 되어 있다. 멜로드라마에는 삶을 통속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미적 형식이 있다. 예컨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사건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강렬한 호소, 권선징악적인 행복한 결말과 같은 것이다. 선과악의 이분법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선을 위해서는 주저함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바리데기는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모든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것이 바리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리데기>에는 물이나 꽃을 구해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구하기 위해 바리는 반드시 저승 체험을 한다. 과연 저승이란 어떤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승을 무속의 차원에서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바리데기는 무가보다는 버림받은 자의 이야기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욱 풍성한 해석적 지평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바리데기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저승’도 무속적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수 탐색 서사의 특수한 공간적 체험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바리데기>에서 저승은 이행영역(移行領域), 이행공간(移行空間)이다. 이행공간이란 현실과는 다른 이질적인 곳으로 기존의 질서적인 문화 내부에서 배재되어 밖으로 밀려난 곳이다. 또한 구원받지 못한 채 거절당한 자들의 공간이며, 묘지, 무덤과 같이죽음이 옮겨간 곳이다. 바리가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저승은 푸코 식으로 말하면 헤테로토피아의 전형적인 공간이다. 바리는 저승에서 죽음을 탈구축하여 생, 삶의공간으로 옮겨간다. 여기에서 바리는 구원이라는 성스러운 행적을 시작한다. 죽음의 공포를 잊는 순간,바리의 육체는 신성(神聖)을 담지하게 되고 비로소 하나의 속성에서 다른 하나의 속성으로 넘어가는 성스러운 이행을 하게 된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떠도는 저승이지만 바리에게는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바리는 이 영역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혹은 천한 자 인지 귀한 자인지, 심지어는 생인지 죽음인지 조차 중요하지 않은 현실적인 체험을 한다. 바리에게 저승은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헤테로토피아인 것이다. 푸코에 의하면 이 공간에서 개인은 국가, 민족, 이성, 사회에 귀속되지 않으며 자신을 지배하는 사회와 다른 저항과 창조적인 발상이 가능하다. 바로 이 공간에서 바리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서 살아가는 인간자율적인 주체로 재탄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연구의의가 있다. 첫째, <바리데기>를 전 세계적인 공통 이야기 화소인 버림받은 자의 서사구조로 접근하여 해석의 지평을 넓혔다는것, 둘째, 국가 만들기 이데올로기 밖에 존재하는 바리의 자율적 주체의 의미를 저승이란 공간적 체험과 관련하여 분석하였다는 것, 셋째, 버려진 자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회자되며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 민중, 대중 친화적인 서사구조적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과학과 문학, 문학 속의 과학: 빅토리아 시대 소설 속의 과학의 "괴물들"

추재욱 ( Jae Uk Choo ) , 이규정 ( Kyu Jeoung Le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7권 0호, 2015 pp. 387-403 ( 총 17 pages)
5,700
초록보기
이 논문의 목적은 과학과 과학자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 속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들이 과학에 대해많이 배울 수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날 과학소설이라는 이야기들을 창작해낼수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괴물” 혹은 “악마”라고 칭하는 비이성적인 존재들을 창조하는 실험을 통해 이성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을 다룬다. 하지만 그 실험의 결과란 단지 괴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들만이 유일하다 할수 있을까? 과학적인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창조적인 마음을 지니고 새로운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어떠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도전하는 태도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의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신들의 무분별한호기심과 이기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왜 빅토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체를 만들고 나서 곧 바로 그것을 포기하였을까? 지킬 박사는 하이드로 자신의 삶을 마치게 되고, 결국 죽은 후에서나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수 있게 되었을까? 『프랑켄슈타인』, 『투명 인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이세 작품은 유사한 하나의 특징을 지닌다. 곧 각각의 과학자들이 비이성적 존재를 만들어내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소설 속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귀중하며 그 실험 결과가 역사 속에 위대한 업적의하나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상 그렇지 못하다. 사회는 과학의 결과물들에 대해 두려움을 지닌다. 그런데 아마도 사회가 더두려워하는 것은 그 실험의 결과물들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것들을 만들어내고있는 그 과학자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쾌한 상대성의 르네상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황지혜 ( Ji Hye Hwa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7권 0호, 2015 pp. 405-434 ( 총 30 pages)
7,000
초록보기
이 논문의 목적은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드러난 바흐친의 카니발적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극작가로서 카니발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웠다. 바흐친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카니발적 요소들이 많다고 언급하면서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연회적 자유사상을 언급하고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발견되는 카니발적 요소들은 가면과 변장,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하부의 이미지들이나 상호모순적인 양면 가치들, 향연의 이미지들이다. 특히 신체적 하부를 향하는 격하의 이미지들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체와 신체의 기능에 대한 관심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중심적인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고의 전환은 중세까지 지배적이었던 대 존재 사슬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생한 육체에 대한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는 의학이라는 새로운 과학과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시대적 전환과도 관계가 있으며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급진적인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변화와 교체에 대한 세계 인식은 극 속에서 카니발적 파괴와 생성이라는 양가적인 극적 장치들로 표현되고 있다. 절대화되고 총체화되기를 거부하는 카니발의 상대성의 원리는 변화 생성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다.
<< 1 2